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97화 (96/278)

제 97화

흑막의 인물들 (2)

‘사람의 천성도 변할 수 있단 얘긴가.’

사람의 천성.

본래 타고난 성품이나 기질을 뜻한다.

‘사람의 성격과 천성은 다르다.’

천성은 노력으로 바뀌지 않는다.

평생 악인으로 살다가 회개하고 사는 척 사람이 바뀐 척 하는 이들도 결국 추악한 실태는 벗겨진다.

뉴스에 실린 많은 기사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전생에서도 그 전의 생에서도 태훈이는 한 번도 작곡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분명. 그랬다.

심지어 효자로 소문난 김태훈.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에도.

‘어머니 장례를 치러드리고 휴식 기간을 갖고 곧바로 작곡가로서 복귀했던 게 녀석이었는데.’

끊임없는 삶.

그 삶 속에 사람의 천성 또한 변할 수 있다?

시운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여자친구였던 유가연이 자살했으니 충격을 받을 만도 해. 녀석도 결국 사람이니까. 태훈이는 아픔을 일어서고 다시 작곡가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이번역은 도곡. 도곡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왼쪽으로………

도착했음을 알리는 음성에 잠겨있던 사색에서 깨어났다.

속도를 줄여 느릿해지는 지하철 밖 풍경은 곧 멈춰섰다.

어쨌든 녀석을 만나보면 알 것이었다.

호화로운 집.

그 안의 넓은 거실에서 소년과 태훈의 대화는 곧 끝나가고 있다.

어두운 안색 틈으로 돋아난 태훈의 두 눈은 남자라고 하기엔 어린 소년을 진하게 바라봤다.

“덕분에 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태연하군. 그때는 어쩔 줄 몰라서 입을 벌벌 떨더니.”

소년은 지금 태훈의 태평한 반응이 놀라웠다. 사람을 죽인 이의 표정과 말투 치고는 침착했으니까.

“당신만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위잉- 뿜어진 기운이 형상화 되어 태훈의 쫙, 핀 손바닥을 맴돈다.

그리고 구부러진 손바닥.

태훈의 행동을 보고는 소년은 픽, 웃었다.

“나한테는 안 통한다네. 자네가 얼마나 기묘한 능력을 가졌는진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서커스하는 동물 수준. 딱 그 정도야.”

소년의 말은 사실이었다.

곧 태훈의 눈이 흔들렸다.

‘내 능력이 전혀 먹혀들지 않다니. 이 남자….’

능력이 대체 어디까지인지.

정체는 또 뭔지 알 수도, 감히 물을 용기도 나지 않는 어린 탈을 한 남자.

이 남자에게 모든 걸 바치겠다고 했다.

위기를 넘겨준 댓가로 말이다.

어차피 세상에 미련은 이제 없다. 살만큼 살았고, 누릴만큼 누려본 삶 속에서 얻은 것은.

‘인간은 고상한 척 하는 공자의 탈을 쓴 어설픈 짐승 새끼라는 것.’

태훈이 상념에 깨어나 눈을 떴을 때.

책가방 하나를 맨 채, 현관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소년의 뒤태가 눈에 들어왔다.

소년이 잠시 멈춰 고갤 반쯤 돌리자, 핏기조차 없는 맑은 피부의 소년스런 옆모습이 보였고.

그 밑으로 생기 가득한 입망울이 열린다.

“날 위해 살겠다는 자네의 말. 뱉었으니 삼킬 수는 없네. 내가 말한 날짜에 같이 가는 걸세.”

태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순간. 소년의 눈이 변해 살귀처럼 뜨여졌고 그 눈이 스르르, 태훈에게 움직였다.

“아, 알겠습니다.”

눈짓 한 번에 전신이 찌릿거리며 콱, 뭉개지는 느낌. 목숨이 위협을 느껴 곧바로 남자가 원하는 대답을 던졌다.

“좋아.”

다시 고갤 현관으로 돌린 소년의 입꼬리가 씩, 올라간다.

