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1화
꿈속의 전쟁 (3)
“젊은 친구가 꼬박꼬박 말대꾸를……”
노인의 말은 끝맺지 못했다. 다른 존재가 된 하얀 모자가 달려왔음에 내가 노인을 그쪽으로 밀어버렸기 때문.
눈이 돌아간 하얀 모자가 엉켜붙은 노인의 탄력없는 살점을 물어씹는 동안 나는 창문을 넘어 터널 밖으로 뛰어내렸다.
어둠이 가득 내려앉은 긴 터널이 보인다. 손전등을 킨 연희는 앞을 그대로 비췄다. 나는 그녀와 지하철과 터널 벽 사이의 공간을 헤집고 그대로 걸었다.
“너무 좁아….”
연희의 말이 맞았다. 지하철과 터널 벽의 틈새는 굉장히 좁았다. 벽에 등을 쫙 붙이고 움직여야 할 정도였으니.
전등 하나 비춰진 지하철 안은 다른 존재로 변이한 것들과 사람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고약한 비명소리와 함께 시민들이 하나. 둘. 처참히 죽어가는 광경을 움직이며 바라봐야 했다.
꿈이라기엔 지랄맞게도 생생하다.
게다가 방금 여성의 두개골을 으깨버렸을 때의 감각은 또 어떠냐면.
손끝이 찌릿할 정도로 골을 부서뜨리는 그 감각은 온전히 현실과 같았다. 꿈이라지만 살인을 해본 첫 경험이었다.
운행을 멈춘 지하철을 지나자 쭉- 펼쳐진 원형 터널의 통로가 이어졌다.
탁한 공기에 칙칙한 냄새.
쥐새끼 한 마리 없는 흑색 터널을 보는 눈이 몽롱해질 정도로 공허했다.
쿵. 쿵.
터널 위에서 소름돋는 굉음 소리가 들려왔다.
지상에서 나는 소리 같다.
설마. 저 지상 위의 상황이 이곳 지하보다도 심각하단 건가?
난 잠시 멈추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네모난 것이 손 끝에 닿는 느낌에 꺼내보니 핸드폰이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인데?”
어둠을 헤집는 폰 액정빛이 연희의 얼굴에 쏟아져 환히 비췄다. 그녀는 의문의 찬 눈으로 날 보았다.
난 만지작거리던 폰을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폰 속에 뜬 기사를 읽어갔다.
“…사람의 살코기를 먹고 바이러스를 옮기는 변종 생물체가 전국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읽은 기사는 이곳의 시점으로 일주일 전의 날짜에 쏟아진 기사였고.
“…이 생체 병기들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추측되며 당국은 현 시점으로 진돗개 1등급을 발령하였습니다.”
진돗개 1등급.
침투한 적의 흔적을 발견했거나 대공 용의점이 확실시 판단 되었을 때 내리는 최고 경계태세를 뜻한다.
그 뜻은 지상은 이미 불바다로 변하고 있단 사실이다.
그럼 방금 터널 천장을 두드렸던 굉음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정말 아득한 상황이야….”
연희가 힘없이 말했다. 일단 좀비인지 변종인지 하는 것들과 첫 조우에서 무사히 탈출하긴 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참 지랄맞은 꿈속이네. 크리스티앙이라고 했지?”
“응. 읽었던 역사학 서적의 다른 구절을 떠오리려 해도 생각이 안 나. 꿈속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적혀있지 않았던 것 같아.”
피로한 심신을 쉴 겸 터널에 앉아서 잠시 고민을 해봤다.
어쨌거나 이곳은 놈이 마력을 구현하여 펼친 세상 속이다.
이 꿈속의 스케일이 얼마나 크던 상황이 지옥이던간에 놈의 마력은 무한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놈의 마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버틸 수 밖에 없단 결론이 선다.
“상태창의 스탯이 여기선 적용이 되질 않아.”
내가 말했다. 연희도 수긍하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상태창을 띄울 수는 없지만 터널을 걸어보고 조금만 움직여보니 상태창의 스탯이 적용이 되지 않는단 건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 몸은 현계의 몸상태 그대로야…….”
