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32화 (132/278)

제 132화

시체들과의 전쟁 속에서

몸을 비틀며 달려오는 시체 셋 중 한 마리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숨을 들이마시고.’

“흐읍.”

탕!

남자 시체 하나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그대로 고꾸라진다.

탕!

머리를 산발하며 달려오는 시체의 가슴팍이 그대로 날아간다.

‘한놈 남았군.’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이 순간 멈췄다. 아스팔트에 늘어진 시체 둘 사이를 비집고 달려오는 시체를 보고서 말이다.

-키야악!

곰돌이 티를 입고 돌진해오는 어린 시체다…….

마음이 약해지려 한다. 아니지. 여긴 꿈속이고 저놈은 그냥 꿈속의 좀비일 뿐이다. 난 망설임을 흘려내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타-앙!

쿠덩! 총알 한발에 정강이가 날아간 소년은 바닥에 작은 얼굴을 처박았다. 그런데도 기어서 나에게로 다가온다.

좀비는 좀비다. 이놈들은 심장이나 머리통이 날려보내야 시동을 끄고 만다.

타앙!

네 발째 탄환은 소년의 눈두덩이에 적중했고, 뒤통수까지 터진 소년의 시체는 그제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휴우….”

오금이 멎을듯한 서늘함에 한숨이 튀어나온다. 방금 총으로 박살낸 시체 세 마리의 몰골을 더는 볼 수가 없어서 눈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아뿔싸. 방금 총성이 너무 컸다. 총소리를 듣고 놈들이 주변으로 몰려올 수도 있겠다.

재빨리 여길 벗어나야 한다.

아니나다를까. 좌측 건물 상층에 있던 시체가 날 보고서 더러운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다 지상으로 추락한다.

쿠웅!

섬뜩한 이 소리는 놈이 6층의 창문 밖을 통해 몸을 내밀다가 떨어져 몸뚱이가 터지는 소리다.

멍청한 새끼.

순식간이라 봐 버렸다. 사람의 육체가 6층에서 터지면 어떤 꼴이 나는지.

-캬아아!

여기저기서 시체들의 소리가 뿜어졌다.

난 총을 든채 편의점을 향해 뛰어갔다.

“후우…. 후우….”

“괜찮아?”

전력을 다해 뛰어와서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름에 헐떡거리는 날 보고 연희가 물었다.

“괘, 괜찮아. …후우-. 여기 총 구해왔어.”

“진짜 총이네?”

소총을 그녀에게 보여주자 그녀는 신기한지 총을 오목조목 뜯어본다.

“그보다 다친 데는 없어?”

총에서 눈을 뗀 연희가 나에게 묻자 대답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여줬다.

“일단 이거 마셔.”

그녀가 편의점 구석탱이에 있던 생수통을 건넨다. 난 건네받은 물을 들이켰다.

벌컥벌컥!

“…하!”

이제야 살 것 같다. 몸에 수분이 넘어가니 요란하게 펌프질하던 심장이 안정되고 몸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연희가 내 볼가를 어루만졌다.

“내가 얼마나 맘 졸이며 기다렸는줄 알아? 왜 나 혼자만 놔두고 간거야.”

날 지그시 바라보는 그녀의 두 동공에 눈물이 맺힌다. 꽤나 날 걱정했나보다.

내 볼을 어루만지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잠시 그녀를 달래줬다.

“…나도 너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고.”

“지금도 충분해.”

“아니.”

그녀가 단발 머리를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연희는 자기가 내게 항상 짐만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왜 너한테 도움이 되고 싶은지 넌 모르지?”

“왜?”

“그건….”

나에게 물으며 나와 눈을 마주한 그녀의 두 동공이 떨린다. 스륵. 그녀가 슬며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이시운. 나는 있잖아….”

드륵!

그녀의 말을 자른 것은 내 주머니춤에 넣어둔 진동소리였다. 문자라도 왔나? 이런 상황에? 난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든 폰을 꺼내들었다.

“젠장할.”

“왜 그래?”

내 욕지기 소리에 연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난 폰의 액정을 내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점점 상황은 더 엿같아 지고 있다.

방금 핸드폰에 울린 진동은 공습주의보였다.

모든 것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미사일이 서울에 투하된다고 하니 대피하라고 친절히도 알려주는 문자였다.

“이걸 봐.”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여주니 그녀의 눈과 입이 벌어졌다.

“여기서 당장 벗어나야 해.”

내 말에 그녀가 일어나더니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 내게 보여줬다. 하얀 가방이었다.

찌익! 그녀가 가방 지퍼를 열자, 생수통 뚜껑과 포장된 김밥이 가방 안에 든 내용물임을 알 수 있었다.

알뜰하게도 편의점 안의 식량을 챙긴 듯 하다.

“혹시나 해서 챙겨놨어.”

“잘했어.”

그녀에게 칭찬을 던져줬다. 용케도 가방은 어디서 구한건지. 어쨌든 연희 덕에 시간을 단축한 셈이다.

