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26화 (125/278)

제 126화

집 한 채는 주셔야죠?

검자루를 움켜쥔 시운의 시선은 그대로 떨어져 아클라우스 소드의 뜨인 눈에 멈춰졌다.

“……이게 지금 뜨였다고?”

차악!

그때. 두 창은 허공을 가르며 시운에게로 쏟아졌다.

순간!

양손에 창을 쥔 채 날아드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

놈의 육안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감정이 없는 두 안광.

“시운아! 조심해!”

“쳇, 왜 내 활이 안 먹히는건데?”

옆에서 가해오는 연희와 혜령의 공격들을 모두 무마 시킨 놈과 점점 가까워진다.

바로 코 앞의 거리까지 왔을 때.

탁!

놈의 창끝이 시운의 목젖 바로 앞에 그대로 멈춘다. 놈은 눈을 부릅 뜨고 공중에 뜬채로 그대로 굳었다.

‘……뭐야? 멈췄어?’

‘아니, 이 놈만 멈춘 게 아니야.’

시운은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움직임이 멎은 것은 놈뿐만이 아니었다.

완드를 내밀고 뛰어들다 멎은 정연희.

활시위에 화살을 끼운 채 다급한 눈을 뜨고 있는 강혜령과.

피를 주륵, 흘린 채 가만히 내다보고 있는 유석까지.

‘시간이 멈춘거야.’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기회다. 시운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러나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아니.

‘이놈을 처리해야 하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그런 시운의 눈 앞에 창 하나가 떠올랐다.

[에그메르트의 눈][장착 스킬]

고대 빙의와 영혼, 귀신을 다루는 술법을 사용한 에그메르트는 저승길에 오르지 못한 영혼에 귀심(鬼心)을 느껴 제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발동 조건: 에그메르트의 욕구를 충족하는 악귀와의 조우.

방식: 악귀를 검에 봉인한다.

효과: 봉인한 악귀가 이승에서 사용했던 능력 중 하나를 랜덤으로 획득한다.

사용 횟수 제한: 1/1

“에그메르트의 눈!”

시동어를 일단 외쳤다. 현 상황이 놀라운 건 놀라운건데, 일단 눈 앞에서 살기를 뿜으며 달려들다 정지해버린 이놈부터 어찌해야 할 것이 우선이라서.

그 순간!

“………?”

그 순간! ……이 아니고, 아무 현상도 일어나질 않았다.

“에그메르트의 눈! 뭐야? 왜 발동이 되질 않는거냐.”

그대로 멈춰진 시공간 속에서 연달아 시동어를 외쳤다.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입술과 눈만 움직일 수 있을 뿐.

『맛있는 영혼이로군.』

귓가에 음산히 들린 목소리. 분명 익은 육성인 이것은 자생도에서 레카드의 육신에 머물다가 이 검에 처박아버린 에그메르트 그놈의 육성이다.

“당신이 이렇게 만든건가?”

물었다.

놈의 핏줄 선 눈깔이 요리조리 움직이더니 육성이 또 들려왔다.

『네놈 앞에 있는 악귀를 이 몸이 취하겠다. 불만있나.』

“당신의 영혼은 박살난 것이 아니었나?”

의아해서 물었다. 분명 구황의 작두를 통해 봉인했고, 에그메르트와 타노스라는 오크의 두 영혼은 짖이겨져 이 검이 되었을텐데?

『네가 들고 있는 검속에서 난 살아있다. 근데…』

말끝을 기분나쁘게 흐렸다.

그리도 또다시 들려왔다.

『여긴 나 혼자가 아니다. 저능한 들짐승 새끼하고 같이 있노라.』

그가 영 탐탁찮다는 톤으로 말했다. 아종 오크인 타노스와 에그메르트가 검에 봉인된 채 동거인지 뭔지를 하는 듯 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은 앞에 놈을 처리하는게 급선무였기에 급히 물었다.

“일단 이놈을 먹던 구워삶던, 데려가던 내 앞에서 어서 없애줘라.”

『동의한 것인게다?』

그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뭔가 웃긴 게 에그메르트는 다른 인간의 육신에 빙의하여 영화 엑소시스트처럼 그 인간을 망가뜨리는 악마다.

근데 동의인지 뭔지를 했다니 기괴하던 톤을 낭랑하게 바꾼 것이 이질적이었다.

아무튼.

『물었다. 동의한 것이냐고 말이다.』

“…그래. 이놈이 또 움직이기 전에 어서 잡아먹든 뭘하든 해라, 어서!”

다급하게 답했다.

앞에 있는 놈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존재임은 알고 있으니까.

[검의 주인인 당신이 귀속된 영혼에게 능력을 허락하였습니다.]

[당신에게 귀속된 ‘에그메르트’ 가 마력을 사용합니다.]

