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96화 (95/278)

제 96화

흑막의 인물들 (1)

유석의 눈이 영상 화면에 그대로 멈춰 있다.

번쩍! 번쩍!

터지는 플래쉬.

-저는 A채널부 기자 오달혁입니다. 김태훈 작곡가 님, 갑자기 은퇴 선언을 한 이유가 유가연 씨의 자살과 관계가 있습니까?

-이젠 좀 쉬려고 합니다, 오랜 작곡의 길을 그만 내려놓고 쉬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새로운 길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새로운 길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러면 다른 직업으로 전향하신다는 말씀이신지요?

-새로운 길? 다른 목표가 생겼다는 말씀이십니까?

흘러나오는 영상 속 한 남자.

초췌한 낯빛으로, 얼굴 그대로 터지는 플래시 빛을 맞아가고 있다.

‘이 반응은…!’

유석의 신체에 반응이 왔다.

정확하게 두 신체 부위였다.

고막이 흔들리는 듯한 귀의 반응과,

머리의 한 부분이 짓눌려 이명이 느껴질만큼의 통증 반응.

두 가지였다.

‘저 사람도 회귀자야. 그리고 두 가지의 능력을 갖고 있고. 어떻게 이런 우연이?’

유석의 눈이 시운에게로 움직였다.

조용히, 영상에 시선을 둔 그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다.

‘아는 사람인가 보군. 이시운도 저 자가 회귀자라는 것을 아는건가?’

유석은,

시운이 눈치채지 않도록,

몰래 자신의 신체 반응을 온전히 느꼈다.

‘머리와 귀. 두 가지의 능력을 지닌 회귀자.’

일단 귀라는 기관의 능력이 발달한 것은 확실해 졌다.

다른 한가지의 능력은 아마 머리란 것인데.

‘뇌에는 신경 세포를 포함해 무척이나 많은 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곳. 뇌의 어떤 곳이 발달한 것인지 알아야겠다.’

이어서 들려오는 알람음!

[‘심안(心眼)’을 활성화 합니다.]

[심안(心眼)을 사용할 타겟을 정하여 주십시오.]

‘영상 속 검은 머리에 양복을 입은 남자.’

[타겟 확인.]

[심안(心眼)을 사용합니다.]

[심안(心眼)을 통해 타겟을 분석하는 중입니다.]

[분석이 완료 되었습니다. 결과를 나타냅니다.]

알람음이 멎었고.

뒤이어.

유석의 머리 위로 창 하나가 떠올랐다.

오직, 그만 볼 수 있는 창.

분류: 이터널 라이퍼

형태의 수: 2.

능력 (1)

명칭: 고막.

위치: 귓구멍 안, 외이와 중이 사이.

종류: 감각계.

결론: 청각.

능력 (2)

명칭: 해마.

위치: 관자엽의 안쪽, 대뇌겉질 아래.

종류: 변연계.

결론: 알 수 없음.

‘알 수 없다고?’

그는 곧바로 연동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한 뒤 ‘해마’를 검색했다.

-해마의 기능: 학습과 기억에 관여하며 감정 행동 및 일부 운동을 조절한다. 또한 시상하부의 기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일부 운동과 감정을 관여하고 조절하는 기능이라고? 그렇다면 저 발달된 해마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쉽게 추론이 되질 않았다.

앞에 있는 이시운처럼 단순히 눈과 어깨라면 추론 정도는 가능하다.

어깨 근육의 발달로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선 힘과 짐승을 능가하는 시력일 것이라는 것.

‘근데 저 자의 두 번째 능력은….’

추론이 불가했다.

어쨌든 또 한명의 회귀자를 발견한 셈이었다.

“……….”

영상을 끈 시운은 혼란스러운 듯 말이 없었다.

“시운 씨. 저 사람 아는 사람입니까?”

“친구입니다.”

힘없이 답한 시운. 유석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더 물을 수 없었다.

저 자가 회귀자인 것도 아냐고 묻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유석의 의중이 꿰뚫릴 수도 있었다.

