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01화 (100/278)

제 101화

전지적 연애고자 시점?! (2)

세정의 입망울이 열린다.

“아직 갑작스러운 건 맞아, 맞는데…”

말을 하다 만 세정은 머뭇거렸다.

“괜찮아. 편하게 말해도 좋다.”

다독여 주었다.

무슨 말이든 들을 준비는 돼 있어.

이제 옛날의 그 ‘나’는 내 안엔 없으니.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세정은 내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말을 잇는다.

“..그땐 나도 어떤 마음이 있으니까 너하고 하루를 보낸 건 맞아.”

말을 마친 세정은 부채질을 하며 달아오른 얼굴을 식힌다.

끄덕.

한 차례 끄덕여준 나는 그 대답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그걸로 됐다. 충분히. 절대 안 놓칠 테니까.’

난 진한 눈으로 세정일 똑바로 바라봤고.

세정 또한 부끄러운 눈으로 내 눈을 받아주었다.

“아, 몰라! 여튼, 음. 음…. 난 말 끝냈으니까 뭐, 다른 이야기 하자. 야, 야! 너 이주일 후면 한동안 여기 못 온다며? 좋은 시간 보내야지.”

세정이가 말했다.

그것도 맞다. 어쨌든 난 너와 함께하는 이 시간 자체가 중하고.

그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면 그걸로 족하니까.

커피를 다 마신 우리는 카페에서 나왔다.

지나가는 츄리닝 차림의 남자가 세정을 보며 넋빠진 눈을 한다.

뒤이어. 지나가던 몇 남자들도 세정을 보고 속닥이더니 날 힐끗 보고 부럽단 시선을 보내며 지나갔다.

예쁜. 그것도 너무 예쁜 여자를 보면 보이는 당연한 남자의 반응들.

“세정아, 잠깐만.”

“어디 가는데?”

“잠시 편의점 좀 다녀올게.”

바로 옆 편의점에 가서 담배 한갑과 풍선껌 하나를 샀다.

세정이가 유독 좋아하는 풍선껌. 특히나 좋아하는 포도맛으로.

편의점 문을 밀었는데.

내 눈이 잠시 멈췄다.

뭐야? 저 남자는?

키 크고 훤칠한 남자가 세정을 보며 말을 붙이려 했다.

“제가 웬만하면 번호 안 따는데, 가다가 보고 너무 예쁘셔서….”

“아, 괜찮아요.”

손사레를 치고 고개를 돌린 세정. 그런데 남자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가지 않고, 앞에서 쭈볏거린다.

“아, 진짜 저 아무 여자나 보고 번호 따는 사람 아니……”

착!

남자의 눈이 커졌다. 내가 보란 듯이 세정의 허리를 감고 그대로 세정을 끌어 갔기 때문.

슬쩍, 뒤를 돌아봤다.

포마드를 한 남자놈이 멀뚱멀뚱 날 쳐다본다.

그의 눈을 잠시 맞봤다.

그러자 남자놈은 면상을 구기며 한숨을 푹, 쉬고 몸을 틀어 반대방향으로 가버린다.

“이제 저녁은 뭐 먹으러 갈까?”

허리에 닿은 내 손길을 피하지 않고,

걸어가는 세정이 방금 일은 신경 안 쓴다는 듯 물었다.

난 그녀를 감은 손을 내렸다.

‘약속했으니까. 조급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스킨십도 좋지만 이럴 때는 그런 것 없다는 진심을 심어주는 게 좋단 생각이 들었다.

본능적이었지만.

“파스타 먹으러 가자. 내가 이 근방에 진짜 죽여주는 집 알거든?”

난 자신있게 말했다. 내 말에 세정이가 “오, 진짜로?” 라고 하며 탄성을 흘렸다.

그렇게 그녀를 안내했다.

사실. 지금 가려는 파스타 집은 내가 처음 가본 곳.

바에서 양주까고 강 작가님과 열띤 토론을 벌였을 때 하나 들었던 말을 방금 실행에 옮긴 거다.

