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화
5만 마리 학살 타임 (2)
크릉!크르르릉!
뒤에서 들려오는 야심찬 괴성들이 뒷통수를 때려왔다.
뒤를 돌아다보았다.
무장한 야수 몇천 마리가 어둠 속 내려앉은 달빛이 서린 안광을 뿜으며 시운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 틈을 비집고 크리스가 다가왔다.
“정말 괜찮겠는가?”
“제가 말씀드린 대로 때가 되면 움직여 주시면 그만입니다.”
크리스는 아무래도 걱정이 놓이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동생을 구원해 준 고마운 인간이 무모한 짓을 독단적으로 진행한다고 하니 말이다.
“그럼, 전 움직이겠습니다.”
말을 끝낸 시운은 성벽에 설치된 쇠계단을 밟고 성벽 위로 올라갔다.
점점 성벽 위의 높이까지 오르는 그의 동향을 따라 모든 야수족의 눈이 움직였다.
‘이시운이 생각해낸 작전은 너무 위험한 거 아닐까?’
그 많은 눈들 속에는 연희의 걱정이 서린 눈도 있었고,
‘자처해서 오크들의 먹이가 되려고 작정을 했군. 좀 특출난 녀석인 줄 알았더니, 미련한 놈.’
혜령은 얼굴을 찡그리며 시운에게 준 시선을 거둔다.
‘당신이 쉽게 죽게 놔두진 않을 겁니다.’
유석의 건틀렛이 비장히 꿈틀거렸다. 아직. 이시운이라는 저 헌터는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회귀의 비밀을 풀어다 줄 열쇠 중 하나였으니까.
크어-
크르릉.
체인메일과 철 투구를 감은 야수족들이 콧김을 내뿜었다.
당장이라도 크리스의 명이 떨어지면 성문을 박차고 달려가 오크들의 생살을 할퀴고 씹어버릴 기세였고,
크리스는 시운이 성벽 위로 오른 뒤, 다음 행동을 이어가려는 뒷모습까지 눈에 담고 있다.
“날 살려준 인간이 저 인간인가?”
회색빛 살가죽에 붕대를 감은 레카드가 크리스에게 물었다.
“그렇다, 아우야. 너의 고통을 끝내준 친구가 바로 저 친구야.”
“그럼 내게 과분한 은혜를 준 것인데, 위험한 오크놈들에게 저리 혼자 보내도 되나?”
“믿어봐야지. 저 친구의 전략을…… 뭣?!”
크리스의 눈이 벌어졌고,
“이, 이시운!!”
“뭐야? 성벽에서 진짜 뛰어내린 거야? 미친놈….”
연희와 혜령의 입에서 격한 육성이 터졌으며,
카릉?
카르르르르?
야수들도 놀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방금 30M의 성벽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린거지? 당장 성문을 열고 구하러 안 가고 뭐해?”
“기, 기다려 보자, 아우야. 나도 아직 반신반의 하지만….”
시운의 돌발 행동에 모두가 당황을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슈우웅-
두 팔을 벌리며 아득한 지상으로 투신 중이다.
눈 앞으로 점점 평원의 지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15m 남았다.’
추락 중.
‘10m.'
중력에 맨몸을 맡겨 뛴 여파로 시운의 전신이 거센 바람에 휘감겼다.
잠시 후,
‘5m.'
그리고!
땅바닥이 코 앞에 다달았을 때.
“사합보.”
탁!
대지 바로 위로 생겨난 검은 손바닥에 발을 딛고,
-피격 대미지가 10% 감소합니다.
“사합보!”
뛰어내린 충격을 분산 시키기 위해 바로 밑으로 생겨난 손바닥에 발을 얹은 뒤.
탁.
“큭.”
지상에 무사히 안착했다.
‘성벽을 열면 그 소리에 오크들이 눈치챌 수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기척을 죽이기 위해 성벽이 아닌, 맨몸으로 성벽 밑으로 뛰어 이동이란 방식을 택한 것.
‘거리는 3Km.'
