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7화
마지막 일전
김호용의 두 눈빛이 진해졌다. 난 그의 눈빛을 그대로 받아 바라봤다.
‘전생이나 그 전의 생에서도 내가 가장 궁금했었던 미스터리를 이제 알게 되는구나.’
난 첫 번째. 두 번째 인생에서 헌터는 아니었지만 헌터를 꿈꿨었고 이 업종에 정말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런 내 호기심 중 가장 강하게 일었던 것이 그림자들.
그들의 속셈이었다.
‘그래, 뭐냐. 그들의 속셈이.’
몇 생을 걸쳤던 그 호기심이 풀어지는 순간이 지금이다!
호용의 두 눈을 바라보던 내 시선은 그의 입술로 내려가 머물렀다.
“전 헌터 시스템의 완전 통제와…”
“자, 잠깐. 잠깐만.”
“끊지 말고 들어다오. 시간이 얼마 없다 했다.”
헌터 시스템을 통제한다고? 놈들은 단순한 범죄자 집단이 아니었단 말인가?
일단 더 들어보자.
“…이계와 현계를 잇는 모든 게이트를 통제하고 괴물들을 현계에 전송시킨다. 최후는 이계를 단 한 남자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한다. 그것이 우리 그림자들의 최상층부 계획이다.”
“……뭐라고?”
방금 들은 말들은 내 뇌리를 흔들다 못해 찌그러뜨리는 충격이 맴돌았다.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했던 비현실적인 말이었다.
“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제 끝났다.”
스릉!
“미안하지만 내 질문을 추가해야겠다.”
난 놈의 바지춤에 숨겨있던 단도를 녀석의 울대에 대며 강한 눈빛으로 말했다. 변수를 없애기 위해 아까 놈에게 최후의 한방을 먹이자마자 이 단도를 은밀히 빼왔었다.
피식.
놈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장난인 줄 아나? 대답하지 않으면 이대로 네 목은 그어진다. 네 기력이 바닥났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단도를 움직여주자 놈의 목에서 흐른 피가 내 손등에 흘러내렸다.
“그림자들이 현계에 몬스터를 전송한다고? 너희 그림자들이 현계도 몰락시킬 예정이란 말이냐.”
“그어라.”
“대답해라!”
“그냥 내 목을 그으라고. 어차피 난 곧 사라진다. 이건 시간낭비일 뿐이다. 시간 낭비를 하면 너만 손해일 뿐이야.”
본능적으로 놈의 바디시그널을 읽었다. 놈은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고.
거짓을 말하는 것 또한 아닌 듯 했다.
“그림자 출신인 네가 나에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준 이유가 뭐냐?”
“…네 놈 F급이라며?”
난 눈썹 한쪽을 치켜 올리며 말을 이으라고 눈치를 줬다.
“네 놈은 F급 주제에 내 궁극기도 받아냈고 되려 날 압도했다. 그게 이유다.”
“의미심장하게 말하지 말고 알아듣게 이야기해라.”
“…네 놈이라면 내게 모략을 가한 크리스티앙을 쳐부숴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거기다가 내게 뱀 같은 짓을 한 그림자들에게도 빅엿 한방 정도는 거하게 먹여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그림자들의 계획을 말해준 거다.”
“네 목을 쑤시려 칼을 들이밀었음에도 넌 희망 하나 없는 눈이었다. 그것은 내가 크리스티앙을 죽여도 넌 부활할 수 없는 신세란 반증이냐.”
“큭.”
“왜 웃냐.”
“예쌍했던대로 머저리는 아님에 다행이라 느껴서.”
“…….”
놈의 말이 끝맺었을 때 난 단도를 거두었다.
녀석이 내 질문들을 답한 이유에 대한 의문의 퍼즐조각들이 맞춰져 퍼즐판을 완성했으니까.
순간! 밤하늘의 노이즈가 번쩍였고.
동시에 김호용의 전신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받아라. 두 가지를 네게 줄 것이다.”
그의 하체가 점점 흐려졌다.
띠링!
알람음에 내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익명의 타인에 의해서 시스템이 강제 부팅됩니다.]
[익명의 타인이 당신의 연동 시스템에 접속하려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
난 고개를 내려 그의 눈을 바라봤다.
“안심하고 어서 받거라.”
여러 가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냥 내 마음이 저 남자의 진심을 믿자고 말하는 듯 함에.
“수락한다.”
[두 가지 시스템 연동 중...]
[보관함에 익명의 타인에게서 도착한 물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열어보시겠습니까? ]
“지금 열어봐야 할 거다. 곧 클라이막스가 시작될 거니까.”
“열겠다.”
