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2화
외눈박이 공략
쿵!쿵!
쿵!
대지를 짓이기는 굉음. 그 굉음은 외눈박이가 대지를 한보, 한보 딛는 소리였다.
쿠웅!
“우, 움직인다!”
지켜보던 헌터의 음성이 뾰족하게 솟아올랐다.
“뒤, 뒤로 물러나. 외눈박이는 타겟을 노리면 그 타겟에만 집중하니까 괜찮을 거야.”
“저, 사람 괜찮을까?”
“몰라, 우리 사정 아니야.”
헌터들은 일제히 뒤로, 더 뒤로 물러난다. 그러면서도 그랜드 협곡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은 저 남자에 대한 한편의 기대심 이었다.
쿵! 쿵! 쿠웅! 쿵! 쿵!
걷던, 외눈박이의 다리에 점점 가속도가 붙어 시운을 쫓았다.
이미. 시운은 뒤로 뛰고 있었다.
신명나게 곡벽 위로 뛰어가는 시운이 뒤를 돌아보자,
흐에에에에!
외눈박이가 뛰어온다. 놈의 턱 밑으로 내린 혓바닥이 들썩일 정도로 빠르게.
놈은 굉장히 빨랐다.
또한, 놈의 표정은 살기스러움 그 자체였다. 네놈을 집까지 쫓아가 죽여버리겠단 독기가 서린 눈이었다.
타! 타! 타! 타!
시운의 뛰는 소리에,
쿵! 쿠웅! 쿵! 쿠우우웅!
놈이 뛰는 소리가 뒤섞였다.
‘질주.’
뛰던 시운의 다리를 감싼 오라는 시운의 속력을 높여준다.
쿠어어어!
놈의 열린 아가리에서 흐른 괴성과 함께 쫓는 놈의 속도도 붙었다.
‘겁나게 빠르네...’
악을 품고 쫓아오는 놈을 보니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그렇다면.’
일단 곡벽 위까지 올라야 한다.
둘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요괴화.”
입술을 움직이며 뛰는 시운에게서 튀어나온 여우는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카앙?”
여기가 어디냐는 눈빛.
“시간을 좀만 벌어줘!! 여우야, 뒤!!”
“무슨 개소리……”
꼬리를 팔랑거리는 새끼 여우는 뒤에서 뿜어나는 천둥소리에 돌아본다.
쿠룩! 쿠루루루룩!
인간 형태의 괴물이 득달같이 돌진해오는 것을 보자 여우가 앞발을 곤두세우고 으르렁! 거렸다.
“카아앙! 눈 하나 달린 요괴놈아. 설마 날 공격하러 그리 미친놈처럼 뛰어오는 건 아니겠지? 난 평범한 여우가 아니……”
크엑! 요괴가 앞을 막는 여우가 거슬린다는 듯 팔을 휘두르자, 깨갱! 여우의 안면이 뭉개지며 저편으로 날아가 뒹군다.
“카아앙….”
엄청난 통증에 눈도 못 뜨고, 쓰러져 헐떡이던 여우 위로, 부웅! 외눈박이의 두 다리가 보인다. 여우를 뛰어넘고, 시운만 보며 달려간다.
“미안하다! 어쩔 수 없었다!”
“케응….”
여우의 깨져가는 시야에서 전력질주하며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는 시운의 형상이 보였다.
“카릉. 카르릉….”
감히 눈 하나 달린 하등한 놈이 위대한 각성맹인을 호위하는 자신에게 이런 수모를 주다니! 여우는 몸을 일으키고, 꼬리를 삐쭉! 칼처럼 앞으로 세우고, 외눈박이를 쫓았다.
“카아앙! 이 놈아!! 받은 것은 돌려주겠다!!”
한편. 헌터들은 이미 커진 눈으로 숨을 죽인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무슨 상황이지? 저 여우는 뭐야? 저것도 환수야?”
“..!”
헌터 하나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전투방식은 멋있기 보단 상당히 괴상했다.
분명 강하긴, 강한 것 같은데. 남자는 곡벽까지 달려가고, 그 뒤를 외눈박이가 쫓고 있으며, 그 뒤는 또 강아지만한 여우가 쫓고 있다.
“저 은색 여우가 저 남자의 환수인거지? 환수도 주인 닮아서,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여우는 새끼 고양이만한 주제에, 죽음이 무섭지 않은지 외눈박이를 죽일 듯 쫓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붙었다!”