시운 눈 앞으로.
멀찍이 보이는 웅장한 성.
저 성까지의 거리는 3Km 였다.
“은신.”
쉬익- 시운의 머리칼부터 목, 가슴팍 그리고 그 밑으로 발끝까지 투명해진다.
‘딱, 십분.’
은신의 지속 시간은 십분이었다.
‘충분하다, 가볼까.’
터억! - 터억! - 터억!
보폭을 최대한 넓게 해서 뛰고, 착지할 때 발끝을 세워 최대한 소리를 죽이는 방식으로 뛰어간다.
시운은 성벽에 등을 딱 붙였다.
화강암으로 빚어진 성벽에서 딱딱하고 찬 돌의 느낌이 전해졌다.
기름범벅이 된 성벽에선 휘발유 냄새가 진동을 했고.
‘현대 기름도 굳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하물며 야수족들이 전투에 사용하는 이 기름은 증발하기 까지 20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 다음은.’
고개를 휙, 들었다.
‘성벽 위 순찰 중인 오크 60마리.’
‘그 옆의 긴 성벽은 35마리.’
‘반대쪽 성벽에 68마리.’
‘나머지는 성 안에 모두 주둔하고 있겠지.’
시운은 천천히 움직였다.
이미 장치들은 레크라스를 통해 세팅을 마친 상태다.
‘그 구슬들은 반 투명화된 구슬이라 눈이 어두운 오크들에게 띌 일이 없지.’
게다가 지금은 달이 음산히 떠오른 어두운 야밤.
밤에는 두 종족 모두 전쟁을 중단하잔 약속을 체결한 오크들은 지금 긴장따윈 없는 듯 했다.
‘이미 구슬을 어디다가 깔지, 또 현재 그, 구슬들이 어디에 깔려있는지, 또한 성 내부 구조까지 모두 내 머릿속에 저장 돼 있다.’
그랬다.
레크라스의 장착 스킬을 통해 시력을 높인 지라, 레크라스가 반복적으로 성의 곳곳에 구슬을 배치한 그 기억은 온전히 시운의 머리에 전달된 상태.
‘은신 제한 시간은 남았다, 놈들은 날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서치 스킬을 가진 암살자는 없을 테니까.’
성벽에 등을 붙인 채, 가재걸음으로 걸어 성벽 앞에 도착했다.
취릭~
슬슬 눈이 감기네? 취익~
성벽 위로 오크들의 잠긴 육성이 흐릿하게 들려온다.
시운의 눈으로 기름이 흥건히 묻은 성벽과 성벽 바로 근방으로 놓여있는 폭약 구슬이 들어왔다.
‘시작해 볼까.’
홍란검을 꺼내어 검신을 성벽에 찔러넣고.
“맹인불괴.”
-상태 이상에서 무적이 됩니다.
-스킬 사용으로 인해 ‘은신’이 해제 되었습니다.
“홍란의 일참.”
화르륵!
검신을 타고 쏟아진 불꽃은 성화가 되어 성문에 그대로 타 번짐과 동시에,
무식하게 타오른 염화는 좌우로 뻗은 성벽까지 집어 삼켜 번지기 시작했으며,
뒤이어.
적재적소에 배치된 폭약구슬이 불길에 의해,
퍼엉!
퍼엉!
콰앙!
성벽과 성문을 향해 번개같이 폭발했다.
뿐만 아니라, 성벽 위까지.
취릭~ 불이다!
부, 불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취릭!
불을 꺼야 해! 취릭!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게냐!! 성문과 성벽에 불이 붙었잖아, 취릭!
어서 호수를 가져와서 진압을 해야하…………커으헉!
당황한 오크들 속, 오크 한 마리의 살점이 조각나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퍼어엉! 퍼엉! 파아앙!
연쇄적인 폭발음은 성벽은 물론 성문과 대지조차 뒤흔들고 박살낸다.
쿠웅!
쿠우웅!
시운 근방으로 잘린 오크 팔 하나가 툭, 떨어졌고 그 팔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아아아악!
