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44화 (144/278)

제 144화

디 데이

선발대를 모두 게이트에 투입시키고 난 무렵. 뒤에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철이 돌아보니 살짝 탄 피부에 눈매가 쭉 찢어진 남자가 다가와 눈인사를 건넨다.

“협회 2지부 관리과 주임 이한석이라고 합니다.”

협회 2지부라면 화이트 게이트군, 수철은 생각했다. 화이트 게이트 요원들은 협회측 상사들에게 화이트 게이트가 아닌 2지부라고 자신을 낮춰 말한다. 그게 일종의 예의 개념이다.

‘뭐. 이번 일은 화이트 게이트에서도 당연 냄새를 맡고 있으니 확인 차 온 거겠지.’

수철은 그의 등장에 딱히 반감도 의아함도 들진 않았다.

수철은 그의 인사를 받고 물었다.

“이번 선발대 명단을 살펴보니 프로게이머 장세준도 있더군요?”

“그를 아시는 군요.”

윤성혜 대신 이한석이 그에 말을 받자 수철은 어깨를 으쓱했다.

“잘 알다마다요. 유명한 프로게이머 아닙니까.”

“심지어 그가 이번 선발대의 리더입니다.”

“…리더? 그 친구에게 리더를 맡겼단 말인가.”

“네.”

“의외인데.”

좀 의아했다.

‘이번 F급들 중에 가장 난놈은 헌터시험을 만점으로 패스한 그 녀석이라 들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펄럭! 그는 명단표를 펼쳤다. 쭉, 명단을 내리던 수철의 눈이 멈췄다.

“그래, 이시운. 이 친구가 가장 기질이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왜 장세준에게 리더 자리를 맡긴 거죠?”

수철의 들어올린 눈이 성혜에게 향했다.

“헌터수행능력과 사회경험의 유무를 종합하여 검토한 결과 그가 제격이라 판단했습니다.”

“음….”

수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발대의 리더는 헌터로서 강하냐만 따져서는 안 된다. 리더 기질이 있어야 한다. 장세준은 한 분야에 정점 찍은 인물인 만큼 사회 경험도 충만하다 할 수 있다.

‘이시운의 나이는 24살. 생사가 걸린 임무에 리더를 도맡기엔 너무 어리지.’

그 판단이 이제야 납득이 갔다.

리더의 책임이란 막중하다. 리더의 자질에 의해 팀이 전멸 할 수도, 위기를 한끗 차이로 피해갈 수도 있는 것이다.

‘허나….’

수철이 뒤를 돌아다보니 검게 빛나는 게이트가 유난히 불길하게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입을 벌린 악마 같았다.

‘어차피 모조리 전멸할 게 뻔해.’

애초에 마력 측정조차 불가능한 저 게이트에 F급들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다. 그 미친 짓을 협회에서 승인했단 것도 더욱 미친 짓이었지만.

‘일부러 인명피해를 만들어서 명분을 만든다는 이유겠지.’

그것이 이유일 것이다. 현 시점에서 블랙헌터들에게 헌터들을 죽게 만든 뒤 세상에 그 기사를 퍼뜨린다. 미래가 창창한 청년들이 저 악독한 단체에 죽임을 당했다고,

그렇게 되면 블랙헌터라는 조직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한 시민들이 그 조직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정부도 움직일 터다.

협회 스폰서 기업들도 이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결국 협회는 블랙헌터를 박멸하겠단 명분을 펼친 뒤 지원식 스폰 자금을 끌어 모아 협회의 규모를 넓힐 수 있게 되겠지.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이 한명도 없을 게 너무 뻔하잖아요?”

“김 대리….”

수철은 이를 꽉 물며 김 대리를 불렀다. 맞는 말이지만 지금 선발담당 주임도 있는데 눈치 없이 그걸 이야기 해야겠냐?, 는 눈빛을 쏘자 김 대리가 입을 닫았다.

“아뇨, 한명은 꼭 귀환할 겁니다, 숨이 붙은 채로요.”

한석의 말에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한석은 확신한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기요? 실전경험조차 없는 F급짜리들이 저.곳.에 들어갔다고요, 예?”

김 대리가 게이트를 손으로 가리키며 따졌다. 그가 가리킨 게이트는 암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장세준 씨는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겁니다. 나머지는 뭐, 모르겠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수철의 물음에 한석이 말을 이었다.

“그는 일반 F급 헌터와 차원이 다르니까요. 출발 선상부터 환경, 능력까지….”

“이번 선발대에 뛰어난 헌터는 그 사람뿐만이 아니거든요?”

윤성혜가 한석에게 힘주어 말하자 한석은 벌레 씹는 표정으로 피식, 웃을 뿐이었다.

미지 게이트 안.

아홉 명의 헌터가 동굴 형태로 된 긴 통로를 걸어가고 있다. 소음 하나 없는 적막함이 이어졌다. 뭐가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때였다.

