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08화 (107/278)

제 108화

예쁜 동료 둘 앞 여신 하나 (2)

세정은 여기서 말하기는 좀 그렇단 눈치였다.

“잠깐만. 나 친구하고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시운은 세정이를 데리고 룸 밖으로 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

“쟤한테 저런 친구도 있나. 인기 많겠네, 더럽게 반반하게 생겨갖고는….”

혜령이 투덜거리듯 중얼거렸다. 연희의 두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할 이야기? 친구라고?’

방금 등장했던 여성은 같은 여자가 봐도 눈이 열릴 정도로 예뻤다.

저렇게 이쁜 여자가 옆에 있다면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남자는 흔들리지 않을까?

‘아니. 방금 그 여자가 나보단 이쁠지 몰라도, 매력은 내가 더…!’

얼굴이 다가 아닐꺼라 애써 위안한다. 게다가 연희는 이상적인 헌터란 직업을 갖고 있다.

‘방금 그 예쁜 여자보다 내가 더 매력있고 능력도 내가 꿀릴 일은 없겠지.’

그녀의 눈에 질투가 서렸다.

“……….”

한편. 말이 없던 유석은 조용히 혜령과 연희를 번갈아봤다.

‘이 두 명. 이시운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유석이 보기에도 앞에 앉은 둘은 매력적이었다.

한명은 살살 녹는 애교로 사람의 경계를 풀어버리는 둥그런 성격에, 아담한 체구. 귀엽고 매력적인 눈을 가졌고,

또 한명은 도도하지만 잘 빠진 몸매에, 혼혈인처럼 새하얀 얼굴에 큰 눈. 무표정한 얼굴에서 무언가 색기스런 느낌이 물씬 베어있다.

‘괴랄한 회귀자 이시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을 떠나서 이성들에게도 매력적인 남자.’

그와 친해지기로 다짐했다.

그런 유석도 내심 시운이 부러웠다.

헌터로서의 충만을 넘쳐 경악스러울 정도의 자질과 항상 이목을 집중시키는 매력을 가진 그였기에.

“휴.”

시운이 자리를 비우자 흥미를 잃은 듯 혜령이 숨을 뱉는다.

‘내가 저런 연하자식을 좋아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근데 왜 방금 그 이쁘장한 것을 보고 실실 쪼개는 이시운을 보며 왜 짜증이 솟구쳤던 거지?’

혜령은 갈등했다.

이런 감정이 서린 갈등은 참 오랜만이다.

‘미쳤지, 미쳤어. 의사가 말했잖아. 이시운과 가깝게 지내보라고. 그게 내 만성화된 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혜령은 애써 합리화 했다.

싹트고 있는 본심을 억지로 부정하면서.

말을 마친 세정의 또랑한 두 눈이 시운의 눈을 향하고 있다.

“……그래?”

세정에게 말을 들은 시운은 힘이 빠지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천세정의 경영진 취임식이 앞당겨 졌다고 한다.

취임식을 치룬 후, 바빠질 것이라서 이제 시운과 자주 보기 힘들 거란 얘기였다.

‘임원들은 사원들과 다르게 할 일이 많을 테니까.’

음식점 앞에서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바람이 불어 세정의 머리칼이 좌측으로 휘날리며, 드러난 고운 턱선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제 얼굴은 자주 못 보더라도 연락이라도 자주 하자. 그래 줄 수는 있지?”

시운이 물었다.

세정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시운에게 그것이 미안한 듯 했다.

“그럼, 됐어.”

큰 키에 힐까지 신은 세정의 눈높이는 시운과 딱 맞았다.

그런 시운의 맑은 눈을 들여다본 세정은 입술 끝을 깨물었다.

‘시운아. 항상 귀엽게만 보였던 네가 이제는 남자로 조금은 보이는 것 같아. 근데, 아직 내 맘에 확신이 서질 않아. 남자로 보이다가도 네가 친구로도 보이고.’

초등학교 그 꼬맹이 시절 때부터 봐왔던 이시운인지라 녀석에 대해 아주 잘 안다. 친구로 지낸 세월만 십년은 되었을 거다.

그런 그녀에게 남자로 다가온 이시운이 아직 혼란스러운 건 당연했다.

