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6화
신궁을 위해서
‘활.’
시운이 생각한 보조 무기는 활이었다.
시력 13.0이라는 눈과 인간보단 짐승에 가깝단 표현이 제격인 어깨.
‘이 두 신체를 요긴하게 쓰기에는 활이 제격이란 말이지.’
그러나.
활은커녕 활시위도 당겨본 적이 없는 시운. 그의 뇌리로 그녀가 떠올랐다.
‘강혜령.’
양궁 메달리스트. 일명 신궁이라 불리는 그녀. 그녀와 시운은 말도 트고 꽤 가까워진 상태였다.
‘강혜령에게 활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겠다.’
주머니춤에 넣어둔 폰을 꺼내 들었다.
-부재중 전화 1통.
강혜령.
‘부재중 전화? 강혜령?’
의외였다. 마침 그녀에게 연락 한통 넣어볼까 생각했는데 부재중 전화에 그녀의 이름이 떠있다니.
‘누구에게 먼저 연락할 성격이 아닐텐데.’
무엇보다 그녀의 성격을 짐작하고 있는 시운은 꽤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좀 울린 후에.
-여, 여보세요.
그녀답지 않게 더듬으며 전화를 받는다.
“어, 누나. 전화했었네? 이제 확인했어.”
-아, 그거 잘못 눌렀다. 손가락이 삐긋해서 잘못 누른 거라고.
“그래? 그보다 내일 시간 돼?”
-내일?
그녀가 꽤 놀라며 반문한다. 느닷없이 시간 있냐고 물으니 좀 놀랄만도 하다.
-왜? 너 나한테 관심 있어서 보자고 하는 건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누나한테 활 쏘는 법 좀 배우고 싶어서.”
-활? 활은 왜?
“검만 쓰려니 지겹기도 하고 다른 무기도 다뤄볼 겸 하다가 활 한 번 쏴보고 싶어서.”
대충 둘러댔다.
혜령의 성격을 잘 아는 시운.
견제하고, 항상 남들보다 자신이 뛰어나야 속이 풀리는 그녀에게 굳이 여지를 줄 필요는 없었다.
-그러냐. 내일?
“응, 내일.”
-그, 그래. 뭐, 내일 보자.
이상하다? 보통 그녀라면 한 번은 탁, 쏘면서 “내가 널 왜 만나?”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내일 내가 연락할게. 뭐하고 있어?”
-뭐하긴 나, 그냥 집에서…. 아, 근데 남 사생활은 왜 캐묻는데.
“그냥 궁금해서. 그리고 우리가 남이냐? 엄연히 이제 동료라 해도 과언은 아니잖아.”
-동료는 무슨! 끊어라. 내일 연락하던지 해.
뚝.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어쨌든 주위에 레인저 헌터가 있으니 참 이럴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단 게 다행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보통 레인저 헌터가 아니지.’
그녀는 타 레인저 계열을 압도하는 증명된 최고의 사수였으니까.
하루가 지나고 시운 위로 평온하고 광활한 하늘이 떠있다.
그 밑으로는 잔디밭이 훤히 깔려있는 이곳은 양궁장이다.
시운은 혜령을 만났고, 그녀가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대충 각궁을 다루는 요령은 배운 상태다.
“야, 잘 봐. 이렇게 줌통을 줌손 위에 감싸고 화살을 올려 끼워, 그리고 이, 오른손. 오른손으로 활 시위를 당겨! 그리고 왼손은 쭉 뻗어. 그리고 시위를 놓으면.”
탕!
파파파-
혜령의 각궁에서 날아간 화살은 유연한 궤도를 그리며 300m 전방의 과녁에 탁! 꽂혔다.
“와!”
시운은 탄성을 내질렀다.
300m 전방의 과녁 정중앙에 맞았음을 시운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혜령은 가늘게 눈을 뜨며 먼 과녁을 바라봤다.
