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30화 (129/278)

제 130화

꿈속의 전쟁 (2)

잘 나가던 지하철이 운행을 멈췄다.지하철 안 사람들은 잠깐의 혼란을 집어먹은 듯 귀에 꽂아둔 이어폰을 빼고 상황을 살피거나,

통화를 하던 아무개에게 “아! 갑자기 지하철 멈췄다고. 지각하면 큰일나는데.” 라며 볼멘 소리를 늘어놓는다.

나는 곧 불길한 상황이 일어날 것임을 뇌로 직감 중이다.

우리들은 흑마법사라는 놈을 잡으러 왔다가 놈의 괴이한 능력에 빠진 상태다.

이곳은 꿈속.

내가 바로 옆에 앉아서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니킥을 꽂아버려도 경찰서에 잡혀갈 일이 없는 꿈속이다.

뭐……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전과자 신세를 면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지만.

놈이 구현한 이 꿈속에서 어쨌든 탈출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일단 누나하고 유석씨를 찾아봐야 해.”

내가 연희에게 말했다.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근데 지하철 저 끝칸부터 여기까지 내가 다 둘러봤는데 없었어.”

“없었다고?”

“응….”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측에 보이는 문 하나는 바로 운행 기사실과 연결되는 칸이었다.

그 뜻은 이곳이 첫째 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지하철 안에는 유석과 혜령이 없다는 팩트가 도출된다.

콰앙!

“어머! 깜짝이야.”

“방금 소리는 뭐죠?”

“아휴…. 심장 놀래라.”

순간. 굉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일이 시작될 모양이다. 난 연희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는 불안이 깃든 두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신호를 받았다.

“아휴! 바빠 죽겠고만 갑자기 왜 멈춘거여?!”

사투리를 걸쭉이 늘어놓는 남자 하나가 일어나며 볼멘을 터뜨렸고,

그가 뚜벅뚜벅- 걸어가 기사실로 향한다.

아무래도 상황을 살피려는 모양이다.

저런 오지라퍼는 영화든 소설 속이든 반드시 존재한다.

그리고 가장 처음으로 꼴사납게 죽는다.

‘…죽던 말던 상관없다.’

난 이렇게 생각했다.

여긴 꿈속이고 이곳의 사람들은 허상일 뿐이다. 죽던 말던 알 바는 아니잖아?

다만 저 남자가 기사실로 가서 살핀 뒤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죽어주면 그걸로 족할 뿐이다.

더럭!

“아아아…….”

기사실에 다녀온 남자의 얼굴은 창백했다. 시체라도 본 사람마냥.

“…저기요! 기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정신이 나간마냥 멍한 눈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무릎을 벌벌 떨었다.

“이건 꿈일거야….”

“저기요? 기사 분이 뭐라고 했냐니까요?”

여성의 두 번째 물음은 출근이 늦어져 예민해진 듯 말끝이 앙칼지게 올라갔다.

“사, 사람이 죽어있었소. 그것도 목이 뜯긴 채로.”

“…뭐라구요?”

남자를 보던 여성의 눈은 이제 미친놈을 보듯 변모해 있었다.

내 왼손이 따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했는지 연희가 내 손을 잡고 떨었다.

쾅!쾅! 콰앙!

세 번의 굉음과 함께 지하철 안 시민들의 눈은 한곳으로 모였다. 기사실로 연결되는 문이 두들겨지는 소리인데. 그 문의 유리에는 썩어문드러진 남자가 피칠갑이 된 채 아가리를 벌려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끄아악!!”

“뭐, 뭐야? 저거?”

혼비백산이 된 시민들은 너도나도 일어나 문에서 멀찌감치 물러났다.

쾅! 콰앙!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계속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나는 육중해서 힘 좀 쓸 것 같은 사내 하나를 보며 말했다.

“문고리를 어서 잡으세요!”

“……예?”

“문고리를 잡고 버티고 있어야 합니다!”

마침. 그 사내가 문 바로 근처에 앉아있었으니 한 말이었다.

