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화
5만 마리 학살 타임 (1)
이어 울리는 알림음은 시운의 눈입꼬리를 휙 올려주기에 딱이었다.
[‘올스텟의 비약’을 획득하였습니다.]
“충분히 맘에 들 것이네.”
크리스가 덧붙였다.
입꼬리가 좋게 비집어 올라간 시운을 보자 크리스는 흡족한 너털웃음을 뱉은 것은 여담이고.
[올스탯의 비약][상급]
기본 구성 스탯 5가지의 수치를 모두 ‘4’ 상승시킨다.
‘역시…! 역시…! 히든 퀘스트의 보상은 일반 퀘 보상과는 비할 바가 못 되는 구나.’
흡족하다 못해 조증이 번진 듯이 기분이 들떴다.
생각해보라.
퀘스트를 하나 깨고 스탯이란 값진 능력치를 꽁으로 ‘4’. 그것도 기본 스탯 5가지까지 ‘20’이란 수치를 상승시켜 주는데.
안 좋겠는가.
‘이건 경매장이나 거래소에서도 구할 수가 없는 희귀 템이다.’
주저할 거 없이 쭉- 들이켰다.
[올스탯의 비약을 소모하였습니다.]
[근력 스탯이 ‘4’ 상승하였습니다.]
[지혜 스탯이 ‘4’ 상승하였습니다.]
[지능 스탯이 ‘4’ 상승하였습니다.]
[민첩성 스탯이 ‘4’ 상승하였습니다.]
[체력 스탯이 ‘4’ 상승하였습니다.]
“상태창.”
허공에 외치자.
미리 심플하게 설정해 둔 창이 떠올랐다.
레벨: 54
근력 <234> 민첩 <93>
체력 <76> 지혜 53 지능 13
열정 8
살기 0
여유 스탯: 3
‘좋아. 확실하게 올라갔군.’
크리스는 허공을 힘있는 눈으로 응시하는 시운을 보며 킥, 웃다가 유석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는 고개를 떨군 채 무표정으로 땅에 시선을 박고 있다.
“그대는 기분이 좋지 않은가. 고심이 가득해 보이네.”
크리스의 물음에.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아니면 다행일 것이고.”
힘없이 답하는 유석을 보는 크리스는 안스러운 호기심이 일었다.
‘저 청년은 처음 올 때부터 낯색이 매우 무거워 보였다. 가정에 우환이라도 있는 건가.’
드르륵-
한가득 뭔가를 싣고 가는 수레바퀴 소리가 늘어지게 들렸다.
“저건 뭡니까?”
수레바퀴 속에 가득 든 투명한 구슬을 본 시운이 물었다.
“저것들은 전투에 쓰이는 구슬이라네. 일정한 충격이 가해지면 터지는 폭약 구슬, 기름 구슬, 연막 구슬. 떼거지인 오크놈들을 상대하려면 저런 술수라도 발휘해야 해.”
구슬에 시선을 박은 시운의 뇌리로 하나의 그림이 그려져 아른거렸다.
“크리스 님. 저희가 투입된 최종 목적이 크리스님 종족이 전쟁에서 우승하도록 돕는 것이지요?”
“그렇지.”
“그렇다면, 저기 구슬들 좀 마음껏 써도 될까요?”
“위험한 구슬이야. 잘 못 썼다간 그대가 다칠 수도 있어.”
“허락만 해 주시면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음….”
고민하던 크리스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보조 용품의 사용을 허락했다.
‘케르만 경. 눈높은 그대가 인정했다던 친구가 저 헌터라고 했나. 내 친히 그대의 말을 믿어볼 것일세.’
“저는 돌아가서 재정비를 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종석이 말을 흘리고는 돌아서 야수족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틈 사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걸을 때마다 무거운 건틀렛이 쇳소리를 낸다.
“크리스님. 크리스님의 동생 레카드라는 분이 힘든 상황에 빠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입 안 닥쳐!!!”
시운의 말을 끊은 노성.
온화하던 크리스의 얼굴이 짓뭉개짐과 동시에 그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팔에 돋아낸 발톱이 날을 세우며 흔들렸다.
“네, 네 놈이 감히……… 내 아우의 이름을 함부로 놀렸겠다?”
너무 의외의 반응에 시운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뱀처럼 척추 밑 바지 속으로 흘러내렸다.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시운을 똑바로 노려 내려보는 크리스.
그에게서 묵직한 내공이 느껴졌다.
그러나.
시운은 차분히 입술을 열었다.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허나. 크리스님의 동생 분을 원래대로 돌려낼 방법을 알기에……”
시운의 말이 멈췄다. 이미 위로 들려진 크리스의 발톱은 시운의 머리를 당장이라도 찢을 듯 했다.
“제가 책임지고 동생 분의 상태를 원래대로 돌려놓겠습니다. 실패할 시 저를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이, 이, 이………!”
크리스의 팔목의 핏줄이 꿈틀였다.
“동생 분이 어디에 계신지만 알려주십시오.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끄아아아아!!”