오크 백마리도 때려잡던 내가 한마디로 좀비 한 마리도 겨우 상대할까 말까 하는 그런 상태란 뜻이다.
“제기랄…. 온다.”
“온다고? 뭐가?”
“시체들 말이야.”
내 말에 연희가 엉덩이를 들고 일어났다. 분명 내 눈으로 저 멀리서 좀비로 추정되는 몇 놈이 틈새를 비집으며 이곳으로 오고 있음이 보인 것이다.
팔 하나 없는 소녀. 얼굴 반이 뜯겨나간 남성. 옷이 걸레짝이 된 아저씨. 총 셋이었다.
“…어서 움직이자.”
걸음을 재촉해 터널을 가로질러 도착한 플랫폼의 벽기둥에 붙은 문구였다.
손망치 하나를 주머니에 넣은 상태인데 불안하다. 이까짓 무기로 놈들과 맞닥뜨린다면 그대로 요단강 건너는 거다.
칼 하나만 있어도 좋을텐데….
비록 현계의 몸뚱이긴 하지만 헌터의 감각은 그대로기 때문에 어찌저찌 해볼 수는 있을 텐데 말이다.
크으으으….
크어…….
터널 통로에서 낮은 괴성이 들려왔다. 아마 지하철에서 죽었던 시체들 중 하나일 것이다.
연희와 나는 말한마디 않고 숨죽인 채로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하얀 조명의 빛으로 내려앉은 서초역 본관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의 시멘트는 온통 뿌려진 혈흔이 말라가고 있었다. 흉측히 잘려나간 다리 하나가 보였다.
아마 굵기로 보아 남성의 다리로 추정된다.
“으으….”
진풍경을 본 연희는 치를 떨었다. 그때! 불규칙적인 발걸음 소리를 듣고 나는 연희와 함께 벽 뒤에 몸을 숨겼다.
“다, 다가오지마!”
땀범벅의 중년 남성이 목이 꺽인 채 쫓아오는 시체에게 도망치다가 철푸덕! 넘어졌다.
“씨발! 저리 가라고 괴물 새꺄!! 제에발!”
남성은 울부짖으며 손에 든 우산을 펴서 놈의 시야를 막으려 했으나 우산을 그대로 찢어버리고 남성의 가슴팍에 올라탄 시체는 남성의 안면을 그대로 물어뜯었다.
고통섞인 남성의 비명이 처연히 이어졌다.
크르?
놈이 살코기를 씹다가 우리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
난 연희를 안고 기둥 벽뒤에서 숨조차 참았다. 불안하다. 저놈의 몰골은 내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으니.
턱. 턱.
X됐다.
놈이 두 팔을 늘어뜨리며 우리쪽으로 다가온다.
놈이 어떻게 우리를 발견한거지? 분명 놈의 검은 동공은 우리에게향하질 않았다. 혹시 후각?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내 가슴팍에 얼굴은 묻은 연희의 눈이 점점 커졌다.
연희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제스처를 취해준 뒤 손망치를 꽉 쥐었다. 이걸로 될까? 만약 한 번 물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끝이다.
터벅. 턱!
킁? 킁킁!
………놈이 우리가 기댄 기둥 바로 앞에서 콧구멍을 움직인다.
하체가 벌벌 떨려온다.
카아아아!
우릴 발견하고 벌린 아가리를 들이미는 놈에게 마구잡이로 망치를 휘둘렀다.
퍽! 퍼억!
카아악! 카아!
젠장! 놈의 면상을 망치로 아무리 때려도 뒈지질 않는다. 놈의 면상만 뭉개질 뿐. 놈은 쉬지 않고 달려들었다.
놈이 뻗은 팔을 망치로 찍었다. 팔이 꺽인 놈이 비틀거렸다.
퍽! 놈의 가슴팍을 차서 넘어뜨렸다.
곧바로 일어나려던 놈의 관자놀이를 망치로 신속히 내리찍었다.
