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41화 (141/278)

제 141화

초전생의 비밀 (2)

날 보고 있는 게 맞다. 그리고 나에게 하는 말이 맞다. 나에게 전할 말이 있단다.

순간 처참한 주위 배경이 블라인드 되듯 흐려지고 저 남자의 얼굴만 선명해졌다.

죽어가는 남자가 날 바라보는 두 눈에는 많은 감정들이 서려있는 듯 했다.

“…후대의 나여. 묻고 싶은 게 많겠지. 허나 긴 설명을 늘어놓을 시간이 없어.”

붉은 머리가 힘겹게 말했다. 그런 듯 하다. 저 남자는 죽어가고 있으니까.

“난 지금 한 남자의 술법에 걸려들고 말았다. 영생과 같은 술법. 그리고 난 이렇게 죽을테지. 그러나 난 죽기직전 내 영혼에 나만의 술법을 걸어놓았다. 그 술법의 작용으로 인해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네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술법? 그 술법의 작용으로 뭐 수천 년이 지난 지금 내게 말을 하는 거라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ㅇ…”

질문을 하려 했으나 내 입에선 말이 나오질 않는다. 하. 질문은 금지고 말만 들으라 이건가?

아무튼 더 들어보자.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정해진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야. 이게 지금 네게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쿨럭! 붉은 머리가 피기침을 뿜어낸다. 저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 나와 인생은 다르다 해도 어쨌든 저 양반은 초전생의 나니까.

꿈을 통해 지켜본 저 남자의 일생은 오로지 검과 함께였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한다 속삭이지도 못하고 청춘, 여흥을 즐기지도 못한 채 저렇게 전쟁을 하다 죽는 듯 하다. 진짜 암담 그 자체다.

비련의 주인공같다. 저 남자가.

“내 인생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은 없었다. 어둠뿐이었고 슬픔뿐이었다. 넌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하구나. 넌 나의 또 다른 나니까. 네가 내 이 여한을 풀어주며 살아줬으면 좋겠다. 그게 죽기 전 돌아보면 후회없을 삶일지어니.”

난 속으로 혀를 찼다. 저 남자가 한심해서가 아니라 안타까워서.

남자가 말을 잇는다.

“…그래서 내가 네게 시련을 주고 싶은데.”

뭔 어불성설이야? 자기 몫까지 즐겁게 살아달라면서 시련을 주겠다고? 순간 따지고 싶었지만 말이 안 나오니 답답한 순간이 지금이다.

“그 시련들을 이겨낼 때마다 네게 보상이 있을 게다. 시련의 끝은 그런 거니까. 해볼 테냐? 네게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있다. 넌 네 자유의 의지가 있으니까.”

시련을 주겠단다. 근데 그 시련을 끝맺을 때마다 뭔가가 따라온다고 한다.

‘블랙 헌터…. 윤동석. 헌터 시스템의 괴멸.’

세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다. 저 일들을 막아내기에는 아직 내 힘은 부족하다.

지금 내겐 힘이 필요해.

저 남자의 말에 오케이를 하면 난감한 시련들은 주어지겠지. 근데 그 시련 뒤에 보상은 따른단다.

그렇다면….

순간 망설이던 내 머리에 확신이 섰다.

‘당신이 시련을 준다면 기꺼이 그 시련을 다 이겨내주겠다.’

“좋다.”

내 속마음이 들린건가? 저 남자가 피범벅이 된 빨간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 남자의 인생의 일대를 지켜봤다. 저 자는 절대 나쁜 인간은 아니다. 게다가 나의 초전생인 남자가 내게 불이익이 될 일을 주진 않을 것 아닌가? 그래서 내린 대답이었다. 지금 내겐 무엇보다 힘이 필요하기도 하고.

“네게 줄 시련들이 다 힘들거나 괴로운 일은 아닐거다. 즐거운 일일 수도? 어쩌면 내가 평생에 누리지 못한 일들을 시련이란 명목으로 네게 주는 것 일수도 있다. 명심해라. 난 이것을 끝으로 널 돕지 못한다. 이제 헤쳐나가는 것은 네 몫이다.”

시련? 까짓 거 다 뚫어버리면 그만이다. 난 지금껏 세 번의 인생을 살면서 오만 경험을 다 해봤다. 이젠 내가 견뎌내지 못할 일은 없다.

그래, 어디 줘봐라.

“하나만 보고 인생을 좇지마라. 즐겁고 행복하게 많은 것들을 하며 살아라. 명심해라.”

마지막까지 좋은 말을 던져주네.

공감한다. 이번 인생은 답답하게 살지 않겠다 다짐했다. 내가 성공해서 하고 싶은 것들 다 누리고 살리라!

그때였다.

남자의 감긴 두 눈의 위 이마에서 시퍼런 눈이 뜨여졌다. 저 남자의 눈은 세 개인가? 아, 아니다. 저 남자는 이번 전쟁을 치룰 때 검은 동공이 없었다. 저 남자는 맹인이란 말인가? 잠깐!