이어 지른 크리스의 노성은 주위 야수들의 움직임까지 그대로 멈추게 했다.
크리스의 발톱이 움직여 시운의 콧등 앞에서 멈춘다.
발톱에 닿은 살점이 뜯겨겨 시운의 콧잔등에서 피가 뚝뚝, 흘렸다.
시운은 크리스의 성난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은 흔들리고 있어. 어서 나에게 당신의 동생이 있는 곳을 말해.’
마치.
석상처럼 둘은 멈춘 채,
그 제스처 그대로 서로를 몇 분간 바라봤다.
크릉?
크아아?
야수들의 눈은 그 둘에 머물러 있었고,
“어머, 뭐지? 둘이 지금 싸우는가 봐요.”
연희가 놀라 말리려 다가가려 하자 혜령이 그녀의 팔뚝을 잡아 낚아챘다.
“오지랖 부리지 말고 지켜봐.”
혜령의 눈이 진지해졌다.
‘이시운. 저 녀석은 이유없는 행동을 할 녀석이 아니다.’
끼이익-
강철문이 열리자 자욱한 먼지가 앞을 막았다.
“쿨럭! 쿨럭!”
탁한 공기에 절로 시운의 입에서 기침이 흘러나왔다.
시운을 제치고 앞으로 걸어간 크리스는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우야. 오늘은 널 보러 좀 늦게 왔구나. 용서 하거라.”
크리스 앞으로 크리스와 닮았지만, 피폐하게 말라 비틀어진 늑대야수는 팔,다리가 족쇄에 묶인 채 앉아 아가리를 콱, 벌리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카아아악! 대지의…… 영롱한…… 내가…… 하늘의 ……… 신조차 능멸하는 내…… 집념으로…… 크아아악! 창으로, 아니 칼로, 네놈들을 토막내어 빠져나갈 것이노라!!!!”
족쇄에 포박된 레카드는 발광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눈은 이미 다른 야수와는 색부터 달랐다. 적색.
“크아아아!!!! 감히, 감히!! 이 본좌를 모두 씹어먹고, 화형시켜 그 재를 짐승 밥에 던져주마!!!!! 오너라!!!”
괴성 소리 조차 섬뜩할 정도로 이상했다. 마치 영화 속 악마처럼 짓뭉개진 낮은 육성.
크리스는 그런 레카드를 보며 온화하게 말했다.
“아우야. 오늘도 형 못 알아보겠느냐? 사랑하는 내 혈연아….”
“카아아아아아악!!! 혓바닥을 뽑아 돼지먹이로 던져 태우겠노라!!!”
그런 동생을 보는 크리스의 눈이 슬퍼진다.
크리스는 아픈 한숨을 쉬고는,
시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할 수 있겠느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내 아우를 다치게 한다면…….”
뒷말은 더 듣지 않아도 알 시운이리라.
[구황의 작두를 장착하였습니다.]
시운의 손에 작두가 나타나자 크리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기를 왜 꺼내느냐.”
“절, 믿어주시기로 하셨지 않습니까.”
“……….”
그때.
시운의 작두를 발견한 레카드는 고개를 좀비처럼 꺾더니 마구 거품을 뱉었다.
“으아아아악!! 저리 가!!! 저걸 치우란 말이노라!!!!!!”
크리스는 고민하는 듯 비키지 않았고.
시운은 그런 크리스를 보며 비켜달란 눈으로 보았다.
“그래, 믿겠네. 제발. 제에발……. 내 아우를 되돌려 주게.”
끄덕.
시운은 말없이 다가간다.
크리스가 길을 비켜주자, 작두와 거리가 좁아진 레카드는 족쇄를 뜯어버릴 듯이 발작했다.
시운은 두 손으로 작두를 겨눠쥐고 레카드의 심장 높이로 올린다.
레카드가 미친 듯이 고개를 젓는다.
“영출!”
시운의 입술이 격히 움직이자마자,
푸슉!
“끄아아아아아!!!!”
작두 날이 절로 밀어져 레카드의 갈색 가죽을 뚫고 심장에 박혔다.
“뭐, 뭐하는 게냐!!! 용서치 않는다!!!!!”
동생의 심장을 범한 시운을 향해 내지른 발톱에 시운이 비틀거려 넘어져 피를 쏟는다.
“크헉-”
“헌터. 넌 오늘 내 손에 죽……”
쓰러진 시운의 숨을 끊으려는 크리스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눈이 레카드에게 향했고, 레카드는 소리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주둥이를 들고 괴악하게 아가리를 벌어뜨리자,
벌린 아가리에서 검은 연기 하나가 튀어나왔다.
『으아아아아!!! 드디어, 드디어!!!! 해방 되었노라!! 이제 날 해방한 네놈들을 토막내어 씹을 차례노라!!!!!』
허공에 뜬 연기가 포악스런 노성을 쏘았다.
크리스는 놀라 몸이 굳었고,
“크흑- 비, 비키세요. 마지막 할 일이 있단 말입니다.”
