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99화 (98/278)

제 99화

그 날을 앞두고 현계에서 즐기는..

“헌터님, 맹인인데 어떻게 눈을 뜨고 계신 거죠?”“고등급 템을 빠르게 맞추는 방법이 뭘까요?”

“지금 어디서 사냥하세요?”

시운은 갑자기 모여들어 질문공세를 받자 혼란스러웠다.

허나.

하나하나 대답해 줬다.

같이 고생하는 하위랭크 처지에 못해줄 것도 없었다.

쾅!

“아오! 밥먹는데 왜 개떼처럼 몰려들어서 시끄럽게 하고 지랄인데! 왜!!”

혜령이 쏘아 말하자.

“까, 깜짝이야!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 그냥 궁금해서….”

“궁금해서 질문 좀 한건데 그쪽이 왜 화를 내세요?”

한껏 이마를 찌푸린 혜령의 틴트 발린 입술이 움직였다.

“뭐가 그리도 궁금해? 응? 레벨 60도 못 찍은 하수들이 팁을 알게 되면 뭐, 상황이 달라지겠니?”

그녀는 한껏 쏘아대고 공기밥과 접시를 옆으로 밀어 자리를 옮겨버렸다.

“너무 하시네.”

“뭐, 뭐? 하수요?”

헌터 둘은 정곡을 찌른 단언을 듣고 따졌지만, 그 목소리는 힘 없었다.

가혜란 여성이 말했다.

“식사하는데 실례했네요. 죄송해요. 자리로 가볼게요.”

“아니에요, 앉아서 같이 얘기해요.”

시운이 그녀의 팔목을 탁! 잡아 끌었다.

순간. 가혜의 구릿빛 얼굴이 붉어졌다.

“아, 괜히 피해드리는 것 같아서….”

“피해는 무슨. 같은 헌터끼리 질문도 하고 지식도 공유하는거죠. 저 누나는 원래 좀 화가 많은 사람이라 이해들 하세요.”

“뭐? 야! 이시운? 방금 들었다?”

으르렁! 거리는 혜령에게 대충, 미소로 답해주고는.

“우린 다 고생하는 F고. 뭐, 사실 특출난 비법 같은 건 없어요, 같이 식사나 해요.”

“친절하시다, 헌터님! 헌터시험도 만점으로 패스 하셨다면서요?”

“아, 뭐….”

“우와, 진짜 그 어려운 시험을 어떻게….”

시운을 보는 여성 둘의 눈은 아예 동경으로 가득했다.

잘생겼고. 능력있고. 머리까지 좋은 남자.

그러나 그 둘이 무엇보다 시운에게 좋은 감정을 느낀 것은 잘났음에도 무시하는 법이 없고, 상냥하게 챙겨주는 인성에서였다.

‘음….’

턱을 만지작 거리며 지켜보던 성혜는 조금 있다가 그 이야기를 해주자란 결론을 지었다.

저들이 서로와 친해져야 하는 것도 관련된 부분이었으니.

탁-

조용히 고기를 우적거리던 세준이 고개를 들었다.

태식이 식판을 내려놓고 자신을 향해 인자히 웃고 있다.

“왜 밥을 혼자 먹고 있어? 외롭게.”

“뭐, 그렇게 됐네요.”

“젊은 친구끼리 어울리고 밥도 같이 먹고 그래야지. 나 여기서 먹어도 되지?”

“아, 예. 물론입니다.”

쓸쓸해 보였는지 다가와 자리를 채워주는 태식이 불편하진 않은 세준이었다.

세준의 고개가 돌아가 시운 방향에 멈췄다.

‘인기 많군?’

여성들 품에 애워쌓여있는 시운을 보자 이질감이 들었다.

이곳이 만약 협회 따위가 아니라 야외였다면 저 여성들 숫자의 몇십 배, 몇백 배의 인파들이 세준, 자신에게 모였을 것이고. 이시운은 찬밥 신세로 혼자 밥이나 먹었을 텐데.

