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1화
충격 (2)
“……뭐라고?”
“회귀자 말입니다. 당신도 회귀자가 뭘 뜻하는지 알 테니까 그게 뭐냐고 되묻진 않겠지만.”
“……뭐?”
머리를, 아니 뒤통수를 묵직한 방망이로 때려맞은 느낌이다.
장유석의 입에서 회귀자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놀랍다. 그저 놀랍지만,
지금 유석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유석의 입에서 ‘회귀자’라는 단어와 ‘당신도 회귀자가 뭘 뜻하는지 알 거다’ 라는 말에 그저 놀랐을 뿐이다.
“……….”
유석은 말없이 시운의 허리춤을 보고 있다.
시운의 눈에는 유석의 오른발이 뒤편으로 가 당장이라도 움직일 기세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과연 내 생각이 맞는지 시험해 봐야겠다.’
너무 놀란 이 상황에서도 시운은 유석의 바디시그널을 캐치하고 그 캐치가 맞는지 시험해야 했다.
찰캉!
시운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드는 순간!
쉭! 유석의 오른 뒷발이 움직여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유석을 겨누던 검신이 땅으로 내려간다.
유석의 눈이 촘촘히 가늘어진다.
“방금 거짓말을 했군.”
시운의 말에 유석의 눈이 커졌다.
“……거짓말이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회귀자라는 단어가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시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거짓말을 한 거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근거를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눈은 내 허리춤에 있는 손과 검집에 수시로 향하고 있었어. 당신은 나를 믿고 말하겠다고 진지하게 말했었지. 근데 당신의 눈은 그게 아니었다. 물론 내가 검을 뽑아들어 당신의 배를 찌를 수도 있단 불안감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그렇지만.
회귀자라고 내뱉던 유석의 동공은 우측으로 자꾸 솟고 있었다.
솟은 동공은 다시금 시운의 검집에 움직이길 반복했고.
이는 무언가를 자꾸 고민하거나 관찰한다는 신호다.
‘……이 뿐만이 아니지. 이 정도는 가설에 불과하니까.’
당장이라도 거리를 벌릴 듯 유석은 하체에 힘의 중심을 놓고 있었고.
회귀자라고 내뱉던 순간!
유석의 눈은 시운의 무기에 내려앉아 있었다.
사람이 털어놓기 힘든 중한 사실을 뱉을 때는, 보통 듣는 상대의 얼굴을 보며 반응을 살피는 게 정석.
근데 이 두 가지의 사실만으로는 유석이 백퍼센트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긴 사실 억지였다.
바디시그널은 관심법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시운은 이 의구심에 대한 것을 확인 해야 했다.
바디시그널이 가장 확실한 신호를 보내는 순간은 바로 상대에게 자신의 의중을 들켰을 때!
‘그렇기에 난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질문을 던젔지.’
그렇게 해서 거짓말 하지 말라! 는 미끼가 담긴 말을 던진 것.
그때.
유석의 동공은 놀라서 확장 되었고, 심장박동은 크게 증가했으며.
준비했던 몸놀림으로 빠르게 시운의 검에서 거리를 벌렸다.
이상했다.
보통 놀라면 사람의 몸은 경직되거나, 변명부터 던진다.
그러나.
유석은 분명 놀란 낯빛을 보이면서도 경직조차 없이 확실하게 움직였던 것.
마치.
위험 부담이 있는 거짓말을 계획해서 던진 사람처럼.
“역시.”
유석의 입이 잠시 열렸다 닫혔다.
“역시라고? 방금 역시라고 했나.”
“당신의 그 눈은 사람의 감정을 살피는 능력까지 있는 것 같군요. 예상은 했습니다.”
“………뭐?”
순간 몸이 차갑게 식듯 굳어버렸다.
시운의 눈은 일반인과 다르다는 소문은 이미 퍼지긴 한 상태다.
근데.
‘사람의 살피는 능력까지’ 라고?
방금 유석의 말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의미심장한 말.
뭔가를 아는 눈치다. 설마?
툭!
시운의 검신이 공중을 꿰뚫으며 움직였다.
“………!”
검신의 날은 유석의 목 끝에 멈췄다.
“나한테 거짓말을 한 이유. 그리고 회귀자라는 말을 내뱉은 이유 두 가지를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검신이 유석의 목덜미를 슥, 건드렸다.
투툭. 살점이 벗겨진 그의 목에서 피가 흘러나옴에도 유석은 당황스럽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사실 하나를 털어놓으려고 했다는 제 말은 진심입니다. 단지 그 전에 확인을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에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무슨 확인?”
날카롭게 변한 시운의 눈빛. 그 시선을 유석은 잠잠히 받아들이며 말을 잇는다.
“당신의 눈이 상대의 감정을 정말 읽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내 눈이 감정을 읽을 수도 있다고 추론한 근거가 뭐지?”