망치질을 쉬질 않았다.
죽기 싫어서 미친놈처럼 난 망치를 움직였고.
놈의 눈덩이가 터졌고. 두 손으로 망치를 쥐고 있는 힘껏 놈의 이마를 내리찍었다.
파직!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놈의 이마에서 피와 하얀 뇌수가 섞여 흘렀다.
“뒈져라, 좀. 좀!”
퍽! 막판 단 한 번의 망치질에 놈의 몸은 늘어졌다.
놈의 갈비뼈가 움직이지 않음에 호흡이 멎은 것을 확인한 후.
“하아….”
긴장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망치의 손잡이가 부서져 떨어졌다.
“괜찮아?”
연희가 날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자기가 도움은 안 되고 짐만 된다는 눈치다.
곧이어 지상으로 이어진 다른 출구에서 계단을 처밟아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도 안전하지 않다.
화장실 쪽에서 몇 놈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개판이다.
덩달아 우리가 올라왔던 터널 쪽 계단으로 몇 놈이 올라온다.
이곳에 숨을 곳도 없다.
“지상으로 가자.”
난 연희의 손을 이끌고 그대로 뛰었다.
어떤 상황일지 파악조차 되지 않은 지상을 향해.
여긴 편의점 안이다.
피묻은 짱돌을 집은 내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다.
내 앞으로 벽에 터진 머리를 기대 늘어진 시체가 있다.
유니폼을 입은 채 죽은 이 시체는 내가 만든 작품이다.
“…이 전쟁통에 도망도 안 가고 바코드를 찍고 있었냐.”
난 말 없는 시체에게 말했다. 고된 알바 생활을 하면서 이런 개판 상황에서 편의점을 지키고 있다 변이된 시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편의점의 문을 닫아 걸어잠구고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진격하다 멈춘 탱크. 충돌한 채 찌그러진 차량들. 폭격으로 허물어 무너진 건물의 잔해. 곳곳에 죽어있는 시체들까지.
지상 또한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나와 연희는 편의점 진열대에서 음식과 음료를 집어 입에 털어넣었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배고픈 건 배고픈 거였다.
유통기한은 살피지도 않았다. 설마 상한 삼각김밥을 처먹고 배탈이 나는 엿같은 상황까지 일어나기야 하겠냐는 마음이다.
“벌써 다섯 시간이 지났어.”
연희가 시계를 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다섯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빌어먹을 꿈속에서 깨지 않고 있다.
나는 진열대에서 30센티 과도의 포장지를 뜯고 손에 쥐었다.
이거라면 망치와 짱돌보다 쓸만할 것 같다. 스탯 보정이 없는 상태라지만 칼 하나 쥐고 수많은 괴물과 싸워 익힌 헌터의 감각을 믿는다.
“…언니와 유석씨는 우리 꿈속에는 없는 것 같아.”
“둘씩 분리된 건가.”
혜령과 유석도 우리와 같은 신세일 터.
둘 또한 우리처럼 쌩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고. 걱정은 되지만 난 그 둘을 믿는다.
차분하고 분석력이 뛰어난 장유석과 집중력과 생존력이 강한 혜령이니 그 둘 또한 잘 해쳐나가고 있겠지.
“죽으면 영영 이 꿈속에 갇히고 말거야.”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연희가 몸을 일으켜 편의점의 밝히는 전등을 소등했다.
시체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한 생각에서 인 듯 하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그런 말 마.”
“서바이벌 테스트 때에도 난 너한테 짐만 됐는걸.”
“그때 네가 장세준의 얼굴을 후려차준 덕분에 내가 막타를 먹을 수 있었는데?”
내 말에 굳어있던 연희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도움이 된 거냐.”
“된 거지. 그리고 지금도 넌 나한테 도움이 되고 있다.”
“도움은커녕 짐만 되고 있는 걸, 뭐.”
“나 혼자 이 상황에 놓였다면 멘탈이 아작났을거야.”
“그 말은 혼자보단 둘이 낫다 이거야?”
“그럼.”