‘아직 이시운과 난 그 정도의 관계가 아니다. 아직은 아니야.’

드르륵-

“미안한데,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계산은 하고 갈 테니 식사마저 하고 가요.”

의자를 끌고 일어나 점원에게로 걸어가며 시운이 말했다.

“8만 2천 골드입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시운이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유석은 프로그램을 연동시켜 영상을 띄웠다.

-질문은 더 받지 않겠습니다, 이만 회견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속 회귀자는 회견장에서 급히 빠져나갔고, 그의 마지막 모습까지도 기자들은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어댔다.

-유명 작곡가 김태훈 씨는 이렇듯, 기자회견을 마쳤습니다. 한창 주가를 달리고 있던 걸그룹 하이톤의 유가연 씨의 자살에 대한 질문은 회피하는 모습……

남자가 나가자 영상이 넘어가 아나운서의 얼굴로 전환 된다.

‘티비란 매체에 나오는 유명인이 회귀자라….’

아직 알아볼 것도, 도출해 내야 할 진실도 많다.

‘단 확실한 것은, 방금 그 회귀자도 이계로 오게 된다.’

유석이 알고 있는 그대로.

회귀자들이 하나씩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회귀자들은 그 ‘운명’ 에 의해 한 세상으로 모여드려 하고 있었다.

이세계라는 세상의 집결지로.

현계의 어느 편의점 안.

유니폼을 입은 두 남자가 졸린 눈을 하고 있다.

“후, 시간 존나게 안 가네. 언제까지 이 정재훈이가 이딴 바코드나 찍는 짓거리나 하면서 색깔을 숨기고 지내야 하냐고.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

노란 염색 머리에 팔목까지 덮은 소매 밑으로 문신이 보이는 남자가 궁시렁 거렸다.

“유튜브? 갑자기 뭔 소리냐, 재훈아?”

“유튜브 보면 무슨 왕년에 싸움 좀 했다는 애들이 과거 썰 풀면서 돈 벌잖아, 걔들 보면 우습다.”

“하긴, 재훈이 너는 중,고딩 때 클라스 있던 놈이니까 썰 풀면 조회수는 팍팍, 찍히겠다.”

친구의 말에 재훈이란 남자는 우쭐했다.

비록, 지금은 알바라는 것에 묶여 사는 스물네 살의 남자이지만, 과거 학창시절 때.

그는 일진으로 유명했다.

다니던 학교는 물론 옆 학교, 그리고 그 일대를 주먹 하나로 벌벌 떨게 했다.

동창은 물론, 후배고 선배고 모두 그의 앞에서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과거.

아직도 그리운 과거다.

“씨팔, 옛날 생각 나네. 옛날에 나한테 기던 동창 놈들이 4년제 대학 갔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더라. 그리고 술 빨고 담배 피고. 중고딩 때는 담배 한번 못 빨아본 것들이.”

“흐흐, 재훈아. 원래 어릴 때 찐따였던 새끼들이 대가리 크고 나대는 거다, 춤바람도 늦게 분 게 무섭다잖냐.”

“씨팔. 지금 그 새끼들 내 앞에 서면 말도 못 할텐데.”

아직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그는 야인시대를 살고 있는 철부지 청춘이었다.

“어서옵셔-”

“어서 오세………어?”

손님에게 인사하던 재훈의 눈이 커졌다.

그 커진 눈은 방금 들어와 물건을 살피던 손님에 멈춰 있었다.

-어? 저 새끼 내가 아는 새낀데.

-아는 애라고? 재훈아?

둘은 손님을 응시하며 속삭인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나랑 같은 학교였던 앤데. 나한테 찍소리도 못했던 놈. 내가 빵 심부름 시키니까 셔틀처럼 매점으로 타다닥! 뛰어가던 새끼였지. 근데 저 놈 헌터 됐다더라.

-허, 헌터라고? 와, 빵셔틀 출신 찐따 새끼가 인생역전 했네.

