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00화 (99/278)

제 100화

전지적 연애고자 시점?! (1)

뚜르르르.

수화기로 흐르는 통화연결음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연결음이 곧 그녀의 또랑한 목소리로 바뀔 때가 됐는데.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갑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바쁜 것일까?

‘혹시 그 이후로?’

그녀와 살을 섞었던 밤.

그 이후 시운을 대하는 것이 불편해지기라도 한 걸까?

‘에이. 그냥 못 받은 거겠지.’

뇌리 속 불안감을 떨쳐내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이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막상 할 것도 딱히 생각나지 않기에 눈을 감았다.

한동안 에너지를 과소비한 뇌에게 낮잠이란 휴식도 줄 겸.

-점핑! 야 점핑! 야 에브리바디~ 점핑! 점핑! 다 같이 뛰엇! 뛰어…

“끄으-”

방정맞은 벨소리에 눈이 떠졌다.

한 두 시간 정도 눈 붙였나.

눈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손.

손을 뻗어 핸드폰을 귀에 대고 받았다.

세정이의 전화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여보세요?”

-네, 고객님. 안녕하세요 xx 대출 신용 한도를 알려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후.”

신경질스런 한숨부터 나왔다.

땅 꺼지는 한숨을 들려줬는대도 안내원은 지 말을 이어나간다.

-현재 고객님 신용 등급과는 상관없이……

“바쁩니다.”

-고객님, 잠시만 제 말씀 들어보세요.

“관심 없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뚝-

세정이의 전화일 거라 확신했음에 눈보다 먼저 움직인 손이었다.

하여간. 꼭 이럴 때 저 부지런한 대출쟁이 새끼들은 산통을 깬다니까.

핸드폰을 살폈다.

-그 외 부재중 전화 0통.

고개를 들어 시계를 봤다.

-4시 15분.

정확히는 1시간 30분 정도 잔 듯 하다.

다시 골 눕히고 늘어져야 하나?

원래 세정이에게 전화를 하면 그녀는 받지 못한 적은 있어도 30분 안에는 다시 전화를 준다.

“쩝.”

뭐. 괜스런 걱정거리긴 한데.

그날 신명나는? 아니, 삼생에 걸친 달콤한 밤 이후로 그녀와 좀 어색하다.

아니. 어색하다기 보다는…

‘더 설레고 뭐, 그런 맘이라 해야겠지.’

퉁!

베개에 머릴 처박자 침대가 덜컹인다.

‘사냥하랴, 퀘스트 깨랴, 진짜 눈 붙이는 것도 아깝다 생각하고 괴물들을 죽어라 때려잡고, 또 잡으며 지냈었지.’

그렇게 쌓인 피곤함이 축적됐는지 요즘 자고 일어나도 몸이 쑤시고 찌뿌둥 하다.

그래. 뭐, 오랜만에 낮잠이나 푹, 즐기는 거다.

눈을 감았다……가 부릅! 떴다.

귓가를 때려온 벨소리에 전신 피로가 싹! 달아나 버렸으니.

세정이다, 세정일 것이야. 세정이겠지? 이번에 대출 전화면 진짜 쌍욕 박는다?

“여보세요?”

액정도 확인 않고 반사적으로 터치하고 받기야 받았는데.

-어, 시운아.

오! 천세정. 천세정! 세정이!

기대했던 목소리가 들렸음에.

입을 꽉 다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기분 좋으니까.

-전화 했었네?

언제나 당차던 세정의 음성이 지금은 좀 떨리는 듯 하다.

지도 좀 어색하긴 하겠지.

“어디야? 나 현계로 넘어왔어. 시간되면 한 번 볼까 해서 전화 해봤지.”

-아, 그래? 음….

세정이의 말 끝으로 침음이 늘어진다. 바쁜건가? 하긴. 약속을 즉흥적으로 잡으면 여자가 좋지! 하고 오겠냐?

아쉽지만 뭐 안 된다면 다음으로….

-좋지, 울 시운이 얼굴 보는데 누나가 맛있는 거라도 사먹여야지.

