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27화 (126/278)

제 127화

강혜령의 고백

다이온은 제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건가? 늙어서 내 귀가 먹어가나?

분명히 집을 달라고 하였다.

그가 어이없단 눈으로 시운을 바라봤다.

“뭐? 방금 뭐라 했는가?”

“집을 한 채 달라고 했습니다. 머물 곳이 필요합니다.”

“……아, 그렇다면 집을 달라는 것이 아니고 지낼 공간을 마련해달라 그말이지?”

“집 한 채를 달라는 말입니다.”

“여보게! 자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 생각하나?”

“미월 마을의 주민들은 연이어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연이은 사망자 속출과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주민들은 이 마을을 떠나가고 있고, 집값은 땅으로 떨어지고 있죠.”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겐가?”

“그 누구도 처리 못한 요괴를 제 손으로 없앴습니다. 또한, 흑마법사라는 놈도 제 손으로 처리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주셔야겠습니다.”

“자네, 집 한 채의 가격이 얼마나 하는 줄은 알고 그러는건가?”

“이 마을은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마을 아닙니까? 마을을 통째로 날리시는 것이 나을지 그저 집 한 채만 넘겨주시는 게 나을지는 촌장님의 판단입니다.”

“하…….”

다이온은 허탈함에 헛웃음을 흘렸다.

살다살다 이런 헌터는 처음본다. 보상으로 아이템도 아니고 집 한 채를 달라니?

허나 막무가내라고만 볼 수도 없었다.

매일 밤마다 뱀파이어의 손에 죽는 주민만 두어 명은 됐다.

그 요괴놈의 이빨에 뜯겨죽은 주민만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

게다가 그 요괴놈에게 죽은 주민의 집은 주인없는 빈집이 되어있었다.

그 빈집 중 전세로 되어있는 집의 명의를 이전하여 시운에게 건네면 되긴 했다.

분명 이시운이 해낸 일은 촌장으로 참으로 고마운 일임은 자명했으니까.

그러나 집 한 채의 가격은 애들 장난이 아니다.

잠시의 고민을 마친 다이온이 말문을 열었다.

“그건 안되겠네.”

“그렇다면 잠시나마 이곳에 머물 집 한채를 빌려주십시오.”

“……그거야 어렵진 않지.”

“그리고 그 마법사를 처리해오면 빌려주신 집 한 채를 제게 주시면 됩니다.”

“지금 나랑 말장난이라도 하자는겐가?”

“아닙니다.”

“내가 자네에게 그 일을 맡기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그 무슨!”

다이온의 시선을 시운은 가만히 그대로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조용히 광경을 지켜보던 일행들은 이시운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미친놈아. 너같으면 퀘스트 보상으로 집을 주겠냐?’

‘이야기가 길어지네. 시운이도 다 생각이 있어서 저러는 거겠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뻔뻔한 회귀자였나.’

그들은 그렇게 각기 생각을 품고 시운의 얼굴에 눈을 두었다.

“자네들이 강하다는 건 내 인정함세. 그러나, 터무니 없는 요구일세.”

“정말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단은 알겠습니다. 촌장님, 미월 마을을 누구보다 애정하신다는 거 압니다. 촌장님께서는 제게 기회를 주셔야 할 겁니다.”

다이온은 단호한 톤으로 말하는 시운을 멍하니 바라봤다.

힘찬 두 눈.

결연에 찬 표정.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란 말인가?

그 마법사의 무서움을 모르고 이러는 것인지. 젊은 패기가 앞서서 던지는 말인지 헷갈리는 와중에 첫인상부터 너무나도 당당했던 이 헌터에 호기심을 두긴 했다.

‘음…. 만약 우리 마을에 다시 평화를 되찾아준다면야.’

잠시 말이 없던 그리온의 입술이 움직였다.

“일단 당분간 편히 머물 공간은 내어주겠네.”

“와, 넓고 생각보다 완전 괜찮은데?”

연희가 집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이온이 잠시 있으라고 빌려준 이 집은 2층짜리 독채였다.

원형 목재 테이블.

구식 냉장고와 곰가죽으로 만든 쇼파와 너저분한 벽지.

인테리어는 현계에 비하면 구식이었지만, 40평 남짓한 넉넉한 공간에 2층까지 집 한켠에 복층으로 이어진 것이 썩 괜찮았다.

“아이고! 팔,다리 삭신이야.”

쇼파에 벌러덩 누운 혜령은 시운에게 물었다.

“야. 근데 어쩌자고 촌장에게 집을 달라는 개소리를 한거냐?”

“여지를 준거지.”

“…여지?”

“바로 줄거라는 기대는 나도 애초에 없었어. 여지 하나를 심어준거지.”

“…그 영감탱이가 이런 집을 주기야 하겠냐?”