-대혁아, 저 새끼, 물건 계산할 때 나 보면 벌벌 떨거다. 한 번 보여줄게. 이 정재훈이 아직 먹힌다는 거.

재훈은 두 소매를 걷어 문신을 돋보이게 한 뒤에, 손님이 어서 계산대에 오길 기다렸다.

한 때 그의 아래에 있던 놈들이 하나하나 대가리가 커져서 사회에서 지내는 것을 보면 신물이 나는 그였다.

‘헌터 됐다고? 그래봤자 나한테 벌벌 떨던 놈. 기 꺽어주고, 저 놈하고 연락하고 지내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헌터를 친구로 두면 인맥을 쌓게 된다.

근데 헌터를 꼬봉으로 두게 되면? 분명 좋은 일거리든 뭐든 떨어지는 것이 있을것이리라.

탁-

카운터 테이블 앞에 음식과 음료수를 내려놓은 손님은 계산을 기다리는 눈치다.

‘나 알아보고 눈 깔고 있는 거 봐라, 오냐. 그럼, 그래야지.’

-재훈아, 빨리 보여줘라. 헌터 기 팍 죽이는 거! 킥킥.

삑! 삑!

재훈은 물건을 바코드에 찍으며 손님을 똑바로 바라봤다.

손님은 그런 눈길을 의식 않는 듯 바코드에 찍혀가는 물건에 눈을 두고 있고.

“너 광연중, 대연고 나온 이시운 아니냐? 야, 너, 나 알지?”

재훈이 목소릴 딱 깔고 물었다.

곧 움츠러들 저 헌터놈의 반응이 빨리 보고 싶단 눈으로.

“……….”

손님은 재훈을 흘겨보고는 시선을 구입한 음식에 돌렸다.

별 관심없단 기색.

“야, 대답 안 하냐?”

한층 더 깐 목소리를 뱉어서야 재훈에게 시선을 준 손님.

가만히 재훈을 바라본다.

“야, 너 나 알잖아? 나 대연고 정재훈이다! 내 인사 씹냐?”

옛날에 ‘나 대연고 정재훈이다!’ 라고 하면 다들 목부터 움츠리곤 했었다. 그게 그의 과거였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으리라.

“모르냐고? 새꺄. 너 헌터 됐다며? 소식 들었다.”

재훈은 거만한 눈으로 손님을 째렸다. 손님의 입술이 움직였다.

“이시운은 맞는데 그쪽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말 걸지 말고 계산이나 마저 하세요.”

“뭐?”

재훈의 눈에 살기가 돋았다.

손님놈의 예상치 못한 반응? 아니,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싸가지 없는 반응이었다.

“말걸지 말고 계산? 야, 헌터 돼서 기 쫌 폈다고 다 컸냐?”

바코드기에 머물던 손님의 눈이 올라가 재훈의 눈에 멈췄다.

눈과 눈이 마주침에 작은 불꽃이 튀었다.

‘이, 이 새끼가?’

이 녀석이 눈을 안 피한다. 아니, 자신 앞에 겁먹은 눈을 했던 그 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재훈의 눈이 힐끗, 내려가 손님의 어깨와 가슴, 몸으로 내려간다.

골격을 매운 탄탄한 실전 근육의 몸은 헌터임을 반증했다.

그 몸을 보자 재훈의 눈에 힘이 풀렸으나, 다시 부릅 뜨고 손님을 봤다.

“거, 그쪽 모르겠다니까 왜 자꾸 말을 겁니까? 물건들 봉투에 담아 주세요.”

………과거를 잊은듯한 손님의 말에 허탈한 웃음이 나오려 했다.

“뭐, 뭐? 어이, 이시운이.”

“그쪽이 누군지 모르겠다잖아요? 알바생이 손님한테 자꾸 반말해도 됩니까? 얼마냐고요.”

“…………12500원입니다.”

“봉투에 싸 주시라고요. 이걸 다 어떻게 손으로 들고 갑니까?”

“봉투 값까지 합쳐서 12550원 입……”

순간. 알 수 없는 내공에 턱, 숨이 막힌 재훈은 입에서 생각과 다른 말이 나가고 있다.

