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22화 (121/278)

제 122화

증명하라, 시간이여. (1)

덜커엉- 덜컹-

마차의 바퀴는 아까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말을 모는 마부도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내리치는 채칙찔 조차 조심스럽다.

모두가 말이 없었다.

마차를 끄는 말은 당연히 말이 없었고.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마차 속에서 바깥의 경치에 눈을 든 시운의 낯빛은 어두웠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니.’

혼란스러웠다.

아니. 그것을 넘어 뇌리의 신경다발이 엉킨 듯 띵한 느낌이다.

‘죽고 죽어도 살아나는 놈이 나 말고 또 있다면.’

시운은 뒤처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는 눈과 어깨 두 능력들.

이 능력들 덕분에 지금까지 고속으로 성장했고,

남들이 나를 보면 먼저 엄지 하나를 치켜주는 최상위 헌터가 될 수 있겠다고 믿었다.

‘최고가 되고 싶었어. 한 번쯤은.’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용의 머리든 뱀의 머리든 그 머리 꼭대기엔 발 한 번 밟아보겠다고 말이다.

‘항상 나는 밑바닥 인생이였지.’

시운은 유년기 시절부터 공부를 못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보았으나 반에서 1등은커녕 중간도 못 갔다.

-이시운. 너는 공부 대체 안하니? 선생님은 네가 걱정이다, 걱정이야. 대체 커서 뭐가 될려고 그러니?

담임 선생은 늘 이렇게 말했다.

공부 잘하는 녀석들이 부러웠다.

그런 녀석들은 선생의 총애를 받고,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아내며 또한, 다른 어머니들이 자기 아들에게 비교 대상을 삼을 때 언급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걔는 이번 중간고사 전교 1등 했다더라. 걔 엄마는 얼마나 행복하겠니? 근데 넌 성적표가 이게 뭐야?

이런 비교 말이다.

이제 막 사춘기 따위나 겪는 뇌조차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은 이미 그때부터 세상의 차별과 억압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게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고 말하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난….’

공부를 해도 성적은 늘지 않았다. 재능이 없다 탓했고, 안 되는 걸 어쩌냐고! 자책도 했다.

그렇게 공부를 놓았었다.

‘참 개병신같았지.’

운동 쪽으로 나아가 보려 했다.

근데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앞으로 날아가야 하는데 공은 꼭 대각선 좌측으로 날아가 버렸다.

‘내 발이 삼각형 발이라도 되는 듯 마냥.’

운동에 소질이 티클만큼도 없었다.

‘그냥 어린 나이인데 여친이나 사귀고 학창시절 추억이나 남길 겸 보내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연애조차 맘대로 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여자가 어려웠다.

남자인 친구들에게는 분위기 메이커 따위의 역할을 해내는 주제에 여자 앞에서만 가면 얼어붙었다. 천세정은 그때는 감히 넘볼수도 없을 산이라 생각했다.

그냥 혼자 병신같이 좋아하는 걸로 만족하는 게 다였다.

‘그렇게 연애도 제대로 못했었고.’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려 했다. 그 중에 하나가 헌터였다.

‘헌터.’

상위 랭크가 되면 벌어들이는 수익은 대기업 회사원 연봉의 몇백 배 그 이상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

헌터가 되고 싶은 이유는 돈과 명예가 따라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현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그 환상이 너무 메리트가 있었다.

내면도, 외면도 다 자라지 않은 그저 말 정도나 할 줄 알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세상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명분으로 공부란 것에 시달리고,

그 공부란 것 때문에 받는 괄시를 그 어린 나이의 가슴에 담아내야 했으며.

그 공부 따위가 이제 막 자라는 아이의 머리에 강박적인 사고 방식까지 때려박았다.

‘민주주의란 가면을 쓴 자본주의의 세상.’

자유롭다고 알려진 이 세상에서 그 핏기도 안 가셨을 때부터 자유롭지 못했기에 헌터가 되어 이런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 이계로 가고 싶었던 맘이 컸다.