벌어진 살점으로 흐르는 피를 움켜잡은 시운이 작두 날을 허공에 겨눴다.
“귀사!”
시운의 육성이 퍼지자,
작두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 연기를 강하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털썩-
“미, 미안하고 너무, 너무 고맙네. 정말 그대에게 오늘 큰 은혜를 받았네.”
“일단 일어나세요.”
무릎 꿇은 크리스를 일으킨 시운은 어깨를 늘어뜨린 채 눈물을 떨구는 크리스를 바라봤다.
흉폭한 늑대가 처연히 오열하는 걸 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좀 이상했다.
“동생 분 출혈이 많이 나던데.”
“아아, 곧바로 침소로 옮겨 긴급조치를 취해놓은 상태네. 내 동족들이 간호하고 있는 상태네, 너무 고마워서 말이 안 나오네.”
“무사하시다니 다행이군요.”
[퀘스트 ‘빙의된 리더의 아우’를 완료하였습니다.]
“약소하지만 이거라도 받게나. 내 성의이자 마음일세.”
[‘세트 아이템 교환티켓’ 1장을 획득하였습니다.]
[야수족의 리더 ‘크리스’와의 관계가 <은인>으로 상승하였습니다.]
크리스와 시운이 포옹했다.
종족은 다르지만,
통한 서로의 품이 만나,
같은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좀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한명은 ‘연민’
한명은 ‘감사함’
달빛과 촘촘히 뜬 별은 밤이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시운은 그 작업을 시작할 때였다.
“레크라스.”
소환된 레크라스가 시운 앞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부리를 흔든다.
까악! 까악!
“입 벌려봐.”
벌린 레크라스의 입으로 구슬 세 개를 넣는다.
연막, 기름, 폭약의 구슬.
꿰에엑…. 꿱!
억지로 삼킨 레크라스의 배가 불룩해졌다.
“더 못 삼키겠지?”
께엑!
“자, 레크라스 내 말 잘 들어라.”
취릭!
취리릭~
성벽 위의 소수 오크들은 어두운 눈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다.
전쟁을 피하잔 약속을 쥐었기에, 나머지 오크들은 밤잠에 빠져있고.
까악! 까악!
갑자기 날아온 까마귀.
그리고 까마귀는 급하강 한 뒤에, 성벽의 어느 에 툭, 구슬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움직여.
이번에는 성벽 윗틈에,
부리를 벌려 툭, 다른 구슬을 내뱉었다.
떨어진 구슬은 무장하던 오크들 틈에 떨어졌다.
촤라락!
“취릭! 뭐야?”
“취릭! 냄새가 역하다, 취릭! 내 몸에 물이 튀었어.”
“츄르륵! 위를 봐.”
오크 몇의 고개가 들렸다.
어두운 눈으로 겨우 그것이 까마귀임을 알아본다.
까마귀는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츄륵~ 까마귀가 우리한테 똥을 싼거군.”
“취릭~ 응? 똥냄새가 아닌데. 기름 같기도 하고? 킁킁.”
“까마귀가 어떻게 기름을 싸냐? 취릭!”
아종 오크.
그들은 힘을 쏟는 신체의 피지컬이 압도적으로 강인하며 겁이란 없는 종족이었지만, 지능은 사람의 반에 겨우 미치는 괴물들이었다.
까악! 까악!
레크라스가 힘차게 날아와 시운의 어깨에 슬그머니 앉는다.
“내 말대로 기름 구슬은 터져서 퍼지도록 멀리서 떨어뜨렸고, 폭죽 구슬은 충격이 가하지 않도록 네가 하강하며 터뜨렸지?”
까악!
레크라스는 끄덕이고 사라진다.
‘쿨타임은 한 시간 말이지.’
한시간 후.
“레카라스.”
레크라스가 시운 품에서 튀어나와 날아오른다.
“알지?”
카악!
레크라스가 날아왔다.
한 시간 후.
“레크라스.”
까악! 까악!
레크라스는 구슬을 집어 삼키고 날아간다.
레크라스가 다시 날아왔고,
한 시간 후.
“레크라스.”
까악!
“가라.”
“으으음….”
막사 앞에서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잠꼬대를 하는 시운.
카악! 까악!
레크라스의 울음 소리에.
눈을 떴다.
번쩍! 깃털 몇 개를 쏟으며 사라지는 레크라스.
한 시간 후.
“으으음…. 졸다 깼네, 다시. 레크라스.”
카악! 카아악!
레크라스의 지저귐 소리가 날카로웠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되냐 따지는 듯 했다.
“몇 번만 더 하면 돼.”
카악!
급히 구슬을 뱃속에 넣는다.
20시간 후.
카아악! 카악!
레크라스가 임무를 마치고 다시 날아왔다.
그리고 사라진다.
잠에서 깬 시운은 곧바로 검을 장착했다.
고개를 드니,
야경이 그려진 하늘.
밤이었다.
시운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쓸어 올라간다.
‘때가 되었다. 오크놈들을 모조리 떼로 학살할 쇼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