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5화
일기토 시험이냐? (1)
“하늘에 노이즈 현상이 생기고 그 현상이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라…. 그렇다면….”
연희는 말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던 그녀의 입이 열린다.
“…설마…… 이곳, 즉 이 꿈속은 그 마도사가 구현해낸 꿈이니까 저런 노이즈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그 꿈이 점점 붕괴된다는 이야기야?”
“정확해.”
“…!”
연희의 추론을 들은 시운은 흡족하게 웃었다.
‘역시 연희도 바보는 아니군.’
그랬다. 그녀 또한 사시보다 힘들다는 헌터 시험을 뚫고 헌터가 된 여자다.
일반인보다 사고력과 추리력은 월등하다.
“앗! 시운아. 그 꿈이 점점 무너져간다는 이야기는 그 마도사의 힘도 제한이 있다는 이야기 일테고 그 힘이 점점 다해가고 있다는 말이지? 그치? 내 말이 맞지? 맞다고 해줘.”
끄덕.
시운의 고갯짓에 연희의 눈이 빛났다. 아직 희망은 있다는 것을 직감했음에 좋아하는 듯 했다.
시운의 시선이 모텔 정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추론은 추론일 뿐이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그 어떤 때보다 고난이다. 반드시 빠져 나가고 만다. 반드시……!’
이를 꽉 깨물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이번이 세 번째 인생.
그런 시운의 뇌리로 네 사람의 얼굴이 스쳐갔다.
‘아빠….’
‘엄마.’
‘집으로 돌아온 우리 누나.’
‘…그리고 세정이.’
절대로 이번 생은 포기할 수 없게끔, 더 성공하여 살아가고 싶게끔 만드는 그 넷을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말리라. 나간다!
반드시.
“연희야, 들어가자.”
“응.”
철컥! 총부리를 앞으로 치켜세우고 시운과 연희는 모텔을 향해 발을 내밀었다.
조심스럽지만 당차게.
머리를 찍어 누르는 느낌에 눈을 뜨자 불이 다 꺼진 모텔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몇 시쯤이지?’
졸림을 참고 운전을 하며 좀비를 피해 이리저리 쏘다니고 온갖 발광을 한 탓에 피로가 꽤나 축적 됐었는지 잠을 많이 잔 듯 한데.
이 모텔에는 창문이 없다.
연희의 폰을 통해 시계를 보니 오후 아홉 시다.
옆을 바라봤다.
“……….”
연희가 말없이 옆 침대에서 자고 있다.
-시운아. 나 무섭고 불안해. 그래서 말인데… 내 옆으로 와서 나 좀 안아달라고 하면 무리한 부탁일까?
어제 연희가 내 허벅지를 더듬으며 했던 말이다.
꽤나 저돌적인 유혹이였지.
난 단번에 그녀의 말을 거절했었다.
그러자 그녀는 침울한 눈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 넌 너무 단호박이네. 내가 진짜 민망할 정도야, 아주. 봐. 나도 자존심은 있는 여자거든? 근데도 다시 물을게. 난 너에 비하면 부족한 사람인 거 알아. 근데 말이야.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묻고 싶으니까 묻는다. 이시운. 넌 한 번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날 여자로 본 적… 느낀 적이 없니.
그녀의 말에 난 고개를 저어주었다.
내 머리와 가슴속에는 한 여자만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칼에 잘라냈었다.
그랬었다.
‘이 생각은 떨쳐내자, 일단.’
잡생각에 빠질 틈이 없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연희가 챙겨온 식량과 생수가 바닥이 났다.
확인한 결과 이 모텔에는 사람이 우리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은 따로 챙길 수 있다.
모텔마다 존재하는 미니냉장고에는 식수가 있다.
그래서.
옆방의 문을 카운터에서 찾은 마스터키를 열고 들어가 물을 가져오면 된다.
난 복도의 모텔 방안을 모조리 마스터키로 열고서 미니냉장고에 있는 생수를 모아 내 방안의 냉장고에 넣었다.
텅!
“으음….”
냉장고를 닫는 소리에 연희가 뒤척였다.
생수는 기지를 발휘해 확보한 상태다. 이 모텔에서 얼마나 머무르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은 그래도 이 꿈속 대한민국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할 듯 하다.
적어도 지금은.
‘생수는 확보했고, 이제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
배에서 꼬르륵, 밥 달라는 소리가 진동을 한다. 생수나 들이키며 배를 채울 수도 있지만, 이왕 해야할 일 나중으로 미룰 필요는 없다.
나중에 이곳에 고립될 상황이 벌어질지,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어떻게 아는가.
‘지금은 아홉 시. 어두운 밤.’
굳이 밖으로 나간다면 지금 같은 어두운 시간대가 좋다.
왜냐고?
내 눈은 야간에도 투시경처럼 밖의 웬만한 것을 내다볼 정도로 좋다.