이내 세준은 고개를 저었다.

‘화려했던 그 시절은 이미 잊었다. 난 헌터로서의 목표에만 집중 한다. 그 목표에만.’

“자네 유명한 친구라며?”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과거 얘기일 뿐입니다.”

겸손하게 답한 세준이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과거에 대단했던 것도 자네 능력일세. 겸손이 다가 아니야. 남들 시선에 의한 억지 겸손은 자신의 잠재력을 막을 뿐이네.”

“예.”

흠칫 놀란 세준. 자신의 두 배의 인생 경험이 있어서 일까.

태식의 말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닿았다.

한편. 소란이 일고 있는 다른 테이블에서는.

“그래서, 그래서… 맹인 계약 맺고도 눈을 뜨고 있으니까 그, 그. 직업소에 일하는 사람이 안 놀라요?”

“놀라죠, 당연히.”

“헌터님! 다음에 저랑 파티하고 사냥 가요.”

“네, 기회 되면 그래요.”

시운에 과히 집중된 식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 사람….’

유석은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희는 툴툴, 거리면서도 여성이 시운에게 교태를 부리면 콱, 쏘아보며 말을 잘랐고.

남한테 관심 없는 혜령도,

“야, 야. 이시운! 하수들 질문에 다 답해주지 마. 너만 귀찮아진다.”

이렇듯 시운에게만 오롯이 말을 걸고 있다.

유석은 그런 시운을 부럽게 바라봤다.

‘이 회귀자…. 괴랄한 면이 있지만,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매력이 있다.’

뭣보다 부러운 것이 그것이었다.

유석에겐 없는 사람냄새 나는, 그래서 사람들을 끄는 그의 매력.

짝! 짝!

두 번 울린 박수 소리-

소란은 일시 멎었고.

헌터들의 눈이 그 소리를 낸 곳에 모였다.

“딱 보니, 얼추 서로 말도 트고 친해진 것 같은데요? 잠시 주목 해주세요.”

성혜를 보던 세준의 표정에 힘이 실렸다.

‘드디어 이유를 말해주려나 보군.’

“자…. 여러분. 내 말 잘 들어요.”

운은 뗀 성혜의 얼굴은 어느새 굳어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말이 안 된다! 대체 어떻게?’

성혜의 말을 들은 시운은 숨이 콱, 막히다 못해 의식까지 뭉개질 충격을 받고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협회가 블랙 헌터가 그 날 출몰한다고 확신한 겁니까?”

“상세한 건 나도 몰라요. 일단 앉고, 내 설명 이어 들어요.”

시운에게 늘 친절했던 성혜도 지금만큼은 차가웠다.

그만큼 중한 말을 하고 있는 중이니.

풀린 다리로 털썩 주저앉은 시운의 눈은 멍해졌다.

‘말이 되질 않는다고, 이건.’

성혜가 꺼낸 말은 블랙 헌터의 출몰이었다.

그것도 정확히 3개월 후 그들이 세상에 드러날 것라고 말했다.

‘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낸 거란 말이냐.’

믿을 수가 없었다.

1회차, 2회차 인생에서 블랙 헌터의 예고없는 등장에 헌터들이 흘린 피가 도시 하나를 매울 정도였다.

그리고 벌어졌던 화이트 게이트와 블랙 헌터의 1차 혈전.

‘그 전쟁의 승기는 결국 화이트 게이트가 잡았지.’

유능한 악인들로 이뤄진 블랙 헌터들.

하지만 체계적이고 넘사벽 화력인 화이트 게이트에게 패하고 다시 잠적하고 말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블랙 헌터. 즉, ‘검은 자’들이라 일컫는 그들의 기습을 협회가 예측했다는 것이!

‘설마….’

시운의 뇌리로 이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강혜령…

장세준…

이시연…

김태훈…

모두 1회차와 2회차에 같은 구도를 걸었으나, 3회차인 이번 생에서 다른 구도를 보인 사람들이었다.

