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2화
다시 토킹바의 그 작가에게 (1)
유리문 너머로 퇴폐스런 조명이 눈을 간질였다.딸랑- 문 손잡이를 밀고 들어가자 문 위에 달린 종이 움직이며,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바텐더들이 손님을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
자리에 앉고 좌우를 살폈다.
오늘 손님은 나 뿐이다.
강춘식은.
없다?
강춘식 작가가 아직 오지 않은 듯 하다.
‘분명 후기에는 오늘 바에 간다고 했었는데.’
“혹시 찾는 사람 있으세요?”
메뉴판을 내밀며 물어오는 바텐더.
못 보던 바텐더다.
저번에 봤던 바텐더들은 오늘 출근을 하지 않은 듯 하다.
“맥주보다 칵테일이 맛있나요?”
메뉴판을 보며 물었다.
매일 먹는 맥주를 여기서 또 먹자니 돈 아깝고 양주를 시키자니 역시 돈이 아깝고 칵테일이란 것에 관심이 갔다.
“칵테일은 여성 분들이 좋아하시는데 한 번 먹으면 빠져서 그것만 시키시는 남자 분들도 많아요, 추천 해드릴까요?”
“네, 하나 골라주세요.”
바텐더는 옆리를 귀로 쓸며 고개를 숙여 메뉴판에 손을 얹고는.
“여기 마티니, 롱 아일랜드 티, 블랙 러시안 이 세가지가 무난해요. 도수는 맥주보다 좀 센데 음…. 맥주보다 달콤해요.”
설명을 좀 들었다.
마티니란 칵테일은 도수 세고, 양이 좀 적단다.
롱 아일랜드 티는 양이 좀 많고 무난한 맛에 적당한 도수?
블랙 러시안은 보드카와 커피 리큐르를 섞은 초콜릿향의 뭐 그런 칵테일이란다.
“롱 아일랜드 티 한잔 주세요.”
뭐, 대충 시키자. 술 먹으러 온 것은 아니니까.
“네, 잠시만요.”
제조실로 향하는 바텐더의 뒤태에 눈이 간다.
특히 꽃무늬 패턴 원피스에 가린 볼록히 튀어나온 엉덩이.
걸을 때마다 씰룩, 거리는 태.
그리고 그 위로 얄쌍히 흔들리는 골반.
‘아, 내가 무슨 생각을.’
이게 남자의 본능인가 싶다.
탁.
“여기 있습니다.”
꽤 이쁘게 생긴 바텐더가 서비스 정신이 깃든 반달 눈웃음을 짓는다.
롱티인지 뭔지 아무튼 칵테일을 타주고 날 뾰로퉁 바라본다.
뭐, 자기도 한잔 시켜달라고 묻겠지, 이제.
“식사 하고 오셨어요? 저희 바는 처음이신가.”
“네, 식사 하고 왔죠. 그쪽도 한잔 시켜드릴까요?”
“아, 그러면 감사하죠.”
씩, 웃는 바텐더.
난 칵테일 아무거나 하나 시키라고 했다.
얘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나 시켜주는 것쯤 뭐.
이곳 토킹바는 바텐더가 손님이 시키는 술값에 비례한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걸로 바텐더들은 벌어들이는 월급에 플러스 수익을 벌게 되는 거고.
‘한마디로 손님한테 살살, 한 번 만나줄 듯 말 듯 밀당 하면서 번호 따고, 손님 관리 좀 해서 바에 불러들여서 인센티브 땡기고 그렇게 버는 거지.’
바에 두 번째 오는 내가 이런 맛깔난 정보를 다 아는 이유는,
강춘식 작가의 소설을 속독으로 주행했기 때문.
그 작가의 글 하나하나에는, 맛깔나는 연애 스킬이 모조리 녹아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바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를 쓰려고 3달 간 바에 틀어박혀 죽썼다고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은 뭣보다 실감나고 재밌기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기사에 검색해보니까 수익이 월에 1억을 넘긴다나.
아무튼.
바텐더가 걸어와 자기 앞에 칵테일 하나를 놓는다.