크아악!
오크 열 마리가 육신에 불을 두른 채, 사지를 흔들며 지상으로 추락했고,
파지직!
쿠웅! 파지직!
쿠웅! 파직!
맨몸이 터지는 소리, 살점 익는 소리, 벽과 성문이 쪼개지고 불타는 소리까지 모두 뒤섞여 이어지고 있었다.
“흐아아압!”
시운이 기합을 넣으며 훼손된 성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캉!
파캉!
파캉!
두터운 성벽이었지만,
폭약의 폭발의 충격과 불길에 그을린 후라, 훼손된 상태였기에.
한 번 더 내리친 시운의 검질에,
빠지직!
검신이 성문 안을 꿰뚫었다.
슉!
검신을 빼낸 뒤에, 오른 다리를 들어,
퍼어억!
퍼어억!
퍼어억!
무식한 발길질 세 방에,
파지지직!
성문이 완전히 으깨져버리고 만다.
화르륵!
시운의 눈 앞은 불길과 연기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충분히 보여.’
시운의 눈은 불길을 투과하여 성 안의 오크들을 담고 있었다.
끄아아악!
취릭! 무, 물! 몸이 불타고 있…!
카아아악!
크허, 으어어억.
오크들의 생살이 불길에 찢어지는 소리가 이어졌고,
그 먼 뒤로 오크떼들이 당황한 눈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질주.”
탁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시운의 동향을 오크들의 시야에서 가려주기에 충분했다.
곧바로,
성 안의 어느 지점에 다다른 시운은,
‘이곳에도 기름을 뿌려놨지.’
“홍란의 일참.”
또 하나의 불길이 솟아올라 주변을 삼켰고……
저, 저기? 부, 불이? 아니 무언가가 취릭!
오크 한놈이 시운을 발견했나 보다.
하지만 그놈의 다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초록색 가죽살이 열기에 짓이겨졌고,
골이 쪼개진 틈으로 뇌수가 터져 버렸으니까.
쉬이이-
취릭!여, 연기까지 나잖아?
연막, 연막이다! 콜록, 콜록!
뿐만 아니라,
레크라스를 통해 깔아둔 연막 구슬까지 곳곳에서 터져서,
불길과 함께 진한 연막이 터져나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뒤덮어 가렸다.
탁!
또 다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한 시운은,
검신을 그대로 기름칠 된 땅에 꽂으며,
“홍란의 일참.”
파아아악!
이윽고,
성 안으로 불바다가 펼쳐진다!
곧이어 들려오는 반가운 소리는,
-아종 오크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종 오크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종 오크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종 오크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종 오크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종 오크를 …………………
끄아아아악!
우어어억!
어, 어느 놈의 짓이……카악!
취릭! 이, 이런 일이!
뿜어지는 오크들의 신음은 성의없는 마지막 유언이 될 뿐이었고.
‘아종 오크’를 저승길로 보내버렸다는 알림음은 어느새.
50000번째 울리고 있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
온통 시뻘건 빛이 세상을 뒤집은 그 때.
시운의 육신에선 긍정적인 파란 빛 임팩트가 쉴 수조차 없이 터졌다.
시운은,
성벽과, 성문 근방, 그리고 성 주위에 있는 막사들, 식수를 담은 배수로, 오크들의 병과를 담은 수레, 공성전용 투석기, 발석기까지 모두 홍란의 일참으로 잿더미로 만드는 작업을 마친 뒤.
타타타탁!
빠르게 올라갔다.
오크들의 주둔지의 가장 상층부로.
크엑!
앞을 가로막는 오크 놈의 목을 달리며 호쾌하게 베어냈다.
다리를 마구 움직이며,
무섭게 뛰어 올라갔다.
성벽 위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 스크류 형태로 이어져 위로 뻗어진, 쇠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취릭! 불을 지른 것이 네 놈……꾸엑!
