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29화 (128/278)

제 129화

꿈속의 전쟁

그녀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갔다.

테이블 위에 모락 피어나는 차를 건넨 레나는 방석에 다리를 꼬아 앉고서 시운을 바라봤다.

“헌터님이 강한 분이란 건 저도 알고는 있답니다.”

말을 마친 그녀의 표정은 불안했다. 당신이 강한 건 알지만 그런 당신도 무리라는 뉘앙스랄까.

“그 마법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 다 알려드리지요.”

그녀는 차를 입에 한모금 머금은 뒤 심호흡을 뱉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마도술로 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알려졌어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설명을 다 들은 정보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그 흑마법사라는 자는,

라파엘 신전에 신자로 신분을 세탁하고 살고 있으며.

생김새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금술을 사용해 사람에게 꿈을 심어주고.

꿈속에 영원히 속박된 인간은 그를 평생토록 노예로 사용하거나 마도술의 생체 시험으로 소모한단다.

듣던 중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 있었다.

질문했다.

“…그렇다면 라파엘이란 신전을 아예 부숴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레나는 금발 머리칼을 흔들었다.

“그럴 수는 없어요. 그 신전은 발카스 왕국의 국보로 지정된 곳이니까요.”

“그 신전에 사는 한놈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국가에서는 왜 가만히 있는거죠?”

시운의 물음에 레나의 동공에 슬픔이 서렸다.

“……저희 마을은 나라에서 손을 놔버린 마을이니까요.”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비집어 깨물었다.

어깨를 떨면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참는 듯 했다.

참 난처하고 억울할만한 상황이다.

이 나라의 왕은 대체 뭔짓거리를 하고 있는거야?

나같아도 눈물이 터질 것 같긴 하다.

“지금까지 그놈에게 당한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셀 수도 없어요.”

레나는 힘없이 말하며 그간 있었던 일을 덧붙여 말했다.

신전에 투입된 중견급 용병단이 시체더미로 발견되었고,

보상에 눈이 돌아 의뢰를 받고 신전에 돌입한 헌터들 또한 눈과 팔, 신체 몇 군데가 훼손된 채 발견됐다는 뭐, 그런 불길한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쉽지는 않겠군…….’

난이도가 있다고는 생각했으나.

듣고 보니, 이거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잃을 각오를 한 만큼 보상도 비례해서 따라오는 법이지. 도박 빼고….’

그때. 시운의 두 손 위로 레나가 손을 올려 포개며 간절한 눈으로 말했다.

“아빠는 제가 설득시킬 수 있어요. 헌터님들이 꼭 그 일을 해결해주셨으면 해요. 이대로라면 저희 마을은……”

그녀는 시운의 손등을 더욱 힘주어 잡으며 처연히 울었다.

우는 모습도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웠다.

미월 마을에서 소문난 묘령의 미녀다웠다.

“촌장님은 레나씨가 꼭 설득 시켜주시길 믿겠습니다.”

“…그거라면 걱정 마셔요.”

“단.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위험한 일이니 확실한 보상을 약속한다면 움직이겠습니다.”

“확실한 보상이요?”

그녀의 말끝이 오묘히 올라갔다.

이런 일을 고작 경험치 받자고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확고한 보상이 걸린 게 아니라면 시운도 굳이 해줄 심산은 없었다.

“어떤 보상을 원하시는 거죠?”

“저희가 머물고 있는 별채와 경험치. 두 가지면 됩니다.”

“아아….”

침음을 흘린 레나는 사색에 잠시 잠긴 듯 했다.

“미월 마을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댓가로 그 정도의 보상이면 촌장님도 손해는 아닐 겁니다.”

힘있게 덧붙였다.

잠시 후.

사색을 떨친 듯 눈을 반짝인 레나의 입술이 열렸다.

“…알겠어요. 제가 꼭 아빠를 꼭 설득시켜 볼게요.”

6일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자네들을 믿어보도록 하겠네. 부디… 몸 조심히 돌아오길 신께 기도하겠네.

