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9화
상상 그 이상의 보상
이곳 미월 마을의 강당 안은 임원들의 회의가 진행되는 중이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로다.”
다이온은 의자에 앉은 채 턱을 떨며 중얼거렸다.
그는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이었다.
“촌장님. 그 헌터덕분에 우리 마을이 몰락을 면했습니다.”
부촌장 길론이 말했다. 다이온은 길론의 말뜻에 담긴 의중을 알아차리고서 고심에 잠겼다.
‘부촌장은 그 친구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피력하는군.’
그때 미월의 수호대장 가르고스가 육중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촌장! 내 생각은 이렇소.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마을이 역사에서 사라질 예정이었소. 민병대도, 대형 용병길드도 심지어 국가에서도 해결 못했던 일이었단 말이오. 근데 그 일을 우리 인생의 반도 안 산 그 친구가 해내었소.”
“동의합니다. 어떤 포상이든 값지게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외다.”
“젊은 청년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거요. 그 청년은 우리 마을의 골칫거리였던 뱀파이어도 잡아내지 않았소?”
임원들이 입을 모아 같은 뜻을 내비췄다.
다이온은 눈을 굴려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다 듣고서 입을 열었다.
“나도 그대들의 말에 동의하는 바요. 허나….”
다이온이 말끝을 흐리자 부촌장은 그를 못마땅히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압니다. 주민들도 대부분 떠났고, 마을 농지에 농작물도 훼손 된 데다가 관광객들의 발길까지 끊겨 미월의 자금 사정이 곤해진 건 사실이지요. 허나 그깟 이유로 우리가 평생을 나고 자란 이곳을 보존시켜준 은인에게 포상을 내릴 것을 고민한단 말입니까?”
“보시오! 성을 다하여 마을을 지켜준 호인에게 제대로 호의도 표시하지 않는다면 다른 마을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뭐라고 생각하겠소?”
부촌장의 말을 가르고스가 이어받아 말했다.
“잠시 생각 좀 해보겠소.”
다이온의 주름진 눈꺼풀이 닫혔다.
눈을 감은 채 그는 생각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런 젊은 친구가….’
다이온은 그를 떠올렸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인생 말입니다.
핏기도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에 인생의 고역이 뭔지도 모를 고운 손을 꽉 말아쥔 그가 했던 말이었다.
‘허나 그런 그 녀석의 눈빛만은 강직했었다.’
다이온은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빛나던 그의 눈빛에 이끌렸다고 해야할까.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라고 했던가.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고작 이십 년 남짓 살아온 녀석에게서 나올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근데 보상은 솔직히 경험치를 선사하는 것으로 끝내도 그만이다.’
촌장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약속한 보상은 애초부터 경험치 보상이었다.
헌터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 거부한다면 아쉬운 쪽은 쪽박 쓰고 경험치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헌터 쪽이다.
뭐, 결국.
갑은 자신이고 을은 퀘스트 수행자이니까.
“촌장께서는 은혜도 모릅니까?”
“하…. 좀 답답하오.”
“안건을 통과 시키십시다, 촌장님.”
“이건 고심할 문제도 아니외다!”
임원들의 거세진 반발에 다이온은 생각을 정리하지도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 친구가 이 일을 해결하고 오면 대폭의 경험치를 내주기로 약속 하였소. 그 약속대로 행하도록 하리다.”
“씨발! 이런 짜디짠 노망난 늙은이같으니라고!”
가리오스가 욕지기를 내뱉으며 다이온 앞까지 걸어가 살기를 뿜고 그를 내려다봤다.
“얼씨구? 마을을 구해준 영웅에게 고작 경험치 따위의 보상을 던져준다? 우리 마을의 전통 사상을 저버렸냐! 나도 평소 네 놈 행실에 쌓인 게 많았다.”
“예, 예의를 지키시게. 가리오스 경.”
놀라 눈이 커진 다이온이 말을 더듬자.
“예의? 다 늙은 네 면상에 가래침을 뱉어주기 전에 닥쳐.”
“…….”
다이온은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이 뱉은 ‘경험치로 보상을 퉁친다’는 말이 비양심적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리오스가 말한 ‘마을 전통사상’ 에 반하는 말이기도 했다.
미월 마을은 받은 만큼은 꼭 베푼다는 유교적 사상을 이어온 마을이며,
이를 지키지 않는 주민은 반사회적 인간으로 취급하는 게 암묵적 룰이었다.
