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45화 (145/278)

제 145화

이중게이트

적색 게이트 안.

살을 찢는 한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이곳이 다른 차원?’

시운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눈 덮인 나무, 돋아난 바위 앞으로 뻗어진 빙판길. 설원의 광경이 펼쳐졌다. 이곳은 이계도 현계도 아닌 다른 차원 즉. 이세계였다.

‘긴장해야 한다. 여기선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시운의 눈이 옆의 여성 둘로 옮겨갔다.

그녀들은 겁먹은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매지션과 힐러였다. 이름이 임가혜와 김한별이었나? 아무튼 그럴 것이다. 그녀들이 착용한 장비는 끽해야 에픽급 장비였다.

‘그리고 아저씨.’

그 앞으로 등이 굽은 태식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고사리같은 손에는 단검 한자루가 들려있다.

암살자 클래스 태식은 근딜. 여성 서포터 하나. 나머지 힐러. 열세의 전력이다.

‘후.. 장세준이 선발팀 하위권 헌터들만 팀으로 넣어줬군. 게다가 우린 총 넷.’

놈의 의중은 뻔했다. 나에겐 하위권 헌터 셋을 붙여주고 자신은 선발팀 에이스급인 강혜령, 장유석을 포함한 다섯 명이란 우세 전력으로 손쉽게 게이트를 공략 중일 터다. 치졸한 개새끼.

근데 잠깐?

‘아니.. 이거 오히려 잘 된 일인데?’

놈의 심기를 좀 건드려줘서 내려진 결과가 이거라도 뭐, 상관없다. 이곳은 다른 차원이다. 이곳 몬스터들은 차원이 다른 경험치를 쭉쭉 선사할 것이고, 지금 팀 전력은 내가 몬스터를 독식하고 폭업을 하기 제격인 상황이니까.

그때였다.

“저기에 뭔가 숨어있어요!”

가혜가 손으로 나무를 가리키며 외쳤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나무 뒤…아니 나무 위에 하얀 후드를 눌러쓴 뭔가가 안광을 번뜩였다.

“사람인가?”

태식이 저것을 보며 독백하자 시운이 급히 외쳤다.

“저걸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저 놈은 설원에 은신하기 적합한 차림으로 무기도 없이 우릴 살피는 중이란 걸 깨달았다. 정찰중인 저놈을 살려 보내면 지원군을 우르르 몰고 올 터였다.

곧바로 질주 스킬을 사용했다.

[이동 속도가 증가합니다.]

번개같이 쇄도한 시운이 나무를 향해 튀어갔다.

‘웨폰 체인지.’

[주무기를 신속히 교체합니다.]

피슝! 시운이 질주하며 활시위를 당긴 손에 힘을 풀었다. 쿵! 나무 위에 은신해있던 녀석이 땅에 추락했다.

‘…달리며 활을 쏘다니?’

임가혜는 시운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어느새 그는 동급 헌터와 비교도 안 될 속도로 튀어나가 타겟의 시체를 살피는 중이다.

이시운은 스킬 한방에 켈베로스떼를 완파시켜 버리고 까마귀까지 이용하며 전방의 게이트를 발견했다. 게다가 시운은 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해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요? 그쪽 맹인이라고 했죠? 활은 어떻게 그렇게 잘 다룰 수 있는거죠?”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닙니다.”

“너무 이상해서 그래요. 맹인인데 눈을 뜨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의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생각해보니 맹인이 두 눈을 저렇게 뜨고 있는 것도 뉴스에 나올 일인데.

“그냥 남들과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

‘더 묻지 마라’는 듯한 그의 식은 눈빛을 마주하자 그녀는 입이 더 떼어지질 않았다.

“저 친구는 우리와 달라, 그것도 많이.”

태식이 말했다.

“…저 사람 우리와 같은 F급이 맞긴 맞아요?”

“지켜보면 알게 될게야. 얼마나 대단한 친구인지.”

가혜는 호기심이 끌어오른 채 시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곧바로 검을 꺼내어 주변 동태를 살피고 있다.

“추정 수는 수십. 위치는 지하! 지상이 아닙니다!”

시운이 고함을 외치자 모두의 시선이 땅으로 내려갔다.

순간! 가혜의 눈이 질끈 감겼다.

“끄아악!”

가혜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의 발목을 휘감은 무언가의 손이 칼에 팔뚝과 절단나 피를 쏟고 있다. 옆을 보니 검을 움직인 시운이 보였다. 가혜는 기겁을 하며 자기의 발목을 잡은 손을 떼어냈다.

“집중 좀 해요. 내가 아니었으면 당신은 죽었을 거에요.”

“아, 고, 고마워요.”

이 남자 엄청나게 빠르다. 대체 어느 틈에 내게 다가온거지?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때였다.

“옵니다!”