시운은 속으로 놀라고 당황스러움을 그냥 숨기고 차분한 척 물었다.
“당신의 눈은 일반인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스릉! 유석의 목에 겨눈 검신이 미세히 떨렸다.
검신이 떨린 것은 시운의 손이 떨림에 의한 것이었다.
뒤이어 이어진 유석의 대답은 시운의 뇌리를 흔들다 못해 경추와 등골이 서늘하게 식어버리게 했다.
“당신이 회귀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뭐, 뭐라……고?”
순간 숨이 콱 막히고 뇌까지 멈춘듯한 감각이 일었다.
내가 회귀자라는 걸 안다고? 장유석. 나와 인연도 없고 ………아니. 나와 인연이 있다 해도, 이 세상 어디에도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없다. 설마 나를 떠보는 것인가?
아니었다.
분명 방금 그 말을 뱉은 유석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어, 어떻게 당신이 그걸 알고 있는거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내가 털어놓으려고 했던 비밀입니다.”
“……….”
검신의 끝이 흔들렸다. 그 검신의 밑, 손잡이를 틀어쥔 시운의 손은 수전증 환자 같았다.
‘죽여야 할까?’
침묵이 흐르는 들판 위.
낮게 부는 바람만이 그들의 침묵 위에 흐르고 있었다.
회귀자란 비밀을 알고 있다면? 이놈을 이대로 내두기엔 위험해진다.
이놈이 입을 떠버렸다간 협회 측에 강제로 불려갈 것이 먼저였다. 물론 이런 말같잖은 소리를 믿지 않겠단 반응부터 협회측에서 던지겠지만. 이놈이 만약 내가 회귀자란 사실을 입증시킨다면?
난 곽대익의 사냥개………아니, 그런 개새끼 노릇보다 더 비참한 실험용 쥐새끼가 될 것이었다.
곽대익의 본성을 잘 알고 있고. 그놈은 ………분명 나를 그렇게 만들 것이었다.
유석이 물었다.
“놀랍습니까?”
“대답을 말해라. 이번에도 거짓말을 한다면 널 죽이겠다. 네가 귀환 스크롤을 가지고 있다 해도 죽일 것이다.”
귀가스크롤을 소지한 사람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운은 그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유석의 목을 날린다면 분명 시운은 범죄자 신세가 될 터.
‘헌터 연동 시스템을 갖춘 놈을 죽이면 내 범죄수치는 오를 테니까.’
이번 생은 결코 무너질 수 없다.
세정이. 그리고 다시 돌아온 누나.
나만 보고 있는 우리 가족들.
또다시 회귀한다 해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인생에서 내 가족들을 버리고 나 혼자만 도망가는 꼴이니까.
여태 두 번이나 그랬으니까!
절대 이젠 그럴 수가 없다고.
범죄자 신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안에 갇힌 쥐새끼의 신세가 될 바에는 ……… 차라리 이놈의 목을 따고 도망자 신세가 되는 것이 낫다. 곽대익. 그놈은 악마니까.
“말해라. 네가 숨기고 있다는 비밀을.”
“그전에 우리가 행했던 약속을 지켜주겠다는 확답을 들어야 겠……”
스릉.
“크흑….”
검신이 유석의 목덜미를 비집었다.
당장 말하지 않으면 넌 죽는다.
시운은 그런 눈으로 유석의 눈을 응시했다.
“말해.”
“……….”
“말하라고!”
꾸욱- 손잡이를 감은 시운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간다.
“……나는 회귀자들을 판별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명 해라.”
“……내 능력을 증명하란 말입니까?”
시운은 대답대신 검신을 유석의 턱가로 올려주었다.
여기서 마음만 먹고 검신을 휘두르면 유석의 머리는 들판에 구르게 될 것이다.
“………증명이라.”
“길게 끌지 마라.”
유석이 뱉은 말은 절대로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회귀자를 판별해내는 능력이라고?
그딴 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 순간.
“공유.”
“…?”
유석이 짧게 말을 뱉었고.
그대로 유석은 눈을 감았다.
“위를 봐요.”
“위?”
반문하며 고개를 든 시운은 그대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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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터널 라이퍼
형태의 수: 3.
능력 (1)
명칭: 시신경
위치: 망막의 신경절세포에서 연결되는 축삭
종류: 신경계.
결론: 시각.
능력 (2)
명칭: 우측 어깨근.
위치: 삼각근, 상완 삼두근, 상완 이두근.
종류: 근육계.
결론: 괴력.
“………이, 이럴 수가!”
허공에 올려뜬 창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저 정보는 분명 이시운. 자신에 대한 정보였다.
저딴 것이 스킬로 있을 수 있다고? 말도 안 된다.
그런 건 들어보지도 못했고.
있을 수도 없으며.
말조차 되지 않는다.