덜컹- 소년의 손에 잡힌 손잡이가 돌아가며 열린 현관문 틈새로.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이시운이었다.

“태훈아.”

시운의 부름에 태훈은 소년에게 빨리 눈짓했다. 빨리 가라고.

소년이 시운을 봤고. 자연스레 두 남자의 시선이 만났다.

“넌 누구지?”

소년에게 묻는 시운. 태훈이 화들짝! 놀라 소년의 등을 밀고 시운의 소매를 잡아 끈 뒤에 문을 닫았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걱정돼서 왔다, 근데 방금 그 학생은 누구야?”

“아는 사람 동생이야, 신경쓸 거 없다.”

시운의 고개가 갸웃했다.

방금 본능적으로 훑은 소년의 상체에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가슴이 뛰고 있었다.

‘설마.’

기분 탓이겠지.

여긴 현계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상념을 떨친 시운의 눈에는 주방으로 향하는 태훈이 들어왔다.

김태훈. 생각한 모습과는 달랐다.

우울해 보이지도,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 평소 그의 모습이었다.

“태훈아, 얘기 좀 하자.”

그에게 들을 말도 해줄 말도 많은 시운이었다.

많은 대화를 나눴다.

힘없는 걸음짓으로 나온 시운이 뒤를 돌아봤다.

사회 기득권층이 대다수 분포하는 타워팰리스의 건물이 높게 솟아 자태를 빛내고 있다.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걸까.’

방금 접했던 태훈의 모습은 평소 알던 그가 아니었다.

여자친구가 죽었는데,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작곡에 대한 미련도 없어보였다.

‘그리고.’

그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었다.

-이계에서 사람을 죽이면 어떤 형벌이 이뤄지지?

-그곳은 강한 자들이 많아?

-탈주한 헌터들은 쫓는 화이트 게이트란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야?

-그곳에서 압도적으로 강해지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을 수 있나.

-내가 하는 질문에 그저 답해줘라, 시운아.

이것들이 시운에게 던진 태훈의 질문들이었다.

‘하나, 하나 답을 해 주었지만.’

사실 질문하는 태훈의 바디시그널을 살폈다.

심장의 펌프질 변화부터 얼굴의 근육 변화와 동공의 움직임, 작은 손짓까지도!

놓치지 않고 살폈으나.

‘읽을 수가 없었다, 왜일까?’

마치 완벽히 감정을 숨긴 것처럼, 감정을 읽는 데에 그 어떤 빈틈도 보이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태훈의 열린 입에서 나온 말은.

-나중에 나와 마주칠 수도 있을 거다, 그땐 날 피해라.

의미심장한 아니,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뱉고서 집밖으로 매정히 쫓는 태훈에게 시운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러냐고? 여친의 자살이란 충격 때문에 넋이 나간 거냐고 물었지만,

녀석은 태연하게 묻지 말라는 답을 늘어놓았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마냥 날 대했다.’

1회차 인생,

2회차 인생에서도 태훈은 엇나가지 않았고, 매정한 면을 보인 적도 없었다.

근데 왜 하필 3회차인 이번 생에서 태훈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걸까.

‘아직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일 것이다. 친구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위로 말고는 더 없다. 녀석의 인생은 녀석이 사는 거니까.’

김태훈.

친구지만 그에게, 이상하게 부럽고 시기스런 마음도 들었다.

단순히 잘난 친구여서?

아니다.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가 천세정을 그토록 원했던 것처럼 그 이유를.’

순간.

-전생 트라우마.

뇌리로 스쳐간 한 단어.

‘전생 트라우마?’

느닷없이 스쳐간 개연성 없는 단어였다.

‘전생 트라우마? 그딴 게 있을 리가 있나. 내가 김태훈과 전생에 어떤 관계였다고 치자. 그 관계가 후생인 지금 이어진다고?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왜?인지 모르겠지만 팍! 떠오른 생각을 짓눌렀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으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뇌리를 잠식한 상념을 떨치자,

눈 앞으로 승훈의 원룸 현관문이 보였다.