시운이 땅을 보며 외쳤다. 순간! 빙판 아래 곳곳에서 연달아 뭔가가 튀어나와 상체를 내밀었다. 그것들은 이미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채였다.

사방에서 수십 발의 화살이 쏟아졌다. 헌터는 무방비 상태로 쇄도해오는 화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고막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아까 던전을 뒤덮었던 그 연기였다.

“병신같이 가만히들 있지 말고 다들 움직이란 말입니다!”

연기 속에서 들리는 육성은 시운의 것이었다.

샤악! 샥! 사악!

‘칼 소리야!’

‘…설마 저 소리가 검질을 하는 소리라고?’

연기 때문에 시야가 잡히지도 않는데?

가혜와 한별이 눈을 뜨지도 못한 채로 생각했다.

시야를 아득히 가려 눈조차 뜨기 힘든데 검이 살을 베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김한별이 풍속 마법을 사용해 연기를 걷혀내자…

“이, 이럴 수가?”

“…다 죽어있잖아?”

둘의 떨리는 동공으로 검상을 입은 채 늘어진 수십 구의 시체들이 들어왔다.

푸욱!

그녀들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을 때 등에 검이 꿰뚫린 인간 하나가 몸을 떨며 쓰러졌다.

푸슉! 검을 빼낸 시운은 피가 가득 튀긴 얼굴로 둘을 노려봤다.

“뭐합니까? 여기 놀러왔어요?”

“아, 미, 미안해요.”

“밑에서 기습을 해올 줄은 몰랐죠.”

둘은 시운의 말에 진땀을 뺐다.

“정신들 바짝 차립시다! 눈 한 번 감는 순간에 그쪽들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고요.”

시운의 덧붙인 말에 둘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남자와 함께라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어, 반드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시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저 둘 진짜 엉망이군.’

전력의 꽃이여야 할 힐러와 매지션이 도움조차 못 되고 있다.

“임가헤 씨! 힐러면 멍 때리고 있지 말고 빨리 할 일 하죠?”

“…예? 아, 아! 정신이 없어서….”

시운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말하자 가혜가 급히 그를 힐했다.

“그리고 김한별 씨? 매지션이 내 근처에 딱 붙어있으면 어떡합니까? 당신이 탱커에요?”

“앞으로 잘하면 될 거 아니에요? 그쪽이 뭐, 공대장이라도 되는 듯 구네요?”

민망함에 한별이 소리를 지르자 시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친구가 화날 만도 하지. 방금 우리는 제 역할을 못했으니까. 미안하네.”

태식이 시운에게 수그러드는 육성으로 말하자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무리하지 마세요. 아저씨는 제가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시운은 생존 서바이벌에서 태식에게 받은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게다가 주름진 태식의 얼굴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서 뭐라하고 싶지 않았다.

“에이, 내가 자네에게 짐이 되면 되나? 나도 더욱 분발해야지, 암.”

시운은 께림직한 눈으로 빙판을 내려다봤다.

‘아까 사용한 맹인의 감각으로 인기척 소리를 느낀 놈들의 수는 삼십 명이었다. 근데…’

지금 죽어있는 시체는 스물아홉 명. 분명 시체 하나가 빈다. 그 한 놈의 소리는 유독 달랐다. 맹인의 감각 지속시간은 끝난 상태다.

“아직 한 놈 남았어요! 큽니다!”

“외형 크기가 크단 말이죠?”

“…또?”

시운의 망막으로 자신의 발 밑 빙판이 미세히 갈라지는 것이 맺히고 있었다.

“다들 뒤로 빠져요! 어서!”

시운의 외침에 모두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콰지지직!

땅에서 뭔가가 꿰뚫고 솟아올랐다! 그 여파로 빙판 조각이 사방에 튀었고 대지가 뒤흔들렸다.

“저, 저건….”

“커도 너무 커... 위험해.”

모두의 고개가 올라가 그것을 바라봤다. 그것은 무려 건물 10층 높이만한 크기였으니까.

드솟은 것은 거인의 얼굴 석상이었다.

우우우우웅-

거인의 입에서 아주 높은 음역대의 괴성이 쏟아졌다.

헌터들은 본능적으로 더욱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벌어진 석상의 거대한 입속에서 괴음만 뿜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당황한 그때.

임가혜가 시운을 흘겼다.

‘일단은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믿고 의지할 건 저 남자야. 저 남자의 지시만 따르는 거야.’

“석상이 공격을 해 오질 않는데? 소리만 내지를 뿐이잖아? 그럼 이 타이밍에 선공을 가하는 것이!”

입을 움직이며 태식이 석상을 향해 달려가려하자 시운이 그의 팔을 낚아챘다.

“함부로 건드렸다가 석상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일단은 저것을 놔두잔 말인가?”

“저 석상의 두 눈 속에 화기의 구멍과 같은 것이 보입니다.”