“중앙에 맞았나? 아무튼 대충 쐈는데 여기선 희미하게 잘 안 보이지만.”
“정중앙에 맞았어. 노란 원 안의 빨간 정 중앙에 말이야.”
“뭐? 네가 어떻게 알아? 보이지도 않는데.”
“내 눈에는 보여. 내 시력은 남들하고 다르니까.”
“여기서 저 과녁에 박힌 화살이 보인다고?”
시운을 바라보는 혜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녀석. 소문으로는 시력이 남들의 몇 배라고 들었는데.’
혜령은 그 소문을 믿기 않았었다.
“아무튼! 내가 알려준대로 한 번 쏴봐. 야! 너, 지금 나한테 일대일로 사수 수업 받는 거 영광으로 생각해라?”
“당연하지.”
우리나라 최고의 활사수에게 받는 일대일 맞춤 과외. 시운에게는 값진 것이었다.
시운은 두 발에 자세를 잡고 각궁을 앞으로 겨눴다.
“왼발, 오른발 바뀌었잖아! 그리고 그립!”
혜령이 다가와 시운의 왼손을 톡톡, 두드렸다.
“그립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활을 지탱하는 왼손은 그립의 중심을 정확하게 잡아 밀어야 한다고.”
“넵! 알겠습니다, 스승님.”
“야, 야. 조심해라. 너 딱 폼 보니까 네가 쏜 화살이 네 팔에 박힐 것 같은 예감이다?”
혜령이 싸늘한 농담을 웃지도 않고 던진다.
‘이제 당겨보자.’
활시위줄을 팽팽히 당겼다.
“야! 드로윙 똑바로 하라니까.”
혜령이 으르렁! 거렸다. 드로윙은 활을 서서히 느낌을 가지고 천천히 당겨야 한다고 혜령은 말했다.
“앵커 똑바로 하라니까! 아오, 속 터지네.”
혜령이 팔짱을 끼고 호랑이 선생처럼 지적한다. 활을 처음 쏴보는 시운인지라, 엉성한 건 당연했다.
그 마저도 못 봐주겠단 혜령이였다.
시운은 집중했다.
‘앵커 시에는 활의 당기는 손을 턱 아래나, 입술 끝에 고정하면서.’
시운의 뇌리로 방금 혜령이 활을 쏘았던 동작들이 세세히 파파팍! 빠르게 지나갔다. 이 또한 시운의 눈에 의한 능력이었다.
“야, 야! 야!! 팔로우 스로우 신경 써! 발사하고 난 후의 자세를 신경 쓰란 말이야. 일단 당겨봐.”
파앙!
“하아….”
순간. 당긴 활시위줄과 함께 날아간 화살은 애먼 코앞 바닥에 꽂혀 뒹굴었다.
“당기고 쏘기 직전까지 호흡을 멈추란 말이야. 너 군대에서 총 안 쏴봤냐? 그거랑 비슷해. 다시 해봐.”
“알았어, 알았어.”
시운은 잔뜩 성내는 혜령 덕에 위축되려 했다.
‘다시.’
자세를 잡았다.
각궁을 다시 들었다.
각궁. 사거리는 350미터까지 날아가며, 파괴력 또한 우수한 전통 활.
‘줌피에 화살을 넣고.’
시위줄 즉, 현을 당긴 뒤에 손을 입술에 고정하자 시위줄이 입술을 짓뭉갰다.
“잠시! 그대로. 호흡 멈추고!”
혜령은 매의 눈으로 시운을 지켜봤다. 그런 그녀의 눈빛이 진해졌다.
‘이 녀석 십분 정도 설명을 했는데 자세가 그럴싸 하잖아? 보통 활 용어만 외우는 시간도 십분은 넘기는데.’
혜령이 상념에 잠긴 그 순간.
시운의 눈동자가 스르르, 움직였다.
그의 눈으로.
저 잔디밭의 작은 일렁임. 그 뒤 너머로 하얀 판의 과녁. 그 과녁의 색색에 긁힌 작은 자국마저 눈에 들어왔다.