전방에서 번뜩이는 붉은 안광들이 포착됐다. 모두가 각자 무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크르르르….

“켈베로스에요!”

임가혜가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그녀의 서구적인 마스크에 큰 두 눈이 유달리 커졌다.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켈베로스라니….’

‘켈베로스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난 매지션이니까 뒤로 물러나서 원거리 지원만 하면 죽을 일은 없을거야.’

그들의 얼굴엔 수심이 여려있었다.

마수 켈베로스는 머리가 두 개 달린 마물로 중급 랭크 헌터들도 꽤나 애먹는 몬스터였다. 던전에 진입한 초장부터 저런 강한 몬스터라니. 긴장이 바짝 오를 수 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크아아!

대가리를 흔들거리는 켈베로스는 순식간에 돌진해왔다. 이윽고 헌터들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다. 장세준은 그대로 장유석에게 급히 외쳤다.

“탱커! 얼른 전방으로!”

유석이 건틀렛을 쥔 손을 좌우로 뻗으며 켈베로스 품으로 파고들었다. 뒤이어 세준은 근딜 계열인 태식에게 유석을 보조하란 수신호를 보낸 뒤를 돌아보며 원딜 계열에게 후방에서 지원하라 지시한 뒤 시운을 바라봤다.

“이시운! 장유석 좌측으로 어서 따라붙어…”

세준의 말끝이 흐려졌다. 이미 시운은 검 한 자루를 쥔 채 켈베로스들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여, 연기가?”

“뭐야?”

“콜록!”

헌터들은 갑작스런 폭발음과 동시에 시야를 가린 검은 연기에 눈을 가리며 우왕좌왕했다. 뒤이어 동굴을 가득 매운 연기가 걷히자 헌터들의 눈이 커졌다.

‘뭐지?’

‘…켈베로스들이 다 타죽어가고 있잖아?’

‘방금 그건 무슨 스킬이었지?’

헌터들의 눈에는 검은 성화에 켈베로스 떼들의 피부가 녹아내려가는 광경이 맺히고 있었다.

쿵!

쿠웅!

힘없는 신음을 내지르며 혀를 내밀고 머리를 차례대로 땅바닥에 박는 켈베레스들에게 쏠렸던 시선들이 시운의 검으로 움직였다.

‘저 헌터의 검에서 뿜어진 스킬이었어!’

‘강하다. 나랑은 차원이 달라….’

‘저 켈베로스들을 단 스킬 한 방에 쓸어버리다니. 나와 같은 랭크인 게 맞나?’

헌터 몇 명이 입을 벌리며 시운을 바라봤다. 저 남자는 헌터시험을 만점으로 패스한 두뇌괴물이라 들었다. 게다가 생존 서바이벌 우승 출신에 레벨업 하는 속도는 귀신이라고 이미 알고는 있었는데.

그때 장세준이 이시운에게 걸어갔다.

“이시운. 네 좆대로 행동하지 말고 내 지시를 따르라고. 내가 이 팀의 리더인 거 모르나?”

“뭐, 어쨌든 제가 움직인 덕에 팀원 기력소모 없이 끝났습니다만.”

시운이 세준에게 되받아쳤다. 미간을 찡그린 세준의 눈으로 고기 익어가는 냄새를 풍기며 늘어진 켈베로스떼들의 몰골들이 들어왔다.

세준은 똑바로 이시운을 쳐다봤다. 내가 뭘 잘못했냐? 란 건방진 시운의 눈빛에 짜증이 일었지만 전력 낭비 없이 저 켈베로스들을 일격에 구워삶았으니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장세준은 리더다. 팀원들의 이목이 지금 나에게 쏠려있다. 여기서 저 놈의 콧대를 꺾어서 리더의 위엄을 보여줘야 한다.

세준이 말했다.

“이 좁은 동굴에서 함부로 광역 스킬을 남발한 게 옳은 거냐?”

“파티가 된 상태잖아요? 스킬을 남발한다 해도 팀원들의 피부를 태울 일은 없는데요?”

시운의 말이 맞았다. 파티가 체결된 파티원들에게는 스킬 대미지의 판정을 아군으로 인식되어 안전하다. 맞는 말로 받아치곤 있다.

그러나 세준은 지금 이시운의 내공을 눌러야 한다. 리더가 우스워지면 팀원들의 통솔에 제약을 받을 터. 그래서 곧바로 시운에게 쏘았다.

“그러면 너 때문에 지형이 이 난장판이 됐는데 그건 잘한 짓이고?”

세준이 손가락으로 그을려 부숴진 동굴 천장과 벽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네가 난사하는 그 요란한 스킬에 동굴 천장이라도 무너졌으면 어쩔 뻔 했냐? …라는 뜻을 알고 있는 시운은 대충 끄덕였다.

“네, 네.”

“비꼬듯이 대답하는군. 지금 내게 밉보이는 짓거리를 하면 손해 본다는 건 알고 그러는 거겠지?”