“형님들, 누님들! 아… 지금 제 옆에 있는 이 훈남 누군지 아시죠?”

승훈이 캠카메라를 보며 중얼거리자.

[헌터? 저번에 나온 그 헌터??]

[오ㅋㅋㅋㅋ 또 나온거임??]

[이계 썰 ㄱㄱㄱㄱ]

[뜬금포 헌터 등장?]

[오늘 게스트냐??????]

시운은 멍한 눈으로 앉아 캠카메라를 바라봤다.

헌터 이시운이 방송 화면에 비춰지자,

실시간 시청자 수: 96명.

104명…….

150명…….

210명…….

350명…….

560명…….

1050명…….

그리고 쫙- 달아오르는 채팅창.

[와 또 나왔다ㄷㄷㄷㄷ]

[헌터 행님!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이계 썰 재미난 거 풀어주십쇼! 풍 쏘겠습니다.]

[술먹방 가즈아! 헌터랑!!!]

[소문 듣고 왔습니다, 여기 헌터양반이 나왔다고 해서 들어와봤는데...]

[장세준 썰 또 풀어주삼!ㄷㄷ]

[헌터야!!!!! 건빵들한테 인사 안 박냐????]

시청자수가 확, 늘자 입가에 꽃이 핀 승훈 옆, 시운의 눈은 멍했다.

그저 올라가는 채팅창이 시운의 눈에 확! 들어와 뇌리로 꽂힐 뿐이었다.

그때.

글자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운 머리 위로 떠오른 창 하나.

[해금 기여도 수치가 상승 중입니다……]

[활자 시그널][특정 액티브]

글자나 타이핑이 된 문체를 보고 그 문체 또는 활자들을 집필했던 사람의 그 당시 감정을 투시하여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해금 기여도 수치: 3%=>4%

수많은 활자가 담긴 책을 속독해도 뜨지 않던 창이었다.

그런데.

인방에 감정이 실린 시청자의 수많은 채팅창이 눈에 꽂히자,

떠오른 창이었다.

감정이 없는 딱딱한 활자.

감정이 실린 시청자의 채팅 활자.

두 개의 미묘한 차이점에 의해 발현되는 것인 듯 했다.

머리 위로 떠오른 창이 1초간 머물다 사라졌고.

시운은 그 창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 헌터 왜 이렇게 벙쪄있냐?]

[목석이냐?]

[노잼이네 ㅅㅂ]

[나간다?]

[말 좀 해라!!!]

승훈이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야, 야. 가만히 있지 말고 아가리 좀 털어봐.”

“승훈아. 방종 해봐. 할 말이 있다, 오늘은 내가 이거 할 기분이 아니다.”

진지한 시운의 말에 승훈은 아쉬움을 삼키고.

“혀, 형님들 죄송한데 급하게 일이 있어서 방종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금방 다시 키겠습니다.”

[와;;;;조땅 이제 방종도 지 멋대로 하고 다 컸네?]

[하꼬가 풍 좀 받더니 이제 초심 잃은거냐?]

[즐삭 한다]

[즐삭]

[꺼----져]

[민심 개박살 났다 조땅아!]

“죄송합니다, 형님들! 대신에 다시 켜면 그때 24시간 노방종 하겠습니다, 꾸벅! 꾸벅!”

시청자들을 달래고 방송을 끈 승훈은 원망의 눈으로 시운을 봤다.

“아!! 이왕 친구 집에 온 거, 좀 도와주면 덧나냐? 흐름이었는데.”

“태훈이 소식 들었냐?”

“태훈이?”

그의 이름을 듣자 굳어버린 승훈의 얼굴.

“들었지. 연락도 해 봤다.”

“만나봤어? 걔 좀 이상하지 않냐?”

“나보고 이제 연락하지 말랜다.”

“뭐?”

시운이 놀라 반문했고.