우리는 움직이기 위해 곧바로 일어났다.

그때 편의점 문 너머로 하늘을 찢는 굉음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미사일을 실은 전투기 소리인 듯 하다.

“공습이 시작될 모양이야. 어서 나가자!”

“응!”

우린 재빨리 편의점에서 나와 뛰었다.

일단 이동수단을 찾아야한다.

뛰는 속도로는 제 시간에 서울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니까.

크리스티앙이라고 했지? 여기서 벗어나면 그놈의 아가리부터 찢어버리고 말 테다.

졸음으로 인해 흐릿해지는 시야로 핸들이 보인다.

핸들 중앙에는 벤츠를 상징하는 ‘人’ 모양의 엠뷸럼이 박혀있다.

운 좋게도 차를 하나 구해 운전 중이다. 그것도 외제차.

외제차가 국산차보다 내구력은 단연 탄탄하다.

이 차는 차키가 꽂힌 채 길가에 버려진 듯 세워져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운전자가 차키를 꼽아두고 세워둔 채 밖으로 나간 듯 하다.

그는 뭐, 놈들의 먹이밥이 됐겠지만….

‘면허를 따놓길 참 잘했네.’

난 면허는 하나 따둔 상태다. 물론 전생의 서른 살 먹었을 때 따둔 면허라 이십대인 이번 생인 내게 그 면허증은 없다.

그렇지만 차를 모는 방법은 기억하고 있다.

물론 면허는 장롱면허다.

부우웅!

순환도로를 타고 최대한 속력을 높이기 위해 액셀을 마구 밟아대는 중이다.

콰아앙!

깜짝이야! 뒤편에서 우리 몸을 들썩이게 할만큼 큰 굉음이 터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백미러를 통해 뒤편 저 너머가 불바다로 변해 활활 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미사일이 떨어진 저 너머는 검은 연기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빨리. 빨리….”

부우웅! 액셀을 밟고 있는 오른발에 힘을 더욱 주었다. 차의 속력이 더욱 붙자 창가로 보이는 지상의 풍경이 더욱 빠르게 지나간다.

지옥이 돼버린 풍경이…….

그렇게 서울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휴, 한시름 놨다.

눈꺼풀이 백만톤처럼 느껴질 정도로 피곤했지만 잠 따위를 잘 겨를이 없는 난, 눈을 더욱 힘주어 떴다.

그때였다.

“시운아! 앞에!”

연희가 입을 틀어막으며 앞을 보고선 소리친다.

앞에서 옷이 피범벅이 된 시체 세 놈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우릴 향해 뛰어오고 있다. 여긴 고속도로인데 여기도 좀비가 있단 말이냐.

뭐, 상관없다. 박아버리면 그만이니까.

콰앙!

난 친절하게 세 놈을 차량으로 들이받았다. 푸우욱! 차량 전방유리가 놈들의 피로 흩뿌려졌다.

딸칵- 딸칵-

와이퍼를 움직여 유리에 쏟아진 피를 닦아냈다.

“꺄악!!”

연희가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방금 세 놈을 박아 찌그러진 차 보닛 위에 달린 ‘人밴’ 모양의 밴츠 마크, 그 마크의 뾰족한 윗부분에 둥그런 뭔가 꽂혀있다.

자세히 보니 방금 충돌한 놈 하나의 눈알이다.

“끄악!”

감고 있던 눈을 들어올려 실눈을 뜬 연희는 그것을 다시 보고 또 경악을 했다.

그럴 만도 하다. 핏줄이 터져 시뻘건 살점이 너덜너덜거리며 붙은 눈알은 참으로 징그러웠으니까.

난 무미건조하게 그것을 바라봤다.

이미 고어물의 광경은 적응한지라 역겹기만 할뿐 놀랍진 않았으니까.

“나, 나… 눈 좀 감고 있을게.”

연희는 차마 저것을 또 보진 못하겠는지 눈을 감고 있는단다.

이 와중에 고개를 숙이고 두 얼굴을 손바닥으로 포갠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다.

“그래, 감고 있어. 많이 놀랬지?”

“미안해. 내가 저걸 또 볼 자신이 없거든.”

씩. 그녀가 말하는 것이 귀여워 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온다. 웃기라도 해야지.

인상만 쓰고 있는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꿈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반드시 있을거다.’

분명 해결책은 있을 거다.

문제는 그 해결책이 뭐냐는거지.

설마 영원히 이 꿈속에 갇힌 것은 아니겠지.

순간 상념에 휩쌓인 나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전방의 달뜬 시커먼 하늘의 풍경이 균열이 일어났다가 멎은 것을 보고서.

이상한 현상이다.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걸까?

그때 또 한 번 하늘의 경치가 흔들리며 희미해지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말이다.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저 현상은 설마?’

내 생각이 맞다면 저 현상은 분명 그것에 의한 현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이 생긴다.