이 지독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맘과 이 따위 세상에서라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헌터를 막연히 꿈꿨다.

‘그렇게 바라던 난 결국에 헌터가 되었어.’

최고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가득했다.

남들은 꿈에서도 못 볼법한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

‘근데 나 같은 놈들이 이계에 더 있다고?’

더 있단다.

회귀자라고 불리는 이들 말이다.

-회귀자는 당신 뿐만이 아닙니다.

옆에 앉아있는 유석이 아까 한 말이었다.

믿을 수 없을뿐더러 너무 놀라서 숨조차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나 말고도 당신이 알고 있는 회귀자가 누군데? 말해봐.”

-저는 이시운 씨에게 마음적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시운 씨가 저를 내치지만 않는다면 하나씩 알려드릴 생각입니다.

“말장난 하지 말고 한명만 말해봐. 당신 말을 믿지 못 하겠으니까.”

-박태석.

유석은 대답을 한 인물의 호로 대신했다.

그 대답을 들었을 때 시운은 정말 회귀자가 숨을 쉬고 살아가는 구나 라고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

‘박태석의 공략 영상을 보면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 같았어. 그게 항상 이상했는데….’

그가 회귀자라면 그 의문은 말끔히 풀린다.

박태석.

SS랭크 한국 최강의 헌터.

‘멸룡의 귀재’ ‘흑빛검신’ ‘인간의 탈을 쓴 귀신’ ‘신이 빚은 헌터’.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타이틀이다.

그런 초일류 재능충이 이계의 수많은 정보들과 회귀로 인한 능력까지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난 이 바닥에서도 최고란 힘들단 말인가.’

박태석.

시운의 롤모델이자 최고로 존경하는 그를 한 번 넘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바닥의 정점을 찍어보고 싶었다.

아이 때부터 단 한 번도 최고라고 불려보지 못한 열등감도 그 이유에 들어있었다.

“………후우.”

한숨을 뱉으며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시운아.”

“왜?”

연희의 물음에 고개를 묻은 채 답했다.

“무슨 일인지는 안 물어볼게. 근데 어깨 좀 펴! 네가 그러고 있으면 우린 어떡하냐, 바보야.”

“……내가 이러고 있는데 너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 있지. 넌 지금 이 팀의 리더잖아.”

“리더?”

킥킥, 웃음소리가 끼어들었다.

혜령의 것이었다.

“풉, 진짜 유치하네. 리더래 푸하.”

“언니!”

연희가 혜령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혜령은 시운을 향해 돌아봤다.

“야! 정연희 얘가 방금 했던 말은 개오글거리는 말이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다. 얄밉지만, 네가 우리 중에 가장 강한 것은 맞잖아?”

시운은 파묻은 얼굴을 들어 혜령의 시선을 받았다.

어울리지 않게 그녀가 싱긋 웃고 있다.

“남자가 돼 가지고 뭘, 그렇게 축 쳐져있냐? 고민 있냐? 있으면 누나한테 말해보던가. 귀찮은데 뭐 들어는 줄게.”

“……고민은 아니고.”

“고민이 아니야? 그럼 얼굴에 생기 좀 불어 넣어라. 젊은 애가 얼굴색이 그게 뭐냐. 누나가 혀라도 넣어서 생기 좀 넣어줄까?”

“아, 언니! 진짜.”

연희는 혜령의 어깨를 툭, 때리며 웃었고 혜령도 말을 뱉고서 뱉은 말에 부끄러운지 시운의 눈을 피했다.

“알았어. 내 걱정은 하지 마. 퀘스트 하는데 누나한테 방해될 생각은 없으니까.”

“야! 너는 방해 좀 해도 괜찮거든? 항상 너 혼자만 북치고 장구치면서 활약했잖아.”

말하고서 혜령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쾌활하게 웃었다.

시운은 내심 고마웠다.