반면 좀비들은 밤에 시야가 잡히지 않는다.
그 뜻은 내가 이점을 하나 갖는다는 것.
철컥.
소총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곧바로 가방을 맨 뒤에 조용히 복도로 나갔다.
“……….”
복도는 쥐죽은 듯 조용하다.
비상구 계단을 통해 2층까지 내려갔다.
1층의 정문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왜냐?
1층의 정문 앞을 모텔에 있는 책상, 침대 등등을 모조리 옮겨 문 앞을 촘촘히 막아놨기 때문이다.
좀비들이 이곳에 발조차 들이지 못하게 요새를 만든 셈이다.
드르륵! 비상구 계단의 2층 창문을 열었다.
‘어둡군.’
눈으로 빠르게 밖을 훑었다.
좀비로 보이는, 또는 추정되는 놈은 단 한 놈도 없다.
이럴 때 참 내 눈이 요긴하게 쓰인단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이 창문을 통해 지상으로 뛸 차례다.
존나 떨린다. 헌터생활로 온 신경이 발달된 몸이 아니었더라면 발목이 아작날 각오를해야 하는 문제다.
아! 참고로 2층에서 뛰어내려서 밖으로 나가는 건 좋다 치자. 후문도 없고 정문 하나 있는 모텔.
근데 정문까지 처막아놓은 이 모텔에 어떻게 이 모텔에 다시 들어올 거냐고?
다 방법이 있다.
난 어쨌든 헌터니까.
투툭!
안전하게 지상에 착지했다.
“큭.”
발목에 충격이 가서 신음이 튀어나온다.
일단 총을 들고 곧바로 눈을 돌려 옆 휴게소로 향했다.
이곳은 도로변 휴게소 쪽의 모텔이니까 휴게소에 어쨌든 먹을 게 있을 테니.
툭- 툭- 툭-
조용한 내 발걸음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휴게소의 조명은 완전히 꺼져 어둠만 내려앉아 있다.
어둡다.
근데.
후레쉬 따윈 필요 없다.
내 눈이 이미 야간투시경인데 굳이 필요하리?
휴게소 내부에는 친절하게도 편의점이 있었다.
턱!
‘…제기랄.’
난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핏물이 진동하는 저 바닥 밑에서 먼가 꿈틀거린다.
-그으윽. 그어어억.
좀비다. 천천히 다가가 보니 가슴팍이 열려 내장을 쏟아낸 채 신기하게도 숨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노인이다.
-카아아!
노인이 날 발견하자 아가리를 벌리며 기어온다.
쾅!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노인의 머리통을 찍어버리자 노인은 몸을 움찔거린다.
쿵! 쿠웅! 쿠우우웅!
연달아 세 번 더.
노인의 두 눈알이 튀어나오며 늘어진다.
굳이 총성을 울리며 요란하게 놈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그뿐이었다.
“통조림부터.”
혼자 중얼거렸다. 난 빡대가리가 아니다. 작고 알찬 식량을 최대한 많이 담는 게 차선책이다.
게다가 유통기한이 긴 음식이라면 단연 통조림에 담긴 과일이나, 참치 등등이다.
편의점 진열대에는 와인부터 양주 과자, 컵라면 육포, 등등 맛있는 게 잔뜩 많았지만.
‘맛보다 실용성 있는 음식들만.’
찌익!
가방에 통조림 음식을 죄다 담고 지퍼를 잠군 나는 편의점에서 나왔다.
이제 곧바로 모텔로 향하면 된다. 굳이 바깥에서 싸돌아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그때.
저 멀리서 보이는 빛에 난 재빨리 주차된 차 옆으로 몸을 숨겼다.
‘이 타이밍에 사람이 왜?’
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 빛을 뿜으며 유유히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사람일 것이다.
아니, 사람이겠지. 좀비가 설마 저 차를 몰고 오겠는가? 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저 차 안에 탄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썹이 진하고 인상이 강렬한 그냥 평범한 남자다.
근데 남자가 차를 세우고 내렸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허공을 응시한다.
뭘 하는 걸까?
이곳에 좀비가 있다는 걱정은 안 드나? 갑자기 차를 세워서 허공을 보며 저리 뜸을 들이는 이유가 뭘까.
근데.
남자가 걸친 검은 짚업 트레이닝복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다.
뿐만 아니라 남자의 손에는 마른 피가 잔뜩 베여있다.
한바탕 좀비들과 사투를 벌였나 보다.
근데도 용케 살아는 남았는가 보다.
‘굳이 내가 저 사람과 접촉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
저 남자에게 얻을 것도 없고.
그러니 굳이 사람을 발견했다고 가서 아는 척을 하는 오지랖을 부릴 상황은 아니란 소리다.
“……!”
쥐새끼처럼 남자를 염탐하던 내 두 눈이 놀라 커졌다.
남자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저 놈이 어떤 놈일지 모르니 그냥 죽여버릴까?’