사실 내가 문고리를 잡고 있어도 되지만 아무래도 저 존재에게 한번 물렸다간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좀비에게 물리면 ………나도 그렇게 변해버릴 테니까.

“…스마트폰도 안 터져요!”

경찰에 신고를 하려던 여성이 떨며 말했다.

쾅!

무언가가 또 문의 유리를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사람들은 죄다 겁먹은 눈으로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앳되 보이는 학생 한명은 오늘 시험을 볼 영단어장을 꼬옥 잡은 채 울먹였다.

“저놈이 이쪽으로 넘어오게 하면 안 된다고요! 문고리를 잡고 버티고 있어요! 어서!”

내가 방금 그 덩치에게 소리를 질렀다. 사람의 심리라를 이용했다. 가령 수많은 사람이 있다 치면 사람이 다쳤을 때 다친 사람이 도와줘요! 라고 사람들에게 외치면 타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외면하거나, 다른 이에게 그 일을 떠넘긴다.

그러나 다친 사람이 한 사람을 콕, 집어서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기 힘든 법. 그게 사람의 심리다.

“아, 알겠어요!”

남자는 문고리를 잡고 자세를 낮추면서도 벌벌 떠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문고리에서 손을 놓치면 안 돼요! 세게 잡고 있으란 말입니다.”

나는 남자에게 강요했고, 남자는 불안한 눈으로 끄덕였다.

“무, 문이 안 열려요! 누가 좀 힘을 보태주세요!”

뒷칸으로 혼자 도망가려던 회사원 복장의 남성이 반대편 칸 문고리를 이리저리 당기며 소리쳤다.

그때!

카아악!

열린 뒷칸 틈새에서 뻗어나온 손이 회사원 남성의 팔을 잡아 끌고 그대로 당겼다.

쾅!

순식간에 뒷칸의 문이 닫혔고.

“아아아아악!!”

방금 그 회사원의 비명이 서늘하게 들려왔다.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이야….”

“…방금 비명 소리였죠? 저 칸으로 사람이 넘어갔고?”

“난 몰라!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아아….”

나는 앞칸에서 문고리를 잡고 버팅기는 남자에게 눈짓을 주며 문고리를 잘 잡고 있으라 신호를 준 뒤에 뒤칸으로 이동해 문고리를 잡았다.

꾸욱.

쾅!

“끄허!”

순간. 심장이 떨어져 주저앉을 뻔 했다. 아가리가 찢어진 웬놈이 문 하나를 두고 유리에 헤딩을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놈의 흉측한 몰골을 정면으로 봐버렸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너무 현실적이고 생생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뱀처럼 흘러 엉덩이에 맺힐 정도로.

모든 사람들은 공황에 빠졌다.

귀를 막고 주저 앉아버렸거나. 울거나. 떨며 그 광경을 지켜보거나.

그 순간.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는 앞칸의 소리였다.

문고리를 힘껏 붙잡던 남자의 머리에 유리조각이 날아들자 남자는 문고리에서 손을 넣고 머리를 감싸쥐며 신음을 내뱉었다.

콰직! 앞칸의 문이 열리고 나온 무언가가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더니 그대로 얼굴을 튕겨내자 남자의 살 토막이 핏물과 함께 쏟아졌다.

“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누가 여기서 좀 꺼내주세요!!”

“엄마! 아빠!! 나 무서워…….”

젠장할. 안타깝게도 내 지시를 받은 남자는 비명횡사 해버렸고. 저 앞칸에 있던 놈이 이리로 넘어올 듯 하다.

연희가 쪼르르 달려와 내가 잡고 있던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힘을 보태려는 모양인데.

“……마법도 사용할 수 없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아.”

연희가 나에게 하소연 했다.

난 내 눈으로 사방을 단숨에 훑고서 말했다.

“끄으! 난 문고리를 잡고 있어야 하니까 연희 너는 저기서 망치를 가져와.”