그리고 연희가 한 말에 막힌 뇌가 뚫리며 정신줄이 번쩍 했다.

‘리더라….’

혜령. 연희. 유석.

이들 또한 현계에서 엘리트였기에 헌터시험을 패스하고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들 틈에서 시운은 리더 아닌 리더의 위치다.

방금 그 말이 시운을 위로하기 위한 말인지 우스갯소리인지는 모르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 내 사람들이 지금 날 이렇게 인정해주고 있잖아.’

꾸욱, 바지가랑이를 주먹으로 쥐었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혼신을 다하고 나서야 뱉을 자격이 있는거다.’

시운의 안광이 번쩍였다.

분명히 언젠가는 최고가 되어주겠노라고.

그 언젠가가 바로 이번 생이라고.

이번 생은 내 마지막 생이라 생각하고 후회없이 달려줄 것이라고.

시운은 도약을 위한 동기를 확실히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들을 실은 마차는 그렇게 미월 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미월(美月).

유난히 달이 예쁘게 보인다는 마을이다.

그래서 마을의 이름도 미월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촌장의 딸이 워낙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있어서 외간 남정네들이 종종 코빼기를 비친다고도 한다.

발카스의 서쪽 외곽 바로 옆에 자리한 곳.

그 시각.

미월 마을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큰일일세. 큰일이야.”

혀를 끌끌 차는 백발의 노인.

그는 촌장 다이온이었다.

“하.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가 이렇듯 한탄할 법도 했다.

지금 미월 마을의 주민들은 연달아 시체로 발견되고 있었다.

특히. 유기된 주민들의 사체는 그 몰골이 너무 흉측해서 사체를 처리하는 사병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빠. 너무 걱정 마셔요. 씩씩한 헌터나 용병 분들이 나타나서 해결해 주실 거에요.”

“아니! 그건 당치도 않은 소리! 당치도 않은 소리란 말이야!”

다이온은 딸인 레나에게 역정을 내질렀다.

“……….”

레나의 위로는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다이온의 걱정은 노파심 따위가 아니었다.

미월 마을은 곧 붕괴될 위기에 처해있는 상태였다.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어. 떠나가고 있단 말이야.”

다이온은 쇳소리를 내며 울먹였다.

주민들은 하나씩 이 마을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반면, 형편이 좋지 않은 주민들은 이사도 가지 못하고 벌벌 떨며 집에서 나오질 않고 있다.

“사람들을 죽인 자는 바로 그놈일게야. 분명히….”

다이온은 자신의 생각이 확실하다 믿었다.

발견된 주민의 시체는 죄다 두 눈은 파여있었고, 팔과 귀는 잘려있었다.

“그 놈일게야. 그 사악한 놈!”

라파엘 신전에 은신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흑마법사가 확실한 용의자였다.

그가 아니면 이런 짐승같은 짓을 할 자는 더 없었다.

분명히 몬스터의 짓도 아니다.

유기된 사체의 두 눈은 아주 매끄럽게 뽑아져 있었다.

몬스터의 투박한 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어쩐단 말인가! 이 일을 해주겠다고 나타나는 사내들은 없고.”

정확히는 있었다.

-촌장님! 저는 태풍 용병단의 단장 카르타라고 합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일을 해결해 드리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따님 레나를 저에게 주십시오.

믿음직스런 용모의 용병이 한 말에 촌장 다이온은 뼈를 씹는 슬픔을 삭히며 그러겠다 약속했다.

-레나야. 못난 이 아비를 용서해 다오.

-그런 말 마셔요. 전 아빠와 우리 마을이 예전처럼 행복해질 수 있다면요. 악마에게라도 몸을 허락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 장엄하게 약속했던 그 용병은 싸늘한 사체가 변모하여 다이온과 조우했다.

그 순간.

밖에서 처연한 짐승의 울부짐이 들려왔다.

“아, 아빠…! 뱀파이어가 또 나타났어요. 어서 불을 끄셔야 해요!”