다이온은 그렇게 말하고 피가 담긴 병을 주었다.

사슴의 피였다.

라파엘 신전은 공물로 사슴의 피를 바쳐야 일반인도 출입이 가능하다는 관례 때문이었다.

“들어가기가 상당히 쫌 꺼려지네.”

혜령이 앞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들의 시야로 직사각형 형태의 아주 큰 신전이 보였다.

신전은 하얀 기둥으로 뒤덮여 그 기둥에는 천사와 악마가 서로를 물어뜯는 석상이 박혀있고,

입구에는 고대 언어가 적힌 석판이 보였다.

“…신 라파엘을 모시는 영롱한 곳이며 현실에 치인 이방자들에게 꿈이란 세계를 내려주겠노라.”

연희가 석판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언어를 읽었다.

“너 이계 고대어도 읽을 줄 아냐?”

“역사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래? 근데 너 말투가 좀 딱딱하다? 오늘 좀 침울하냐?”

“아니야.”

연희는 혜령에게 차갑게 대꾸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휴- 사실 이 신전에 대해 책으로 접했었어. 크리스티앙이라는 흑마도사가 신자의 탈을 쓰고 이곳에 은신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라고.”

연희는 동공을 위로 올려떠서 읽었던 책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흑마도사 크리스티앙은 타인의 단전의 기운을 막아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며 꿈속에 영혼을 봉인한다고 책에 나와있었어.”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그렇다면 우리의 스킬도 먹통 되는 거 아니야?”

혜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연희는 혜령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시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정말 저 신전으로 들어갈 생각이지?”

“겁나?”

“……….”

시운은 유석과 헤령 연희를 살피며 말했다.

“두려운 사람은 빠져도 좋다. 빠질 사람은 지금 말해.”

“여기까지 와서?”

“저는…….”

“아무래도 느낌이 많이 불길해.”

시운은 힘주어 말했다.

“빠질 사람은 지금 빠져. 대신 보상은 들어간 사람만의 몫인거 알지?”

“당연하지! 쫄보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내빼겠냐.”

혜령이 등에 맨 활을 빼내들며 기세를 보였다.

“저도 갑니다.”

유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연희만은 불안해 보였다.

시운은 그런 연희에게 말했다.

“겁 먹지마. 내가 지켜줄게. 가자.”

“그래…. 알겠어.”

나직한 그의 말은 연희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팟!

소환된 일미호가 시운에게 고개를 쳐들었다.

“뭐냐? 캉!”

“저쪽 앞에 신전이 보이지? 어떤 기운이 느껴지는지 말해줘.”

일미호는 신전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멈췄다.

“……불길하다. 여긴 내가 들어가지 못한다.”

항상 씩씩했던 일미호가 겁지린 낯빛으로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네가 동행해줘야 해. 그래야 우리가 찾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

“안 된다! 난 못 들어간다!”

쉭!

일미호는 제멋대로 사라져버렸다.

지속 시간이 끝나지 않고 이렇게 사라진 것은 처음이었다.

“젠장. 생각보다 까다롭겠군.”

시운은 맹인의 감각을 시전했다.

그리고 신전 입구로 걸어갔다.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입구 저 너머로 아주 작게 속삭이는 소리.

그리고 처음 맡아보는 비릿한 냄새가 느껴졌다.

그때.

뒤편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방인이오?”

하얀 사제복에 얼굴을 후드로 가린 노파였다.

노파의 흰자위 밖에 없는 한쪽 눈은 섬뜩했다.

시운은 사슴의 피가 담긴 병을 꺼내었다.

“공물은 가져왔습니다. 신께 기도를 올리고 가려고 합니다.”

“…뭐, 공물을 가져왔다니 막을 순 없겠구려. 들어가는 건 그대들 마음이지만 권하진 않겠소.”

노파는 그 말을 남기고 지나갔다.

“잘라 내었느냐.”

흉터로 짓뭉개진 여성이 신자에게 물었다.