말하는 세준의 양 어깨가 유난히 올라가있다.

팀원이 공대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시 던전클리어 이후 협회 감사과에 심문을 받게 되고 일정기간 헌터 자격 정지란 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때 태식이 세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에이, 우리끼리 싸워서 뭐하겠소? 내가 볼 때는 시운이가 잘한 것 같구만.”

“…어깨 안 내려요?”

세준이 태식을 쏘아보자 태식은 민망하게 손을 거두었다.

“태식 씨.”

“태, 태식 씨?”

태식의 턱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세준이 지금 리더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아들뻘에게 그런 호칭을 들으니 부아가 치밀었다. 본래 공대장이라 해도 나이가 많은 팀원에게는 정도껏 존중은 해주는 게 이 바닥의 룰인데.

“난 지금 당신의 상사 개념이야. 그러니까 내 어깨에 손 올리고 맞먹으려고 하지마.”

“…….”

태식의 다문 입 밑으로 턱을 부들거렸다. 어쨌든 공대장은 공대장이다. 괜히 개겼다가 추후에 협회측 처벌을 받게 되면 가장으로서 자식들의 대학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할 테니까.

“공대장님. 이건 공대장님께서 뭐라하실 건 아닌 듯 한데요?”

임가혜가 조심스레 말했다. 뒤이어 헤령이 가세했다.

“저기, 예민하게 굴지 말고 빨리 빨리 움직이죠? 늦장부리다 던전 브레이크라도 걸리면 그땐 공대장님이 책임지시겠지만?”

평소 장세준에게 반말을 쏘아붙였을 혜령이지만 그래도 사리분별은 하는 그녀였기에 존대는 붙여줬다. 세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 저놈 편이군.’

안전하게 갑질도 하고 이시운도엿 한 번 먹여주려고 협회측 인맥에게 돈 좀 먹여서 공대장 자리를

꿰찼건만. 꽤나 귀찮은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이시운. 네가 내게 보인 태도 때문에 눈물, 콧물 다 쏟게 될 거다. 두고 봐라.’

세준은 시운을 노려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세준은 더 쏘아붙이지 않고 움직였다. 아무리 공대장이라 해도 팀원들의 의견을 모조리 무시한다면 추후 면책을 피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십 분을 걸었을 무렵.

헌터들의 눈이 벌어졌다.

“…저건?”

“까마귀?”

시운의 품에서 솟아난 까마귀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헌터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저건 생전 처음 보는 스킬이니 다들 놀랄 게 당연했다. 이들은 맹인의 스킬을 본 적이 없으니까.

‘저 남자 아까부터 생소한 스킬만 써대잖아?’

‘…왠지 믿음직스러워.’

‘저 친구와 함께라면 분명 살아돌아갈 수 있을거야.’

헌터 몇몇은 이미 시운을 자신과 동급 헌터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날아간 까마귀는 곧 시운에게 돌아와서 사라졌다.

“전방 오백 미터에 게이트가 세 개입니다.”

시운의 말에 태식이 물었다.

“오! 방금 그 까마귀는 정찰용이었군. 그런데 세 개의 게이트라고?”

순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던전 안에 게이트가 있다는 것은 아공간 게이트를 뜻하는 것이다. 다른 차원으로 이어진 게이트며 그 게이트 안에서는 뭐가 튀어나올지 예측이 불가하니까. 그렇다고 게이트를 무시할 수는 없다. 던전 속 게이트를 모두 처리해야 던전이 클리어 되니까.

“저기 게이트가 보여요!”

“…진짜네.”

헌터들 앞으로 세 개의 게이트가 생성돼 있다. 빨간 오라를 뿜는 게이트와 파란 오라를 뿜는 게이트. 그리고 그 중앙에는 그 두 색이 섞인 게이트가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적색, 푸른색 게이트 모두 해결해야 저 게이트가 열릴 겁니다.”

시운이 세준에게 말했다. 세준은 시운에게 감정이 남아있지만 지금은 집중해야 한다. 듣고 보니 시운의 말에 동감이 갔다. 적색, 푸른색이 섞여있는 게이트는 결계가 씌어있는 듯 했으니.

척, 척. 척. 척.

“당신들은 적색 게이트를 맡아.”

장세준이 넷을 번갈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언제 던전 브레이크가 걸릴지 모른다. 두 팀으로 나눠서 처리해야 신속하단 판단이었다.

“블랙 헌터들이 언제 습격해올지 모릅니다. 전력을 뭉쳐서 움직여야 유리할 텐데요?”

시운이 물었다. 그 물음에 헌터들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세준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끌다가 던전 브레이크가 걸리면 몬스터들은 다 밖으로 쏟아지고 모두가 다 죽는거야. 속전속결이다. 지금 내 지시를 어길 시 협회측 면책은 피할 길이 없을거다. 그래도 더 따질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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