‘정말 이번 생은 예측조차 못하도록 달리 펼쳐진단 말인가.’

이어진 성혜의 말은 모든 헌터들의 숨이 뱉어져 나올 정도로 충격이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딱 네 달 동안 승급할 수 없습니다.”

“뭐? 승급을 못한다고?”

“네?!”

“뭐라구요?”

“저기요, 조무사!!”

“갑자기 무슨 소린데요!”

헌터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 인파엔 강혜령도 섞여 있었다.

누구보다 화난 눈.

그 눈 밑으로 떨어진 예쁜 입술이 격히 열렸다.

“대체 그딴 소리를 갑자기 하는 이유가 뭐냐고! 승급 심사를 할 수 없다니? 그딴 말같잖은 말을 내뱉는 이유가 뭐야!!”

성혜는 흔들림 없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협회에서 엄선된 선발 인원들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여러분만이 할 수 있어요.”

곧바로 세준의 입이 열렸다.

“너무 갑작스런 말인데, 뭐 다 좋다 칩시다.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것이 뭡니까?”

얻는 것 없이 패널티를 쥘 수 없다.

세준은 그런 건 치 떨릴 정도로 질색했다.

“한 분당 1억. 성공시 추가 인센티브로 1억이 정산될 거에요.”

말이 끝난 순간.

헌터들의 입이 잠시 열리지 않았다.

그들 낯빛에는 분노라는 감정과 흡족이란 만족감이 뒤엉켜 이질적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딱 한 명 빼고.

그 한 명이 목에 핏대를 세운다.

“돈 따윈 관심 없습니다! 난 빠지겠습니다!”

“빠질 수 없습니다.”

“빠질 수 없다니!”

웬만하면 흥분하지 않는 세준이 성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빠지게 된다면 헌터 협회측 형사법에 의거해 협회에서 강제로 제명됩니다. 즉, 강제 퇴출이란 소리죠.”

“잠깐!!”

“주무관님. 너무 갑작스런 얘기 아니에요?”

“이봐요.”

몇몇은 따졌고, 나머진 입 닫고 머리로 생각했다.

두당 1억의 돈.

게다가 성공시 2억을 쥐게 된다.

사회 기득권에 속한다 해도 과언 아닌 헌터란 직업이어도,

F랭크인 이들에게 그 돈은 큰 액수 였으며,

지금 랭크로 절대 만지지 못하는 돈이기도 했다.

“자세한 건 2주 후. 계약서와 함께 말할 거에요. 단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성혜가 이어 한 말은 이것이었다.

왜? 하필 가장 약골인 F급에게 그런 돈을 던져주고 임무인지 뭔지를 맡기느냐?

라는 의구심을 충족케 했다.

헌터는 승급할수록 본래 지닌 차크라의 색과 형태가 짙어진다.

현계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단 차크라.

그 차크라는 헌터 시스템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요긴한 기운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감지하는 블랙 헌터들에게는 긴 꼬리에 불과했다.

그 꼬리를 밟히지 않고 그들의 기습 전에 침투 후, 선기를 잡는 것.

그것이 여기 모인.

F급 헌터들이 할 일이라 했다.

F랭크의 차크라는 가장 순결하여 형태를 감추기 제격이니까.

할말을 마치고 나온 성혜는 복도를 쭉- 걸었다.

또각- 또각-

정적인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통해 내린 곳은 최상층.

눈 앞으로 그 어떤 복도보다 체계적이고 화려한 자태가 펼쳐졌다.

“오셨습니까, 윤 주무관님.”

“오셨습니까.”

고작 주무관이란 직급의 성혜에게 깍듯히 인사하는 비서와 경호원들.

한 비서의 안내를 통해 들어간 방은 넓다 못해 호화로웠다.

방 안의 카펫을 굽으로 짓이기며 걸어가 앉은 그 앞으로.

각 잡힌 슈트차림의 백발 중년이 앉아있다.