‘간다.’
탕! 손을 놓았다.
팍! -파르르.
날아간 화살을 따라 혜령의 고개가 돌아갔다.
“뭐, 뭐야? 과녁에 맞은 것 같은데….”
혜령도 믿기지 않는 듯 놀라워 했다. 아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활을 잡은지 십분 된 녀석이 저 먼, 그러니까 300m 쯤 떨어진 과녁 방향으로 화살을 쏘우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파파파팟!
“야, 야! 천천히 쏘라니………”
혜령의 말은 그대로 멎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손이 움직여 화살통에서 화살을 미친놈처럼 뽑아 이윽고 쏜 화살은 무려 네 발.
근데 그 네 발이 모두 과녁을 향했고, 과녁에 꽂힌 것 같다.
“자, 잠깐. 야! 잠깐만.”
혜령이 시운의 팔을 잡고 내려 활을 아래로 향하게 한 뒤에, 과녁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툭.
과녁 앞에 도착한 혜령의 눈. 아니 입까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뭐……뭐야? 어떻게 이래? 말이 돼?’
화살 다섯 발은 모두 과녁의 중앙에 나란히 쑤셔박혀 있었으니까.
식은 낯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때? 다 맞았지?!”
저 멀리서 고함을 지르는 시운은 이미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있단 듯 했다.
시운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이 서늘해졌다.
‘저 자식. 대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거리에서 이 정도의 적중력을 기르려면 오랜 땀과 세월이 흘러야 했다.
‘믿을 수가 없다. 아니, 운이겠지.’
운일 리가 없었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거였기 때문에.
다시 시운 옆으로 도착한 혜령은 시운에게 화살을 더 쏴 보라 했고, 시운의 손에 날아간 화살은 여섯 발.
다시 과녁으로 달려간 혜령은 하체가 털썩 풀리는 느낌에 휘청였다.
‘미, 미친……. 이건 말도 안 돼.’
경악스런 눈으로 고개를 돌려 시운을 바라봤다.
녀석은 태연한 얼굴로 각궁 이곳저곳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있다.
터덜터덜- 힘 빠진 걸음으로 시운에게 다가갔다.
“야.”
“응?”
“네가 쏜 화살들 말이야. 다 과녁에 꽂혔어. 그것도 정중앙에….”
“알아, 여기서도 보여.”
“뭐? ‘알아’ 라고? 넌 지금 이 상황이 안 놀랍냐.”
“내가 사수에 소질이 있나 보지.”
“사, 사수에 소질이 있나보지 라고?”
혜령은 녀석의 아무 놀람없는 이 반응에 더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저 거리만큼의 과녁을 명중시키는 데 피땀어린 세월을 들였다.
‘근데 이 놈은 무슨 십분 만에!’
평소에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앞에 있는 연하남에게 들고 있다.
언제나 남보다 이 재능만큼은 뛰어나다 생각했고, 그런 혜령의 재능을 선수들은 질투 했다.
‘내가 이런 연하놈에게 이딴 질투를 하고 있다고? 그것도 내 분야에서?’
아드득! 혜령의 가지런한 치아가 갈렸다.
“배고프네. 이만 가자. 밥은 내가 살게, 과외 받은 기념으로.”
“……….”
혜령은 말 없이 시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런 시운과 혜령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바로, 활에 취미들린 동호회 회원들이었다.
“강혜령이다! 저 사람이 이 양궁장에도 자주 오나봐요?”
“그보다 방금 저 남자 활 쏘는 거 봤어요? 선수에요? 얼굴이 낯선데.”
“저 잘생긴 남자요? 왜요?”
“쭉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방금 강혜령 씨한테 활 교습 받는 것 같았는데 저 남자가 곧바로 화살을 쐈거든요? 근데 그 화살이 다 저 먼~ 과녁에 날아가 꽂히는 것 같던데요.”