재훈은 떨리는 손짓으로 봉투에 음식을 담아 시운에게 내밀었다.

“수고 하세요.”

탁.

봉투를 낚아채 출구로 나가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안녕히 가세요.”

저도 모르게 인사를 하고.

“씨발. 아, 좆같네.”

재훈의 눈이 편의점 유리벽 너머 봉투를 들고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는 손님에 꽂혔다.

“저 새끼 맛 갔나? 옛날에 내 앞에서 숨도 못 쉬던 새끼가. 가서 확 조져버릴까? 응?”

벽 너머 손님을 보는 눈에 살기를 담아 째려보는데.

그 손님이 고개를 휙, 돌렸고. 재훈과 눈이 마주친다.

순간. 동공이 요동친 재훈. 그리고 그 손님이 다시 발을 돌려 편의점으로 들어온다.

‘뭐, 뭐야? 내 욕 들은건가?’

헌터들은 오감이 발달한다 했다.

남들은 듣지 못할 소리도 캐치한다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와 자신에게 걸어오는 손님을 향해 재훈은 주먹을 꽉, 쥔다.

‘허, 헌터면 어쩔건데? 와서 따지기라도 하려고? 옛날 내 내공으로 확 눌러줄게.’

턱-

진열대 앞에 마주선 두 남자의 잠시간의 정적.

………을 깬, 손님의 말은,

“아, 담배 사는 걸 잊었네, 팔리아멘트 라이트 한갑 줘요.”

“………네, 4500원입니다.”

담배를 받은 손님의 눈빛이 변한다.

“아! 이제 네가 누군지 생각났네, 너 축구 잘하던 ‘걔’지?”

자신을 알아보는 손님에 재훈의 입가가 피어났다.

“이제 알아보네! 아, 새꺄. 너 헌터 됐다며? 들었다, 오랜만이다?”

“그래, 요즘 시급 올랐다며? 편의점 알바 하느라 고생많다, 수고 해라.”

“……어, 어. 안녕히 가세요…, 아니 잘 가라.”

손님은 말 섞을 시간 없다는 듯 나갔고.

재훈은 옆의 친구에게 우쭐하며 말한다.

“봤냐? 내가 ‘새꺄’라고 해도 아무 말 못하는 거? 지금 아무리 헌터라 해도 과거가 이렇게 중요한 거다. 봤지? 응?”

“………그래, 봤다.”

친구는 재훈을 한심히 바라본다. 재훈의 눈은 지하철 정거장으로 내려가는 손님에게 향했다.

“새끼, 분명 내가 욕한 거 듣고 따지려고 다시 왔다가 분명 쫄아가지고 다시 나간거다, 하. 역시 헌터든 뭐든 과거 서열은 본능적으로 잊지 못하는 거라고, 봤지?”

“……….”

우쭐- 하는 재훈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친구.

‘하, 과거는 이제 중요하지 않구나. 과거에 잘 나갔던 놈이 잘 된 놈 앞에서 저렇게 추해지다니.’

친구. 그의 눈에는 재훈이 헌터란 위대한 사람과 아는체 했음에 뿌듯 해하는 철부지로 보였다.

그뿐이었다.

덜컹- 덜컹-

흔들리는 지하철 창가로 풍경들이 넘어간다.

‘어째서? 김태훈이?’

풍경에 멍하니 눈을 담고 있는 시운은 의아했다.

첫 번째 인생.

그리고 두 번째 인생에서 지켜본 결과.

김태훈은 그 어떤 고난을 겪어도 은퇴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녀석은 참 멘탈이 강했었는데.’

그랬다.

어떤 일이든 일어나도 차분히 할 일을 하던 태훈이었으니까.

지금. 그를 만나러 가는 길.

‘3회차의 인생까지 사는 내가 알 수 있는 건, 사람의 천성은 변하지 않는단 것이었는데.’

그때. 한 생각이 번쩍! 피어올랐다.

‘설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