가로막는 아종 오크의 뱃가죽은 검신에 의해 찢어지며 오크는 무릎과 머리를 차례대로 계단 모서리에 꿇어 찍는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오크들이 활활 타 죽어가는 와중이다. 오크들의 사망자 수가 연이어 속출하니,
시운의 전신으로 피어나는 ‘레벨 업’ 임팩트는 계속되고 있었다.
타타탁!
취릭?
취리릭?
계단 아래에서 다급한 시운의 기척 소리가 울려오자, 오크들은 도끼와 메이스, 창을 계단 아래로 겨눈다.
…………가 아니라, 겨누기도 전에,
샤악! 샤샤샥! 샤악!
신명나게 이어진 검질 세 격에,
꾸어어억….
커흐어억.
어, 어흐윽!
머리가 떨어져, 몸만 떨다가 계단 아래로 추락하는 오크.
허리가 ‘ㅡ’자로 베여 육신이 상체와 하체가 정갈하게 분리 돼 두 토막나 계단 아래로 조용히 떨어지는 오크까지.
땀을 비집고 최상층부를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이제 보인다, 최상층부이자 코어.’
시운의 머리 그 아주 위로 영롱히 빛나는 크리스탈 비석이 보였다.
‘저 비석은 코어이자 아종 오크들의 심장.'
저, 비석은 이곳의 오크들에게 강력한 힘을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콰앙!
그때.
위에서 큰 것이 번개같이 뛰어내려 시운 앞을 막았다.
“취아악! 내 성을 이런 꼴로 만들어 논 것이 네놈이렸다? 절대로 살려주지 않으리라. 가장 고통스럽게 숨을 앗아가겠다!”
아종 오크에 무려 네 배의 덩치.
보다, 더욱 흉측한 안면.
괴물처럼 펌핑된 전신의 근육을 비범한 무구로 감싼 오크가 철퇴를 들어 올렸다.
차앙!
날아오는 철퇴를 검신으로 쳐낸 시운은 튕겨나갔다.
‘이 놈 다른 오크들과는 다르다.’
철퇴를 받아낸 오른팔이 욱씬거렸다.
슝! 슝!
오크는 추악한 눈으로 철퇴를 원형으로 휘두르며 걸어왔다.
“살점을 다 짓이겨 씹어, 삼켜 주겠노라!”
시운은 뒤로 슬쩍 물러나며, 고개를 돌려 밑을 바라봤다.
빈틈없이 솟아있던 성벽은 모두 불길에 그을려 뭉개지고 있었고,
그 근방은 터질 듯 번지는 성화가 모든 오크들을 삼키는 중이었다.
부웅! 부웅!
오크가 철퇴를 위협적으로 휘두른다.
콰아앙!
사이드 스탭을 통해 피한 시운.
타겟을 놓친 철퇴가 찍힌 계단은 그대로 짓이겨져 뭉개졌다.
카앙!
옆에서 신속히 뻗은 검질을 철퇴로 받은 오크는,
다시 철퇴를 들어 시운에게 날리려는데,
시운이 비릿하게 입꼬리를 말아 웃었다.
“화룡의 도약.”
곧바로 계단의 위, 그 위를 넘어 비석의 바로 세 계단 아래까지 안착했다.
“벗어날 줄 싶으냐!”
오크가 근육덩어리 다리를 흔들며 귀신같이 계단을 올라 뛰어온다.
잠시 시운의 눈이 지상으로 내려가 산 채로 통구이가 되고 있는 오크들에게서 머문다.
‘짐승들에게는 짐승같이.’
곧바로 시운의 눈은 부아가 올라 발광하며 뛰어오는 오크에게로 움직여 고정된다.
‘괴물에게는 영악하게.’
곧바로,
시운은 고개를 들었다.
“으핫!”
모든 힘을 실은 뒤,
비석을 향해 ‘화룡의 홍란검’을 던진다.
부웅- 탱캉!
크리스탈 빛을 은은히 뿜고 있는 비석 옆으로 떨어진 ‘화룡의 홍란검’의 검신이 붉게 익기 시작했다.
[‘화룡의 홍란검’에 의해 ‘화염의 열기’ 효과가 발동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