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43화 (143/278)

제 143화

그날의 시작

유석의 물음에 이시운은 유석을 똑바로 바라봐주며 말했다.

“그걸 굳이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요?”

시운의 말에 유석의 낯빛이 굳어졌다. 그 대답은 차가운 것을 넘어 유석에게 옅은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우린 동료 아니었습니까?”

묻는 유석의 톤이 굳게 올라갔다. 유석은 시운이 자신을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다 믿었다. 동료라면 레벨 정도는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내 레벨이 왜 궁금하죠?”

“…불편했다면 미안합니다. 더 묻지 않겠습니다.”

유석은 시운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유석의 낯빛이 차가워지자 혜령이 시운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야, 야. 레벨 정도는 알려줄 수도 있잖아? 선 너무 긋는다? 우리가 그 정도 사이도 안 되냐? 내가 물어도 안 알려줄 거야?”

“아닙니다, 제가 괜히 물었나 봅니다.”

유석이 대신 답했다. 시운은 유석을 바라봤다. 티는 안 내려고 해도 서운함이 가득하다는 듯한 얼굴이다.

‘장유석과 그 이야기를 나눠야겠군.’

헤령은 쎄한 분위기를 푸려고 유석과 시운의 어깨에 나란히 손을 올려 어깨동무를 걸쳤다.

“에이, 에이. 우리 이제 제법 친해졌는데 사이좋게 지내면 좋잖아? 앞으로 볼 날도 많을건데.”

“…….”

“풉….”

혜령은 말없이 정면만 주시하는 유석을 보고 킥, 웃었다.

저렇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유석이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걸 보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군바리 시운이가 철벽 쳐서 삐졌어?”

“아, 아니 삐지기는 뭘….”

“에이, 삐졌구만, 뭘. 생긴 거하고는 완전 다르게 좀 소심하네?”

“그런 거 아닙니다.”

강혜령은 유석을 군바리라 불렀다. 깍두기 머리에 잘 웃지도 않고 딱딱하게 ‘다나까’ 말투만 쓰는 그에게는 딱인 별명이었다. 뭣보다 혜령은 꿈속에서 유석과 콤비를 이뤄 며칠을 보낸지라 둘은 나름 친해져있었다.

“야, 시운아. 군바리 저 튀어나온 입술 봐라. 쟤 지금 시크한 척 하고 있어도 완전 삐져있다?”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얼굴이 벌게진 유석이 정색하자 혜령은 키득거리며 시운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시운은 지금 그녀의 제스처의 뜻을 이해하고 있다. 쟤 삐졌으니 그깟 거 좀 알려줘버려라. 란 뜻이겠지.

“누나. 나 유석 씨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 잠시 비켜줄래?”

“뭐냐. 나 왕따 시키는 거냐.”

“아니야.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그게 뭔데? 나도 좀 알면 안 되냐.”

혜령은 굳이 캐물었다. 미월마을로 오는 길에 유석과 시운의 기류가 쎄했던 것이 맘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쳇. 뭐, 알겠다.”

혜령은 시운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더 묻지 않았다. 시운이 유석을 보며 물었다.

“술이나 한잔 할래요?”

“뭐, 그러죠.”

둘은 그렇게 미월 마을의 바에 도착했다.

일자형 테이블에 흑맥주 두 개를 시켜놓고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유석의 대답은 단답식이었다.

“지금 나한테 서운해 하고 있죠?”

시운의 물음에 유석의 이마가 구겨졌다. 시운은 흑맥주 잔을 들고 고개를 꺾으며 맥주를 삼켰다.

유석은 사방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에 온 모든 손님들의 시선이 시운에게로 향해있었다. 시운을 보며 숙덕거리기도 했고 그중 젊은 여성들의 눈은 호감이 서려있었다. 한 여성은 시운과 눈이 마주치자 입을 가리고 웃으며 자신의 일행에게 “방금 저 잘생긴 헌터랑 나 눈 마주쳤어.” 라며 설레하기도 했다.

유석은 묵묵히 흑맥주를 음미하는 시운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 회귀자는 아주 특이하진 않지만 독특하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의외의 행동을 보여줘서 매번 고난을 뚫어낸 데다가 이번엔 같이 임무를 시작해서, 같이

끝마쳤는데도 미월 마을의 모든 주민들은 시운에게만 관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뭔가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야.’

손님들은 유석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시운은 어느새 이 마을 주민들에게 은인이 돼 있었고, 자신은 그냥 덩치 만 큰 총각으로 보여 지고 있었으니까.

본래 질투란 감정을 잘 모르는 유석은 자신을 이런 감정이 들게 하는 시운에 괜히 화가 나서 힘주어 쏘았다.

“내가 서운한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당신은 날 동료로 믿어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유석의 쩌렁쩌렁한 고성에 모든 손님들의 시선이 유석에게로 쏠렸다.

시운은 고개를 돌려 태연한 얼굴로 유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도 낼 줄 아네요?”

“나도 사람입니다.”

“알죠. 내가 당신에게 내 레벨조차 알려주지도 않는 이유는 당신을 아직 내 완전한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벌컥! 유석은 격하게 흑맥주를 들이켰다.

