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화
일기토 시험이냐? (2)
아주 개연성 없이 떡하니 나타난 저 놈은 강하다.직감적으로.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나보다 저놈이 강하단 느낌이 내 전신의 신경세포를 예민하게 곤두세운다.
“죽지 말고 버텨라. 제발 내가 바라던 바다.”
뒈지지 않으라면서 저런다고?
또라이 새끼인가.
…그런 주제에 나보고 저렇게 지껄이고 두 손아귀에 불을 뿜으며 달려오고 있다. 사람 새끼 맞냐?
그것도 아주 빠르게 온다.
‘저 정체모를 놈이 이 꿈속에서 저런 마력을 구사할 수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허나 잔걱정은 위기를 돌파한 후 한다.’
놈의 몸이 점점 가까이.
그리고 선명히 내 망막에 비춰진다.
놈이 간과한 게 있다.
내 눈은 보통 눈이 아니라는 것.
수우웅-! 놈의 주먹을 흘려서 피해냈다. 허공으로 불꽃 스파크가 튀겼다.
부웅! 그대로 오른 주먹을 놈에게 날렸다. 역시 예상대로 놈은 재빨리 피하고 반대쪽 손을 내밀어왔다.
파앙!
“……크윽.”
두 팔을 엑스자로 교차하여 가슴팍을 방어해냈지만 팔뚝의 살에 열기가 느껴져 신음이 뱉어졌다.
부웅! 그대로 도약하여 왼손으로 소총을 놈에게 휘둘렀다.
망나니가 칼춤을 추듯이.
한 번.
두 번. 세 번. 다섯 번까지….
“…빠른데? 아니. 몸놀림만 빠른 게 아니라 빨리 피하는군.”
놈이 내 공격을 다 피하는 주제에 여유롭게도 독백으로 지껄인다.
놈의 살기가 흐르던 동공은 어느새 호기심이 서려있었다.
저 놈은 전력으로 날 상대하는 게 아니다. 나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느낌?
허나.
분명 살기는 뿜고 있다.
날 죽일 생각 또한 있다는 것.
잘못하다간.
내가 죽을 수도 있다!
그때였다.
“…발화.”
놈이 입술을 움직이자.
화르륵! 화구가 놈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방금보다 더 강력한 공격이 내 몸을 때려박을 듯 싶다.
놈이 내게 예고한 시간은 1분.
이제 남은 시간은 45초.
44초.
43초.
42초…….
‘온다!’
위기의 순간!
핑그르르! 내 두 동공이 돌아가는 감각이 일었다.
시신경 세포를 타고 내 두 눈에 온 신경을 쏟아 집중한다.
‘보인다.’
놈의 타오르는 육신의 움직임. 그 속에서 빈틈이 보인다.
‘이 새끼 좀 많이 놀라운데?’
김호용은 온 몸이 열기에 찢긴 채 잘도 버티고 있는 헌터를 그대로 바라봤다.
헌터의 몸은 엉망이었지만 그의 두 눈에 담긴 그 무언가는 여전히 빛나는 듯 했다.
끈질긴 근성?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뭐 그딴 이상적인 근성이 저딴 눈빛을 자아내게 하는건가?
‘내 발화를 버텨냈다라.’
저 헌터는 인정 해줄만 하다.
스킬을 시전 할 수 있는 이계에서조차 자신의 공력을 쏟은 이 발화를 견뎌낸 이는 없었다.
각성한 보스 몬스터든….
네임드 용병이든.
상위급 헌터든.
모두 이 불길에 잿더미가 되어 시시하게 끝났을 뿐이었다.
근데 저놈은 다르다.
‘…거기다가 이곳은 꿈속이고, 저놈은 분명 헌터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 패널티를 쥔 주제에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거냐?’
퍽!
“…….”
호용은 발화를 거둔 주먹을 헌터의 복부에 밀어 넣었다. 주먹에 맞닿은 복부의 살이 출렁였다.
헌터는 숨이 콱, 막히고도 남을텐데도 용케 신음을 흘리지 않는다.
입술을 비집고 참는 듯 했다.
‘테스트 해보고 싶었다. 내가 그것을 네게 주면 넌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내 원수를 갚아줄 재목이 되는 놈일지….’
아마.
재목으로는 충분한 듯 하다.
“하나 묻자. 너 랭크가 뭐냐.”
김호용이 헌터에게 물었다.
헌터의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자신의 공격을 이 정도로 받아낸다면 아마 최소 B급 이상의 헌터이겠지.
랭크가 궁금했다. 어느정도 랭크이기에 스킬 없이 내 궁극기 발화를 받아낼 수 있는지.
“…에프.”
“…뭐?”
“에프 급이라고, 새꺄!”
놀라움보다 어이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감았을 그때.
호용의 시야가 뒤집어졌다.
“……?”
방금 이 내가 한방 먹은건가?
어째서?
그때.
헌터가 그대로 뛰어올라 반 덤블링 후 물구나무를 섰다.
두 손을 땅에 집은 채.
뭘 하려는 거지? 설마 스킬을 시전하려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저딴 자세는 난생 듣도 보도 못한 그저 우스꽝스러운 자세다.