근데……… 저 정보에 나열된 활자는 정확했다.
게다가.
형태의 수라는 명칭에 기입된 숫자는 분명 시운의 3회차 인생을 뜻하는 것이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 당신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거지?”
“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에는 이 능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니깐 어째서? 어째서!!”
시운이 빼액! 고성을 내질렀다.
저 멀리서 둘이 걸어왔다.
혜령과 연희가 걱정이 된 얼굴로 왔다가 유석의 피묻은 목을 보며 놀라고, 검을 뽑은 시운을 보며 또 놀랐다.
“중요한 대화를 나눠야 해. 잠시만 빠져줘라.”
시운이 진지하게 말했다. 연희와 혜령은 말리려던 몸짓을 멈췄다.
언제나 착한 눈을 동그랗게 뜨던 시운에게서 처음 보는 눈빛을 보았기 때문.
“언니. 어떡해?”
“몰라. 쟤 저런 면도 있었나. 별일 없겠지. 치고박고 싸우고 말 거야. 빠져 있자.”
“그래도 될까?”
“남자 싸움에 여자가 끼어드는 거 주접이야. 그냥 먼저 들어가 있자.”
연희는 걱정스런 눈으로 시운을 다시 바라봤다. 혜령은 연희를 끌어당긴다.
그렇게 둘은 마차로 돌아갔다.
“놀랄 만도 합니다. 하지만, 나도 털어놓기 힘든 비밀을 털어놨습니다. 당신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내가 회귀자라는 걸 당신이 아는데 내가 당신을 살려둬야 하나?”
“그 어디에도 당신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발설할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의 목적이 대체 뭐야?”
검신은 아직도 파르르 떨고 있다. 시운은 아직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정신도 없다. 전생,
그리고 그 전생에도 회귀자를 판별하는 이가 있다는 소문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헌터 커뮤니티에 미스터리란 주제로 도배되고 말았을 테니까.
“그 목적까지 알아야 합니까?”
“당신은 내가 회귀자란 비밀과, 내 능력까지 내 허락도 없이 당신 멋대로 알아버렸는데. 나도 알아야하지 않겠어?”
“……가족입니다.”
“가족?”
가족이라는 말에 시운의 분노심이 순간 멎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더 말을 이으려는 유석의 눈은 그 어느때보다 슬퍼보였다.
이윽고.
떨어지는 그의 눈물을 보며 시운은 주춤 했다.
유석은 힘겹게 몇 분간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놨다.
시운의 눈빛은 흔들렸다.
그런 시운이 말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내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 위험한 일이다.”
“당신 또한 가족을 위해 잘 되고 싶은 거 아닙니까.”
“…….”
가슴에 뭔가 콱,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자리에서 당장 유석을 시체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도망자 신세는 면하지 못하더라도, 실험용 마루타 신세는 면하겠지.
근데.
마음이 약해지려 했다.
뭣보다 유석의 안타까운 사연은 비슷한 점이 있는 시운에게 뭔가를 느끼게 했다.
형이란 본분으로 동생을 위해 사는 장유석.
그의 얼굴에서 과거 이시운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이시연을 얼굴이 겹쳐 보였다.
‘……우리 누나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가슴이 먹먹해지려 했다.
“당신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정말 없습니다.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 사실조차 모두 숨겼겠지요. 당신이 감정을 읽을 줄 안다 해도 내 생각은 읽지 못 할테니까….”
철컹!
거둔 검신을 검집에 밀어넣었다.
시운은 말없이 인벤토리에서 붕대 하나를 꺼내 유석에게 내밀었다.
유석은 건네받은 붕대를 풀어 핏자국이 번진 목을 감았다.
“당신을 봐준다는 게 아니다. 당신을 당장 죽여버리면 나만 곤란해지니까.”
마차 쪽으로 뒤돌아선 시운이 말했다.
그리고 시운은 걸어가며 말을 잇는다.
“당신이 회귀자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다 해도, 당신이 내 신상에 위협이 될 짓을 한다면. 그땐 그보다 압도적인 내 능력으로 당신을 반드시 죽인다.”
돌아서서 살기가 담긴 말을 뱉으며 걸어가는 시운의 등을 보던 유석.
유석은 오히려 그에게서 인간미를 느꼈다.
분명 유석의 사정을 듣고 이시운도 속으로 아파했을 것이 분명했다.
눈으로 그게 보일 정도였다.
옆에서 지켜봐왔던 이시운은 괴랄하긴 해도 정이 많은 남자였으니까.
저 남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실 하나를 더 알려주고 싶다.
“이시운 씨.”
유석이 그를 불렀다.
그러나 들은 체도 않고 그는 걸음을 계속 옮겼다.
“회귀자는 당신 뿐만이 아닙니다.”
턱.
그제야 움직이던 시운의 등이 그대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