-독자님. 독자님아! 여자한테 “뭐 먹을래?” 라고 묻지마! 여자가 답답하지 않게 독자님, 자네가 리드하는 거야. 그리고 그 집이 굉장한 맛집이라고 대충 포장을 해. 왜냐? 그게 여자를 더욱 움직일 명분이거든. 여자는 섬세해. 일에 대한 원인, 즉 명분이 확실한 걸 따른단 말야. 이게 과한 것 같다고? 아니! 전혀. 설령 그 맛집에 가서 음식을 먹었는데 맛집이 아니었다? 그래도 여잔 원망 안 해. 그 집에서 복어독이 나와서 여자의 목구녕에 들어가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언더스텐?

“……풉.”

“갑자기 왜 웃냐?”

춘식의 입담이 떠오르자 웃었는데 그 모습에 세정이 묻는다.

“아니, 갑자기 웃긴 일이 생각나서. 안 추워?”

“뭐, 저녁 되니까 쫌 추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니다. 별로 춥지는 않아.”

세정이가 내 얼굴과 몸을 슥, 훑는다.

“살 좀 쪄라. 너무 말랐어, 너. 으이구. 짜식아! 거기서 먹을 거 안 챙겨먹지? 삐적 꼬른 거 봐..”

내가 입이 짧은 것을 세정은 꿰뚫고 있다. 일, 이 년지기 친구가 아니니.

“거기선 음식을 입에 삼킬 시간도 없다, 진짜.”

“왜?”

“남들 밥 먹을 시간에도 난 움직이거든. 하루 빨리 크고 싶단 생각 뿐이니까.”

“에휴우, 얌마!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좀 챙겨 먹어. 시운이, 너 지금 뼈 밖에 없어.”

세정은 그런 날 안쓰러운 눈으로 본다.

턱- 턱-

그녀의 걸음 소리와 내 걸음소리가 뒤섞여 울린다.

내 눈에 그녀를 담고 싶어서 걷고 있는 세정의 옆모습을 봤다.

쌀쌀한지 어깰 움츠려 교차한 두 손으로 팔을 비비고 있다.

추운가 보다.

하. 외투 하나 챙겨온 다음에 이럴 때 말없이 딱 덮어줄 걸.

“춥지? 빨리 가자.”

“괜찮아. 그냥 갑자기 쌀쌀해서 그래.”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에 외롭게 뜬 달 하나. 그 주변으로 검은 하늘에 촘촘히 박혀 빛나는 별들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

성공도 좋고, 돈 잘 벌어서 뱃살, 툭 튀어나올 정도로 잘 먹고 잘 살며 할말까지 다 하고 사는 것도 좋지만 말야.

좋은 사람과 그저 이렇게 함께 하는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채워지면서 행복이란 게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런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게 진짜 괜찮은 삶 아닐까?

“와, 시운이 너…. 말랐는데 팔 근육이 운동하는 사람 같아..”

세정이가 내 팔을 덥썩, 잡고 만지작거린다.

티 안 나게 팔에 힘 좀 줬다.

“……오올, 시운이? 헌터들은 다 이렇게 잔근육이 좋나봐?”

눈이 커진 세정이가 귀엽게 탄성을 뱉는다.

탁-

걸음을 멈췄다.

“다 왔네, 여기야.”

“오, 맛있어 보인다. 빨리 들어가자. 솔직히 조금 배 고팠거든? 참느라 고생했어..”

배가 고팠는지 세정은 단화 신은 발을 동동 구르며 날 끌고 들어간다.

우리는 콘스프와 검은콩으로 만든 까르보네 스파게티. 버섯과 야채가 잘 버무려진 스테이크까지 몽땅 다 먹어치우고 나왔다.

“아이고오- 배 부르다. 잘 먹었다? 시운아.”

“입맛엔 좀 맞았어?”

“완전 괜찮았는데? 내가 샀어야 하는데 미안하게 얻어 먹어버렸네….”

“맨날 니가 샀는데 뭐가 미안하냐?”

뭐, 말로는 기막히다! 맛집이다! 침바른 소릴 해둬서 맛이 없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오늘 주방장이 컨디션이 좋았는지 음식은 아주 먹을만 했다.

이제 어딜로 가야 하나?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고.

리드하고 싶고, 좋은 곳을 데려가고 싶은데 아는 곳도 없고.

참……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듯 싶다, 진짜.

아! 그 방법이 있었지.

난 곧바로 폰을 꺼내들고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오케이.’

이럴 때 내 눈이 참 맘에 든다.