“혹시 모르지. 이 마을이 붕괴될 위기를 내가 없애주면 그럴지도.”

“푸하. 어련히도 그러겠다.”

시운의 생각은 혜령과는 달랐다.

‘매일 원룸텔 따위나 긍긍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겐 집이 필요해.’

그런 마음에서였다.

근처 여관에서 일주일을 떼우면 되지만 굳이, 숙식할 공간을 달라고 했던 것도 다이온의 마음을 굳히기 위해서였다.

‘…무언가를 내주면 다시 받아야겠다는 본능은 어느 사람이든 다 있는 법.’

‘그는 결국 그 일을 내게 맡기게 될 것이다.’

퀘스트의 보상은 수행자의 능력에 의해 변수가 생기고 그에 대한 보상도 더 커질 수 있는 것이었다.

언변. 즉 말빨이란 재능을 잘 이용하면 시장통에서 아줌마들이 분노의 몰아붙여 가격 깍아내리기! ……와 같은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도 당연한 세상의 이치 중 하나 아니겠는가.

“!”

그때. 연희가 깜짝 놀라며 눈을 가렸다. 화장실에서 나온 유석이 상의를 벗은 채 서있다.

“오?”

혜령이 유석을 바라보며 눈이 커진다.

뱃가죽을 덮어버린 식스팩. 넓은 어깨 주위 밑으로 근육질 가득한 그의 몸.

“…아, 죄송합니다. 혼자 살다보니 습관이 돼서.”

얼굴이 상기된 유석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후다닥,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그것을 본 시운은 생각했다.

‘확실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아직 유석과의 그 일로 어색한 상태다. 또한 그가 뱉은 말을 아직도 믿기가 힘들다.

‘내게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닐거야. 언제까지고 어색하게 지낼 수는 없겠지.’

유석은 옆에 두면 큰힘이 되어줄 존재임은 분명했다.

“…봤냐?”

“뭐, 뭘?”

연희는 부끄럽다는 듯 혜령에게 모른체 되물었다.

“몸 진짜 좋던데? …의외네. 저 말없는 양반한테서 저런 모습을 보게되니까.”

“언니 그래서 눈호강이라도 했다 이말이야?”

“가까이서 본 건 너잖아? 너 눈 손바닥으로 가린 척 하면서 손가락 벌린 거 다 봤는데?”

볼이 발그레진 연희는 시운을 힐끗거렸다.

“이시운 눈치는 왜 보는데?”

“…뭐?”

“장유석 몸 봤다고 내가 말하니까 바로 이시운 힐끔거리면서 눈치 봤잖아?”

“…아, 내가 언제! 언니 오늘 좀 장난이 지나치네?”

“혹시 너 쟤 좋아……읍.”

혜령의 입을 틀어막은 연희는 씩,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무언의 살기 비스무리한 것이 들어있었다.

“둘이 장난도 치고 많이 친해졌네?”

시운이 서로 엉켜있는 둘을 보고 묻자 연희가 필요이상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읍! 숨막히잖아. 갑자기 입은 왜 막고 지랄인데?”

“언니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이.”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데?”

“뭐, 아니 그니까……아 몰라! 갑자기 피곤하네. 난 쉬어야겠다. 머리가 띵하다.. 쉬러 가볼게.”

연희는 말을 더듬더니 복층 계단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이곳은 방이 다섯 개에 화장실이 두 개.

넷이서 지내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시운은 혜령이 쇼파에 나란히 앉아있다.

둘 앞의 테이블엔 캔맥 두캔이 열린 채 놓여있다.

캔맥주를 든채 혜령이 시운을 보며 물었다.

“넌 걱정 안 되냐? 촌장이 그렇게 뜸을 들인다는 건 그 마법사란 자식이 엄청 세다는 소린데.”

“시련이 큰 만큼 보상도 커지는 거니까.”

“너 센스 좋았다? 덕분에 이런 집에서 일주일간은 편하게 뒹굴 수 있겠어.”

그랬다. 이곳 마을의 여관은 혜령에겐 불편했다.

그곳은 세탁도 안한 듯 누런 침대 시트에 곰팡이 가득한 화장실.

방음 수준은 윗층의 커플이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런 곳에서 더 머물 뻔한 것을 시운 덕에 면한 셈이었다.

혜령은 턱을 괴고 시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넌 참 좋겠다.”

“뭐가?”

“남들에 비해 넘치는 재능을 가졌으니까.”

혜령의 눈에는 그랬다.

그녀가 보아온 이시운은 재능이 없으면 절대 시도조차 못할 일을 족족 해치워버렸으니.

“재능은 나만 있는 게 아니야. 누나도 마찬가지잖아.”

“난 너에 비하면…”

고개를 떨군 혜령은 아랫입술을 비집어 깨물었다.

‘제길. 내가 얘한테 지금 뭐라고 씨부리고 있는거야?’