대검을 땅에 지탱한 채, 선 전사가 가리켰다.
“저 쥐똥만한 여우가 외눈박이를 공격했어! 봤어?”
그들의 눈 앞으로. 여우의 꼬리가 창처럼 뻗어나가, 외눈박이의 등가를 쑤셨고.
균형이 흔들린 외눈박이가 돌아서 여우와 대치한다.
“와.. 겁이 없네…….”
“평범한 여우새끼가 아니야.”
여우가 외눈박이의 주먹질을 요리조리 피하고, 좌우로 움직여 놈을 교란시킨다.
그 틈에 뛰어올라 발톱을 연달아 휘두르고, 부웅! 외눈박이의 발을 다시 피하고.
아득! 외눈박이의 허벅다리를 문다.
“엄청나게 빨라. 쬐그만 게.”
“저 남자는 누구지? 저런 여우도 소환하고, 사용하는 스킬들도 모두 생소해.”
“...여우 죽겠다!”
지켜보던 여성이 손바닥으로 입을 포갰다. 귀여운 여우의 숨이 곧 멎으리라는 걱정심에.
후웅! 후웅!
외눈박이가 다리를 마구 흔들자, 허벅다리에 이를 박은 여우의 몸통이 흔들린다.
“카캉! 캉!”
쿠에에에…!
“다 씹어먹어 주리라, 캉!”
아득! 여우는 아가리에 힘 실어 송곳니를 쑤셔넣었다. 녹색 살점을 파고드는 송곳니. 전신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여우의 집념은 강했으나.
쾅!
내리치는 괴수의 주먹에 여우의 머리통이 아작나며 그대로 땅에 늘어진다.
“깨애앵.”
두개골이 부서지는 통증. 대체! 이 괴수놈은 뭐냐! 대체 이 몸보다 더욱 압도적인 힘을 이렇게도!
콰지직!
“깨에에에……”
날아든 놈의 발바닥이 여우 등을 즈려밟는다. 그 여파로 땅이 패이면서, 땅속에 쑤셔박힌 여우의 신체는 사라진다.
쿠에!
거슬리는 놈 하나를 죽였다. 근데 그놈은? 이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없다. 보이질 않는다.
보이는 것은 먼 발치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겁먹은 인간 네 마리.
“우, 우리를 쳐다보고 있어.”
“쉿! 눈 모조리 내리 깔아.”
“아오, 그니까 내가 그냥 가자고 했잖아! 위험하게 왜 구경하자고 해 가지고.”
헌터들은 턱을 떨어뜨려, 눈을 땅에 내린다.
쿠에.
외눈박이는 헌터들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자신의 시선을 피했단 하나만으로 흥미를 잃었다. 겁쟁이, 나약한 놈들 따위는 도발만 해오지 않는다면 관심 없다.
“휴우…….”
“하,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본인들을 주시하던 놈의 눈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자, 살았다는 한숨을 차차 흘린다.
“엇? 저기 위를 봐!”
헌터가 허공을 찔러 가리킨 손끝으로 모든 헌터들의 고개가 들어져 움직였다.
“고, 곡벽 위로 또?!”
“저, 사람 죽으려고 작정을 한 건가…….”
곡벽 위에서 그 남자는 무릎 하나를 꿇은 채, 지상으로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목이 꺽어질 정도로 고개를 들어야 보이는, 저 엄청난 높이의 곡벽 위에서 말이다.
높은 경사로 이루어진 곡벽 위는 세찬 바람이 연달아 불어온다.
머리칼이 벗겨질 정도의 강풍에도 시운의 눈은 그대로 지상을 향한다.
‘그대로 잠시.’
[아시룡의 숨결 효과가 발동됩니다.]
순간. 전신의 긴장이 녹으며, 불규칙한 호흡이 정상화 된다.
[호수의 평기 효과가 발동됩니다.]
활에 끼운 화살촉에 기운이 붙는다. 그 기운은 화살의 사거리의 한계를 돌파시켜 주는 힘.
겨눈 화살의 촉 방향 그대로 아득한 지상에는 놈이 씩씩거리며 좌우를 마구 헤집고 다니고 있다.