번개같이 포탈 사이트에 띄운 데이트 장소를 2초 만에 길, 경치, 등등… 다 속독하고 폰을 주머니에 쏙, 넣어버리게 해주니.

근처의 공원으로 향하는 길.

내 손에는 맥주 두캔과 과자가 담긴 봉지가 걸을 때마다 소릴 낸다.

말없이 도보를 걷고 있는데.

끼이익!

“어머!”

갑자기 길 모퉁이에서 중형차 한 대가 코 앞에서 급정차 했다.

“아, 놀래라….”

세정인 가슴을 쓸어내렸고, 난 미간을 좁히며 앞의 차를 노려봤다.

그럴 만도 한게.

여긴 일방통행 구역이라 이렇게 차를 몰고 올 수도 없고.

미친놈도 아니고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 칠 것 마냥.

후. 열받지만 참고 가려는데.

탁!

“아이, 씨발. 놀랬잖아!!”

차문을 닫고 내린 남자가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빡빡민 반삭 머리에 큰 체구. 독기 뜬 눈으로 내 앞에 턱, 멈춰 선다.

아, 제발 가라. 그냥 가라.

“어이, 운전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해? 씨발. 사람 존나게 놀라게 만드네?”

당황한 세정을 내 등뒤로 옮긴 뒤 나는 이를 꽉, 물고 고개를 숙인다.

“미안합니다.”

당장 쓴맛, 매운맛 다 보여줄 수 있는데 참고 말한거다.

솔직히 싸워봐야 뭐 하냐?

불필요한 상황에 참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

남자가 요망한 눈으로 세정일 슥, 훑고 다시 날 본다.

양아치 같은 새끼가 거만히 날 내려다본다.

난폭 운전을 한 것도 너고. 차에 치일 뻔한 것도 우리지만 세정이 앞에서 험한 상황 만들고 싶지 않아. 제발 그냥 가라.

내가 한수 접어줬잖아?

“미안합니다, 가세요.”

“가세요? 하, 씨발. 인사 똑바로 안 하냐?”

남자는 두 주머니에 손을 꽂고 얼굴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한 번 더 참는다. 세정이 앞이니까.

“아, 미안합니다. 근데 여기 일방통행인 건 아십니까? 운전자 분도 잘못한 부분이 있으신데. 서로 다친 곳도 없고 하니까 좋게 넘어가시죠.”

“좋게 넘어가는 거 좋지. 근데 말투가 좀 띠겁다?”

순간.

“아니, 저기요!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저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제 친구가 사과 드리잖아요. 차에 치일 뻔한 건 저흰데 왜 그쪽께서…”

세정이가 따지자, 남자가 더욱 험악하게 표정을 짓고서.

“아오, 확, 이 씨발년이…!”

탁!

세정이에게 내려오는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놔라. 안 놔? 여자 앞이라고 가오 부리는………끄아아악!!”

살짝, 아귀에 힘 좀 주니까 놈이 휘청였다.

어딜가나 이런 새끼는 꼭 있지.

“시운아!”

“아아아악! 아, 씨, 씨발… 놔, 놓으라고!”

힘준 아귀의 방향을 슬쩍 틀어준다.

“끄아아아악!”

놈의 살덩어리 팔이 꺽이며 괴성을 들린다.

“아아악! 놔, 놔요. 노……놓고 이야기 하, 합시다.”

팍!

아귀 힘을 풀자마자 놈의 가슴팍을 밀었고 놈은 살덩어리를 흔들며 쿵! 나자빠졌다.

“아욱…!”

“시, 시운아. 그만 가자.”

자빠져서 겁먹은 눈을 한 남자에게.

“난폭 운전 했으면 말이라도 조심 합시다. 나도 애처럼 싸우고 싶지 않다고요. 이쯤에서 그만 할 거죠?”

“네, 네. 네…. 알았습니다.”

내 질문에 고개를 빠르게 주억이고 남자는 벌떡! 일어나 차를 타고 그대로 가버렸다.

“휴- 놀랬지? 세정아.”

“나, 난 괜찮아. 시운아 다친 데는 없어?”

“미안해.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손을 좀 올려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웬만하면 참으려 했다.

헌터가 일반인에게 힘 과시 하면 그건 양아치다. 근데 방금 그놈은 선을 넘다 못해, 이탈해 버렸으니.

할 일 한 것이다.

그뿐이다.

