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4화
증명하라, 시간이여! (3)
정적은 일순간 흐르다가 깨져버린다.
“뭐, 뭐라고요?”
“저 양반이 지금 뭐라는 거야?”
“...움직이면 죽인다구요?”
“초, 촌장님!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래요?”
“숙취 때문에 몸도 못 가누는거 뭐 준다고 해서 이런 몸뚱이로 겨우 나왔더니만, 마른 하늘에 똥 떨어지는 소리여?”
마을 주민들은 토끼눈을 뜨고서 시운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촌장님?”
이시운이 촌장 다이온에게 눈을 한번 껌뻑거리자, 다이온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모두 당황들 마시고, 내 말 잘 들어요.”
당황하지 말라고 했지만 설명을 들으면 모두가 당황을 넘어 경악할 게 뻔했다.
어쨌든 다이온은 현 상황을 차분하게 늘어놓았다.
“배, 뱀파이어를 여기서 구별해낸다고?”
“우리 중에 그 괴물자식이 있단 말입니까?”
“어딨어! 나와!! 내 아들을 죽인 그놈! 아가리를 찢어버리겠어! 어딨냐고!!”
“우리 할머니도 그 악마한테 죽었어요! 누구에요? 정말 이 중에 그 악마새끼가 있단 거에요?”
“무서워. 나 집에 갈래요!”
귀를 틀어막고 겁에 질린 여자가 자리를 이탈하려는 것을 유석이 제지했다.
“여기서 벗어나면 뱀파이어로 간주 되어 참사를 당할 겁니다. 금방 끝나니 움직이지 마십시오.”
“너, 너무 무섭다구요! 그놈이 어떤 놈인 줄 알아요?”
유석은 대답 없이 투박한 덩치를 내세워 그녀를 그대로 막아섰다.
주민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어진 소란은 툭, 튀어나온 짐승 한 마리에 의해 멎었다.
“깜짝이야!”
“저건 또 뭐야?”
“새끼 늑대?”
“우리한테 걸어오고 있어!”
킁킁, 거리며 주민들에게 걸어오는 여우를 주민들 모두가 이상하게 쳐다봤다.
“일미호! 어제 내가 기억하라고 했던 냄새 아직 기억하고 있지?”
여우는 머리를 돌려 시운을 보고 끄덕이더니 앞발로 목덜미를 벅벅, 긁는다.
“오늘은 왜 아침에 부른게냐? 자고 있었단 말이다!”
동물인 줄 알았던 여우가 말을 하자 주민들은 제귀를 의심했다. 조막한 생김새와는 아주 다른 목소리에 더 놀란 것은 덤이었고.
“미호야. 잡담 나눌 시간이 없다. 지금 저 사람들 속에서 그 냄새를 찾아줘.”
“캉?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마나석 안 먹고 싶냐?”
“캉! 줘라. 어서 주거라!”
“그럼 일단 찾아.”
여우는 자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주민들을 스윽, 훑었다.
그리고 인파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자 주민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오, 온다!”
“나, 쟤 목소리가 흉측해서 무서워.”
“촌장님! 말씀 좀 해보시라구요!”
다이온은 주민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제스처를 취하며, 두 손바닥을 들어 흔들었다.
“이미 설명은 해줬잖소! 가만히들 좀 계시오. 잠깐이면 돼오!”
킁킁.
“엄마얏! 어, 어딜!”
여성이 자신의 다리에 여우가 코를 들이대 묻자, 몸서리를 쳤다.
“여자고, 아이고, 남자고 따지지 말고 찾아내야한다!”
시운이 덧붙였다.
뱀파이어는 달이 뜬 밤에는 마귀같은 힘을 쏟아낼 수 있지만 해가 뜬 낮에는 기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흡혈귀 때는 남성의 외형을 하고 있었더라도 낮인 지금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얼마든지 남자가 아닌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짐작하고 있는 시운이었다.
빠캉! 여우의 뒤 꼬리가 위로 솟아 칼날처럼 단단해졌다.
숨을 죽이고 마른침을 삼킨 주민들은 가만히 여우가 냄새를 탐지하는 것을 지켜봤고, 자신의 차례를 넘긴 주민은 한숨을 쓸어내렸다.
“킁!”
여우가 한 남성 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
모든 이들의 눈이 커진 채 그곳에 멈췄다.
“그 냄새야?”
시운이 물었다.
“코가 막혀서 잠시 푼거다.”
“그런 건 좀 나중에 할 수 없냐?”
“닥쳐라! 너는 똥 마려우면 나중에 쌀 수 있는게냐.”
“하….”
시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도 저놈이 등장 타임부터 사라질 타임까지 고분고분 말을 잘 듣게 하려면 친밀도가 더 필요할 듯 하다.
