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46화 (146/278)

제 146화

게이머의 갑질

“뭐, 뭐? …뭐라고?”

혜령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라는 듯한 그녀의 눈을 본 세준은 품안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어 그녀에게 펄럭였다.

“이걸 보도록.”

세준이 내민 서류를 읽어가던 혜령의 눈이 커졌다. 분명 그 서류의 조항에는 세준이 말한 그대로의 조항이 기입되어 있었다. 납득이 가질 않았다. 아무리 공대장이 중한 직급이라지만 그 지시를 어기는 팀원은 사살해도 좋다는 독소 조항이 들어간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당신이 문서를 조작하는 행위를 벌였다면…”

“보려면 끝까지 봐야지.”

세준은 혜령의 말을 끊고 서류의 맨 밑 부분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협회장의 인감이 그대로 찍혀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크게 요동쳤다. 저 인감의 의미는 협회 측에서 허가했단 것임을 그녀는 모를 리가 없었다.

“당신 무슨 짓을 한거야?”

혜령이 물었다. 세준은 옅게 웃을 뿐이었다. 이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야.애초에 장세준이 리더를 맡은 것부터 납득이 가질 않았는데. 설마? 저 자식?

그녀는 순간 뒷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 식어버린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이 협회 측에 돈을 먹인거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협회 측에서 이딴 조항을 승인해줄 수가 없다. 협회는 비리가 가득하다고 들었다. 근데 그딴 일이 나에게 벌어질 줄이야.

장세준. 저 뱀 같은 자식은 나와 같은 동급의 헌터지만 한 분야에 획을 그었던 놈이야. 저놈의 빽과 돈줄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그녀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세준이 말했다. 혜령의 고개가 유석에게 돌아갔다. 일단 장유석은 우리 편. 다시 그녀의 시선이 움직여 정연희에게 머물었다. 연희 역시 예뻐하는 내 동생이고.

그녀의 시선이 박수현이라는 헌터에게 멈췄다. 저 남자는 나와 말 섞은 적이 없어. 그리 강해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지금 상황은 3대 2 우리가 우세하다는 것. 내 성격에 저딴 억울한 조항에 복종해줄 수는 없지.

터턱! 혜령은 곧바로 움직여 화살이 꽂힌 활을 세준에게 겨눴다. 동시에 유석 또한 건틀렛을 낀 주먹을 내밀며 자세를 취했다.

“…너희 둘 반항하겠다 이건가?”

세준이 물었다.

“사전에 언지조차 받지 못한 그딴 개 같은 조항을 따라줄 정도로 내가 호구는 아니거든. 추후에 논리적으로 감사과에 민원을 제기하면 그만이야.”

답한 혜령이 연희를 곁눈질했다. 그녀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웃는 이유가 지금 네 쪽 편이 우세하다고 알고 그러는 건가?”

“…너도 알고 있네? 쫄리면 물러나던가. 아님 한판 제대로 뜨던가.”

그때 잠자코 있던 연희의 육성이 들려왔다.

“팀원이라면 우두머리의 말에 순순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뭐, 뭐?”

연희는 차갑게 식은 얼굴로 시선을 내리깐 채 덧붙였다.

“…난 누구의 편도 아니야. 위험을 감수하면서 언니 편을 들어줄 생각은 없어.”

“야, 이 미친년아! 너 지금 제정신이냐?”

혜령은 차오르는 배신감에 연희에게 쏘아붙였다. 아니,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쟤가 저럴 리가 없는데.

세준의 눈이 박수현에 힐끗이자, 철컹! 수현은 검집에서 뽑은 검을 혜령을 향해 겨눈다.

장세준이 수현에게 ‘좋은 판단이야’ 라는 눈으로 바라봐줬다. 혜령은 계속 연희를 강하게 바라봤다. 연희는 그 시선을 외면했다.

“…정연희. 너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년이었구나.”

“마음대로 생각해.”

그때 세준은 유석과 혜령을 번갈아보며 낮게 말했다.

“이제 상황은 2대 2가 동점이군? 굳이 위험한 모험을 할 거면 말리지는 않을게. 근데 말이야. 난 네 둘을 굳이 죽이고 싶은 맘은 없거든? 차분하게 무기 내려놓고 내 말에만 따라라. 그럼 없었던 일로 넘어간다.”

“이, 이… 이이!”