난 세정이를 달래며 공원 입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캬- 맥주 맛 좋다아~”

세정이가 맥주를 목에 넘기고, 과자를 집어 야금야금 먹고 있다.

가끔 보면 애 같다니까.

“날도 선선하고~ 경치도 조오코~”

세정이 팔을 양갈래로 쭉 뻗으며 늘어지는 소릴 한다.

눈 앞에는 형형색색 빛나는 조명들과 커플들, 산책하는 사람들이 공간을 매우고 있다.

고작 맥주 한캔에 알딸딸한지 세정이는 붉어진 볼결을 손으로 만지작 거린다.

“시운아. 나 이런 일상 되게 오랜만이다?”

“이런 일상?”

“응. 이렇게 공원에 오고, 여기서 캔맥주도 따서 먹고. 아무 걱정없이 밤공기도 쐬고…. 좋다, 와! 저기 달뜬 거 봐봐!”

눈이 동그랗게 커진 세정이의 눈을 따라 나도 시선을 옮겼다.

둥근 달이 참 묘하게 떠있다.

“예쁘다아….”

“아버지 회사 경영 일은 어떻게 돼 가고 있어?”

“뭐…. 곧, 취임식을 갖게 될 것 같아.”

“취임식? 임원 취임식 말이야?”

내 질문에 세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그 길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하고 싶은 모델 일을 하며 유명한 무대에서 워킹하고 잡지에도 실리고,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 보고 싶었는데.

“뭐, 어쩌겠냐. 내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뭐.”

숨빠진 음성을 내뱉고 맥주를 쭉- 들이킨다.

“정해진 운명이란 없어. 지금이라도 네가 하고 싶은 게 진짜 뭔지 생각하고 해라. 나중에 후회해도…”

“아니. 시운아. 그건 우리 집안을 모르고 하는 소리야.”

세정의 눈이 슬프게 빛났다.

도움되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난 세정이의 집안 사정을 잘 모르니까.

힘내란 말도 뭐, 여기선 식상할 것 같고.

“이왕 하게 되는 거 말이야. 진짜, 진짜로 잘해서 아빠한테 보탬이 되는 딸이 될래. 그럼 된 거지, 뭐.”

“분명 넌 잘할 거야.”

난 천세정을 안다.

분명 세정은 그곳에서도 성과의 끝을 이룰 것이란 것도.

“너랑 이렇게 있으니까 참 좋다~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언제 우리가 이렇게 커버렸다니.”

그녀가 스르르, 내 어깨에 기대 늘어진다.

난 오른손을 움직여 그녀의 여린 손을 포개어 잡았다.

“……….”

놀랐는지 세정이가 눈을 크게 깜빡! 인다.

전신부터 뇌리 깊숙이 꽂혀 쌓이고, 쌓이고, 쌓여있는 스트레스 덩이들이 확, 녹아 분해되는 느낌이 든다.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그녀의 살결의 따스한 체온이 내 손에 감돈다.

“시간이 늦었네, 시운아. 나,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손을 슥, 빼며 일어난 세정. 난 일어나 그대로 그녀를 안았다.

내 품에 안긴 세정이는 손을 올려 내 등에 올리려다 이내, 내린다.

더욱 꼭 안아줬다.

“네가 너랑 하루이틀 친구냐? 너 지금 그 일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거 안다. 힘내란 말보다 그냥 한번 안아주고 싶었어.”

“흑….”

그녀의 어깨가 들썩인다.

서로를 안고 있는 우리를 달빛이 가만히 내려 비추는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추고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해도 좋을만큼.

내 삼생(三生)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세정이의 기사가 그녀를 차에 태워 데려갔고.

난.

그곳에 도착했다.

내 두 눈에 익숙한 간판이 담긴다.

-Lexy Talking Bar.

그때 그곳이다.

내 손에 들린 폰의 액정은 켜져 빛나고 있다.

액정 속에는,

독자님들~ 내일 하루는 휴재입니다. 껄껄. 죄송하네요. 스트레스 풀러 자주 가던 바에 가야겠어요. 오늘 술에 흠뻑 젖을 겁니다!

알아볼 것이 있다.

단순히 돈지랄로 똥술 처먹고, 바텐더와 실실대러 온 것이 아니다.

난, 간판이 빛나는 건물 속으로 발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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