“………인간이 나를……”

악귀가 처음으로 말했다.

비틀린 신음이 섞인 육성이었다.

[에그메르트의 눈이 발동됩니다.]

그리고 에그메르트의 눈의 형상이 변모하여 구렁이처럼 악귀에게 뻗어나간다.

『기운을 보아하니 전생에 꽤나 무력을 떨친 자로구나!』

흡족스럽다는 에그메르트의 육성과 함께 뱀처럼 뻗어나간 눈이 위, 아래로 쫙! 벌어지고 순식간에 악귀의 육신을 삼킨다.

퍽!

그리고 그 눈은 그대로 제자리인 검으로 돌아왔다.

『맛있는 기운이구나! 난 더 강해졌노라! 이제 이속에 있는 들짐승 오크새끼를 눌러줄 힘을 얻었도다.』

스스슥.

[에그메르트의 눈이 영원히 닫힙니다.]

‘끝난 것인가?’

아무 소리도 들려오질 않았다.

그때였다.

검에서 뿜어진 강기가 손을 타고 올라 시운의 전신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운이다!’

몸에 힘이 솟다못해 넘치려 했다.

팔을 감은 근육부터…… 뼈까지 굳어져 터질 것 같은 이 감각!

[에그메르트의 눈을 통해 봉인한 영의 능력을 검색 중입니다.]

[능력 중 하나를 무작위로 채출합니다.]

[동귀어진을 채출 하였습니다.]

뒤이어 창이 떠올랐다.

[동귀어진(同歸於盡)][궁극의]

자신의 영혼을 바쳐 상대의 영혼을 꺼뜨린다고 전해져 오는 금기시된 고대의 검법.

-발동효과: 상대를 일격에 궤멸.

-조건: 시전자의 죽음.

-사용 제한: (1/1)

상대를 일격에 궤멸!

활자를 보던 시운의 눈이 부릅 뜨였다.

“…엄청난 스킬이다.”

놀라, 입이 벌어졌다.

창에 나열된 설명만 보면 그랬다.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지 일격에 멸한다는 효과는 실로 비현실적이었다.

물론 시전하는 조건은 더욱 비현실적이었다.

‘시전자의 죽음이라. 이걸 사용하면 나도 죽는다는건가?’

시운은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윽고 희미한 미소가 그의 입에 걸렸다.

아주 만족스러웠으니까.

“방금 그 망나니 같은 놈은 어디간거야?”

혜령이 고개를 움직이며 물었다.

곧이어 연희도 긴장이 서린 눈으로 사방을 살폈고.

“…다 끝냈어.”

시운이 말했다.

“뭐? 다 끝냈다니? 네가 그 망나니놈을 죽였다는 거야?”

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령은 하, 헛웃음을 뱉으며 못 믿겠는지 탑을 살핀다.

혜령이 믿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분명 이시운이 공격하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활시위를 당기기 직전!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뜨니, 그 무시무시한 놈은 사라져 있고 이시운은 여유로운 낯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어떻게 된건지 설명은 해라.”

믿지 못해서 되묻는 혜령에게 시운은 일단 출구쪽을 향해 턱짓을 했다.

“일단은 먼저 여기서 나가고.”

“…말도 안 돼!”

다이온이 경악했다.

그의 생기가 없이 주름진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정말 해왔단 말인가?”

“보면 아시지 않습니까?”

시운은 그리온이 눈을 둔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이온은 요동치는 눈을 허공에 그대로 두고 있다.

헌터의 특수카드와 연동된 프로그램을 통해 이계인은 그들의 성과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과기록은 고스란히 그리온의 눈앞에 여실히 펼쳐져 있다.

“정말 마성의 탑을 클리어했단 말인가. 그것도 단 세 시간만에….”

그가 놀랄만도 했다.

마성의 탑은 하위 헌터들이 쉽게 넘볼 수 있는 던전이 아니다.

그런 탑의 5층까지 초토화 시키는 데는 중급 헌터 그룹도 족히 며칠 이상은 소요되기 마련이었다.

“아니….”

다이온은 고개를 내저었다.

마성의 탑을 5층까지 클리어 했다는 헌터는 들어본 적이 없다.

4층까지 공략하고 발길을 돌리는 헌터들이 가득하단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5층에는 그것이 있으니까.

“단 세 시간만에 그곳의 괴물들을 모조리 처리한 것은 놀라운데 운이 좋았군.”

“운이 좋다니요?”

시운이 되묻자,

다이온이 말했다.

“5층에는 자네들이 당해낼 수 없는 귀신이 머물고 있다네. 근데 항상 그것이 탑에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말이지.”

“……그 말씀은 운 좋게 그 귀신이 자릴 비운 타이밍이라 저희가 탑을 공략할 수 있었단 겁니까?”