그 중년 옆에 놓인 금칠된 명패에는.

<부회장 윤동석.>

“말은 다 전했나?”

중년이 근엄히 물었다.

“전했죠, 아빠. 아, 여기선 부협회장님이라 불러야 하지, 참.”

이어진 부녀의 대화소리가 방 안을 매우기 시작했다.

주무관 윤성혜.

그녀가 탐사시험 오작동 사건에서 큰 문책을 피할 수 있었던 것,

조무사에서 빠르게 주무관으로 승진할 수 있던 것,

주무관이란 직급 따위로 중대한 일의 명단을 손수 뽑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이 때문이었다.

“휴우-”

시운의 한숨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어느덧 하루가 흘렀다.

‘이제 주어진 시간은 딱 2주일.’

2주일 강제 휴가란 것을 협회에서 수여 받았다.

앞으로 현계에서 2주일동안 푹, 쉬고 앞으로 정해진 몇 달간은 현계로 올 수 없게 되었다.

선택의 자유권은 없다.

그저 준비해야 될 처지였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잠깐!’

뇌리로 번뜩 떠오른 한 기사.

그것도.

2회차 인생 때 보았던 기사다.

-협회 측에 따르면, 추정 시간 xx일 x시경.

아홉명의 헌터의 사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정확한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협회측 또한 불확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격분한 헌터의 유가족들이 헙터 협회의 본사를 찾아갔으나 이렇다할 답변도 듣지 못하고 협회측의 경호원들에 의해 쫓겨났다고 한다.

협회 측에서는 이 일에 대해서…………….

전생의 기사였다.

이 기사를 오롯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충격적인 기사였기에 시운의 뇌리에 잠식 돼 있었다.

‘설마 그 일이 다시 일어난단 말인가. 아니.’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분명 헤쳐나갈 자신이 있다.

‘내 능력 뿐만 아니라….’

그 멤버는 유능한 헌터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강혜령과 장세준.

‘내 두 능력과…’

그 유망주 둘이 합심한다면,

분명 그 대참사의 피해자가 시운. 본인이 되지 않을 거란 것을 확신한다.

다만.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돈…. 돈.’

그 멤버로 일을 처리한다면 무려 2억이 주어진다.

앞으로 커나갈 헌터. 시운에게 나중은 작을 액수라도,

‘지금은 그 액수로 우리 집의 그 지긋지긋한 빚을 청산할 수 있고, 누나의 꿈을 다시 펼칠 수 있게 해주는 돈이다.’

어쩌면.

‘이번이 현계의 마지막이 될 지도…’

시운은 차갑게 고갤 저었다.

‘마지막은 무슨. 난 허망하게 뒈지지 않는다. 이번 생만큼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지만, 나 또한 전생과 다르다.’

시운은 더는 염려하지 않기로 했다.

많은 생을 살며 경험한 것 중 하나.

‘시련의 상황이 놓이면, 당황할 시간에 그 상황을 비틀어버릴 묘안을 궁리하고, 해결한 후에나 그 일에 대해 걱정한다.’

그것이었다.

이 주일이라는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걱정하고 불안해 한다고 달라질 건 없어.’

또한.

그 시간동안 이계에 진입할 수조차 없어서 그 방안을 모색 할 수도, 강해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즐기자. 앞으로 몇 달간은 빠듯하게 지내야 한다. 이번 2주일은 날 위한 시간을 갖는거다.’

수고를 앞둔 본인에게 주는 보상.

그 보상이란,

편하고, 원없이 2주일이란 시간을 보내겠단 것이었다.

‘철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 수고할 자신에게 보상조차 주지 않는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뿐.’

먹이사슬처럼 퍼져 떠오르는 상념을 떨치기 위해 샤워를 마쳤다.

‘일단 오늘은 만나고 싶은 사람과 시간을 보낼거야.’

손을 뻗어 쥔 핸드폰 액정에는,

천세정./

꾹.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이어지는 통화 연결음……

‘보고 싶다, 천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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