“근데 몇 살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스물네 살이요. 여기 오는 손님치고 어린 편인가?”
“어린 편이죠. 보통 30대 중반에서 40대 손님이 많이 와요.”
바의 메뉴판을 봐야 딱 머리로 실감하겠지만. 이곳의 술값은 꽤 비싸다. 맥주 한병에 돈 만원 깨지고.
칵테일 한잔에 만원에서 비싼 건 만오천 원까지다.
‘한창 소주, 맥주 말아 먹을 20대 애들이 이 술값을 감당하긴 무리수지.’
그래서 30대부터 중년층 40대의 남자들이 자주 찾는단다. 특히 유부남들이 꽤나 찾는 곳이 이곳.
마누라와의 관계부터, 부부 고민, 뭐 그런 등등등……의 고민을 털어놓으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고.
바텐더와 눈 맞으려고 오는 유부남들도 꽤 있다 한다.
물론, 쉽게 바텐더가 유부남에게 마음을 주진 않겠지.
꿀꺽- 롱티? 롱 아일랜드 티랬나? 칵테일을 먹어보니 꽤 먹을만 하다. 음료수에 소주 좀 적당히 탄듯한 맛이랄까.
“바는 자주 오는 편이에요?”
바텐더가 물었다. 일상적인 것이다. 얘네도 매일 손님 이야기 들어주랴 뭐하랴 피곤하겠지만. 바텐더란 일이 손님을 심심하게 하면 안 된다. 할 말이 없어도 말을 계속 걸어야 하고. 자기 손님으로 만들던 해야 한다.
“아니요, 두 번째 오는 거에요. 바에 대해 사실 잘 몰라요.”
“그래요? 의외네. 20대 애들은 보통 바에 잘 안 오거든요. 어떻게 하다가 우리 바에 오게 된 거에요?”
“지나가다가 눈에 띄어서 한 번 오고, 오늘 두 번째네요.”
“아, 그럼 우리 바가 두 번째란 소리에요?”
“네.”
“그렇구나, 근데, 여자친구 있죠?”
여친의 유무에 대해 묻는다.
이유는 딱 세가지.
강 작가의 소설에 의하면, 바텐더가 애인 유무를 묻는 이유는 딱 세가지라 했다.
첫째. 손님이 마음에 들어서. 근데 이건 가장 희박한 확률.
둘째. 손님과 친해지기 위해 그냥 묻는 일상치레의 말.
셋째. 여친의 유무를 확인. 여친이 없으면 단골로 만들어 좀 뽑아먹을 사이즈가 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아뇨, 아직은 없어요.”
“아, 왜요? 인기 많을 것 같은데?”
바텐거가 갸웃했다.
갸웃하는 그 찰나에 쟤가 여친 없단 내 반응에 살짝 동공이 흔들려 열리는 걸 보니.
‘내가 맘에 들거나, 뽑아먹기 좋겠다 싶거나. 딱 둘 중 하나.’
“진짜 인기 많을 것 같은데? 여자 많지 않아요? 여친 없다니까 좀 의왼데?”
바텐더가 내 쪽으로 고개를 가까이 하고 의아히 묻는다.
“바쁘게 살다 보니까, 여친 만들 시간이 없었네요.”
“하는 일이 뭔데요? 혹시 학생?”
직업을 묻는 바텐더.
역시 이 이유도 둘 중 하나라 강 작가는 글로 말했다.
단골로 만들면 양주를 시킬 수 있는 사이즈가 나오는지,
아님 바텐더가 그냥 궁금해서.
“헌터에요.”
“네? 헌터요?”
두 눈이 동그래진다.
이제 이런 반응은 익숙하다.
꽤 놀랐는지 날 빤히 바라보는 눈이 좀 민망스럽다.
“진짜 헌터에요?”
재차 묻는다. 안 믿기겠지.
“네….”
“와, 신기하다. 헌터라니. 스물네 살에 헌터면 진짜 성공했네요? 부럽다.”
“그보다 여기 매일 오시는 작가님 한 분 계시죠?”