저 남자의 눈인 신안. 그리고 한 여자를 열렬히 사모한 거. 게다가 맹인….

모든 게 나랑 일치하잖아? 설마….

아니, 잠깐. 아까부터 이상한 것이 있다. 붉은 머리 옆에 가슴께가 뜯어진 채 죽어있는 남자의 얼굴이 박태석과 너무나 똑같다.

내 인생의 롤모델. 지상최강의 헌터 중 한명인 박태석.

장유석의 말로는 박태석은 회귀자라고 했다.

잠깐! 저기 죽어있는 붉은 머리 동료들은 누군가의 영생의 속박에 빠진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회귀.

그렇다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내 육안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들려온 알람음이었다.

시련이 시작된 모양이다.

그때 나의 배와 두 다리가 보였다. 내 형상이 생겨난 듯 하다.

그리고 내 허공위로 창이 떠올랐다.

[시련의 자격-1]

사령의 오우거들을 스킬 없이 모두 퇴치하라.

성공할 시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하며 실패할 시 당신의 영혼은 소멸된다.

실패하면 죽는단 이야기다. 뭐, 이 정도의 패널티는 돼야 내게 동기부여를 심어주지.

사령의 오우거? 협곡에서 꽤나 힘겹게 잡은 몬스터들이다.

‘상태창.’

레벨: 108

근력 <277> 민첩 <164>

체력 <116> 지혜 73 지능 13

열정 8

살기 3

여유 스탯: 15

다행히 헌터시스템이 작동한다.

저 여유 스탯은 다이온의 퀘를 완료하고 분배하지 않았던 스탯이다. 스탯은 모두 분배해줘야 시련도 쉬워지는 법!

분배를 모두 근력 스탯에 때려박았다.

레벨: 108

근력 <293> 민첩 <164>

체력 <116> 지혜 73 지능 13

열정 8

살기 3

여유 스탯: 0

근력을 15나 찍어주니 전신의 근육에 힘이 탁,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때였다.

-크아악!

-크아!

사령의 오우거 수백 마리들이 땅에서 솟아났다.

‘타이밍 좋고.’

그대로 놈들에게 달려갔다. 아클레우스 소드를 그어내리자 한 놈의 머리가 나가 떨어졌다.

-사령의 오우거를 처치하였습니다.

단 일격이었다. 내 근력 스탯은 협곡 때와는 다르다. 게다가 민첩 스탯은 또 어떠하랴? 내 움직임은 이미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신속했다. 예전 같았으면 스킬 없이 이 놈들을 상대하긴커녕 저놈의 살갗도 뚫지 못했으리라.

-그오오!

날개를 펼치며 쇄도하는 오우거의 팔뚝을 피했다. 동시에 검신을 위로 치켜 올리자 놈의 뱃가죽에서 내장이 쏟아졌다.

-사령의 오우거를 처치하였습니다.

너무 쉬운데?

그대로 검을 오른쪽 평행으로 뻗어 뒤까지 180도 자세를 움직여주자 뒤에서 덮치려던 한 놈이 땅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졌다.

퍼억! 쓰러진 놈의 머리통을 발로 차니 두개골이 터지며 놈의 뇌수가 쏟아졌다. 근력 스탯에 힘을 주니 발길질로 오우거의 머리통도 쪼갤 수 있게 됐다.

-사령의 오우거를 처치하였습니다.

-그오오?

-크오?

놈들이 잠시 멈춰서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한다. 내가 워낙 넘사벽으로 강하다보니 당황 좀 한 모양이다.

“당황 좀 했냐? 난 지금 재밌는데.”

검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일합. 이합… 삼합 … 사합부터 십이합까지.

-사령의 오우거를 처치하였습니다.

-사령의 오우거를 처치하였습니다.

-사령의 오우거를 처치…….

내 곁으로 몰려든 떼거지들은 하나둘씩 걸레짝이 되어 바닥에 내던져지고 있었다.

피가 쏟아진다!

-크에에에에엑!

저 우락부락한 놈들이 고통의 하모니를 내지른다! 그 소리는 내게 희열을 선사했다.

어느새 내 얼굴엔 오우거의 피가 한웅큼 묻어 흘러내리고 있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진한 피냄새가 나쁘지 않다.

원래는 참 좆같았던 냄새인데.

어느새 스테이지는 마지막 관문이라는 다섯 번 째다.

월등히 높아진 스탯빨로 스킬 없이 무력만으로 몹들을 다 조지며 스테이지를 넘어는 왔는데.

“하, 씨발.”

난감함에 뱉어진 내 욕지기 소리다. 내 앞에는 철갑을 두른 말을 탄 망자놈이 창끝을 내게 겨누고 있다.

망자 뒤로는 늙은 마법사 하나가 조용히 날 주시하고 있고 그 뒤로는 도깨비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큰 성문이 보였다.

다 좋은데 내 앞을 막아선 저 창든 망자놈이 문제다.