“분부를 따랐습니다.”

신자는 감정없는 목소리로 답하며 호리병을 내밀었다.

받아든 여성은 호리병 안을 눈으로 뜯어보았다.

그 안은 적출된 안구가 물속에 떠다녔다.

여성은 입꼬리를 비틀며 발을 앞으로 내딛자 신자들이 주위로 퍼져 길을 만든다.

걷던 여성이 멈춰서 철문을 열자 방 한칸만한 공간이 펼쳐진다.

“……사, 살려줘! 귀신이 날 따라와…….”

온 몸이 쇠사슬에 묶인 채 철제의자에 앉은 남자가 읆조렸다.

그의 감은 눈꺼풀 사이로 피가 흘렀다.

여성은 그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네가 가장 무서워하던 것이 고작 귀신이었더냐?”

사내에게 묻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발 꿈에서 꺼내달라고 악을 내지른다.

“이방인이 신전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신자 하나가 다가와 일정한 톤으로 말했다. 마치 영혼이 빠진 로봇처럼 말이다.

“그거 잘 됐군. 머릿수는?”

“네 명으로 간주됩니다.”

“시험해볼 것이 많았는데 참 잘 됐구나.”

여성은 사백안의 눈을 희게 뜨며 웃는 듯 했다.

방금 보고를 했던 신자는 표정없는 얼굴로 생각했다.

‘……이곳에 발을 딛이면 안 돼!’

신전 내부는 음침했다.

귀신이나 유령이 갑자기 튀어나올 정도로.

곳곳에 달린 녹슨 전등은 희미하게 그 빛을 뿜고 있다.

고대 괴수의 형상을 한 석상 앞에 멈췄다.

아래를 내다보았다.

발 주위로 체크무늬 바닥이 펼쳐져 있다.

“신자들이 한 명도 보이질 않는데?”

혜령이 두리번 거렸다.

신전의 내부는 굉장히 넓었다.

게다가 끝없이 펼쳐진 복도와 수많은 방들이 있는 것에 비해 신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스킬이 사용되지 않는군요.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석이 말했다.

“…뭐?”

“정말요?”

그의 말에 각자 스킬을 발동시켰다.

[신성력에 의해 발동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망할 알람소리만 들렸다.

“하! 진짜 스킬 사용불가라 뜨네.”

입술을 움직여본 연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크리스티앙은 사람들의 마력을 금한다고 했었어. 책에서 본 그대로야.”

차앙!

시운은 불길함에 곧바로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면…’

무력으로 그놈을 상대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시운의 날카로운 눈으로 바닥의 발자국 흔적이 들어온다.

“발자국을 발견했다.”

“…발자국? 어디?”

시운의 말에 모두가 바닥을 두리번 거렸으나 찾질 못했단 듯 갸웃거린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럴 터였다.

“내 눈에는 보여. 날 따라와. 이동경로를 파악했어.”

“확실해?”

고개를 끄덕인 시운은 앞으로 걸어갔다. 각자 무기를 든 일행은 사방을 경계하며 그를 따랐다.

쭉- 펼쳐진 긴 통로를 지나자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이 보였다.

툭. 시운이 멈췄다.

“여기냐?”

묻는 혜령에게 입술에 검지를 올리며 입을 닫게 한 뒤.

시운은 바닥을 자세히 살폈다.

‘이곳에 신자들이 있다.’

파직! 활시위가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혜령이 다가오는 신자를 향해 활을 겨눈 채였다.

“지금 뭐 하는 거에요!”

백색 사제복을 입은 신자가 화를 내며 걸어왔다.

“…쳇.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있어야지.”

혜령은 신자임을 알아보고 활을 내렸다.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거에요?”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신자를 보던 시운의 눈이 커졌다!

‘…혈흔?’

신자의 손바닥에 옅게 혈흔이 묻어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 멈춰요!”

시운이 칼날을 앞으로 겨누며 소리치자 신자가 멈췄다.