이곳은 어차피 꿈속이다. 내가 저놈을 총으로 그냥 쏴버린다 해서 죄책감을 굳이 가질 필요는 없다.
근데.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오는 남자의 얼굴에서 뭔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바디시그널을.’
남자의 바디시그널은 초조해 보였다. 쫓기는 얼굴. 그도 당연할 것이다. 이 세상은 종말해가고 있으니까.
터벅- 터벅-
그가 나에게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여차하면 총으로 쏴 죽여버리던 내 오른 어깨의 힘으로 단숨에 목을 졸라 죽여버리던 할 것이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저 남자.
평범한 인간이 아닌 것 같다.
그냥 직감이다. 오로지 직감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저 자에게서 살기가 느껴졌다.
툭-
남자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허공을 응시한 뒤.
“여기가 확실한데.”
남자가 혼자 중얼거렸다. 뭐가 확실하단 거지? 대한민국이 박살이 나 버려서 정신이 나간 뭐 그런 류의 놈인가?
“…….”
난 총부리를 이미 그에게 겨누고 있다. 방아쇠에 걸쳐진 내 손가락이 한 번만 까닥하면 생명의 불씨 하나가 꺼진다.
그런데 그때.
“숨어있지 말고 나와라.”
“……!”
순간 너무 놀라 숨이 턱, 막혀왔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곧바로 방아쇠에 걸친 손을 움직였다.
콰앙!
“크헉!”
시야가 뒤틀리며 공중에서 몇 미터나 날아가 꼬라박은 것은 나였다.
“뭐,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남자가 손 한 번 까닥이자 내 앞에 있는 차가 튕겨져 나갔고. 나도 날아갔다.
내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내 시야를 가린다.
저 놈이 누군지 어떤 능력을 가진 놈인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살려면 저 놈을 죽여야 한다!
타타탕!
“…?”
분명 남자에게 총을 세 방이나 쐈다.
그러나 남자는 여유로운 얼굴로 내게 걸어오고 있다.
“허튼 짓 하지마라. 나에겐 그런 현대식 무기란 안 통한다.”
탕! 탕! 타타타탕!
“안 통한다니까.”
철컥- 철컥-
총부리에는 연기만 피어날 뿐.
탄환이 나가질 않는다.
총알이 다 떨어진 거다.
제기랄!!
저놈에게 당신의 정체가 뭐냐 물을 시간에 저놈에게 선방을 가하거나 다른 묘안을 생각해야 한다.
그게 내가 헌터가 돼서 배운 생존 방식이다.
좀 난감한 상황이군.
터벅- 터벅-
점점 가까워지는 남자의 두 안광은 날 얼어붙게 했다.
‘현대식 무기가 안 통한다라? 그렇다면….’
물리는 통한단 말이지?
육탄전! 개패듯이 패주면 그만!
곧바로 난 튀어나가 내 오른 훅을 그의 턱에 날렸다.
“…컥!”
그런데.
되려 공격한 내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처척! 곧바로 뒤로 백스탭을 밟고 거리를 벌렸다.
“생각보다 빠르고 강한데? 신기하군. 이곳에서는 헌터인 네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텐데도 그 라이트 묵직했다.”
“뭐? 당신 내가 헌터인 것을 어떻게 알지?”
뇌리가 꼬일 만큼 놀란 내가 물었다. 저 놈은 내가 헌터인 것을 알고 있다.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곳은 꿈속이고 내가 헌터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연희 뿐이다.
“…설마 네가 크리스티앙이냐?”
내가 물었다.
남자는 말없이 날 가만히 응시한다. 내가 묻고 난 후에도 난 내 질문이 이상했음을 알아차렸다.
굳이 날 꿈에 가둔 크리스티앙이 꿈속까지 등장해서 날 죽일 필요는 없을 것 아닌가? 그건 놈에게 리스크가 클 텐데.
“크리스티앙. 그놈은 내 원수고.”
“…원수라고? 그렇다면 크리스티앙은 아니란 말이군.”
“그래, 그리고 난 갑자기 네 놈이 궁금해졌다.”
저 놈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모르겠다.
“네가 원하는 건 뭐고 넌 대체 누구냐.”
“알고 싶나.”
“빨리 답해라!”
난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놈은 날 갖고 장난을 치는 기분이다.
저 놈의 입꼬리가 빙긋, 올라가더니 안광을 빛냈다.
“딱 1분 후에 알려주지.”
“…1분 후라고?”
“네가 1분 후에도 살아 있다면?”
화르륵!
놈의 두 손아귀에서 불길을 뿜어졌다.
갑자기 나타난 저 미치광이의 정체가 미치도록 궁금하기에 까짓 거 놈의 요구대로 1분을 버텨줘야겠다. 참 지랄맞을 상황이 연속으로 벌어지고 있다.
근데.
저 놈은 보통 놈… 보통 인간은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