“…저 손망치 말이야?”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지하철의 내리는 문마다 위에 비상용 손전등과 손망치가 있다는 것이다.

연희는 언제 열릴지 모르는 앞칸의 문을 경계하며 달려나가 손망치를 가져와 내게 내민다.

“잠깐 가지고 있어.”

쾅!

크에에에….

내가 잡고 있는 문으로 큰 진동이 느껴졌다. 아마도 언데드인지 좀비인지로 변한 놈이 신경질적으로 내려친 것이겠지.

“…젊은 청년들! 어떻게 좀 해봐…….”

한 노인이 손을 떨며 애원했다. 아뿔싸! 이거 큰일이다.

난 앞칸 앞에서 물려죽은 남자로 눈을 돌렸다.

턱살과 목덜미가 다 뜯긴채, 허연 목뼈를 드러낸 채 누워있는 남자는 분명 벌떡 일어날 것이고.

우릴 공격할 것이다.

“…저기 하얀 모자 쓴 분!”

“…예, 저요?”

난 모자를 쓴 남자를 콕 집어서 불렀다. 그러자 어버버하게 대답한다.

“부탁합니다! 앞칸의 문고리를 잡고 놈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세요!”

“…제가 말입니까?”

“지금 나도 이렇게 잡고 있잖아요! 젊은 남자들이 움직여야 할 것 아닙니까?”

“그, 그게….”

“다 죽게 둘 겁니까?”

내가 남자에게 쏘아붙이자 남자도 여간 겁을 먹었는지 움직이지도 못했다.

“저 청년 말이 맞어. 자네가 좀 가서 붙잡고 있게!”

“…그래요. 여긴 아이들하고 어르신, 여자 밖에 없잖아요? 남자들이 움직여야죠.”

…나의 쏘아붙임에 시민 몇이 거들어 힘을 붙여준다.

그제서야 하얀 모자는 한숨을 꾸역 쉬며 억지로 앞칸으로 이동해 문고리를 잡으려다가 시체로 덩그러니 누운 남자를 보며 멈칫, 한 채 떤다.

“죽어있는 사람 신경 끄고 문고리 잡으라고요!”

내가 고함을 치자 하얀 모자는 모자까지 벗고 필사적으로 문고리에 손을 올린다.

그가 울상을 짓는 얼굴은 처량할 정도였다.

저 모자에게는 미안하다. 저 모자는 곧 죽을 것이다. 방금 물어 뜯긴 남자에게.

시간을 벌 목적으로 저 남자를 잡고 있게 하라고 시킨 것이다.

좀비인지 괴수인지 하는 놈에게 뜯겨 죽은 시체가 얼마 만에 부활하여 다시 살아나는지 시간도 체크할 겸.

“핸드폰이 먹통이야…….”

“…저 피흘리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에요? 테러범들인가요?”

“저도 모르겠어요.”

쾅! 또 한 번의 진동이 내 몸을 때려박았다. 문 너머에 있던 개새끼가 또 문을 주먹질한 모양이다.

“…망치 줘봐.”

“조심해, 시운아.”

왼손으로는 문고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손망치를 잡아들었다.

…나에겐 남들보다 압도적인 오른손의 힘과 눈이 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괜히 나대다가 저 좀비에게 물어뜯기고 감염이 돼 봐라.

회귀고, 뭐고 이 꿈속에서 갇힌 채 내 귀한 세 번째 인생은 끝나고 만단 말이다.

“뒤로 물러나.”

내 말에 연희가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고개를 돌려 시체간 된 남자를 살폈다. 보인다. 지하철 맨바닥에 뉘인 두 다리가 꿈틀거리는 것이.

하얀 모자를 썼던 남자는 기특하게도 문고리를 두 손으로 충실히 잡고 있다. 다만 두려움을 못 이기고 눈을 감고 있다.

미안하지만 넌 ……곧 죽어. 당신이 물어뜯겨 죽는 시간이 내가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움직일 시간을 벌어주니까. 좀만 고생하다 죽어줘.