“유석 씨. 나하고 딜 하나 할래요? 내가 지금 내 레벨을 알려줄 테니 당신도 내 부탁 하나를 들어주는 거.”

“굳이…”

유석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라고 말하려 하다 입을 닫았다. 솔직히 시운의 현재 레벨을 알 필요는 없는 정보다. 게다가 그 정보를 알게 되면 난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 손해보는 장사였다.

허나 도중에 입을 닫은 것은 이번이 어쩌면 시운과 진짜 친해질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상대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면 마음을 좀 더 열게 돼있지.’

친동생 종우를 살리는 가능성을 높이려면 지금은 회귀자인 이시운이 필요하다.

“부탁하려는 게 뭡니까. 동료로 생각지도 않는 내게 부탁을 한단 말입니까? 그거 이기적인 심보 아닙니까.”

“…이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때부터 장유석. 당신을 내 진짜 동료로 생각하겠습니다.”

시운의 말은 유석을 빨아들이기에 충분했다. 아무래도 아쉬운 쪽은 지금 유석이니까. 그러나 일단 그것이 뭔지는 먼저 알아야 했다.

“그 부탁이 뭡니까. 먼저 듣고 생각해보도록 하죠.”

“아니. 들어준다고 약속하면 말해줄게요. 그리고 더 많은 것도 말해주도록 하죠.”

억지였다. 분명 시운은 억지를 부리고 있다. 하지만 유석의 마음은 흔들렸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겠다고 한다. 그게 설마 내 동생을 살릴 수 있는 정보와 관련된 것 일수도 있을까?

“말해주겠다는 것이 뭡니까. 부탁을 먼저 말하지도 않고 어거지로 들어주겠다고 하면 말하겠다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군요.”

“…당신에게 아주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일 겁니다.”

“두루뭉실하게 말하지 말고 확실하게 그게 뭔지 말해요. 듣고 싶습니다.”

“난 여기까지만. 더는 안 말할 거에요. 그게 궁금하다면 내 부탁을 들어주면 되는 거고, 아니면 그냥 없었던 일로 퉁치면 그만이고.”

“…….”

둘은 묘한 내공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마주본 둘의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져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둘의 시선은 팽팽했다. 그러나 한쪽의 눈빛이 기울었다.

“하아….”

유석은 숨 빠지는 소리를 내며 흑매주를 벌컥인 뒤 입을 열었다.

“말해봐요.”

“그 말은 내 부탁을 들어준다는 의미로 알고 말하겠습니다?”

“…….”

말이 없는 유석을 보고 시운이 말했다.

“130.”

“뭐라고요?”

“레벨 130을 찍었다고요.”

“…자, 잠시만.”

유석은 뒷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 했다. 시운이 자신보다 레벨이 높다는 건 짐작했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자신의 레벨은 101인데 이시운이 지금 130이라니?

같은 선상에서 헌터 일을 시작하고 협력 퀘도 같이 수행했다. 렙업의 마의 구간인 렙 90대부터다. 101과 130의 차이란 엄청난 차이였으며, 이 차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믿지 못하는 표정이니 보여주죠.”

순간 유석의 눈앞으로 창이 떠올랐다.

“!”

시스템 공유기능을 사용한 것이었다.

시운의 능력치 정보는 모두 가려져 있었지만 분명 이시운의 레벨은 130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아니 대체 어떻게 레벨이 이럴 수 있는 겁니까.”

확인했음에도 믿기지가 않아 물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자신과 같이 헌터 생활을 시작한 이시운의 렙업 속도는 유일무이한 희대의 그 사람. 박태석과 견줄 정도였으니까.

“난 내 정보를 떠벌리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고 지금 이게 중요한 것도 아니에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부터 들어요.”

유석은 시운에게서 꿈속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들었다.

장유석의 눈과 입은 벌어질 만큼 벌어졌다.

“…블랙 헌터 김호용이란 사람이 꿈속 허구의 인물일 수도 있잖습니까.”

도저히 그 사실들이 믿기지 않아 유석이 물었다. 그러나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김호용이란 사람은 실재했던 인물이 맞아요. 다 알아봤습니다.”

“…다 알아봤단 말입니까.”

믿기지 않았다.

F랭크인 시운은 인맥도 없고 타 헌터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권한도 없다. 이건 거짓말이다.

“이것도 안 믿길테니 과정을 말해주도록 하죠. 주무관 윤성혜를 통해서 김호용이란 사람이 존재했고, 그가 일반 헌터의 길을 벗어났단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윤성혜라면 가능하다. 그녀는 아버지란 빽을 가진 여자니까.

그의 말을 듣고서야 수긍이 갔다. 동시에 유석은 온 몸의 털이 서는 느낌이었다.

“…협회 측 회귀자를 파악하여 내게 알려줘요. 그게 내가 당신에게 할 부탁입니다.”

“협회 측에 회귀자가 존재할 거라 믿는 이유가 뭡니까.”

“반드시 있습니다. 지켜보면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제 삼일 뒤에요... 그 날.”

삼일 뒤라는 말에 힘이 묻어났다. 삼일 뒤 그날은. 생사를 확신할 수 없는 곳에 이들이 투입되는 날이니까.