‘너한테 상처주고 싶지 않아, 휴! 천세정. 너 답지 않게 침울해 있지 말고 너답게 굴자. 힘 넘치게!’

세정이 손을 올려 시운의 머리가 헝클어지듯 세게 쓰다듬었다.

“에구, 귀여운 짜식. 누나 이제 많이 못 본다니까 입술 삐죽 내민 것 봐, 히히.”

“야, 야. 내가 무슨 강아지냐. 머리를 왜 그렇게 쓰다듬어?”

좋으면서 시운은 투덜거렸고 세정은 히죽 웃으며 더 세게 그의 머리가 산발이 되도록 쓰다듬는다.

“이뻐. 누나가 밥 잘 챙겨먹으라고 한말 잘 지켜주고.”

“아! 그만해. 왁스 바른 머리 다 헝클어질라.”

“그만하긴? 누나가 예뻐서 상 주는데 가만히 안 있어?”

“참 나,누나는 무슨.”

킥킥, 거리던 세정을 마주본 시운의 눈이 지그시 변한다.

‘결국, 대기업 임원의 길로 가는 구나. 나 또한 네가 바빠질 그 기간동안 멈춤 없이 성장할 테니까. 각자 서로의 길에서 탄탄하게 성과를 이룬 후 다시 만났을 때. 그때 네게 사내 냄새 나는 모습 보여줄게.’

잠시. 시운의 뇌리로 전생의 기억이 스쳐간다.

찌질함의 끝판왕이었던 백수 이시운이 세정에게 임신했다는 통보를 받고 좌절을 쏟고.

가슴에 욱여 넣었던 고백을 꺼낼 수 밖에 없던 그 날의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난, 전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고, 내 내면도 그때보다 단단해 졌으니까.’

둘은 각자의 생각을 머리에 그리며 바람 부는 거리에서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며 침묵의 교감을 나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한다고 했다.

그런 한이 질투에 서리면 여자의 눈에서는 살기가 뿜어지고,

그런 두 여자의 질투도 녹일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매력이다.

지금 이 자리는 세정이의 붙임성이 진가를 발휘했고, 그 위로 술기운까지 더해져 날선 분위기는 환기 되어 쾌활해져 있었다.

“세정 씨. 진짜 성격 좋다아.”

연희가 웃으며 술잔을 내밀자 세정이가 히죽 웃으며 잔을 쳐준다.

“성격 좋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지. 아~ 사실 나도 오늘 기분 좀 꿀꿀했거든. 근데 시운이 덕분에 좋은 사람들 만나서 그 기분이 풀어지는 것 같아요, 언니!”

세정이가 혜령을 부르자 취기에 반쯤 정신을 놓은 혜령이 내민 술잔을 흔든다.

“부르지 말고 한잔 줘봐. 오랜만에 소주 먹으니까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천천히 좀 마셔요, 예쁜 얼굴 완전히 빨개졌잖아요.”

세정의 말에 혜령이 풀린 눈으로 킥킥, 웃는다.

예쁘단 말에 어쨌든 좋아하지 않을 여자는 없는 것 같다.

“네가 쫌 보는 눈은 있네, 나 많이 벌개졌냐. 뭐, 어때? 나 숙취 없어. 그니까 한잔 따라봐. 오늘 처음보는 아가씨.”

“아이, 참. 그러면 반만 줄게요.”

세정이가 혜령의 소주잔을 반만 채워주고 술병을 거두자 혜령은 내민 손을 거두지 않는다.

“아, 아! 아!! 반 더 따라줘봐. 소주는 무조건 한잔. 그리고 원샷이지. 빨리.”

“안 돼요, 언니 지금 좀 취했어요.”

“안 되긴 뭐가 흐으….”

혜령이 고개를 비틀거리다가 테이블에 쾅! 머리를 박는다.

“어머!”

“괘, 괜찮아요?”

“누나, 괜찮아?”

“아흐…. 좀 취하긴 했나보네. 오케이, 그럼 한 텀만 쉰다.”

짝짝짝!

세정이가 웃으며 박수를 세 번 쳤다.

“역시 술 조절 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주당이죠!”