“화기의 구멍이 보인다고?”

태식의 어두운 눈으로는 저 석상 눈 속은 일체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 친구 시력이 엄청났었지.’

이미 탐사 던전 때 시운의 시력은 인간의 것을 넘어섰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만약 저 석상이 지금 폭격을 위해 힘을 응축하는 중이라면 지금 부숴뜨리는 것이 상책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드려는 순간.

“저 석상 눈 속 화기구멍으로 수천, 수만 개의 선이 거인의 신체 곳곳에 연결되어 있어요. 아마 감지센서 역할을 하는 선들일 겁니다. 제 직감으로 우리가 당해낼 만한 화력이 아닙니다.”

시운이 그 의문을 말로 풀어주었다.

“그 말뜻은 우리가 타격을 가하면 공격해온다 그 말인가?”

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모두의 고개가 시운의 손이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였다.

“저것은..!”

태식의 눈가가 주름이 펴질 정도로 뜨였다.

그 시각 결계 게이트 앞.

헌터 넷은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장세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준, 그가 게이트에 진입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고 있다.

“한 시간 지났군.”

손목시계를 훔치는 세준의 육성은 여유로웠다.

그 모습을 본 혜령이 눈을 부릅 떴다.

“이봐요! 대체 언제까지 여기서 짱박혀서 기다리라고? 이유라도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

그녀의 물음에 공감한다는 듯 유석도 입을 열었다.

“공대장님. 합리적인 이유라도 설명해주시죠.”

“합리적인 이유?”

세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해줄 듯 말 듯 표정을 말았다. 그것을 보자 혜령은 이를 꽉 깨물며 세준 코앞까지 다가갔다.

“…방금 들어간 사람들은 지금 개고생 중 일텐데 우리가 돕던 아니면 반대편 게이트를 빨리 깨서 결계를 풀던 해야하는 게 맞는 거잖아? 어? 당신이 하고 있는 이 짓거리 권력남용인 거 알아?”

혜령이 쏘아붙였다. 공대장이 팀을 지휘하는 직급이라 해도 지금 이 임무는 중대한 임무다. 공대장이 입맛대로 팀원을 통솔했다가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면 추후 책임은 공대장에게 돌아간다.

“전력 낭비는 하지 말아야지.”

“…뭐?”

혜령이 되묻자 세준이 씩 웃었다.

“이시운이 그랬잖아. 팀원 전력 낭비는 하지 말아야한다고.”

“나랑 지금 말장난 하자는 거야? 계속 당신 좆대로 하다가는 내가 감사과에 있는 고대로 다 꼬발리는 수가 있어.”

세준은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틀며 세 개의 게이트를 향해 턱짓했다.

“애초에 저 정중앙에 있는 결계 게이트는 좌측 적색 게이트 또는 우측 게이트 하나만 닫아버려도 열린다.”

“무슨 개좆같은 소리야! 당신도 아까 그랬잖아. 두 개의 게이트를 닫아야 결계가 풀릴 거라고!”

“…그건 지켜보면 알게 될거야. 저 게이트 하나에 네 명이나 들어갔으면 클리어하고 오겠지? 그럼 우리는 블랙헌터를 상대할 전력을 보충하는 셈이고? 이시운이 아까 깝죽대면서 했던 말 그대로 실천중이잖아, 지금.”

강혜령이 주먹을 쥐고 달려드려고 하자 유석이 그녀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씨발! 군바리 이거 안 놔? 너도 시운이가 다치는 걸 바래?”

혜령이 씩씩대며 유석에게 말하자 유석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던전에서 공대장을 폭행할 시 처벌은 최소 면허정지다.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음을 알기에 유석은 그녀를 다독였다.

세준은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미 정보는 제공받았거든.’

세준의 뒤에는 막강한 재단이 스폰하고 있다. 뇌물로 협회의 썩은 고인물에게 들은 것이 있다.

물론 아직 의아한 건 그 고인물이 게이트가 세 개가 있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단 것. 허나 그딴 건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

정연희는 말이 없었다. 그녀의 표정은 의미심장했다.

나머지 헌터 하나도 그냥 상황을 지켜볼 뿐.

“당신 던전 밖으로 나가면 각오해. 그리고 난 당장 혼자라도 들어가겠어. 들어가야겠어.”

혜령이 말했다. 이시운이 걱정이 됐다. 아무리 그 녀석이라도 그 전력으로 위험할 수 있으니까.

강혜령은 씩씩거리며 푸른색 게이트 앞까지 간 순간! 뒷목으로 살기가 느껴져 돌아봤다. 세준의 완드가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내가 말을 안 해줬는데 말야. 이번 임무에 내가 특별한 권한을 받았거든? 그 권한이 말야….”

마력이 감도는 완드로 스파크가 번쩍였다.

“팀원들이 내 지시에 불응할 시 죽여도 좋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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