-외눈박이는 고개를 못 든답니다. 그래서 하늘을 잘 못 봐요. 그래서 레인저 분들은 그 옆의 곡벽 위에 조용히 올라가서 놈의 눈을 노리는데. 으음. 문제는 몸을 지탱하기도 힘든 곡벽 위에서 지상까지 거리가 어마어마 해요. 거기다가 놈의 진짜 약점은 큰눈이 아니라, 큰눈 속 요만한 흑자위 랍니다. 그래서 레인저 분들은 신궁급 솜씨가 아니면 엄두내지 않으시는 게…….
어느새 박태석은 시운의 몬스터 공략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었다.
‘놈은 하늘을 보지 않는 돼지처럼 웬만하면 고개를 안 들지.’
파아악!
당겨진 시위줄은 언제라도 화살을 튀어낼 듯 팽팽하게 흔들렸다.
‘호흡을 고르고, 멈춘 뒤.’
시운의 눈으로 놈이 보인다. 그런 놈의 난도된 눈알. 그 눈알 속 작은 흑자위까지도.
팟!
품에서 벗어난 화살은 맹렬히 지상으로 날아가- 콱!
‘정확히 맞았다.’
외눈박이가 부르르 떨더니, 경직 된 채 멈췄다.
팟! 팟! 팟!
콱! 콱. 콱.
이어, 발사한 세 발.
‘모두 명중.’
[외눈박이가 ‘공포’ 상태에 빠졌습니다.]
놈은 배터리가 나간 로봇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여기서 놈을 화살밥으로 만들어주면 끝.’
그런데. 놈이 굳은 몸짓으로 스르르, 고개를 돌린다.
‘쳇, 바보는 아니군. 화살을 쏘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버렸잖아,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 내려가서 조져주는 것.
내딛은 오른발 앞으로, 아찔한 지상이 보인다. 발에 힘을 주자, 부우웅! 지상이 빠르게 커지며 가까워 진다.
‘사합보.’
탁!
추락하여, 대지에 닿기 전, 발을 딛고 도약하여 땅에 탁! 안착한 뒤. 그대로 놈에게 달려갔다.
타타타타!
쿠으으으으….
시끄러운 기척 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돌리는 외눈박이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크루. 크루으으.
놈은 움직이지 못한다. 차악! 경쾌하게 솟은 검신은 그대로 놈의 머리에 떨어져, 턱, 가슴팍, 배, 오금까지 쭉, 베어낸다.
쿠으으으…. 쿡!
푸욱!
검신을 놈의 흑자위에 쑤셔박으려 했으나, 박힌 화살이 장애물이 되어 빗겨나가 옆부분에 박힌다.
푸슉!
검신을 빼내어, 다시 거동하는 칼날 끝에서 검은 오라가 피어나 주위를 검은 불로 뒤삼킨다!
“끄앗!”
“신성의 스킬! 어서!”
“페어리 실드.”
번지는 성화는 헌터들을 뒤감은 보호막에 번져 타올랐다!
“이런 색의 불은 처음 봐.”
“저 남자 보통 남자가 아니야.”
실드 속에 갇힌 헌터들의 시야는 온통 시커먼 불에 의해 어둠 속. 그 자체였다.
사실. 흑화광참에 의한 이 불은 헌터들에게 대미지를 입힐 일은 없었다.
시운은 스킬을 시전하기 전 이미. 외눈박이에게만 타겟팅을 해 놨기 때문.
“불이 꺼지고 있어!”
“휴, 진짜 구경하다가 템 다 떨구고, 죽는 줄 알았네.”
연기마저 걷힌 헌터들의 시야에 잡힌 것은.
쉴새없이 번쩍이는 초록색 검신이었다.
“와아…!”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저 집념.”
“잘하면 저 남자가 외눈박이를 잡을 수도 있겠는데?”
성화가 거쳐간 자리는 온통 그을려 있었고. 검신을 오롯이 받아내는 괴수의 등에는 불꽃이 죽지 않고 타고 있다.
쿠에엑! 쿠엑!
샤악! 샥!
‘정말 어지간히도 죽지 않는군.’
곧. 놈이 움직일 것이었다.
‘야수 베기.’
파샤샥!
놈의 쇄골뼈가 부서진다. 놈의 상체 가죽이 다 벗겨져, 갈비뼈가 보인다. 놈의 피가 흥건히 바닥에 쏟아진다.
푸욱!
검신이 놈의 왼쪽 가슴을 꿰뚫었다. 파악!
검신을 빼내자, 놈의 심장이 칼 끝에 박힌 채 뒤따라 나왔다.