“강혜령이 새로 키우고 있는 선수인가 보죠.”
“혜령 씨가 그럴 시간이 있을까? 헌터가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음? 그럼 저 남자는 누구지.”
“애인인가 보죠, 메달리스트 출신에 헌터란 직업까지 갖고 있는데 옆에 남자가 없겠어요?”
“아, 그렇죠? 하긴.”
동호회 회원들은 그들이 양궁장 밖을 나서는 것까지 관찰하며 수근거렸다.
“군침 도는데…. 이거.”
시운이 침을 삼키며 불판 위에 그을려지고 있는 갈비를 하트 담긴 눈으로 보고 있다.
그런 시운을 혜령은 말없이 바라봤다, 아니 신기하게.
‘이 녀석. 헌터시험도 만점으로 받았다며? 그리고 뭐? 시력은 남들의 몇 배에다가 레벨은 90이고. 하아.’
생각하면 할수록 인정하기 싫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혜령, 자신보다 월등한 재능을 가진 이 연하남이란 놈을.
근데 또 이상한 것이 밉지는 않았다.
“야, 줘봐. 내가 구울게.”
혜령은 고기 굽는 시운의 손에 들린 집게로 손을 뻗자, 시운이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내가 구울게. 우리나라 최고 ‘신궁’ 한테 과외도 받았는데 밥도 사고, 고기도 내가 구워야지.”
“……….”
혜령은 이런 녀석이 자신에게 ‘신궁’이란 말을 꺼내니 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모! 여기 소주 한병 주세요!”
혜령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소주? 갑자기?”
“그냥 속이 타서 한잔 하려는데, 아니꼽냐.”
“그럼, 같이 먹자.”
소주병이 테이블에 도착하자 혜령은 그대로 뚜껑을 따고 소주잔에 소주를 들이붓고 바로 마셨다.
“크으….”
“왜 그렇게 급하게 마셔?”
“몰라도 돼, 너는.”
알콜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쌓인 스트레스가 녹고 전신이 사르르, 풀리는 기분이다.
‘칫. 이시운. 반드시 너보다 월등해 지겠어. 난 누구 밑에 있는 건 못 참거든.’
질투의 감정이 드는 반면에.
녀석이 기분좋게 고기를 씹으며, “와! 맛있네. 살점 녹는다, 녹아!” 라며 중얼거리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낯선 감정도 같이 느껴졌다.
‘아니, 강혜령. 강혜령! 설마 이딴 연하놈에게 호감 따위 느끼고 있는 거 아니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시운이 묻자 팍, 놀란 혜령은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들이킨다.
“왜 자작을 하고 그래? 내가 따라줄게.”
“야, 너도 한잔 받아라. 내가 줄게.”
주르르-
시운의 잔에 담겨지는 소주. 시운은 그 소주잔을 내밀며 혜령과 건배를 하고 들이킨다.
“캬- 술맛 좋은데?”
“ ‘캬’ 하지 마라. 어린 녀석이 술맛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 말에 시운은 웃었다.
‘지금 내 나이는 스물네 살이지만 내 ’진짜‘ 나이는 그대보다 한참 많다고. 술맛이 얼마나 단지, 쓴지 다 아는데.’
“왜 실실 쪼개냐?”
“아니야. 현계에서 그동안 뭐하고 지냈어?”
“뭐하긴, 뭘.. 그냥 지냈지, 짜샤….”
혜령의 낯빛이 소침해졌다. 현계에서 사실 한 일이라곤 없다.
처방받은 약물을 먹고, 사람에 대해 반감이 있어서 그냥 혼자 지냈다. 혼자 틀어박혀 지냈다고 대답하기 부끄러웠다.
“야, 이시운.”
“응?”
시운을 부르는 혜령의 낯빛이 사뭇 진지했다.
“나, 궁금한게 있어. 내 성격상 궁금한 건 바로 바로 물어봐야 되거든? 그래서 말인데.. 뭐 하나만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