검은 롤스로이스 한 대가 건물 앞에 미끄러지듯 정차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내가 뒷좌석으로 쪼르르 뛰어가 문을 열어주자 열린 문틈으로 그가 내렸다. 협회장 곽대익이었다.

그는 정장 단추를 여매다가 앞을 보고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앞으로 하얀 롤스로이스가 정차하자 혀를 찼다.

‘타이밍 한 번 죽이네.’

자기랑 같은 종류의 차지만 상반된 색의 저 차가 참 맘에 안 들었다. 정확히는 저 차주가 맘에 안 드는 거지만.

백색 롤스로이스에서 내린 사내가 곽대익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뵈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협회장님.”

윤동석 그가 대익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익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면서 서로에게 미소를 보였다.

‘윤동석. 아침부터 참 맘에도 없는 좆같은 소리를 하는군.’

둘은 나란히 로비로 걸어갔다.

“부협회장님은 이번 임무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얼마로 보십니까.”

“반반으로 봅니다.”

“반반이요?”

대익은 오묘히 말끝을 올렸다. 마치 비꼼을 담은 듯이.

“…이번 일이 잘 해결되면 참 좋겠습니다만.”

동석의 말이 참으로 뻔뻔하게 느껴졌다. 저 말을 하는 아가리를 콱,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당신이 퍽이나 그러시겠군.’

대익은 이런 속내를 숨기며 동석을 보고 허허, 웃었다.

반면 대익을 바라보는 동석의 눈은 여유로웠다.

‘협회장. 그대가 괴물 하나를 곁에 두고 있는 건 이미 알고 있다네. 근데 쉽지 않을게야.’

둘은 협회 건물의 VVIP 전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띵!

엘리베이터가 솟는 동안 둘은 더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서로를 죽일 그림만 짜는 사이. 그러나 그 그림이 들키기 전에는 대충 존중해주는 척 하는 관계끼리 굳이 일정 대화 이상 섞을 필요는 없었다.

-17층입니다.

띵!

“나중에 또 뵙지요.”

대익의 인사에 동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까닥 숙여줬다.

엘리베이터의 닫혀가는 문 틈새로 보이는 대익의 뒷모습을 보는 동석의 눈에는 살기가 서려있었다.

“협회장님 오셨습니까?”

대익은 여비서의 인사도 무시한 채 협회장실로 급히 들어갔다.

숙인 엉덩이에 빨간 스커트가 오므려질 만큼 깍듯하게 인사했는데 씹히자 비서는 입술을 삐죽 말았다.

‘오늘은 또 예민하신 날인가 보네.’

협회장실에 들어선 대익은 시가를 물어재낀 채 수화기로 나직였다.

“이수철이 보고 지금 당장 확인하고 내게 보고하라 그래.”

이계의 허허벌판의 광야 한가운데에 열려있는 게이트 앞을 다섯 명의 남자가 에워쌓고 있다.

“이 팀장님. 마력 수치가 측정이 안 됩니다.”

사내가 제1관리과 팀장 이수철에게 말했다. 이수철은 턱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게이트 앞으로 뻗었다.

손가락이 투명한 게이트에 닿자마자 작은 스파크가 튀며 손가락이 튕겨져 나갔다.

“정말 불화현상이 나타나는군.”

불화현상은 게이트에 투입되기엔 차크라가 높거나 낮을 때 게이트가 거부할 때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 현상은 전자였다.

“난 랭크가 높으니 내게 불화현상이 일어나는 건 의미가 없어.”

“이미 E랭크 헌터에게도 불화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음….”

수철은 거대한 게이트를 올려다봤다. 이런 게이트를 미지의 게이트라 한다. 투입되는 헌터의 차크라의 조건을 따지는 게이트 말이다. 웃긴 게 이 게이트는 마력 수치가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위험하면서도 극소양의 차크라를 가진 F랭크만 허가하는 모양이다.

“김 대리. 일단 협회장님께 보고 올렸지?”

“네, 근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김대리의 말을 수철은 극히 공감했다. 이 게이트는 마력측정 불가 게이트다. 보통 이런 게이트는 아주 위험하다 알려져 있는데 이런 곳에 병아리 F랭크들을 투입시킨다니.

“거기까진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병아리들을 사막에 보내는 격 아닙니까.”

“자네는 신경 꺼!”

“하, 그래도 과장님….”

“중요한 임무라잖냐. 내가 뭔 힘이 있냐? 윗선에서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야지.”

수철은 인기척에 뒤를 돌아다봤다. 열 명의 인파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인파 속에서 한 여자가 다가왔다.

“제가 이번 팀 선발대를 담당한 윤성혜 주무관입니다.”

“아, 반가워요. 제1관리과장 이수철이에요.”

“선발인원은 총 아홉입니다. 모두에게 확실히 지시사항을 당부했습니다.”

수철은 그녀를 제외한 아홉의 헌터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중년 한명을 제외하면 모두 핏기도 마르지 않은 애들이었다.

그는 측은함에 조용히 혀를 찼다.

‘여기가 자네들의 무덤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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