‘심장을 빼내었다. 이제 죽을 때도 됐잖아? 인마!’
카흐윽! 카흑.
용케도 놈은 아직 말을 하고 있다.
설마 이놈 심장이 두 개인가? 좀비라도 이렇게 난도질 당하면 죽는데. 대체 이놈은?
그때. 놈의 턱이 움찔 하더니 콱! 시운의 목을 낚아채 잡았다.
“커, 컥!”
목뼈가 터지는 통증. 시야가 점점 흐릿해진다.
쿠어억.
투두두둑, 폭포수처럼 피를 쏟으면서도 놈은 팔을 들어올린다. 뒤따라 시운의 몸도 허공에 뜬다.
“컥, 커억!”
놈의 손아귀 힘줄이 솟으며! 목은 그 악력에 의해 숨조차 나오질 않는다.
“칵, 커흑. 칵!”
말이 나오질 않고 의식이 흐릿해진다.
챙강! 힘이 풀려 땅에 검을 떨어뜨렸다.
쿠아아아!
놈이 지른 노성. 놈의 입가에서 튄 피가 시운의 얼굴에 투툭, 묻어 흐른다.
“아아…….”
지금 벗어나려면 그것을 써야 한다.
‘야수족의 호출 또는,’
‘영생의 팬던트.’
아니. 그것들을 지금 쓰긴 아깝다.
그 두가지 무기는 블랙 헌터의 접전에서 사용할 것이다.
그때. 시운의 오른팔이 불끈! 거렸고, 콱! 놈의 팔을 내리친 시운의 손날에 놈의 팔힘이 풀린다.
파악! 허공의 발차기는 놈의 가슴에 맞았고. 놈이 뒤로 넘어가면서 쿵! 시운도 땅바닥에 떨어진다.
“끄으으….”
벌떡! 놈은 저 꼴로도 용케 일어나서 다가왔다. 시운은 옆으로 눈을 움직였다. 아클레우스 소드는 손을 뻗기엔 먼곳에 놓여있다.
‘너무 가깝다, 쇼트 단검을!’
퍽!
놈의 주먹질에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과 함께 쿵! 뒤로 날아갔다.
덕분에, 쥐고 있던 쇼트 단검은 놈의 발치에 뒹군다.
터벅. 터벅.
놈이 걸어온다.
“끄으으….”
흐릿한 초점을 잡으려 눈에 힘을 줬다. 점점 희뿌연 놈의 형상이 진해진다.
‘질주.’
곧바로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놈의 양손이 그대로 날아왔다. 놈의 양손은 허공에 닿아 멈췄고. 상체를 숙여 피한 시운은 놈의 등뒤에 있다.
“이제…… 마지막이다.”
크룩?
놈이 뒤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시운의 두 팔이 놈의 가슴팍을 안은 후였고.
‘화룡의 도약.’
쿠어어!
놈을 안은 채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꺅! 같이 죽을 작정인가봐!”
“무슨 꿍꿍이지?”
“저 높이에서 같이 떨어지면 둘 다 죽는 거 아니야? 저 남자 스킬 쓸 마력도 바닥난 것 같은데?”
그들은 생전 처음보는 방식으로 싸우는 남자를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처럼 보고 있었다.
십 미터 위까지 솟아올랐다. 나란히.
쿠아아!
놈도 무서운지 비명을 지른다.
“땅바닥에 헤딩 해봤냐? 사합보!”
턱! 터억!
화룡의 도약의 최대 도약 높이는 십 미터. 사합보 두보를 통해, 4m 더 뛰어, 고도 14m 허공에 날아올랐다.
“자이로드롭 안 타봤지? 태워줄게.”
놈의 몸을 안은 시운은 마지막으로 허공 위로, 발을 차올렸다. 턱! 세보까지 사용 가능한 사합보. 그 마지막 보를 사용했고, 그 발길질을 통해, 엉킨 둘의 방향이 바뀐다.
슈아아아!
외눈박이가 밑. 시운의 그 위에 엎혀 아득한 지상을 향해 낙하한다!
“끄아아앗!”
“떠, 떨어진다!”
“어떡해!!”
모든 헌터들은 곧 펼쳐질 광경을 예상하고 모두 눈을 가렸다.
콰아앙!
몸통이 터지는 소리. 그와 함께 일은 둔중한 굉음.
헌터들은 서서히, 눈을 가린 손바닥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