방금 그 현상이 내 추론과 맞아떨어진다면.

상념에 빠진 채 운전하던 나의 동공으로 이정표 하나가 비춰졌다.

<대전까지 남은 거리 17km.>

*

“크리스티앙…. 찢어죽일 개자식.”

남자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손에 감긴 시체의 목뼈가 부러졌다.

쿵! 그가 손의 힘을 풀자 들려있던 시체가 바닥에 떨어져 늘어졌다.

-크에엑…!

-그오오오…….

“여간 시끄러운 놈들이군.”

그는 사방을 둘러봤다. 번뜩이는 안광들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 시체들이었다.

퍼억! 달려오던 시체 한놈의 가슴팍을 밀어찬 그는 시체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시체들의 주먹과 발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몸을 움직여 그것을 모두 흘려냈다. 동시에 한놈이 벌린 아가리 속으로 공력을 담은 주먹을 때려박았다.

퍼드득! 그의 주먹에 시체의 뒤통수가 터지며 뇌수가 쏟아진다.

곧바로 좌우로 손을 빠르게 뻗어 두 시체의 목덜미를 낚아채 공중으로 들어올려 바닥에 내리찍었다.

쿵! 쿵! 두 시체의 두개골이 아스팔트로 추락해 분해된다.

‘개떼처럼 몰려도 왔군.’

시체….

인간의 기능을 잃고 움직이는 시체들.

그가 홀로 상대하기엔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쪽수가 너무 많다. 일단 벗어나야 한다.’

순간 번쩍이는 그의 안광과 함께 그가 구부린 손아귀에 불이 피어오르더니 사내의 몸을 불로 휘감았다.

‘발화.’

사내가 시체들 틈으로 번개같이 몸을 움직였다. 그의 육신에 닿은 시체들의 신체를 통해 불길이 옮겨붙었다. 시체들은 발광을 하며 타들어갔다.

그대로 앞으로 뛰었다.

백 마리의 시체 울타리를 뚫고 내달리는 그의 눈에 세워진 차량 한 대가 들어왔다.

와장창! 주먹으로 차의 운전석 유리를 깨버렸다. 곧바로 손을 집어넣어 움직이니 차문이 열렸다.

의자에 쏟아진 유리조각을 걷어내고 차에 몸을 실은 그는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았다.

“세이브군….”

백미러를 통해 피칠갑의 몸으로 돌진해오는 사체들이 보였다. 부릉! 속력을 높이자 거리가 멀어지며 놈들은 백미러에서 사라진다.

전방에서 차를 향해 시체들이 뛰어들었다. 모조리 차로 들이박으며 액셀레이터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폐허가 된 도시의 풍경이 들어왔다.

“이번 꿈속은 사나울 정도로 요란하군.”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맞았다.

제각기 다른 꿈속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째 헤집고 다니는 중이다.

근데 지금 경험 중인 꿈은 상당히 요란했다.

몬스터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시체들을 상대해야 하는 꿈이다.

“…하필 좀비들이라니.”

그도 시체들의 정체는 알고 있었다.

좀비. 현대 영화 따위에서나 등잘할 법한 이름이었지만 그 또한 알고 있는 이유는 그도 현계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크리스티앙의 꿈속에 영원히 갇혀버린 부랑자 신세가 되어 버렸지만…….

영영 꿈속을 헤매게 될 저주에 빠졌다.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움직여야 했다.

배신하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 마도사 놈에게 받은만큼은 돌려줘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선 해야할 일이 있다.

해야 할 일이 아니고 해내야 할 일이지만.

“둘이군. 현 위치는 대전.”

남자는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보고 중얼거렸다.

이 꿈을 발현한 대상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들에게 가야한다. 반드시 말이다.

“이번 발현자는 영 머저리는 아니가보군.”

용케도 이번 놈들은 꿈이 발현된 지 꽤나 지났는데도 아직 살아있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변하는 그들의 위치를 보니 이동수단을 이용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병신같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선택을 하진 않았구나. 어쩌면 이번에는….”

수십 번의 꿈을 헤매며 발현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었다.

허나 그놈들은 대면하기도 전에 하나같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분통이 터질 정도로 머저리 같은 놈들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다르단 느낌이 온다.

쉬지 않고 차를 몰자 그의 눈앞으로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톨게이트의 입구가 보였다.

“…내 공력이 한계에 미치고 있다.”

아무리 그라도 이 꿈속에서 펼칠 수 있는 힘은 제한된 상태다. 그 힘이 점점 소실되어 가고 있다.

공력이 완전히 바닥나는 엿같은 상황이 오기 전에 그들과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반드시 이 둘을 살려야 한다. 내가 건네야 할 것이 있으니까. 제발 머저리같이 개죽음만 당하지 말아다오.”

그렇게 다짐하던 그의 차량은 톨게이트 안내원복을 입은 좀비를 타이어로 깔아뭉개며 고속도로 안으로 뻗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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