“이것들 봐요! 자꾸 왜 사람에게 무기를 들이미는 건데요?”

“오른손에 묻은 피는 뭡니까?”

“무슨 소리에요?”

시운의 물음에 신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의아해 했다.

당장에 하체에 힘을 주어 튀어나가 목을 벨 태세를 마친 시운.

“피는 뭐냐고 물었…”

“헉.”

“으억….”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시운 뿐만 아니라 모두가 무기를 떨어뜨린 채 바닥에 늘어졌다.

“제, 제기……랄.”

“아….”

“으으윽.”

전신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으며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몽롱해지는 기분과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신자의 얼굴이 뿌옇게 보였다.

덜컹! 덜컹!

“……!”

시운은 황급히 눈을 떴다.

뭐지? 덜컹이는 소리는 놀랍게도 지하철이었다.

“어떻게 된……?”

혼자 중얼거리는 시운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봤다.

이곳은 지하철 안의 풍경.

시운은 두 손을 내밀어 입고 있는 옷을 살폈다.

‘정장?’

입고 있던 옷은 회사원 차림의 옷이었다.

설마? 이곳은 꿈속인가?

“어제 너 현석이랑 사귀기로 한 거 맞아? 푸하하! 너 그렇게 밀당하더니 결국 받았구나?”

핸드폰을 귀에 건채 옆에서 통화하는 여성의 목소리다.

꿈인 것 같다. 그렇다면?

톡톡. 볼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볼이 두들겨지는 감각이 생생히 느껴진다.

‘흑마도사 그놈에게 당한거란 거냐.’

그놈은 사람에게 꿈을 심어주고 조종한다는 걸 듣긴 했다.

근데. 이렇게 힘 한 번 못 써보고 꿈속에 빠질 줄이야.

‘맹인의 감각.’

속으로 시동어를 걸었으나 발동되지 않는 걸로 보아 스킬 또한 시전이 불가한 듯 하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넥타이 차림으로 출근하는 회사원. 교복을 입은 학생들.

사람들만 보일 뿐이다.

더러럭! 지하철 옆칸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운아!”

정연희였다.

놀라서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희야. 너도 옆칸에 있었던 거야?”

“응. 우리 모두 연결된 꿈속에 빠진 것 같아.”

연희도 상황을 인지한 듯 하다.

-이번 역은 교대 역. 교대 역입니다.

지하철 안내원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방도를 찾아야 했다.

잘못했다간 영영 이 꿈속에 갇히고 말리라. 유석과 혜령도 이 지하철 안에 있는 것일까?

“앗! 잠깐!”

시운 옆자리에 앉은 연희가 고개를 화들짝 들었다.

“방법이라도 찾았어?”

“책에서 본 구절이 기억났어. 근데 그게 말이야….”

연희의 말끝이 불길하게도 많이 떨렸다. 아마 이건 그 마법사놈이 구현한 꿈속임이 틀림없다.

이어진 연희의 말은 시운의 뇌리를 흔들어버렸다.

“…책에서 본 구절 중에 이런 말이 있었어. 마도사 크리스티앙은 강한 사람에게 이끌린다고 했어. 그리고 그에게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꿈속에 집어넣는다고….”

“…뭐라고?”

강한 사람에 이끌린다면 넷 중 분명 나일 터.

게다가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꿈속에 집어넣는다고?

“씨… 씨팔.”

시운의 입에서 욕지기가 나왔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래?”

“좀비.”

“뭐?”

연희는 힘빠진 시운의 낯을 보며 물었다.

“…좀비라고. 내가 가장 치를 떠는 게.”

“뭐? 설마….”

콰앙!

“어머?”

“지하철이 갑자기 왜 멈췄지?”

“사고 난 거 아니에요?”

굉음 소리.

갑자기 멈춘 지하철.

지하철 속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그때였다.

-…안내의 말씀 드립니다. 갑작스런 사정으로 인해 열차의 운행이 잠시 중단됩니다. 이 점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부 스피커로 지하철 운행기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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