자존심이 또 상하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시운은 가만히 그녀의 긴머리를 쓰다듬었다.

“……!”

순간! 눈이 커진 혜령은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가만히 시운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남자의 손길만 닿아도 치가 떨리는데 녀석의 손길은 이상하게 밉진 않다. 저번 때와 같이.

“괜찮아?”

“…뭐가? 야. 내 머리는 왜 쓰다듬는데?”

“힘들어 보여서.”

“…뭐?”

혜령의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운의 두 눈을 왠지 똑바로 보기가 힘들다.

저번에 시운이 자신을 안아줬을 때와 같은 상황.

“사람은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어. 저번에도 내가 말했었지?”

“…그래. 근데 갑자기 왜?”

혜령은 틱틱거렸다. 저번에 시운의 가슴팍에 안겨 자존심 상하게 질질 짜면서 위로를 받았던 일을 또 녀석이 꺼내니까 괜시리 자존심이 상하려 했고 민망하고 창피하다.

“누나는 짜증도 많이 내고 틱틱 거리지만 가끔 뭐랄까 힘들어 보이더라.”

“갑자기 뭔 소리냐. 아니거든? 새꺄.”

“…아니야?”

“어. 아닌데?”

“아니면 뭐, 다행인거고.”

시운이 씩, 웃으며 혜령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을 거두었다. 혜령은 녀석의 움직인 손을 바라봤다.

저 손길이 나쁘지 않은데. 금방 거둬버리니 아쉬운 듯 했다.

“누나 요즘 따라 자주 웃더라? 누난 웃는 모습이 꽤 예뻐.”

“……….”

입을 앙 다문 혜령의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불안해서 심장이 뛸 때야 많았다.

근데 이건 그런 류가 아니었다.

남자에게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설레임인 듯 했다.

“…그러니까 자주 웃으라고. 힘든 일 있으면 뭐든 털어놔. 언제든 들어줄게.”

“너 나한테 왜 이러는데?”

혜령이 차가운 톤으로 물었다.

“우린 동료니까.”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혜령에게 시운은 씩, 웃어주었다.

녀석의 해맑은 웃음을 보자 이상한 기분이 피어오르는 듯 했다.

“너 나 좋아하냐.”

혜령의 물음에 시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진 시운은 혜령의 진지한 눈을 보며 방금 그 말이 농담 따위가 아님을 느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한테 매번 왜 이렇게 잘해주는건데?”

“우린 동료니까. 내가 잘해주면 안되는 건가?”

시운을 보는 혜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질문에 답이나 해. 너 나 좋아하냐?”

“이성으로서?”

시운이 묻자 혜령은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으로 답했다.

뜸을 들인 시운이 짧게 말했다.

“아니.”

“그럼 그냥 좋아해주면 안 되냐... 안 되겠지?”

“…뭐?”

갑작스런 말에 시운은 얼어붙었다. 그의 눈에는 자신을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혜령이 있었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그녀의 눈.

한편.

그 광경을 복층의 복도에서 내려보고 있던 연희의 낯빛은 차갑게 굳어버렸다.

“하아!”

창피함에 절로 입에서 뱉어진 혜령의 한숨소리였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버린 채 누워있다가 머리칼을 쥐어짰다.

‘왜 그랬지? 내가 왜? 왜..’

창피함과 민망함에 전신이 찌릿거리며 터져 녹아버릴 것만 같다.

너무 쪽팔려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분명 술기운에서 한 말이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때.

몽롱한 술기운 속에서 정신과 김인애 의사가 했던 음성들이 떠올랐다.

-혜령 씨. 항상 모든 이들이 다 싫은 존재라 느껴졌잖아요? 근데 유독 그 사람만 그렇지 않게 느껴졌단 얘기죠?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쩌면 혜령 씨의 증상이 나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 사람. 혜령 씨의 내면의 무언가를 잠시나마 끄집어줬던 사람 말이에요. 그 사람과 자주 대화를 해 봐요.

트라우마를 가진 혜령의 속내를 유일하게 들어주던 그녀가 그렇게 말했었다.

‘처음이라고.’

남자에게 고백한 적도,

좋다고 추파를 던져본 적도,

안기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혜령은 우월한 외모 덕에 남자들한테 추파를 받아봤으면 받아봤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시운.’

그런 자신을 설레게 했고 한 번도 상상할 수도 해본 적도 없는 짓을 하게 했으면서 그 녀석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린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아니야. 이제 두 달도 안 남았어. 그 일을 마무리 짓고 다시 얘기하던지 하자.

애매모호한 대답!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아니면서 거절한 것 같은 뉘앙스의 대답이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똑-똑-

방문이 낮게 두들겨지는 소리에 이불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시운?

낯이 달아올랐고, 다시 가슴은 뛰었다. 설마 이 시간에 녀석이 내 방에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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