여우는 다시 탐지를 시작했다.
눈알을 치켜뜬 여우가 그대로 멈춰섰다.
“카르릉!”
“꺄악! 제발 저리 가! 누가 좀 도와줘요! 나를 물려고 해요!”
젊은 여성 앞에 선 여우는 앞발을 땅으로 긁으며 상체를 숙이고, 경계하는 몸짓을 보였다.
“이 사람이야?”
여우는 다가와 묻는 시운에게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뭐, 뭐하시는 거에요! 사, 살려주세요! 촌장님! 오랜드 아저씨! 할머니이!!”
시운의 검신이 자신의 목에 멈추자 여성은 경악을 했다.
주민들은 일제히 그 여성과의 거리를 벌리며 겁 질린 눈으로 그녀를 흘겼다.
그때. 다이온이 허겁지겁 뛰어와 시운의 팔을 잡았다.
“아, 아니야. 이 아이는 절대 뱀파이어일 리가 없어.”
“촌장님. 비키시죠.”
“저 여우가 잘못 판단한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다이온이 그럴 리가 없다며 시운의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의 기억 속에 자리한 그녀는 너무나도 여리고 상냥한 아이였다.
절대! 이런 아이가 그 악마놈일 리가 없단 말이야!
“제, 제발 제게 손대지 마세요…. 저는, 저는… 절대 아니예요! 아니란 말이에요오오오오오옥!!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걸고 맹세해요, 정말요.”
“촌장님? 그놈이 여태 들키지 않고 이 마을에 숨어 살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습니까? 뱀파이어는 교활한 놈입니다.”
“저 아이가 저렇게 슬프게 울지 않나! 그런 마귀가 저리 연약히 우는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보나?”
슥-
“끄아악!”
여성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아 벌벌 떨었다.
그녀가 움켜쥐고 있는 팔에는 검신이 거쳐가 피가 뚝뚝, 흘렀다.
“……이 여자 확실하네요.”
“아니라니까! 아닐세! 아니라고 하였네. 자네 이제 그만…”
“저는 남들보다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여성의 피속에는 백혈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촌장의 말허리를 자른 시운이 단호히 말했다.
“그게 무슨………흐아아악!”
다이온은 기겁을 하며 툭, 엉덩방아를 찧었다.
푸슉! 번쩍인 검신은 여성의 잘록한 배를 꿰뚫고 등에 삐져나왔다.
“컥! 커허어어억!”
그 광경을 본 주민들은 기겁을 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컥….”
여성은 턱을 스르르 떨어뜨리며, 입가로 핏물을 뱉어내고는 시운의 가슴팍에 머리를 묻었다.
그리고 악을 담아 눈을 올려떠 시운을 노려보았다.
“이, 이 놈이, 이……커허억.”
푸슉!
검신을 빼내자 그녀는 세차게 바닥에 쓰러졌다.
모두가 입을 틀어박고 바닥에 쏟은 내장을 배로 덮은 채 늘어진 여성을 바라봤다.
시운은 쓰러진 그녀의 머리칼을 쥐어 고개를 들어올린 뒤, 손을 그녀의 입속에 밀어 넣고 그속에 뭔가를 빼내어 다이온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본 다이온의 낯빛은 만감이 교차하여 뒤섞였다.
놀라움과 슬픔.
다이온은 떨리는 눈에 힘을 주고 시운의 손에 들린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혈요석…! 분명하다.’
혈요석.
뱀파이어의 또다른 심장.
흡혈귀의 혈로 응축된 돌이며, 그들에게 충동 억제력을 소멸시키고난폭성을 부여한다고 알려졌다.
마을 일대를 패닉으로 몰고갔던 폭풍 하나는 이렇게 멎은 듯 했다.
그때였다.
‘혈요석이 움직인다.’
순간. 귓가로 은은한 알람이 들려왔다.
[혈요석의 석력(石力)이 깃듭니다.]
혈요석이 녹아내리더니 시운의 팔을 타고 전신에 퍼져 살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윽.”
전신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갑작스러움에 놀라는 와중에 다시 알람은 들려왔다.
[석력(石力)이 혈액에 투여되는 중입니다.]
[석력(石力)이 온전히 감돕니다.]
[몰아일체(物我一體)를 완료하였습니다.]
[기운이 스킬을 생성합니다.]
[스킬 흡혈귀의 역린을 습득하였습니다.]
‘………뭐?’
스킬창을 그대로 띄웠다.
[흡혈귀의 역린][특성]
-습득 조건 : 낮에 뱀파이어를 처형 후 혈요석을 획득한 자.
-스킬 효과 : 흡혈 상태를 부여한 적의 몸속에 흐르는 피를 응고시킨다.