나는 그대로 일어나서 문고리를 비틀어 당긴 뒤에 앞에 있던 놈의 머리통을 망치로 내려쳤다!

더러럭!

망치질 후 곧바로 문을 닫았다.

내 망치질 맛을 본 놈은 머리통이 터진 채 쓰러진 듯 하다.

곧바로 문을 닫은 이유는 선공 후 놈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한 번 물리면 좆 되니까.

“…저 사람 좀 봐요.”

“……뭐하는 거에요?”

“보면 몰라요? 싸우고 있는 거잖아요.”

“망치로 뭔가를 내리쳤어, 저 남자.”

뒤편에서 사람들이 경악을 하며 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주제에 뭘 궁시렁 거립니까! 정 답답하면 직접 도와들 주시던지?”

나는 좁힌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한마디 뱉어주었다.

내가 뱉은 말에 그들은 모두 입을 조용히 닫았다.

“…내가 도울 게 없을까?”

연희가 물었다. 난 망치 표면에 묻은 피를 바닥에 툭툭,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 손전등 하나만 챙겨와줘.”

“…응!”

연희는 내 말에 다시 움직여 출구문 위에 걸린 비상 손전등을 가지고 왔다.

“우, 움직여요! 사람이 움직인다고요!”

하얀 모자가 바로 앞에서 꿈틀거리는 시체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기겁한 눈으로 그 시체를 보며 입을 벌렸다.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

연희가 시체를 힐끗 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그녀도 아는 듯 했다. 저 시체가 곧 어떤 일을 벌일지.

타타탁! 쿵!

그대로 뛰어가 망치로 임산부석의 유리창을 찍었다.

쿵! 쿵! 쿠웅! 쿠우웅!

신들린 내 망치질에 유리창이 갈라지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난 겉옷을 벗어 오른손을 동여맨 뒤에 유리창 주위에 쏟아진 파편들을 치워냈다.

연희는 오목한 손으로 뒷칸의 문고리를 잡은 채 나를 바라봤다.

“끄으아악!!!”

그때였다. 세상 모든 통증을 다 담은 듯한 비명 소리는 하얀 모자가 벌떡 일어난 시체에게 얼굴을 뜯기며 질러뱉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경악을 하며 일어서서 내 주위로 모이기 시작했다.

살점을 꾸역꾸역 씹은 시체는 몸을 기괴하게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저리 꺼져!! 오지마! 오지말란 말이야. 제발!”

“망치! 망치로 저걸 내리쳐야 해….”

“우리한테 온다….”

난 연희에게 내가 뚫어버린 유리창을 가리키며 다급히 말했다.

“저 뚫린 공간으로 나가! 어서!”

연희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움직여서 창문에 걸터 앉고 한 번 더 나를 바라봤다.

“…이곳으로?”

“시간이 없어! 어서!”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하철 밖 플랫폼으로 몸을 던졌다.

내 주변으로 몰린 인파는 내 행동 반경에 장애를 심어주었다.

부웅!

“끄억-.”

난 내 앞의 길을 막고 있던 20대 여성의 머리통을 망치로 후려쳤다.

그녀는 눈을 뜬채로 풀썩 쓰러졌다.

난 그대로 그녀를 들어올려 걸어오는 시체에게 던져버렸다.

시체는 순간 눈빛이 변해 내가 던져준 여성의 가슴살을 물어뜯었다.

시간을 벌 목적이었다. 길막도 짜증났고.

유감스럽게도 이 여자는 방금 하얀 모자에게“이럴 땐 남자들이 먼저 나서야죠!”라고 몰아붙이던 여자였다.

“미쳤어!! 방금 당신이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노인이 내 멱살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난 한손으로 망치를 들어올린 채 노인을 노려봤다.

그리고 말했다.

“…시간을 벌어야 했을 뿐입니다.”

내가 지금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이들은 사람이지만 허상 속 캐릭터에 불과했다. 내가 사는 것이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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