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85화 (84/278)

제 85화

두 종족의 공성전으로 (5)

시운의 뇌리를 통해 시신경. 그리고 그 시신경의 줄기를 통해 눈으로 영상과 소리가 연출된다.

『오크놈들과 늑대놈들 때문에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야.』

『저 놈들은 도대체 언제 저 전쟁을 끝낸단 말인가?』

『내 동족들을 지상으로 올려보내 저 놈들 중 하나의 머리를 없애야 조용할 날이 오겠다.』

『야수족의 머리인 크리스란 무모한 놈….』

『그놈은 나와 이곳에서 혈투를 한 번 벌였었지.』

『놈의 눈이 슬퍼보이더군. 난 그 씩씩한 놈의 기억을 엿보았지, 그게 나, 자생도를 수호하는 해수룡의 권능이니까.』

『놈은 동생놈 때문에 힘을 발휘 못하더군.』

『놈의 동생놈 또한 패기있는 늑대놈이지만 혈사단(血死團)의 검은 사제와의 승부에서 패하고 술법에 걸려먹었지.』

『그 술법은 하필 귀신을 강제로 빙의시키는 흑마법이었더라고.』

『패기는 인정하노라만, 감히 짐승 주제에 흑마의 대제라 불리던 카인의 핏줄인 혈사단에게 덤빈 것은 악수(惡手)였다고.』

『내 영역이 또 왜 이리 시끄러운가! 야수족이 또 내 영역에 발을 디뎠단 말인가?』

『저 두 놈은 인간?』

『가만두지 않을 터이다!』

『허, 헌터였단 말인가? 신의 일부 권능을 얻은 내가 고작 저 두 놈에게!』

『강하다. 고귀한 이 몸이 정말 헌터 따위에게…』

해수룡의 육성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시운의 눈 앞에 그려진 것은 시운과 유석이 마지막으로 일격을 꽂는 모습을 끝으로……

시야가 비틀어지며.

들려오던 소리, 펼쳐지는 광경, 느껴지는 후각 등이 일제히 사라졌다.

‘해수룡이 방금 나에게 죽었을 때까지의 기억이 나에게로 전달된 것이군.’

그때.

[긴급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긴급?’

시운이 눈을 크게 뜨자.

그 앞으로 퀘스트창이 맑게 떠올랐다.

[빙의된 리더의 아우][긴급 퀘스트]

야수족의 리더 ‘크리스’의 동생 ‘레카드’ 는 술법에 의해 몸에 귀신이 붙어 폐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레카드의 육신에 귀접한 귀신을 속거천리[速去千里] 하도록 하자.

성공 조건: 레카드의 몸에 붙은 악귀 제거 또는 봉인(0/1)

실패 조건: 레카드의 죽음.

성공 보상: ?????

실패시 패널티: 크리스와 야수족의 관계가 로 하락

거절 패널티: 명성 하락.

‘속거천리? 귀신을 쫓아내란 퀘스트란 말인가.’

콰아앙! 쾅!

해수룡의 난동에 의해 깨진 천장과 벽 틈에서 물이 터져나오고 있다.

터진 물은 어느새 시운의 무릎까지 차 있었고, 물 사이로 심해의 어류들이 흘러들어와 시운 다리 주위를 맴돌았다.

“일단은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야 할 것 같네요.”

시운은 점점 무너져 내리는 동굴을 보며 유석에게 말하자.

유석이 고개를 끄덕이곤 곧바로 뛰었다.

뒤따라 시운도 뛴다.

콰앙!

시운 발끝 앞으로 무너진 천장의 파편이 바닥과 충돌하는 소리였다.

하마터면 육신이 뭉개질 뻔 했다.

쿠웅! 드드드드-

던전이 마구잡이로 무너져 내리면서 던전의 형태를 이루던 돌의 파편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연발 펀치.”

유석이 스킬을 시전하여 길을 막은 돌들을 모조리 부서냈다.

빠악!

유석이 있는 힘을 다해 한 번 더 돌을 후려치자,

돌이 부서져 튀어 내리면서 지나갈 공간이 생겨났다.

심해의 물은 급히 유입되어 어느새 던전의 반 높이를 채워가고 있었다.

빨리 빠져나가야 할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물귀신이 될 판이다.’

“푸하! 푸하!”

두 남자의 머리가 물 위에서 급히 떠오른다.

시운과 유석이었다.

이미 그들이 지나쳐 온 저, 뒤편에서는 해안 동굴이 뭉개지는 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일고 있었다.

그들은 비 맞은 생쥐꼴을 하고서 자생도의 육지까지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육지에 도달하자 야수 네 마리가 그들을 알아보고 뛰어왔다.

시운과 유석은 기력이 다 빠진 상태였고, 야수들은 그들을 부축하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현대의 방 하나 정도 되는 공간.

주위는 하얀 천막으로 덮인 막사 안이었다.