-선택 : 본인이 원하는 때에 임의로 발동시킬 수 있고, 해제할 수 있다.
‘특성 스킬을 여기서 얻게 될 줄이야!’
대박이었다!
특성 스킬은 액티브나 패시브 스킬과는 격이 다른 종류였다.
습득하기가 여간 힘들지만, 효력은 일반 스킬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었다.
뜻밖의 횡재에 시운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처참한 시체가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황에서,
속내가 아닌 입으로 웃으면 다들 미친놈으로 취급할 테니까.
여신의 석상 앞의 참혹한 사체를 수습하느라 동원된 장정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무렵.
다이온은 떨리는 손을 들어 찻잔에 입을 가져다댔다.
“그 친구가 그 일을 그렇게 빨리 해낼 줄이야….”
이시운이라는 헌터. 그는 다이온의 예상 하나를 비틀어버렸다.
그 사실에 아직도 놀라움을 몸소 체감하고 있으면서도 또다른 고심을 하는 중이다.
‘신출귀몰한 그 악귀를 찾아 죽인 것은 참 놀랍지만 흑마법사를 퇴치할 내공까진 엿보이지 않았다.’
다이온은 두 번째 자격을 증명할 기회를 그와 그의 일행들에게 선사했다.
바로 미월의 근방에 위치한 마성의 탑에 있는 모든 마물들을 퇴치하고 오라는 기회.
이번엔 분명 쉽지는 않을 것이다.
‘헌데….’
그들에게 기한을 정해 알려주진 않았다.
‘생각을 바꿔야겠구나. 그들이 만약 3일 안에 그 마물들을 모두 괴멸시키고 온다면….’
그땐 그들을 인정하고,
진짜 악마의 힘을 부린다는 놈이 있는 신전으로 출격시키리라.
눈을 질끈 감은 다이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나 불가능 할 것이리라. 그 탑에는 그것이 서식하고 있으니까.’
바로 그 시각.
시운과 일행은 마성의 탑에 진입하여 2층까지 등반한 상태였다.
마성의 탑 1층은 사실 마물 축에도 못 끼는 거대 거미인 ‘퀸 스파이더’ 만 서식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요절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2층부터는 다르다는 것을 시운도 잘 알고 있었다.
“어? 뭐야?”
“퀘스트창이 떠올랐어.”
“저도 그렇습니다.”
혜령과 유석, 연희가 걸음을 멈추고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시운의 눈 앞에도 창이 떠올랐다.
[자격의 마지막 증명][협력]
촌장 다이온이 당신들의 자격을 시험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마성의 탑 전층에 있는 모든 마물과 몬스터를 퇴치하고 자격을 증명하도록 하자.
성공 조건: 72시간 안에 모든 괴물을 퇴치.
실패 조건: 72시간 경과 또는 일행의 전멸.
보상: 대량의 경험치, 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실패시 패널티: 연계된 다음 퀘스트 진행 영구 불가.
“성공 조건이 바뀌었어. 72시간이란 시간 내에 이곳을 다 쓸어버려야 해.”
시운이 중얼거렸다.
성공 조건이 바뀐 이유는 짐작이 갔다.
다이온의 생각이 바뀐 것일테지.
이곳 마성의 탑은 변이던전이다.
한마디로 몬스터마다 일반 몹과는 다른 강점이 있다는 뜻.
그 강점은 바로 흡혈 상태이상을 먹인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미치도록.
까다로운 것이 아닐 수 없었으나 시운은 그래서 더욱 속으로 웃었다.
‘정말 운이 좋군.’
그러했다.
마침 이곳에 당도하기 직전에 흡혈 상태이상의 카운터 스킬을 습득했으니까.
그것도 특성 스킬로 말이다.
“상태이상 해제 포션들은 챙겨들 왔냐? 난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왔는데.”
인벤토리를 정리하던 혜령이 일행의 얼굴을 하나씩 살폈다.
“당근 준비 돼 있지요. 난 상태이상 해제하는 스킬이 있어, 언니.”
“꼴에 매지션 계열이라 습득하긴 했나보네? 거기 그쪽은?”
유석은 짧게 입모양을 움직여 대답했다.
“너는? 아, 대비했겠지.”
혜령은 시운에게 물으려다 말을 말았다. 저 녀석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분류니까.
“왜 웃어? 여기 몬스터들 진짜 강하대. 긴장해야 된다구.”
입꼬리가 휙, 올라간 시운을 보며 연희가 물었다.
“연희야. 나한테는 상태이상 해제 버프 걸지마라.”
“……왜?”
“지금은 필요가 없으니까.”
툭.