“오늘은 내가 살게. 나도 돈 있어, 그리고 너한테 빚진 것도 있고.”

“…음?”

세정이 ‘빚’이란 말에 시치미를 뗀다.

“인방에서 내 친구 승훈이한테 풍선 쏴 줬잖아. 내 기도 살려줬었고. 나, 다 알아.”

-엥? 무, 무슨 소리지?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어…. 음, 그래서 어디서 볼 건데!

말을 더듬는 세정이.

킥, 하고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얘는 자기 사람을 도와줄 땐 확실하게 밀어주면서도 그걸 숨긴다.

이렇게 낯부끄러워 한다.

그녀와 대화를 이었고,

약속 장소를 잡았다.

“거기서 보자, 그래, 6시까지? 오케이. 알겠어.”

-알겠어, 오늘 날씨 되게 좋대. 얇게 입고 와, 시운아.

“그래, 알겠어.”

-오냐~.

통화를 끝낸 나는 다시 머리를 감았다.

아까 샤워했고 싹, 씻었는데 왜 또 씻냐고?

낮잠 자는동안 머리가 베개에 눌려있어서 떡이 졌으니까.

솔직히 하루 두 번 샤워하는 일은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여름에 하늘에서 눈이 떨어져 내릴 확률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쏴아아-

“어흐!”

호스기에서 뿜어진 찬물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찬 신음을 뱉었다.

이 다시 닦고, 머리 감고, 바디 워시로 몸 한 번 시원하게 쭉쭉, 구석구석. 사타구니까지 제대로 씻은 후에 화장실에서 나왔다.

위이잉-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오늘 몸에 걸칠 의상을 생각한다.

구석탱이에 처박아 둬서 쓰지도 않던 왁스까지 꺼냈다.

한껏 꾸미고 나갈 생각이다.

거울을 보며 손을 흔들며,

“어, 세정아? 아니… 세정아! 아. 오랜만? 얼마 만이지? 아니, 이게 아니고.”

내가 봐도 미친놈 같다.

웃긴게.

평소 안하던 인사 연습까지 하고 있는 나.

세정이만 보면 설렌 건 맞다. 근데 오늘 보면 설렘을 넘어 몸이 떨릴 것 같다.

그때의 그 일이 있고나서 바로 보는 거니까.

난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날씨 좋네….”

절로 튀어나온 독백.

고개를 들자,

티없이 쫙- 파란 하늘에 솜사탕같은 구름 몇 개가 느리게 지나간다.

‘생각해보니, 하늘을 안 보고 살았었네. 이 좋은 눈요깃 거리를….’

은은한 봄바람이 불어와 피부를 간질인다.

이 곳은 거리 한복판. 그 앞으로 시멘트 계단이 펼쳐진 곳에는 퇴근하는 회사원들이 오가고 있고.

정거장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한발, 두발 딛는 시야로 하얀 스니커즈 굽끝이 움직였다.

3년동안 신은 내 신발이다.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던 난 신발조차 사 신지 않는 놈이었다.

지하 광장을 가로질러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 앞에 섰다.

검은 바지에 연분홍 셔츠. 그 위로 왁스칠한 내 머리가 보인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손끝으로 구렛나루를 쭉, 눌렀다.

남자는 양쪽 구렛나루가 붕, 뜨면 그것만큼 꼴뵈기 싫은 게 없다. 쭉 눌러줘야 한다.

쏴아아-

소변기가 내려가는 소리다.

긴장감에 신호를 보낸 방광을 달래준 것가지 마쳤고.

‘이제 2번 출구에서 기다리면 된다.’

여긴 강남역.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센스있게 도착.

셔츠 맵시를 정리하며 점검을 마친 나는,

2번 출구 앞에 서서 그녀를 기다린다.

“오빠! 쫌, 오늘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아~ 응?”

“그러니까 얘기를 해! 뭐 먹고 싶은지.”

“난 아무거나 좋다고 했잖아.”

“그니까 그 아무거나가 대체 뭔데?”

한 커플이 티격태격 거리며 걸어간다.