그 중앙에는 장작이 타면서 막사 안을 온기로 채워주고 있었다.

시운과 유석은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휘적거리며 물기를 말리고 있다.

시운은 방금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

수영이라곤 자유형과 목욕탕에 가서 배운 개헤엄이 전부인 시운,

해안 동굴이 분해 되면서 시운은 종석과 함께 필사적으로 던전을 빠져나왔지만, 던전의 반절 이상이 붕괴된 탓에, 벽을 부수고 수영을 하여 심해에서 지상까지 올라와야 했다.

‘내 근력 스탯과 민첩 스탯 덕분이야.’

높은 근력 스탯의 작용으로 수중 속에서 손으로 한 번 물결을 휘저으니 마치 수영선수처럼 물 위로 도약했고, 그를 바쳐주는 준수한 민첩 스탯은 물결을 더욱 유연하게 가를 수 있게 해주었다.

‘아무튼 살았다.’

그리고.

해안 동굴에서 획득했던 긴급 퀘스트를 떠올렸다.

‘빙의된 귀신을 처리하려면 혹시.’

인벤토리창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었다.

직사각형의 녹슨 칼날이 타들어가는 장작의 불빛에 반사 돼 빨갛게 빛났다.

‘구황의 작두.’

아이템의 정보를 표시해 보았다.

[구황의 작두]

미식별 아이템.

‘내겐 식별 스크롤이 있으니 한 번 식별해 볼까.’

아르네스의 동굴에서 고대 무당놈을 죽이고 얻은 이 물건을 어쩌면 긴급 퀘스트에 사용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귀신을 다루던 무당놈의 유물인 데다가, 작두 또한 액을 쫓는 굿을 펼칠 때 쓰이는 용품이니까.’

찌이익!

[식별 스크롤을 ‘구황의 작두’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러자.

구황의 작두 정보창의 활자가 바뀌기 시작했고, 공백이 채워졌다.

[구황의 작두]

일국의 국왕에게 망극(罔極)을 한몸에 독차지하던 무당이 악귀를 쫓을 때 쓰이던 낡은 작두.

*장착 효과

[영출] 스킬 사용 가능.

[귀사] 스킬 사용 가능.

[????] 스킬 사용 가능.

-영출: 이승을 떠돌며 은신한 귀신의 형태를 강제로 뽑아낸다.

-귀사: 형태를 드러낸 귀신을 작두 속으로 봉인한다.

-????: 현재 사용 할 수 없음.

‘역시.’

작두와 무당 그리고 귀신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

성공 보상은 미지라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작두를 통해 긴급 퀘스트 또한 수월히 클리어 할 수 있을 듯 하다.

‘밖은 조용하군.’

그랬다.

막사 밖은 두 종족간의 전쟁 중이란 상황에 걸맞지 않게 조용했다.

지금은 야밤의 시각.

오크와 야수족은 서로 전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체결한 두 가지의 약속이 존재했다.

하나는,

밤 10시 이후부터 새벽 6시까지는 휴전 상태에 돌입하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병력의 절반 이상이 동원되는 큰 전투는 상호간에 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에 행하자는 것이었다.

‘서로 적인 관계에서 이런 약속 또한 웃긴 소리지.’

전쟁에 돌입한 두 종족들은 그래도 서로 추구하는 신념이 있고, 그 신념에 비롯되어 이 약속을 추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상황에 맞지 않는 약속이긴 했다.

시운은 깔린 이불에 등을 뉘였다.

야수족들이 챙겨준 이불이었다. 또한 생필품과 음식도 쓰라고 넣어주었다.

생긴 것은 사람도 씹어먹게 생긴 주제에 살가운 면이 있는 녀석들이었다.

‘음?’

시운의 눈이 옆으로 이동했다.

옆에선,

유석이 이불을 가슴 위로 덮은 채 조용히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

“안 자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잠이 오지 않아서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딱딱히 말하는 유석.

‘그저 과묵하다기 보단 사연이 있는 사람 같다.’

그리고.

시운은 해안 동굴에서 전투를 펼치는 와중에도, 예리한 눈으로 종석의 행태를 관찰했을 때.

‘저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내 움직임을 티 나지 않게 훔쳐보듯 봤었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유석 씨는 헌터가 된 이유가 뭐에요?”

“알아볼 것이 있어서요.”

유석은 딱딱히 말하고는 등을 시운의 반대편으로 돌렸다.

뭐, 말을 더 시키지 말란 눈치인 것 같기도.

‘알아볼 것이 있어서? 고작 그런 이유로 헌터가 됐다고?’

의아하고 이상하고 궁금하긴 한데.

굳이 남의 인생을 알 필요는 없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나에게 해가 될 사람은.’

오늘 하루 고되게 몸을 굴렸더니, 피로가 급하게 몰려왔다.

‘졸리네, 잠이나 자자.’

눈이 스르르 감겨옴에 눈꺼풀에 준 힘을 풀었다.