클라이막스가 뭐냐고 묻는 것보다 열겠다는 말이 입에서 먼저 튀어나온 이유는 저 녀석의 몸이 거의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선물은 두 개다. 일단 그건 지금 열어보고 두 번째는 이 꿈속에서 벗어나는 순간 열어봐야 할 거다.”
그 순간.
내 허공으로 한 가지 창이 떠올랐고 내 오른손에 뭔가가 생겨났다.
[드림 웨이크][소모품]
어느 각성자의 능력이 일부 함축된 용액이다. 이 용액을 복용하면 꿈속에서 제한된 헌터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다.
지속 시간: 1시간.
제한 횟수: [1/1]
그때!
드드드드드!
밤하늘이 찢어지듯 노이즈를 뿜으며.
대지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김호용의 육신은 거의 투명해져 있었다.
그의 투명한 입술이 일렁였다.
“…꼭 여기서 나가서 크리스티앙을 처리해라. 그래야 나도 영원한 꿈속을 벗어나 저승에 갈 수 있다.”
“당신이 말한 클라이막스가 이건가?”
내 시야로 진동하는 대지와 함께.
-크아아악!
-키에엑!
-그어어어….
-그오오!
수십. 수백… 아니 수천의 안광들이 번쩍이며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 이름이 뭐냐?”
“이시운이다.”
“내 원한을 씻어줄 헌터의 이름은 이시운이군.”
“당신은 이제 가는건가?”
“이제 뒤쪽에서 몰려오는 저 놈들에게 집중해라. 마지막으로 네 이름이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다. 날 놀라게 한 주제에 F급인 헌터의 이름이. 저것들 처리할 수 있겠냐?”
투명한 호용의 고개가 돌아가는 곳으로 나도 시선을 옮겼다.
좀비 떼거지들이 아가리를 벌리며 걸어오고 있다.
“…물론이지.”
“날 놀라게 한 놈의 대답답군. 건투를 빈…”
그의 말끝은 그가 사라졌음에 들리지 않았다.
꿀꺽! 난 오른손에 들린 용액을 들이켰다.
[드림웨이크를 복용하였습니다.]
[헌터 시스템을 강제로 가동합니다.]
[주의! 제한 시간은 한 시간입니다.]
차창! 창!
힘이 솟은 내 몸에는 내 본래의 장비들이 내 몸을 감쌌다.
-캬아아아아!
“…이렇게 되니까 저런 좀비 떼거지가 그냥 벌레떼 정도로 보이네?”
화룡의 도약을 통해 그대로 놈들 곁으로 날아갔다.
사합보를 통해 세 보 위로 더 떠올랐다.
-카악?
-그르르!
좀비 떼들이 고개를 꺾어 날 올려다봤다.
“이젠 니들이 아주 쉬워 보이는데? 다 태워주마.”
흑화광참. 내가 든 검신에서 끓어오른 검은 불꽃은 지상의 모든 좀비들의 몸을 덮었다.
불길에 놈들의 열린 두피로 뇌수가 터지며 살가죽이 녹아 땅바닥에 흩뿌려졌다.
검은 먼지가 되어.
“어떻게 나온 것이냐!”
날카롭지만 불안하게 흔들리는 소리는 사백안의 여성의 육성이었다.
“……!”
“이, 이럴 수가?”
“신좌님?”
신도들은 남자에게서 뒷걸음질 치며 사백안의 눈치를 볼 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 내가 직접 죽여주는 수밖에.”
사백안은 자신을 태연히 주시하는 남자 이시운에게 말했다.
‘저런 핏덩이 놈이 어떻게…!’
저 앳된 헌터가 감히 자신의 꿈속에서 빠져나올 줄은 상상도 못한 최악의 일이다.
그런 최악의 수가 벌어지고 말았으니 바로 해야할 일은 이 자리에서 저 헌터의 육신을 찢어야 한다.
“…….”
그런 사백안을 조용히 쳐다보는 시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질주.’
[신성력에 의해 스킬을 발동할 수 없습니다.]
‘역시는 역시군. 저 년이 신성력으로 막아놨군. 그렇다면….’
‘인벤토리!’
[신성력에 의해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스킬뿐만 아니라 인벤토리까지 사용할 수 없는 신세다.
이곳 라파엘 신전은 저 크리스티앙이란 사나운 눈매의 홈그라운드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시운의 시선이 자신의 두 손으로 내려갔다.
검조차 들려있지 않은 자신의 두 손바닥이 보였다.
‘무기조차 내 손엔 없다. 하지만.’
부릅! 눈을 뜬 시운의 눈은 푸석한 머리칼을 공중으로 솟아세우며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백안에게 움직였다.
‘그 남자가 말했었지. 두 번째 선물은 꿈속에서 나가면 바로 열어야 할 거라고.’
그 선물을 열어야할 때였다.
“보관함.”
[익명의 타인에게서 전송된 시스템을 강제로 연동합니다.]