“오, 너어…. 뭘 좀 안다?”

혜령이가 세정을 보며 처음으로 웃어준다.

“언니 웃었네요? 언니 첫 인상이 막, 차도녀 같은 느낌이었는데 웃으니까 반전 매력이네. 자주 웃어요, 웃는 거 보기 넘 좋아요.”

세정의 칭찬에 혜령이 반색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래? 하긴, 내가 쫌 예쁘긴 하지, 근데 네가 더 예쁜데?”

“하하하! 감사한데, 언니가 더 예뻐요.”

“그건 인정.”

혜령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테이블에 머리를 또 쾅! 박는다.

“언니! 조심 좀 해요.”

“하하하…. 많이 취하셨나 보네.”

그런 광경을 보던 시운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좋은 내 사람들과 이렇게 술자리 갖는 게 얼마만이냐.’

오늘 여기서 또 한가지 느낀다.

소소한 술자리라도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그 자체로 값진 것이란 걸.

‘어쩌면 평생 보게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근데, 우리 시운이 거기서 잘 지내요?”

세정이가 연희와 유석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아주~ 잘 지내지.”

연희가 운을 떼자 세정이가 두 손을 턱에 바쳐 연희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어떻게?”

“자격시험 만점으로 받고 와서 탐사시험이란 곳에서 사람들 다 죽을 뻔한 것도 시운이가 움직여서 그 사람들 다 살려냈고……”

“와아? 정말?”

연희의 말에 눈이 커진 세정이가 시운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에 쑥쓰러운 듯 시운은 멋쩍게 웃었다.

“이야, 우리 시운이 거기서 대단하긴 한가봐?”

“대단하긴, 뭘.”

연희가 시운의 얼굴에 눈을 두며 입을 다시 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야. 도서관 3층에서 뛰어내려서 사람들 잡아먹는 괴물도 혼자 때려잡고, 서바이벌 테스트라는 시험이 있거든? 거기서도 1등으로 우승해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한테 인정도 받고.”

“어머, 진짜? 와아….”

세정은 신기한 눈으로 시운이를 바라봤다.

“그만해, 연희야.”

쑥쓰러워서 저지한 시운에게 연희는 퉁명스런 눈으로 찡그리고 말을 더 잇는다.

“그만하긴 뭘 그만해? 팩트인데. 너 잘난 거는 우리가 다 알아. 그것 뿐만이 아니라 세정씨. 얘가 이번에 합격한 애들 중에 이거에요.”

연희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그 말에 유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굵은 입술을 벌린다.

“이시운 씨는 협회 뿐만이 아니라 같은 등급의 헌터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와, 정말 그 정도에요?”

세정이가 다시 고개를 돌려 시운을 바라봤다.

‘우리 운이가 헌터 일을 진짜 잘하고 있나 보구나.’

세정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세정도 아버지에게 흘러가는 말로 들었다. 이시운이라는 신입이 요즘 꽤나 협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고.

어쩌면 역대급 헌터가 이번에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기특한 짜식. 멋지네. 거기서는 괴물도 있고, 별에 별 사람들이 많다고 들어서 걱정만 했는데.’

손나로 턱을 바치고 시운을 대견스레 보는 시정의 시선이 시운도 썩 나쁘진 않았다.

‘좀 부끄럽긴 하네.’

그때. 알콜에 잠식 돼 잠시 조용하던 혜령이 끼어들었다.

“그래, 맞어어…. 저 녀석. 진짜 존나 부러울 정도로 대단한 짓거리 많이 하고 다니긴 해.”

“대단한 짓거리요?”

세정이 반문하자 혜령이가 세정을 똑바로 본다.

“저 자식은 지 혼자 다 해 쳐먹어. 1등도 지가 다 해먹고. 오크라는 덩치 큰 공룡같은 놈들도 혼자 다 불태워 죽여버리고…. 참 미친놈스러울 정도라고.”

“맞습니다, 보고 있던 저도 놀랐었습니다.”

유석까지 합세해 말에 힘을 붙여줬다.

“오오…. 그렇구나, 울 시운이가 그렇단 말이지?”

세정이가 왼팔로 시운의 목을 감아 어깨동무를 한다.