“그렇지!”

다이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 거였구만. 그러니까 이 젊은 친구들이 운좋게도 그 탑을 모조리 오를 수 있었던 거고.

‘어차피 너희들은 그 마법사놈을 당해내지 못해. 자네들의 청춘이 꺾이는 것을 볼 수가 없으니…… 그 시험은 자네들에게 맡길 수가 없……’

“낡은 창 두 개를 든 산발머리 남자도 덤으로 죽이고 왔습니다.”

“뭐, 뭐라고?!”

다이온의 눈은 눈가에 주름이 없어져 버릴 정도로 커졌다.

“촌장님이 말씀하신 그 귀신 말입니다.”

“……어떻게 말인가?”

“강하긴 하더군요. 그래서 편법을 좀 썼습니다.”

“편법이라고?”

다이온은 충격에 뇌줄기들이 찌릿거리는 느낌까지 일었다.

분명 다이온만이 알고 있는 그 귀신의 생김새를 방금 시운이 그대로 이야기했으니까. 그 뜻은 탑에서 대면했다는 이야기니까.

“……자네들 정말 F랭크가 맞긴 한건가?”

고개를 주억인 시운은 두 손을 가지런히 내밀었다.

“이제 주시죠.”

“……뭘?”

“보상 말입니다.”

“아아….”

잠시 후.

시운과 일행들의 몸에서 번쩍이는 임팩트가 뿜어졌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오오. 2나 렙업하다니.’

만족감이 가득 들었다.

그렇게 몹들을 잡고 쓸어도 오르지 않는 레벨 구간에서 협력 퀘스트는 이렇듯 짭짤한 경험치를 준다.

“……일주일만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게.”

다이온은 정신이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흑마법사를 저희에게 맡길까 고민할 시간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좋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말씀 드리자면, 그 일은 저희말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시운은 자신있게 말했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두둑한 보수를 준다 해도,

그 악마를 처리해주겠다고 손을 드는 용병이나 헌터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판국이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단 말이네.”

“그정도 각오도 없이 촌장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뭐,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허, 자네는 어찌 그리 자신만만 하는가?”

“절대로 실패하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이번 인생 말입니다.”

“……이번? 이번 인생?”

다이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쨌든 생각할 시간을 주게나. 일주일이면 되네. 나도 자네들에게 당장 그 골치덩이 일을 맡기고 싶은 마음일세만.”

“그런데 촌장님.”

“말하게.”

“보상을 조금 더 챙겨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뭐라?”

보상을 더 챙겨달라고?

다이온은 뻔뻔하게 말하는 시운이 달갑지 않았다.

촌장 다이온이라 하더라도 경험치 보상을 막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계인들은 헌터들에게 의뢰를 위해 본국에 돈을 통해 백색의 차크라를 구입한다.

그 백색의 차크라는 현계인인 헌터들의 경험치로 사용된다.

그 때문에, 퀘스트를 부여하는 이들도 본인 자금을 들여 백색 차크라를 매수하고 헌터에게 수고비로 얹어주는 것이었다.

“그쯤이면 많이 준 거 아닌가!”

“마성의 탑은 미월 마을에게는 참 걸림돌 같은 던전이잖아요? 마성의 탑의 몬스터들이 툭하면 기어나와서 미월 마을을 습격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다이온은 흠짓 놀랐다. 그런 정보까지 하위 헌터가 알고 있다니.

“헌터나 용병들도 5층의 그 귀신 덕분에 그 탑에 잘 가지 않을 것이고요. 그렇게 해서 탑에는 몬스터들이 계속 쌓이고, 쌓여서 마을까지 얼굴을 내미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지요.”

다이온이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자 시운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가 그 귀신을 잡았으니 이제 그 던전도 헌터들이 자주 애용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몬스터들은 리젠이 되고 적절 시기에 헌터들 손에 죽게 되고.”

“우리 마을에 더는 탑 괴물들이 들이닥칠 일이 없게 되었으니 더 달란 말인가?”

“그렇지요. 게다가 촌장님은 제가 그 까다로운 뱀파이어를 잡았는데도 합당한 보상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크흠!”

다이온은 정곡이 찔렸는지 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나이도 어린 친구가 언변은 왜 이리 뛰어난건지.

족족 하는 말마다 맞는 말이기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딱 보기에는 이제 스무 살을 넘겨보이는데 신기한 친구로구만.’

시운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리온은 결단한 듯 입술을 열었다.

“…뭐, 좋네! 어려운 일을 두 개나 해줬으니 내 친히 자네들에게 경험치를 좀 더 주겠네.”

다이온은 인심 썼다는 듯 목청높여 말했다.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부족합니다.”

“……부족하다니? 그럼 뭘 달란 말인가?”

“집 한 채만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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