“가리오스 경. 흥분 가라 앉히시게.”
“…일단 자리에 앉읍시다. 엄연히 회의중이요!”
“욕설은 뱉지 마시오.”
“씨발. 예의도 지킬 때 지키는 거지.”
찰캉!
가리오스가 자신의 목걸이를 뜯어 바닥에 내던졌다.
“허억!”
“가, 가리오스 경.”
“크흠….”
“……….”
가리오스를 만류하던 임원들은 그대로 입을 닫고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목걸이를 던진 저 행위의 뜻이 무언지 알기 때문이었다.
스릉!
가리오스가 검을 뽑아들자 모든 임원들의 입이 벌어졌다.
“난 방금 어머니의 유품인 목걸이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다들 알지? 알면 닥치고 가만히들 있어.”
‘저 오지랖이 각오를 했군.’
‘일 났다.’
‘지금 저 다혈질을 막을 남자는 여기 없다.’
‘저기서 촌장이 헛소리를 했다간….’
임원들은 곧 펼쳐질 수도 있는 참담한 상황을 뇌리에 그리며,
토끼눈으로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평소 어머니를 제 목숨 이상으로 생각했던 가리오스가 저 유품을 맨바닥에 던졌단 것은 이 자리에서 목숨까지 바치겠단 각오였음을 임원들은 알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지껄여봐, 영감.”
가리오스의 검이 움직여 칼날이 다이온의 코앞에 멈췄다.
“이, 이건 좀 거두고 말을 하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마을의 전통사상을 저버릴 참이냐? 대답만 해라. 아니면 그대로 네 목을 쑤셔주고 그냥 감옥에 가서 평생 썩다 나도 가련다. 어차피 네 놈의 평소 개짓거리에 쌓인 것도 많았고.”
다이온은 곰 같은 체구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가리오스의 눈을 보지 못했다.
분명 저 남자는 신념이 강하며 한다면 하는 자다. 잘못 말했다간 내 노년의 끝이 저 날에 막을 내리리라.
“꿀꺽.”
서슬퍼런 날이 목젖에 닿자 피가 주륵- 목선을 타고 내려감에 다이온은 침을 삼켰다.
그때였다.
모든 임원들의 이목이 광장의 입구로 모였다.
“!”
“레나! 이곳에 오면 안 돼!”
“하필 이 시점에 저 아이가….”
“어서 돌아가거라! 레나.”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황금 머리칼을 찰랑이며 걸어오는 여성은 촌장의 딸 레나였다.
그녀는 둘러쌓인 임원들 정중앙에 멈춰섰다.
무표정인 그녀는 가만히 자신의 아버지와 가리오스를 번갈아봤다.
“쳇. 넌 끼지 말고 빠져라.”
레나를 보며 말하던 가리오스의 눈이 흔들렸다.
가리오스 또한 딸을 둔 아비로서 마음이 약해지려 했기 때문이다.
“죽이세요.”
“뭐?”
차가운 레나의 한마디에 놀란 가리오스가 되묻자 레나의 입이 다시 열렸다.
“죽을만한 짓을 하시겠다면 죽어야죠. 그러니 죽이시라고요.”
그녀의 말에 임원들의 얼굴이 뜨악해졌다.
순간 찢어질 듯 눈이 커진 다이온이 언성을 높였다.
“네, 네가 어떻게 아비를 해하려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이냐?”
“아버지는 항상 그랬어요. 마을을 위한 척, 당신의 행동이 모두를 위한 척 하면서 주민들을 괴롭히셨고, 착취하셨죠. 그리고 그 아무 것도 아닌 촌장이란 권력으로 독재까지 일삼으셨죠.”
“…네 이 년이 먹이고 키워줬건만 패륜아 같은 년! 내가 네 년을 잘못 키웠구나.”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아버지, 아니 당신의 그 이기적인 면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거 잊으셨어요?”
“……….”
레나의 눈부신 얼굴은 쏟아지는 눈물로 번져갔지만 제 아비를 똑바로 바라본 채 눈을 떼지 않았다.
지켜보던 임원들은 놀라 수근대기 시작했다.
‘촌장 때문에 자살한 거였다고?’
‘맙소사!’
‘다이온 저 양반이 인간같지 않은 노인네이긴 하지.’
그녀의 눈이 가리오스에게 움직였다.
“아저씨. 결단을 내려주세요.”
“오냐.”
가리오스의 칼이 번쩍 위로 들렸다.