“와, 동료 분들한테도 인정 받고. 울 시운이 오늘 쫌 멋있어 보인다?”

“멋있긴.”

“아아, 나 이제 술 줘!”

혜령이 급하게 술잔을 내밀자 유석이 술병을 드려는데 연희가 유석의 팔을 살포시 밀어낸다.

“언니 술 더 마시게 하면 안 돼요.”

“아, 예.”

“아니, 왜 말리냐고. 나 주량이 소주 열병이라고. 어이, 거기 시커멓고 말 없는 남자. 주던 거 마저 줘요.”

“언니! 그만 마시라니까, 시크한 줄 알았더니 주사 있었네?”

“주사는 무슨…. 줘 보라니까안.”

그 인간적인 모습에 굳어있던 유석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어라? 웃었네? 방금 웃은 거 맞지?”

홍안처럼 붉은 혜령이 유석을 삿대질 하며 말하자 유석은 웃던 입꼬리를 내렸다.

“유석 씨 방금 웃는 거 의외였어요. 뭔가 보기 좋았다고 할까? 자주 웃어요. 웃는다고 누가 뭐라 안 해요.”

연희가 밝은 얼굴로 말하자 유석은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깐다.

“예.”

“ ‘예’는 무슨. 진짜 저거 군인 아니야?”

“언니. 유석 씨보고 ‘저거’ 라니.”

“그럼 뭐라고 불러? 앙?”

“유석 씨 라고 불러야지.”

혜령과 연희가 티격태격 하는 그림에서 유석은 ‘정’ 이라는 걸 느꼈다.

‘이런 게 유대 관계란 거구나.’

유석에게는, 아직 사람이 익숙하지가 않다. 잘 모르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말이다.

그때. 폰이 진동하는 소리에 모든 눈이 세정의 엉덩이 뒤편에 놓인 가방에 향했다.

‘저거 명품 가방 아니야? 에르메스?’

‘이야, 얼굴도 곱상한 게 돈 좀 많은가 보네.’

전화를 받은 세정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툭.

전화를 끊고 세정은 힘빠진 목소리를 흘렸다.

“저는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처음 만났지만, 이 자리 너무 즐거웠어요. 우리 시운이 잘 부탁해요. 착하구 진짜 여린 애에요.”

“세정 씨. 벌써 가?”

“가냐. 그래, 말 좀 통해서 나도 즐거웠다. 밤길 조심해라. 괜히 어두운 골목길 타다가 남자한테 납치당하지 말고.”

“아오, 언니! 말이 씨가 된다고.”

연희가 혜령에게 은총을 보냈다.

“좋은 시간 돼세요.”

“아, 네.”

세정은 유석에게도 눈길을 주고 인사하며 한명, 한명 챙기는 배려를 보인다.

룸 밖으로 나간 세정이가 가방에서 지갑을 열었다.

“세정아, 지갑 열지마. 내가 살 거니까.”

“갑자기 끼어들었는데 밥값 정도는 내야지. 저리 가 있어.”

“야, 야. 내가 낼게, 세정아.”

시운은 주머니에서 호다닥! 지갑을 꺼내 체크카드를 종업원에 내밀었지만, 이미 선수 쳐서 카드를 내민 것은 세정이었다.

“네, 계산 다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운은 세정이를 배웅하며 음식점 밖까지 나갔다.

딸칵- 딸칵-

그 앞에 정차된 청녹색 벤틀리 컨티넨탈의 비상등이 번쩍였다.

탁!

차에서 내린 남자가 구두굽 소리를 내며 세정에게 다가왔다.

“이제 가실 시간입니다. 준비하실 게 많으니, 빨리 가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기사님. 잠시만요.”

남자는 목례하고 뒤로 한걸음 물러 선 채 움직임을 멈췄고.

세정은 발그레진 볼가를 두드리며, 시운을 바라봤다.

“몇 잔 안 먹었는데, 얼굴이 벌써 뜨겁네?”

시운은 앞의 세정을 조용히 바라봤다.

‘앞으로 최소 몇 달간은 못 볼텐데.’

시운의 두 손이 세정의 볼가를 덮었다. 순간. 눈이 커진 세정에게 시운이 말했다.

“세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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