그것을 보며 내 입가도 덩달아 올라갔고.

‘예전에는 커플만 보면 꼴뵈기 싫었는데.’

그랬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꽤나 반갑게 보이는 건 왜일까?

세정이와 잘 돼서? 아니, 아직이다. 세정이와 나는 지금 연인 사이는 아니다. 친구 사이도 아니고.

썸?

뭐, 그것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관계다.

우왕! 부르릉!

마후라를 뽐내며 도로를 누비는 외제차 한 대에 눈이 멈춘다.

그 뒤로,

벤츠, BMW, 아우디…… 고급 외제차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강남역스러운 풍경이다.

나도 돈 벌고, 가족을 다 챙기고 여유가 생기면 저런 차 한 대 정도는 끌고 다닐 수 있겠지.

내 생각엔 남자는 철이 없다.

특히나 차에는 더더욱, 철이 없는 것 같다.

남자라면 누구나 형편 생각 안하고 저런 삐까번쩍한 외제차 차키 하나 들고 다니며,

커피숍 같은대서 차키 하나 탁! 내려놓고 은근스레 꽂히는 시선을 즐기며 다리 하나 휙, 꼬고 아메리카노를 쪽쪽, 거리는 유치한 상상을 하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지.’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냐!”

콕, 옆구리의 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모자를 눌러쓴 세정이의 두 눈과 마주친다.

검은 모자 하나에 다 가려지는 얼굴.

그 밑으로 큰 사이즈의 박스 티임에도 티를 뚫을 듯 솟은 가슴. 탄탄한 청바지 하나 걸쳤음에도,

절묘히 휘어진 골반과 쭉 뻗은 각선미.

그 밑으로 발목까지 오는 회색 단화.

그 단화가 휘어져 발꿈치가 땅을 콕콕, 찌르고 있다.

오늘은 수수하게 입고 온…

탁!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냐구. 무슨 생각 중인데? 어머, 얼굴 야윈 것 봐….”

내 팔뚝을 치며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내 얼굴을 살피는 그녀.

그녀의 눈망울을 멍하니 바라보자.

“음….”

세정이는 고개를 슬쩍 돌려 시선을 회피하고 허공을 바라본다.

역시. 아직 부끄러운가 보다.

“뭐하고 있었어?”

“그냥 이것저것…. 좀 바빴는데, 마침 시간이 났어.”

내가 묻자, 그제야 내 시선을 받아주며 답한다.

“……….”

거리로 지나다니는 인파 속에 섞인 우리는 어색한 기류에 꽤나 어색함을 느끼는 중.

그때.

-남자란 자고로 자신감이 있어야 해. 어깨 쫙, 피고! 허리 꽂꽂히 세우고.

강춘식의 음성이 떠올랐다.

곧바로 구부린 등을 쫙, 피고.

-남자는 의기소침 해하면 여자가 매력을 못 느낀다고! 리드를 해. 여자들이 다 리드하는 남자에 빠지는데는 이유가 있어.

‘그래, 배웠잖아. 배운 건 써먹어야지.’

세정이의 시선이 내가 아닌 다른 곳에 향하고 있다.

뻘쭘한가.

일단. 이 분위기부터 깨는 게 우선.

“세정아, 배 좀 고프지?”

“아직?”

시계를 힐끗 거리며 답한 세정에게 일단 커피숍에 가자고 했고.

우리는 한적한 카페에 들어왔다.

세정이는 언제나 카라멜 마끼야또를 먹는다. 난 카푸치노.

테이블 위에 커피 두 개를 두고.

“……….”

“……….”

젠장할. 서로가 말이 없다.

세정은 빨대에 입술을 대고 쪽쪽, 거리며 주변만 요리조리 보고 있고.

‘하. 할말이 왜 떠오르질 않는거지?’

친구 사이일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좀 묘해진 관계가 되니까 머릿속이 새하얗다.

말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 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고.

‘3회차 인생까지 살았는데…. 아오, 참 내가 봐도 난 참 헛 살았네.’

솔직히 연애 경험 없다.