놈은 표정 없는 얼굴로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저 놈은 일정한 조건하에 움직인다. 내가 이놈을 넘어서서 저 뒤 마법사에게 가려하면 창을 내지르며 날 공격하고 막아선다. 근데 문제는 아무리 검으로 저놈을 쑤시고 베도 놈은 죽지 않는다. 신체가 절단되면 다시 붙는다.

‘그렇다면 이 놈을 따돌리고 저 마법사놈의 멱을 따줘야 한다는 거지.’

이게 내 예상이다. 관찰한 결과 저 뒤에 있는 마법사는 창든 망자가 움직일 때마다 손끝을 꿈틀거렸다. 아마 망자를 조종하는 본체가 저놈인 듯 하다.

‘질주.’

[강력한 마력에 의해서 스킬을 발동할 수 없습니다.]

‘인벤토리.’

[강력한 마력에 의해서 인벤토리를 열 수 없습니다.]

아이템도 사용할 수 없고, 스킬도 사용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곧바로 뛰어가서 창잡이와 거리를 좁혔다. 그제야 놈이 움직이며 창을 휘두른다.

창! 차앙!

창과 칼이 부딪혔다. 놈이 창대를 현란하게 쥐어 휘두르며 창질을 해왔다. 검으로 다 받아낸 뒤 놈이 크게 창을 휘두르자 난 하체를 구부리며 상체를 숙여 피해냈다. 큰 동작을 실은 공격이 실패한 놈에게 빈틈이 보인다.

‘시도해볼까?’

난 그대로 놈이 탄 말의 머리로 검을 뻗었다. 검 끝이 말의 이마에 쑤셔 박히자 말이 머리를 흔들었다. 창잡이가 아닌 말을 공략한 것이었다. 곧바로 말의 등을 횡베기로 베었다. 이등분으로 토막난 말의 머리와 엉덩이가 땅에 널부러지며 탑승해있던 창잡이가 땅에 떨어졌다.

이 때다!

“……?”

곧바로 뛰어넘어 마법사에게 달려갔는데 내 위치가 창잡이 앞으로 이동해있다. 창잡이와 말의 본체는 복구된 채 내 앞에 서있다.

일반적인 방법으론 통하지 않는 듯 하다. 마지막 스테이지답게 까다롭다. 그렇다면….

창잡이에게 공격을 하려는 척 모션을 취하자 창잡이는 창을 내게 뻗었고 난 옆으로 덤블링하며 피해낸 후 공중에 뜬 상태로 검을 마법사를 향해 힘껏 던졌다.

슈우웅!

“뭐야?”

분명 검을 던졌는데 눈 한 번 깜짝이니 검이 내 손에 들려있다.

“…….”

창잡이의 검은자위 없는 하얀 두 눈은 여전히 내게 향해있다.

“너는 인간이냐?”

내가 물었으나 놈은 입을 벌리지 않고 그대로 나만 보고 있다. 저 창잡이의 눈빛이 왠지 건방지게 느껴졌다. 약점을 찾아야 한다. 파훼법이 분명 있을 터.

차앙! 창!

놈에게 검을 내질렀다. 내지르는 순간에 내 눈은 창잡이와 마법사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마법사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창잡이가 움직인다. 그 외에 의아한 점은 없다.’

이번엔 말을 공격해봤다.

가로베기로 말을 공격하자 놈이 창을 이용해 내 칼을 쳐냈다. 그 순간에 마법사의 움직임을 훑었으나 방금과 다른 점은 없었다. 뒤로 물러난 나는 마법사 뒤에 있는 도깨비 성문을 바라봤다.

저건가?

입을 벌린 도깨비의 두 눈은 뜨여져있었다. 내가 창잡이를 공격할 때 도깨비의 오른쪽 눈이 초록색으로 변했고 마법사를 향해 공격했을 때는 왼쪽 눈에 초록빛이 번쩍였었다.

일정한 패턴 속 숨겨진 허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뒤로 물러나며 창잡이에게서 멀리 떨어지자 도깨비의 두 눈에 초록빛이 번쩍였다.

뭘까? 파훼법은 저 눈과 분명 관련이 있다.

‘패턴을 찾자.’

창잡이를 공격했다.

도깨비 오른쪽 눈이 번쩍인다.

마법사를 향해 가려했다.

도깨비의 왼쪽 눈이 번쩍인다.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두 눈에 빛이 들어왔다.

‘이거 어쩌면?’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마법사를 향해 두 다리를 움직였다. 도깨비 왼쪽 눈이 번쩍!

그대로 뒤로 물러나봤다.

도깨비 두 눈이 번쩍였는데 순간! 도깨비의 벌린 입이 조금 닫히는 것이었다.

다시 창잡이를 향해 일합을 가하자 닫힌 도깨비의 입이 벌려졌다.

씨발! 뭔가 될 것 같았는데 말짱꽝이 돼 버리고 말았다.

아. 잠깐.

이거 설마 그거였냐.

“널 뚫을 방법을 찾았다, 새끼야.”

창잡이를 향해 난 입가를 비틀어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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