“끄흐흑흑….”

다이온은 미동도 않은 채 처연히 흐느꼈고 레나는 급히 움직여 방 안의 전등을 껐다.

문제는 흑마법사만이 아니었다.

밤마다 등장하여 주민들의 목덜미를 뜯어가는 뱀파이어까지 나타난 시국이었다.

“이젠 모든 게 끝이야. 끝이라고.”

“그런 말씀 하지 마셔요.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거에요. 조금만 조용히 계셔요. 뱀파이어가 사라질 때까지만요.”

다이온은 레나의 말이 가당치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미월은 이미 발카스의 눈에서 사라진지 오래인 마을이었다.

민병대로는 감당할 수 없는 던전이 바로 미월 근방에 있는 데다가,

이곳은 석유나 광석조차 없고,

근방의 호수는 썩은 어류만 가득하여 국가조차 외면한 곳이다.

관광지로 선정하기도 불가능하여, 이방인들의 지갑에서 돈조차 빼낼 수 없는 이런 마을은 국왕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다.

“국왕이라는 놈이 색(色)에 빠져가지고 영토를 관리할 생각은 않고…!”

다이온이 한 말은 사실이었다.

근엄했던 발카스의 국왕의 모습은 시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진지 오래.

이미 그가 반쯤 미쳐버렸다는 소문은 왕국 전역에 퍼지고 있었다.

“휴. 이제 뱀파이어가 사라졌나 봐요.”

레나는 뱀파이어의 괴성이 끊긴 것을 귀로 확인하고 다시 전등을 켰다.

“……이제 살고 싶은 여한도 없구나.”

“아빠! 그런 말씀 마시라구요.”

레나는 울상이 된 채 늘어진 다이온을 슬프게 바라봤다.

‘이렇게 아빠를 놔둘 수는 없어.’

레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방법이 없다면 만들고 말 것이다.

이방인에게 정조를 바쳐서라도.

똑똑-

노크소리에 놀란 레나가 품에서 단검을 빼들고 문으로 다가갔다.

“아빠. 뒤로 물러나 계셔요. 어서요.”

레나는 문의 외시경으로 밖을 살폈다.

“…어?”

레나의 큰눈이 더욱 커졌다.

“아빠. 사람들이 찾아왔는데요?”

“뭐라고?”

다이온이 벌떡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갔다.

한낱 희망을 품고.

“누구시오!”

“여기가 촌장님 댁이죠? 저희는 헌터입니다.”

“헌터?”

“아빠! 함부로 문 열어주시면 안 돼요.”

다이온은 레나의 만류를 격하게 뿌리치고 빗장을 풀었다.

문이 열리자 네 명이 목례를 해온다.

“안녕하세요. 해결하실 일이 있다고 들어서 찾아왔습니다.”

“……….”

순간 빛났던 다이온의 눈은 일그러졌다.

“돌아들 가시게!”

쾅!

다이온은 문을 부서질 듯 닫아버렸다.

기대심을 반한 헌터들에 대한 화풀이였으리라.

“헌터라잖아요. 왜 가라고 하시는 거에요?”

“저런 핏덩이 헌터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똑똑똑-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다이온은 “가라고 하였다!!” 라며 노성을 질렀다.

그때.

“뭐, 뭐하는 게냐!”

다이온이 레나에게 소리쳤다.

레나는 그대로 문을 열어 헌터들을 반겼다.

“일단 들어오셔요.”

“아, 정말 들어가도 될까요?”

피부가 하얀 남자가 묻자 레나가 싱긋 웃으며 끄덕였다.

“이 아비의 말이 말같지 않느냐!”

찰싹!

“끄읏.”

레나는 고개가 돌아간 채 붉어진 뺨을 포갰다.

“그냥 가라고 하였네!!”

다이온이 헌터들을 향해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유독 피부가 하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촌장님. 잠시만요, 잠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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