“뭘 하려는 거냐?”
호용은 바닥에 등을 뉘인 채 물었다. 저놈이 비범한 놈은 맞으나 당장 일어나 전력을 가하면 저 헌터를 충분히 요절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앞선 호기심에 물었다.
파앗!
“……!”
호용의 동공이 커졌다.
헌터가 물구나무를 선 채 왼팔을 떼더니 오른팔을 구부렸다가 확, 피자 놈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5미터.
6미터.
8미터.
……12미터까지.
“…어떻게.”
호용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곳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그 누구도
스킬을 쓸 수 없는 꿈속이다.
근데 저 헌터가 요상한 자세를 취하더니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것도 15미터나 말이다.
“말도 안 돼.”
제아무리 헌터라 해도.
스킬 없이 근력만으로 저렇게 뛰어오를 수 없다. 이곳은 헌터 시스템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기에.
밤에 뜬 달을 등으로 가릴 정도로 뛰어오른 헌터는 오른 주먹을 쥔 채 착지할 준비를 끝냈다.
‘놀라운 놈이군. 이제 내 본 힘을 쓰겠다.’
그런데.
“……뭐야? 몸이?”
호용의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런 호용의 시선이 자신의 쇄골뼈 중앙으로 내려갔다.
‘이 놈이 설마?’
순간!
“!”
중력을 모두 실은 헌터의 주먹이 심장에 쏟아졌다.
전신이 부서지는 통증과 함께.
속에서 올라온 피를 헌터의 얼굴에 쏟아냈다.
“원래 전투 중에는 적에게 질문을 하며 빈틈을 보이는 게 아니다, 새끼야.”
호용의 피를 얼굴로 덮어쓴 헌터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도 순식간이라 믿기지가 않는 이 순간이다!
그리고 호용은 체념한 듯 눈을 감으며 나직였다.
“…내가 졌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저 어린 풋내기가 그 빠른 시간 안에 내 쇄골 사이가 내 공력의 심장임을 파악했을 줄은 몰랐다.
‘이 놈은 물건이다.’
“……그렇게 된 것이다.”
그가 말을 끝냈다.
나는 사내에게서 긴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난 사실 그대로 죽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죽이기 직전에 물었다.
“내게 이대로 죽을 테냐? 아니면 내게 모든 걸 얘기해 주고 살 테냐.”
그렇게 말하고 이야기를 캐내 정보를 얻은 후, 죽여 버리려 했다.
모든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서.
근데 김호용은 내게 이렇게 답했다.
“네 맘대로 해라. 대신 내가 이대로 죽으면 넌 크리스티앙의 꿈속에서 그대로 죽게 될 뿐이다.”
김호용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일단 들어보기로 결정을 내렸고.
장황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가득했다.
“많이 놀란 눈치군? 내가 블랙 헌터라는 게.”
“네가 이야기해주지 않은 것이 있다. 넌 이 꿈속에서 어떻게 스킬을 사용한 것이냐?”
“그게 각성을 통해 얻은 나의 능력이다.”
“…각성?”
각성은 헌터의 한계를 돌파시켜준다.
신체의 단 한 곳을 말이다.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정한 조건의 부합과.
선택받은 헌터에게만 내려지는 축복이다.
각성된 헌터는 자신의 신체 중 특출난 한곳의 한계가 돌파 된다.
그리고.
그 신체로 인한 새로운 능력 하나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네가 각성한 신체는 어디냐?”
“해마다.”
“…해마?”
“뇌 안에 존재하는 기관이다. 해마는 사람의 꿈을 관장하는 곳이지.”
“의외군. 그곳이 네 약점인 쇄골 사이일 줄 알았는데.”
“쇄골 사이는 아주 좁아서 공격당할 걱정이 적은 부위다. 난 내 해마의 에너지를 그곳에 넣었을 뿐이다.”
“……그런 거였군. 의문이 풀리네.”
그때.
김호용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나만 묻자. 이것에 답하면 네가 묻는 것들을 대답해주지.”
“그래, 그게 뭐지?”
일단 알겠다 했다.
어차피 내가 답해주기 곤란한 질문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만약 그런 질문을 한다면 대충 거짓말을 하고 그 후에 난 내가 궁금한 것들을 캐내면 된다.
그뿐이다.
“내 쇄골이 급소란 것을 어떻게 안 거냐? 제아무리 감지 능력이 뛰어난 헌터라도 내 급소를 캐치한 헌터는 단 한명도 없었다.”
“내 시력은 13.0 이다.”
“…뭐? 시력이 13.0 이라고 했나?”
끄덕.
내 고갯짓에 김호용은 실소했다.
“미친 새끼군.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이야기냐?”
난 딱 5분을 투자해서 놈이 내 말을 믿게 부연설명을 해줬다.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간단히 이 야밤에 몇백 미터 이상은 떨어진 바닥에 떨어져있는 동전이 500원짜리 라는 것과.
그 동전이 뒷면으로 놓여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녀석이 굳이 확인까지 하고 터덜터덜 걸어왔다.
“…하. 이런 미친 헛소리가 진짜란 말인가?”