[시스템 가동! 보관함에는 한 개의 물품이 남아있습니다. 열어보시겠습니까? ]
“연다.”
띠링!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그때였다.
사백안의 두 안채는 청광빛을 뿜어대며 시운에게로 쇄도하고 있었다.
파악! 가드를 올려 사백안의 무릎을 받아내며 시야가 뒤틀렸다.
흔들리는 시야 속으로 떠오른 투명창 속 활자가 보였다.
[드림 오브 비전] [차크라]
타인의 힘 일부를 담은 차크라의 구체.
헌터 시스템을 강제로 가동하여 자신의 인벤토리에 보유한 아이템 중 하나를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발동 조건: 즉시.
피잉! 하얀 구체가 아공간 속에서 튀어나왔다.
‘내가 보유한 아이템 한 개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눈앞에 떠오른 구체는 빛을 뿜으며 허공을 맴돌았다.
퍼억!
그때! 고개가 들리는 느낌과 함께.
신전의 어둑한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운의 목을 손아귀로 낚아챈 사백안은 시운의 몸을 그대로 든 채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내 꿈에서 빠져나온 기행을 펼친 놈은 네가 최초다. 평생 기억정도는 해주마.”
끄윽! 강렬히 숨통이 조여오고 시야가 흐릿해지는 순간 속에서 고민을 마친 시운은 속으로 나직였다.
‘영생의 팬던트를 사용한다!’
띠링!
[드림 오브 비전의 능력이 적용됩니다.]
[본인의 시스템 인벤토리에 보관된 ‘영생의 팬던트’를 강제로 착용합니다.]
띠링!
창이 떠올랐고.
[영생의 펜던트]
발카스 왕국의 희귀수로 만들어진 목걸이로 신의 가호가 깃들어져 있다고 한다.
보유 효과
-사망 상태에 돌입하였을 때 체력을 1%로 그 자리에서 즉시 부활 남은 횟수: 2번.
“…?”
이마에 힘줄이 솟은 사백안의 눈이 커졌다.
시운의 목을 조는 자신의 손 위로 툭, 떨어져 감기는 목걸이를 보고서.
“…이 상황에서 목걸이까지 소환한 겐가. 끝까지 기행을 펼치는 것은 용하구나. 허나 끝이다.”
콰득!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실리자 시운은 고개를 옆으로 늘어뜨리며 눈을 감았다.
‘아, 안 돼!’
신도들 사이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가리아는 벌어진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가렸다.
투욱! 사백안이 손을 풀자 바닥에 힘없이 고꾸라진 헌터는 움직이질 않았다.
죽은 것이 분명했다.
가리아의 두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저 남자가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저 남자는 고대의 마도사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크리스티앙의 꿈을 최초로 뚫고 나온 남자였다.
저 남자는 타인과 달리 세 가지나 되는 차크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가리아는 저 남자가 눈을 감은 채 꿈속을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제발! 저 남자가 크리스티앙을 요절내고 속박된 우리들을 해방시켜 주기를.
‘제발…! 제발. 제발! 신이시여… 저 청년에게 가호를!’
가리아는 바닥에 늘어진 남자를 보며 신께 간곡히 빌었다.
사람이 간절하면 하늘이 알아준다 했던가.
미동도 없던 남자의 품에서 빛이 일렁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
남자를 응시하던 가리아의 두 동공에 생기가 차오른 그 찰나였다.
남자가 움직이더니 일어서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는 그는 기력이 없어보였지만 크리스티앙을 겁 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살아났어! 살아났다고. 저 남자는 신이 우릴 위해 보내주신 분임에 틀림이 없어. 신이시여. 한 번만 더 저 헌터에게 힘을 주시길.’
가리아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쓸어안으며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분명 네 놈의 심박은 멈췄는데.”
사백안이 신기한 듯 나직였다.
그랬다. 헌터의 심박세동이 멈췄음을 확인한 사백안은 기어코 다시 일어난 헌터를 보고 오랜만에 뒷목에 털이 서는 느낌을 느꼈다.
“무슨 기행을 또 부린건지는 모르겠지만! 백 번 일어나면 백 한 번 찢어 죽여주마.”
파앗!
사백안이 도약하여 전력을 다해 시운에게 돌진해왔다.
힘이 풀린 눈으로 시운은 가까워지는 사백안을 보며 속으로 속삭였다.
‘도박이다. 동귀어진.’
과연 그 도박이 통할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그러자.
허공 위로 창이 떠올랐다.
[동귀어진(同歸於盡)][궁극의]
자신의 영혼을 바쳐 상대의 영혼을 꺼뜨린다고 전해져 오는 금기시된 고대의 검법.
-발동효과: 상대를 일격에 궤멸.
-조건: 시전자의 죽음.
-사용 제한: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