“오! 그 아저씨를 어떻게 알아요?”
“저번에 좀 친해져서 대화 좀 나누고 했거든요. 그 작가님 혹시 오늘 왔다 갔나요?”
“아뇨, 매일 이 시간대 쯤이면 오시는데….”
내 눈이 워낙 좋기 때문에 바텐더 뒤 술병에 비친 바텐더 쪽의 발밑 휴지통까지 보였다.
‘검은 봉지가 휴지통에 씌여있지 않군.’
보통 술작업을 치는 바 같은 경우는 바의 바텐더 쪽 자리마다 휴지통이 있다. 손님 쪽에서는 그 휴지통이 보이지 않는다.
휴지통에는 보통 검은봉지를 씌워 쓰레기를 버리기 편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검은봉지가 없다는 것은 바텐더가 술작업을 쉽게 치기 위해서다.
검은 봉지가 휴지통을 뒤덮고 있으면 술을 휴지통에 버리면 봉지에 묻어 축축해져 술냄새가 진동한다. 이 때문에 봉지를 씌워놓지 않는 것.
‘근데 뭐,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헌터면 보통 한 달에 얼마 벌어요?”
바텐거가 궁금한지 물었다. 내가 헌터라 밝히니 그때부터 호감 좀 서린 눈으로 날 보는 것 같다. 그걸 떠나서 이 바텐더는 바에서 일한지 얼마 안 된 듯 하다.
손님에게 직업을 묻는 것은 뭐, 있을 수 있는데. 아무리 대단한 직업이라도 수익을 직접적으로 묻는 것은 실례다.
기본이 안 돼 있는 바텐더이거나, 일한지 얼마 안 돼서 감이 없는 바텐더거나 둘 중 하나라고 춘식은 말했다.
“여기 일한 지 얼마 안 됐죠?”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왠지 그래 보여서?”
“엥? 내가 좀 초짜 같은가? 저, 어설픈 거 티나요?”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 영화 좋아해요? 이번에 개봉한 앤드 게임 봤어요?”
“아뇨. 영화볼 시간도 없는데요.”
앤드 게임? 그 히어로들 나오는 영화를 말하는가 보다.
“하! 나 그거 보려고 했는데 개짜증나는 게 뭔지 알아요? 제가 심심할 때마다 인터넷 하거든요? 근데…. 아오, 증말. 거기서 댓글에 앤드 게임 스포하는 삐리리들 때문에 결말 알게 돼서, 휴우! 생각만 해도 진짜.”
“하하, 스포에 당했군요.”
“그런 애들 진짜 하나하나 벌금이라도 물게 해야 돼요!”
“근데, 남자친구 있어요?”
“없어요.
”
“그렇구나.”
그냥 물어봤다.
바텐더들에게 남친 있냐고 물으면 있다고 할 애들은 별로 없다.
골키퍼 있는 바텐더에게 빠질 손님이란 없으니까.
그래서 죄다 남친있는 바텐더들도 없는 척 하고 손님을 단골로 만드는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강 작가가 글에서 말했다.
그때. 내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어서오세요, 오! 아저씨!”
바텐더가 반기며 바라본 그곳을 나 또한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 두 눈이 반가운 맘에 커졌다.
강춘식! 그가 드디어 온 것이었다.
“오, 혜진이? 다른 애들은 출근 안 했어?”
“한명은 잠깐 뭐 사러 갔고, 소연 누나는 오늘 아파서 쉰대요.”
“그래?”
웃으며 앉는 춘식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반갑게가 아니라 멋쩍게 웃는 그였다.
“처음 뵙는 분이네? 안녕하세요?”
“네 안녕, 아….”
순간 나는 아차했다.
그러고보니 저번 바에서 춘식과 길게 나눈 대화는 시간의 회귀로 인해 없던 일이 된 셈이지.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그와 친해져야겠지.
난 일어서서 인사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독자란 명분으로 오늘 그에게 답을 또다시 얻어가야 하니까.
“하하하하! 진짜 우리 독자님 귀엽네, 귀여워.”