걷던 시운이 멈춰서자 잇따라 모두가 멈추고 시운을 바라봤다.
“모두들 여기에 잠시만 있어줘.”
“왜? 설마 너 혼자서 여길 다 공략하려는 생각이야?”
“야, 야.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시운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답하고 레크라스를 소환했다.
“여기서 다들 잠깐만 있어.”
말을 마친 시운은 레크라스와 함께 먼지가 가득한 저 어둠 속 너머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시운아!”
“하…. 쟤 또 뭔 무모한 개짓거리를 하려고 저러는 거야?”
혜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
저 녀석이 해왔던 많은 무모한 짓거리들은 혜령을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으니까.
“언니. 저렇게 혼자가게 두면 안 돼.”
“쟤가 부를 때 까지 여기 있어. 다 생각이 있어서 저러는 거야.”
한편.
모골에 땀이 쏟아질 정도로 뛴 시운이 걸음을 턱, 멈췄다.
“레크라스! 탑 끝까지 최대한 울부짖으면서 날아가서 애들 유인해서 데리고 와.”
까악? 까악!
후웅! 까마귀는 날개를 뒤로 젖혀 속도를 높여 앞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잘 몰고 왔구나.’
까아악!
까마귀가 급하게 날아와 시운의 어깨에 툭, 걸쳐앉았다.
꽤나 겁에 질린 표정으로.
까마귀가 휙, 사라지자 시운의 뇌리로 까마귀가 날며 보았던 모든 장면들이 심어졌다.
‘머릿수가 꽤 많네?’
그때였다.
크르아아!
크르르!
크오오오!
전방에서 뛰는 굉음과 분노가 담긴 괴성이 들려왔다.
‘한 번 재밌게 놀아볼까?’
검을 고쳐잡고서 그대로 달려나갔다.
카아아!
크오오오오!
어둠이 내려 앉은 마탑의 곳곳에서 푸른 안광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쿵!
쿵!
카아아!
족히 8미터는 되는 공룡들이 꼬리를 흔들며 개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피식!
“크윽…. 이거 꽤나 따가운데?”
일부러 한놈의 공격을 맞아주었다.
그리고.
[흡혈 효과에 의해 HP가 지속적으로 하락합니다.]
‘오케이.’
창! 차앙!
사방에서 날아오는 사람의 허리통 세배만한 꼬리와 발톱들을 검으로 받아쳤다.
받아치면서도 일부러 놈들의 공격을 맞아주었다. 물론 적절히 흘려주면서 대미지와 고통을 최소화 했고.
‘이십 마리. 니들에게 다 한 번씩 흡혈에 걸려줬으니.’
시운이 씩, 웃었다.
카르르!
카오오!
카아아!
시운의 미소를 도발로 간주하며 더욱 미친 듯이 대가리를 처밀며 들어왔다.
그때.
“흡혈귀의 역린.”
[흡혈귀의 역린 효과가 발동하였습니다.]
[흡혈 상태를 생성한 적들에게 효과를 발휘합니다.]
[데빌 리자드의 신체를 순환하는 혈액을 즉각 응고 시킵니다.]
크오?
카르르!
카아?
놈들의 거친 움직임이 아주 느려졌다.
카아아…. 카아!
한 놈이 앞발을 내딛다가 쿠우웅! 마탑의 먼지바닥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피가 굳은 하체가 경직된 탓이었다.
잇따라 이십 마리의 데빌 리자드들은 숨 넘어가는 신음만 쏟으며 그 자리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어차피 이놈들은 멧집이 장난이 아닌 걸 안다고. 이렇게 만들어놓고 요리해야 편리한거거지.’
샤악! 쏟아져 나간 검신이 한놈의 옆구리를 쓸었다.
카우으!
샤악! 다시 그 옆구리를 베자,
카우으으!
억울함이 담긴 신음을 뱉으며 휘청인다.
벌어진 옆구리에서 핏물이 터져내렸다.
단단하다 알려진 놈의 가죽도 피가 응고된 탓인지 검신이 아주 잘 쑤셔박혔다.
파슈욱!
높이가 낮아진 놈의 대가리까지 뛰어올라 검신을 처박고,
그대로 검신을 비틀어 주자.
카르우우!
놈이 미친 듯이 괴로워서 아가리에서 침을 흘려낸다.
파악! 검신을 뽑아내자,
쿠우웅!
묵직하게 쓰러져 뒈져버리는 놈.
-데빌 리자드를 처치하였습니다.
검신의 끝날에 박혀 따라나온 놈의 괴수를 바닥에 털어내고 나머지 놈들에게 히죽 웃으며 다가가자 녀석들의 눈빛에 공포가 서리기 시작한다.
“이제 빠르게 죽여줄게. 니들 모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