의식이 흐릿해진다.

“……….”

정적.

그리고 정적에는 은은히 타고 있는 장작 소리만이 더해질 뿐이었다.

유석은 고개를 돌려 시운을 힐끗 봤다.

‘잠들었군.’

유석은 품에서 사진 하나를 꺼냈다.

사진 속에는 종석과 그와 똑닮은 소년이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었다.

유석의 눈이 소년에게로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눈매가 슬프게 가늘어졌다.

‘내 동생 종우야. 반드시 너를 살려줄게.’

뺑소니 사고로 생을 마감한 장유석의 동생 장종우.

그는 유석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핏줄이었다.

유석의 부모는 일찍이 그들을 버리고 떠나갔다.

형편도 어려웠지만,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하던 벙어리 유석과 선천적으로 걷지 못하는 종우를 뒷바라지 하기가 싫어서였다.

‘내가 목숨을 걸고 종우를 먹여 살리려 했었는데.’

유석은 비록 벙어리였지만,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골격과 완력, 그리고 또 하나의 비현실적 능력으로 잡일을 마다 않고 동생을 위해 돈을 벌었다.

‘그게 내 삶의 이유였지.’

종우는 어렸고 지능이 남들보다 낮았지만, 유석만 보면 좋아서 히죽 웃는 그런 맑은 아이였다.

‘종우가 죽은 날이었지.’

사고로 16살이란 꽃도 못핀 종우의 죽음을 달래는 장례식 날.

일가 친척은 물론,

매정하게 떠난 부모조차 없이 홀로 장례식을 지키던 유석은 슬픔을 주체 못하고 터질 듯 울었다.

입에서 새어나오지 않던 소리가 마침.

절정의 슬픔을 토해냈을 때.

아무 소리조차 내지 못하던,

입에서 또박한 울음 소리가 터져나왔고,

울음 소리는 곧 종우를 부르는 단어로 변했다.

기적. 그 이후로 종석은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

-유석씨는 헌터가 된 이유가 뭐에요?

방금 자신에게 물었던 시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내가 헌터가 된 이유는 종우를 살리기 위해서다.’

유석.

그는 타고난 강골의 신체 뿐만 아니라,

남들과 다른 능력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 능력의 비밀을 알아냈던 날.

유석은 발로 뛰어다니며, 금같은 비밀을 몇 개 알아낼 수 있었다.

‘세상에는 불가사의 한 일이 많지.’

‘그 중에서 내가 알아낸 불가사의 한 일은 이 세상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회귀자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 회귀자들은 각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운명은 연결고리에 의해 결국 모두 이계로 향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유석의 가늘어진 눈매 속 안광이 빛났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회귀자도 있으니,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방법 또한 반드시 있을거야, 반드시. 현실과 다른 이 이계에서 그 해답을….’

유석은 시운을 바라봤다.

눈을 감은 채,

세상 모르고 곤히 자고 있다.

‘촉망받는 엘리트 신인 헌터, 이시운.’

그를 바라보는 유석의 눈매가 진해졌다.

그때.

유석의 오른쪽 어깨와 두 눈이 희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의 능력은 눈과 어깨. 그리고 회귀자.’

사람을 해할 생각은 없다.

다만.

동생을 살릴 묘안을 찾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귀자들 틈에 섞여 무한히 부활하는 그 비밀의 정보를 더 캐내야할 터였다.

‘하늘에서 외롭지? 종우야, 조금만 기다려. 다시 내 품에서 웃게 해줄게.’

밝게 떠오른 태양.

태양의 줄기가 자생도의 지상을 진하게 밝히자,

전시 상황에 돌입한 야수족의 성지의 투박한 광경이 더욱 훤히 보여졌다.

그 강한 햇살 밑으로 눈부심에 찌푸린 눈매를 한 채,

다가오는 두 남자를 보는 크리스.

“멀쩡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 일은 해결해 왔는가.”

크리스의 물음에 시운과 유석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 조건: 장유석과 동행하여 해안동굴에 도착 후 몬스터 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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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역시!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군.”

[퀘스트 ‘해안 동굴 청소’를 완료하였습니다.]

연동된 차크라와 시스템을 통해 성과를 확인한 크리스.

“뿐만 아니라, 그 던전을 붕괴시키고 왔습니다.”

시운이 덧붙였다.

“그게 정말인가?”

화색하는 크리스.

순간.

퀘스트 ‘해안 동굴 청소’의 완료 보상에 표기된 글자가 바뀌었다.

던전을 붕괴시켰단 소식에 들뜬 크리스는 더 큰 보상을 주겠단 생각을 굳혔고, 그 의식의 차크라가 즉시 전달 돼 활자가 변화 되어 표기된 것.

“수고했네, 자네들. 골치였던 던전까지 괴멸 시키고 왔다니, 본래 선물보다 더욱 값진 것을 주겠어.”

그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순간.

시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오오! 이,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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