승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몰라, 김태훈 그 새끼 여친 그 일 때문에 힘든건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

승훈은 말과 함께 모니터로 사진 하나를 띄워주었다.

“이거 봐.”

모니터를 보던 시운의 동공이 커졌다.

모니터 속에는 김태훈이 클럽에서 쭉빵한 여자들을 끼고 아르망디 술병 하나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밑으로 달린 수많은 악플들.

<여친이 자살했다는데 미친 거 아닌가?>

<완전 쳐돌은거 아니야?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클럽에서 여자 끼고 술처먹고 논다라? 역시 돈 잘버는 인간들은 다 똑같지, 뭐.>

<저거 김태훈 맞아? 합성 아니야?>

<이게 김태훈 실체였어????>

‘어떻게 이런 일이….’

시운의 눈 앞으로 보이던 화면이 픽! 꺼졌다.

“몰라, 씨발! 그 새끼 변했다. 지가 지 인생 살겠다는데 뭐, 어쩌냐? 그리고 연락 하지 말고 쌩까자는데 신경 꺼라. 잘난 새끼 지가 알아서 잘 벌어먹고 잘 살겠지.”

툭-

승훈은 신경질적으로 모니터를 껐다.

승훈이 물었다.

“맥주 한캔 할래?”

“……….”

“맥주 마실 거냐고!”

“어? 아니.”

‘사람의 천성도 바뀔 수 있는 거였나?’

혼란이 일었다.

하지만.

그 녀석의 천성이 그렇게 바뀌어 버린 거라면.

‘친구로서 노력은 해야겠지만.’

한계가 있다.

어쨌거나 인생은 친구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닌 본인이 사는 거니까.

단 하나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삶에서 사람의 천성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 ”

적신 머리를 수건에 싸매고 비볐다.

벽꽂이에는 게임과 헌터에 관한 책들 그 밑으로 플레제스테이션 게임기와 헌터에 관한 게임 구동팩들이 놓인 이곳은 시운의 방이었다.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꺼끌꺼끌한 턱수염을 매끈히 면도하고 푹, 씻은 얼굴에는 윤기가 피어났다.

‘그 이계의 원룸텔에서는 씻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월 30만 골드에 머무는 그곳은 화장실도 춥고, 개인용 화장실이 없어서 항문 밖으로 그것이 내밀어도 사람이 다 싸고 나올 때까지 참아야 하는 곳이었다.

“읏차-”

침대에 벌러덩 누우니 천장이 보인다.

집이 아무래도 최고다.

속 편하니까!

오늘 꽤나 골 깊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떨치리라 생각했다.

‘내 인생 살기에도 바쁘다. 나한테는 나만 보며 사는 가족이 있으니까.’

방안 액자에 담긴 사진을 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시운, 그리고 누나 이시연이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

사진 속 시운 옆에서 발랄히 웃고 있는 여자로 눈동자가 움직였다.

‘누나.’

없는 형편에 유학을 간 시운의 누나 이시연이었다.

사실.

유학을 가장한 여행과 다름없었다. 돈 많은 남자에게 홀린 그녀는 가난한 집이 싫다며 엄마, 아빠에게 악담을 하고 떠났다.

‘연락한 지 오래 됐네.’

1회차 생이나, 2회차 생이나 이시연은 시운이 30대 중반 그러니까 한강으로 달려가 뛰어내릴 때까지 연락 한통 없었다.

시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철부지 같은….’

아직까지 그녀가 22살이 되던 해.

엄마와 아버지에게 울며 집나가기 전 했던 말이 뇌리에 생생하다.

-나 이제부터 내 남자하고 살거야! 호주로 떠나버릴 거라고. 이제 가난하고 돈에 벌벌 떠는 거 지긋지긋하단 말이야!!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돼! 부모 잘못 만난 게 내 천추의 한이란 말이야! 엄마, 아빤 이런 내 마음 알아?!

미우나 고우나 피를 나눈 가족이다.

사실 시연에겐 남모를 상처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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