“…말이라도 고맙네.”
연희가 다시 해맑게 웃었다. 오늘 한 생고생 덕에 그녀의 얼굴에는 더더욱 살이 없이 헬쑥해 보였다.
난 조용히 대화를 하면서도 유리문 너머 밖으로 눈을 떼질 않았다.
요란하게 달려가던 차 한 대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정차했다.
차 내에 타고 있던 운전자는 핸들에 머리를 박고 움직이질 않는다.
“…참 영화같은 꿈이네.”
내 말에 다리를 모은 채 커피를 훌쩍이던 연희가 피식 웃었다.
“깨어날 수 있겠지?”
연희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내게 물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구멍이 있기 마련이야. 빠져나갈 구멍, 망하는 나락의 구멍. 완벽한 건 없으니까.”
“그래도 이시운. 너랑 있으니 걱정이 들지는 않는걸?”
“…왜?”
“내가 본 너는 항상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었으니까.”
그녀는 진심으로 말하는 듯 했다. 이런 타이밍에서도 칭찬은 힘이 된다.
“이번만은 너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눈을 빛내며 말한 연희는 몽둥이를 쥐더니 들어보였다.
저 몽둥이는 내가 때려죽였던 알바생의 것인 듯 하다. 전쟁통에 알바 일을 하면서도 몸을 간수하려고 몽둥이 하나는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쬐그만게 몽둥이를 쥐고 저리 말하는데 그게 꽤 귀여웠다.
그러나 난 말했다.
“위험해. 너는 쉽사리 나서지마.”
“아니! 나도 목재식 완드를 다루는 데에 손이 익은 몸이거든? 이 몽둥이로 어떻게든 너한테 도움 정도는 줄 거야.”
“…말은 고마운데 한 번 물리면 그대로 끝인 거 알지?”
“그럴 일 없을 거에요.”
그때 내 뇌리로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내가 칼자루를 쥐고 일어나 문으로 향하자 연희가 의아한 눈으로 날 본다.
“어디 가려는 거 아니지?”
“잠깐만 혼자 있어.”
“…혼자 있으라고? 어딜 가려고?”
“칼 하나 들고 있기엔 영 불안해서 총 하나 건져오려고.”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금방 다녀올게. 문 잘 잠궈놓고 숨 죽이고 있어.”
연희는 힘없이 고갯짓을 했다. 난 편의점에서 나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백미터 반경으로 한 마리도 없고.
총을 구할 생각이다.
길거리 한복판에 놓인 탱크가 있다면 군인도 있을 것이고 군인의 시체도 있단 이야기다.
그렇다면? 군인의 사체에서 소총을 얻을 수 있단 뜻.
폐허가 된 서울 한복판을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넜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저 앞에 머리 긴 한놈이 땅바닥에서 뭘 주워먹고 있다.
푸슉!
접근해 놈의 뒷목에 칼을 박았다. 확인 사살로 목을 두 차례 더 그어주니 놈이 팔을 떨어뜨리고 맨바닥에 눕는다.
확실히 나한테 칼이 망치보다 요긴한 듯 하다.
조금 더 걷자.
‘보인다!’
정차된 군용트럭을 본 내 눈이 빛났다.
저 트럭 안에 군인 한놈만 뒈져 있으면 소총을 구할 수 있고 생존에 큰 힘이 되겠지.
트럭으로 다가가 문을 열자 군용모를 쓴 군인의 머리가 튀어나와 타이어쪽으로 널부러졌다.
‘있다! M16.'
철컥! 묵직한 소총을 장전했다.
다행히도 군대에 접한 나는 이런 소총을 다룰 줄 안다.
더군다나 지금 이 눈이라면 귀신같이 다룰 자신이 있다.
여분 탄창을 챙기고, 총부리를 앞으로 내밀고 총대에 눈을 박았다.
그 순간. 전방의 멈춘 버스에서 피범벅 옷을 입은 승객 몇 명이 튀어나와 나에게로 득달같이 달려온다.
‘오랜만에 총 한 번 잡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