썸탄 경험은 좀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 연애고자다.

진짜 내가 생각해도 존나 답답한 것이 그 세 번의 인생동안 제대로 연애질 한 번 안 해보고 뭐하고 살았나 싶어.

더 답답하게 굴 생각은 없다.

분위기 전환! 급선무다.

“오늘 수수하게 입었네? 뭘 입어도 넌 진짜 태가 난다, 모델 다워.”

“음, 그런가? 고맙다.”

“천세정. 근데 왜 이렇게 어색해 하냐? 평소와 다르게 말도 없고?”

“아, 아닌데?”

빨대에 붙은 세정이의 입술이 귀엽게 움직였다.

“나 이번에 이주일 동안 현계에 머물게 됐어.”

“이주일? 휴가 같은 건가?”

턱을 괸 세정이 지그시 날 보며 물었다.

그녀에게 이주일을 여기서 보내게 된 이유에 대해 좀 설명했다.

한 3분 정도?

“진짜? 휴. 그거 위험하지 않겠어?”

왼쪽 눈만 유독 치켜뜬 세정이가 걱정되는 듯 물었다.

“그래서 그 시간동안 스트레스 싹 풀리게 즐겁게 지내다 가고 싶어, 그 시간 일부는 너와 함께 하고 싶고.”

“아….”

내 말에 세정이의 얼굴이 발그레 물든다. 좀 느끼했나? 아니. 진심을 담은 말이었을뿐.

답답하게 아무 말도 안하고 벙어리처럼 닥치고 있는 것보단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게 낫잖아.

“뭐, 그래. 나도 너랑 있는 시간이 나쁘진 않아.”

눈을 내리 깔고 빨대만 요리조리, 돌리고 있는 세정이의 뺨을 어루만졌다.

“……!”

눈이 커진 그녀가 순간 얼었다.

“천세정. 어색해 하고 있는 거 다 알아.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어색해 할 필요도 없고. 당장 우리 관계에 대해 결론지을 필요도 없어.”

“그, 그니까 난 뭐, 아무렇지 않은데. 다만….”

그녀가 모자 챙을 내려 얼굴을 다 덮어버린다.

그리고 그녀 입술이 열린다.

“나도 지금이 갑작스러워서. 사실 얼떨떨 하기도 하구. 쫌 쑥스럽기도 하고….”

“그….”

내가 입을 열었다. 근데…….

여기서 딱! 세정이의 마음을 꽉 잡아 안심시킬 말 한마디.

그 한마디면 족하니까.

“있잖아.”

내 육성에 날 보는 세정이의 두 동공이 흔들린다.

여기서…! 아. 아…. 할말이 생각이 안 난다.

영화나, 오글거리는 드라마에서 남주가 이 타이밍에 뭐라 딱. 던지면 분위기가 불타면서 남주와 여주가 뭐, 눈 맞고 해피엔딩 맞곤 하는데.

“그….”

내가 또 병신같이 말문은 열었다.

말을 기다리는 세정.

씨팔!

삶은 계란에서 그 흰자 빼고 노른자 그 텁텁한 노른자를 목구멍 가득 덮어쓴 기분이다, 지금.

답답해서 내 머리끄댕이를 잡아 뜯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왜 하필 인생은 세 번 살았으면서 모쏠… 아니, 연애고자로 살았을까! 나는.

모르겠다, 말 던질 것이다.

대신 조급하면 뭐든 그르친다. 그러니까.

“난 네가 친구든, 여자든 네 자체로 좋다, 세정아. 니 앞에 있는 내가 너에게 친구든, 썸이든, 남친이든 간에 내가 이시운인 건 변하지 않아. 우리 사이에 신경쓰지 말고 그냥 나를 이시운. 그 한 사람 자체로 대해줘. 내가 알아서 다가갈 테니까. 늦든, 빠르던.”

그녀를 배려하는 내 진심담긴 말이었다.

당장 사귀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세정이는 갑작스럽고 혼란스럽단 눈치다.

급할 것은 없다.

이렇게, 내 말이 끝났다.

그러자, 천세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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