순간!
다이온이 가리오스에게 두 손을 들어 뻗었다.
“잠깐! 알겠소이다. 그 친구에게 후한 답례를 하겠소. 그러니 그 칼은 좀 내려주시오.”
“정말이냐. 내 성격 알지? 번복은 없다.”
“…정말이고 말고.”
“그럼 안건을 통과시켜라. 이미 임원들의 뜻은 나와 같아서 가결될 것이다.”
“통과시키겠소! 우리 마을을 구한 영웅에게 그 보상을 하리라는 안건을….”
찰캉! 가리오스가 검을 거두고 검집에 밀어 넣자 레나는 주저앉아 오열했다.
[퀘스트 ‘라파엘 신전의 악마 퇴치’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대폭의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미월 마을의 촌장 ‘다이온’ 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5 레벨 업이라니! 짭짤하군.’
시운에게 언제 들어도 반가운 보상의 알람이 귓가를 뒤흔들었다. 고생 끝에 받는 보상을 받는 순간이란 언제나 짜릿하다. 희열이 차올랐다. 그 뒤로 유석과 혜령, 연희의 몸에서도 레벨 업 임팩트가 뿜어졌다.
“자네가 정말 그 일을 해결하고 올 줄은 꿈에도 몰랐네.”
다이온이 시운을 보며 말했다. 정작 이 임무를 도맡아 수행한 것은 넷인데 시운에게만 눈길을 주며 그가 말했다.
“설마 보상이 이걸로 끝은 아니겠죠?”
시운이 다이온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애초에 집 한 채를 얹어 달라고 말은 해놨었다. 근데 사실 그 집이란 보상은 억지란 걸 알기에 되면 완전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는 봐야 하지 않겠는가.
“흠….”
다이온이 침음을 흘리자 옆에 있던 레나가 방긋 웃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헌터님은 저희 마을에 정말 큰 은혜를 베푸셨답니다. 여기요.”
“이건?”
놀란 시운이 그녀의 손에 든 종이와 레나를 번갈아봤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시운은 그것을 건네받았다.
집문서 명의이전 계약서였다.
‘…이거 실화냐? 진짜 집 한 채를 준다고?’
집 한 채는 줘야 된다는 미끼는 던져놨었다. 근데 그 미끼에 대어가 낚이리란 기대는 안했었는데.
무려 2층짜리 40평짜리 집이다.
미월 마을의 땅값을 고려해도 집값은 족히 6억 골드 이상의 시세!
눈이 찢어질 듯 커진 시운이 레나에게 물었다.
“정말 받아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계약서를 2통 작성하시고 한 장만 제게 돌려주시면 돼요.”
“뭐, 주신다니 거절 않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시운은 빈말로 한차례의 거절도 없이 냅다 받아들였다. 이게 웬 떡이냐?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려는 걸 참았다. 계약서에는 특약사항과 양도인 다이온이 양수인에게 집 명의를 이전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목숨 건 그 개고생을 한 보람이 있구나 싶다.
“모두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마을을 대표해서 제가 이렇게 감사함을 전하겠습니다. 평생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레나가 시운의 일행을 하나하나 바라봐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한편 다이온은 뭔가 불편하다는 듯 했지만 억지로 누르는 낯빛이다.
한편 곁에 있던 유석의 시선은 시운에 향해있었다.
‘결국 받아내고 말았군.’
유석은 속으로 감탄했다. 늘 지켜봐왔던 이시운은 엉뚱했지만 남들과는 색다르게 일을 처리했다.
이번 크리스티앙의 꿈마저 깨부수고 혜령과 연희, 그리고 자신을 지켜낸 데다가 보상 목록에도 없던 집 한 채까지 뻔뻔히 받아내는 것을 보니 이젠 확신이 굳었다.
‘…저 남자라면 분명 희귀 현상에 대한 비밀을 풀어낼 수 있을거다. 저 남자의 곁에 내가 있어야 한다.’
그의 뇌리로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토록 보고 싶은 남자의 얼굴말이다.
“…….”
반면 연희는 말없이 시운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정성껏 식사를 준비해놨답니다. 다들 이쪽으로 오셔요.”
시운과 일행은 뒤이은 보답으로 20첩 반찬이 깃든 점심식사를 한 후 촌장 집에서 나왔다.
“지금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정연희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다들 그녀를 바라봤다.
언제나 발랄하던 그녀의 두 눈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