춘식이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팍! 내리친다.
난 세정이와 내 이야기를 좀 털어놨다. 물론! 딱 하나 숨긴 건 있다.
세정이와 내가 잤다는 이야긴 뺐다. 그 일은 나와 세정이만의 귀중한 추억이다. 다른 이에게 뱉는 것은 세정에게 실례라 생각하니까.
“캬아~ 오늘 잭다니엘이 목에 술술 감기네?”
춘식. 오늘도 기분이 좋은 듯 하다.
우린 같이 양주 하나를 시켜놓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게 조언을 얻을 시간이다.
아, 근데 아까부터 내 이야기를 엿듣던 바텐더도 실실 쪼개는 것이 좀 쑥스럽다. 내가 좀 머저리 같다고 생각하는 눈빛이다. 뭐, 이해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러니까.
“독자님!”
날 부르는 춘식의 눈이 진해진다.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네. 여자가 갑작스럽다고 고민하고 있고. 독자님은 그녀를 배려한다는 명목에 쑥, 들어가지 않고 느릿느릿 뭐, 그런 거잖아? 맞죠? 독자님?”
“그렇죠.”
“큭큭큭큭….”
뭐가 그리 웃긴지 춘식은 배를 잡고 낄낄, 거리며 술잔을 목에 털어넣는다.
눈동자를 돌려 바텐더를 보니.
입을 가리고 킥킥, 웃고 있다.
그 마음 이해한다. 나도 덩달아 그냥 웃었다. 쑥쓰러운데 뭐, 남이 웃는다고 어쩌겠어.
남 시선 의식하면 좋은 건 없다. 나만 피곤해진다. 대충 남이 웃으면 웃는가 보다 하면 내가 편하다.
“여자들은 자신을 배려하는 남자 싫어하는 여자 없지. 다만. 다아만! 다만! 이건 명심해야 해.”
“어떤 거요?”
“배려와 답답한 건 다르다는 거!”
춘식은 끝을 강조, 강조! 하며 이쑤시개로 사과를 콕, 찍어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고 다시 입을 연다.
“여자가 관계에 대해 갑작스럽다고 하고 고민하는 건, 그 여자가 팅기고 있거나 아님 진짜 갑작스럽게 여겨서 이거나 둘 중 하나야. 그때 남자가 해야될 것은?”
“천천히 다가가야……”
“역시. 여억시…. 역시! 우리 독자님 다우셔, 하하.”
춘식이 쓰게 웃는다.
내 대답이 틀렸나 보다. 맞은 편에 선 바텐더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내가 진짜 틀린 게 맞나 보다.
“천천히 다가간다라. 그러다가 여자 놓치는 게 남자일세. 거기서 남자가 해야할 건 하나. 여자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게 설레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지.”
“음….”
“사실, 이렇게 백날 말을 해줘봐야 못 알아들어. 어쨌든, 저쨌든, 요쨌든! 연애는 해볼수록 느는 법이고, 여자를 알게 되는 법이니까.”
“그럼, 제가 남자답게 확, 비집고 그녀에게 들이대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음…. 그것보단.”
춘식이 갸웃하며 물었다.
“근데, 아까부터 계속 그렇게 묻는데. 정말 독자님이 그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뭐지? 짝사랑, 첫사랑이 애틋한 건 이해하는데. 남자는 몇 번 물어보고 안 되면 그 여자에게 마음을 접는 게 속 편한데.”
“그러게요. 근데 그게 쉽진 않네요, 그만큼 제가 좋아하고 있나 봅니다. 작가님. 저는 궁금합니다, 전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애틋해서 물었다. 콕, 찍어 물어버리고 말았다. 독자란 명분으로…….
저번부터 참 나한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답을 주는 그에게 오늘 하루 술값 정도는 내줄 수 있다.
받은 게 있으면 돌려주는 것이 있어야 사람이니까.
은혜든, 그게 악의든.
“독자님…. 지금 내가 하는 내 말 잘들어.”
그가 곧 답을 알려줄 듯 진중히 말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