“너의 세포의 움직임, 혈액의 움직임이 순간 보이더군.”
“아직 믿기 힘들지만 생각해보면 네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
호용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치 그 얼굴이.
내가 질문을 하면 모든 걸 말해주겠다는 낯빛이었다.
알아야 할 게 있다.
이 자는 블랙 헌터.
난 곧 블랙 헌터와의 조우를 앞두고 있기에.
“…물어봐라.”
호용이 내 의중을 읽었는지 눈을 감은 채 물었다.
“블랙 헌터의 약점, 그것들의 우두머리는 누구인지 또 화이트 게이트에 블랙 헌터의 끄나풀은 있는지 또 놈들의 최종 목적은 뭔지 궁금하다.”
물으라기에 물었다.
물어놓고도 사실 녀석이 하나하나 답변해주리란 기대는 없다.
놈도 어쨌든 블랙 헌터니까.
그냥 궁금해서 답변을 들을 수 없는 질문만 물었다.
“…질문이 네 개나 되냐?”
“그래.”
이야기 하지 않겠지.
말하기 힘든,
아니 절대 답할 수 없는 질문만 골라 물은 것이니까.
말하지 않으면 당장 죽이겠다고 협박 할 생각도 내 계획에 들어있다.
그만큼 내게 꼭 필요한 정보니까.
“다 대답해주지. 단 시간이 없으니 그걸 답해주면 끝이겠군.”
“뭐?”
흔쾌히 말해준다는 반응에 놀란 것은 오히려 나였다.
“첫째. 블랙 헌터의 약점은 그들을 통솔하는 카인이다. 네가 우두머리도 물었으니 이 대답에 두 개의 질문이 해소된 셈이군?”
“…카인이라고? 설마….”
“그래, 그 설마가 맞다. 검신 레딘에게 죽었다고 알려진.”
카인.
이계의 역사에 등장하는 그 악마다.
그 악마는 이미 그 전쟁에서 죽었다고 알려진 것이 정설이다. 아니… 그때 살았었다 치자. 그래도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 살아있을 수 있단 말이지?
“그놈이 살아…”
“말 끊지 마라. 넌 내게 네 개의 질문만 했고, 그것에만 답해줄 것이다.”
“…….”
놈이 내 말을 싹, 잘랐다.
일단 정보를 다 캐내고 더 캐든 하면 된다. 굳이 지금 놈의 심기를 긁을 필요는 없기에 묻지 않자 놈의 입술이 열렸다.
“셋째. 화이트 게이트에 심어진 그림자의 스파이? 윤동석.”
“…뭐, 뭐라고?”
방금보다 더 충격적인 대답에 내 머리칼이 솟다 못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윤동석.
한국 헌터협회의 부협회장.
그런 거물이 그림자의 끄나풀이었다고?
“믿기 힘들겠지. 그 사람은 굉장히 인정이 많고 행실이 올바르다고 알려진 사람이니까. 하나 더 알려줄까?”
“듣고 있다.”
“부협회장 윤동석과 협회장 곽대익은 서로 존중하는 척 뒷짐에는 서로를 쑤실 칼을 갈고 있다. 곽대익은 곽대익대로 칼을 갈고 있으며, 윤동석 또한 칼을 갈고 있다. 윤동석의 그 칼이 그림자. 블랙 헌터라는 칼이다.”
“!”
헌터의 협회장과 부협회장이란 자리는 웬만한 거물 정치인보다 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다.
협회장이 부협회장보다 한수 위의 자리지만 협회장은 부협회장을 함부로 할 수 없다.
부협회장 또한 협회장의 비리, 치부를 많이 알고 있고.
그에게 붙은 스폰과 연계된 기업은 협회장에 버금가기 때문.
‘협회를 독재할 권력. 그것이 최종목적인거군.’
그때.
머릿속으로 한 여자가 떠올랐다.
윤성혜.
윤동석의 딸이며 날 애틋하게 생각하는 여자.
‘회귀를 두 번 걸친 난 곽대익의 성향은 알고 있다. 그러나 화이트 게이트가 그림자와 연루된 윤동석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된다면….’
그렇다면 결국 이 땅의 모든 헌터들의 끝은 뻔하다.
내가 이 김호용이란 자에게 들은 이 사실을 화이트 게이트에 발설한다 해도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F급 헌터의 말은 누가 믿을 것이며. 이 정보의 제공처 또한 그들에게 신뢰란 1도 없을 블랙 헌터라는 놈인데다가.
함부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F급 헌터인 내 목은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다.
내가 어떻게 해서 헌터가 되었는데
그 꿈이 박살나게 둘 수는 없다.
‘내가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길밖에는 없겠군. 사냥개.’
내 뇌리로 떠올린 길은 그것이었다.
쿨럭! 기침을 하는 김호용의 낯빛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야. 시간이 없다 하지 않았냐?”
그가 내게 언제까지 사색에 잠겨 있을 거냔 따가운 눈빛을 쏜다.
“들을 준비가 됐다. 이야기해라.”
“네가 물은 마지막 질문에 답해주겠다. 그림자들의 최후의 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