헤령이 이를 바드득 갈 때 유석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건틀렛을 내렸다. 이윽고 강혜령도 활을 거두었다. 세준은 억지로 꼬리를 내리는 그녀의 얼굴을 그대로 바라봐주면서 입가를 비틀었다.

“내 위치는 그때 나와는 달라. 너희들은 개새끼처럼 얌전히 주인인 내 말에 따르면 돼.”

적색 게이트 안.

시운은 그대로 발돋움을 하여 뛰었다. 공중에 뜬 상태로 검을 움직이며.

‘삼륜 격파.’

세 개로 퍼진 검기는 인간형 몬스터 셋의 피부를 찢고, 몸통을 관통하며 앞까지 쏟아져 나갔다.

투둑- 툭- 툭!

세 놈이 차례대로 설익은 빙판에 얼굴을 처박는다.

[‘이 근성에 반만 따라와’ 효과가 작용합니다.]

[처치한 몬스터에게서 두 배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좋고.’

새롭게 획득했던 스킬 덕에 경험치는 짭짤하게 솟는 중이다.

툭! 그대로 착지한 뒤 뒤를 돌아봤다. 서 있던 임가혜가 시운의 눈을 마주치자 곧바로 힐 캐스팅을 시전한다.

위이잉!

이제는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힐을 해주고 있다.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다른 거 하지 말고 방금처럼 내 뒤만 따라오면서 내게 힐만 넣어요.”

“네, 네.”

동급 헌터인 그녀가 어느새 시운을 상사의 명령을 따르듯 대하고 있었다.

일단 저 힐러는 내게만 힐을 넣게 하는데 대충 성공했고,

‘하…. 쟤는 진짜 자살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건가?’

시운은 김한별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한별이 인간형 몬스터에게 에워쌓여 아등바등 거리고 있다. 굳이 몬스터를 잡겠다고 스킬을 시전하다 어그로가 튀어서 저 꼴이 난 것이다.

‘화룡의 도약.’

추진력을 싣고 그대로 뛰어올라 한별을 향해 하강한다. 검을 휘두르며 사합보를 사용하여 공중에서 네 번 발돋움을 하며 움직인다.

턱. 턱. 턱. 턱!

시운의 네 번의 발소리와,

쿵! 쿵! 쿠웅! 쿵!

몬스터 넷이 신음성을 흘리며 연달아 쓰러졌다. 늘어진 인간형 몬스터의 몸속에서 흐른 피가 하얀 땅 주변을 벌겋게 물들인다.

“나대지 말고 뒤로 물러나요!”

시운의 고함에 한별이 식겁을 하며 뒤로 빠졌다.

“…내 검을 받아라!”

전신이 흰 피부에 입도 없고 눈만 두 개인 몬스터 놈이 희한하게 말을 건네 온다. 쑤욱! 놈의 검이 그대로 날아왔다. 허리를 비틀어 놈의 검을 뒤로 흘러냈다. 자세가 흐트러진 놈의 목에 그대로 검을 쑤셔준다.

푸욱!

“…끄으으으.”

놈이 시운의 검날을 움켜쥐었다. 쉽게는 못 죽어주겠다는 의지를 비추는 것이었다. 놈의 반대쪽 손날이 날아들었다. 탁! 시운이 손을 뻗어 놈의 손을 잡았다. 손으로 느껴진 놈의 손 감촉은 매우 차가웠다.

우드득!

“크하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맞잡은 놈의 손을 꺽어 그대로 분질러주자 놈이 발악을 하며 괴성을 내지른다. 시운의 넘사벽 근력은 맨손으로 인간형 몹의 뼈를 부러뜨리기 충분했다.

시운은 왼손에 힘을 더 실었다.

“끄어어어어억!”

놈의 손가락이 뒤로 꺾인다. 살점이 뜯어지고, 뼈가 부서지며 힘줄이 튀어나온다. 한없이 일그러지는 놈의 얼굴을 보니 불쌍할 정도다.

쿵!

놈의 고개가 옆으로 꺾이더니 이내 놈은 두 무릎을 꿇었다. 파악! 목살에 처박은 칼을 빼내자 놈은 몸은 힘없이 늘어진다.

방금 그 광경에 한별은 이시운이 잔혹하게 느껴졌다.

‘내 스킬은 먹히지도 않았었는데..’

그런데 저 남자는 그런 괴물을 한손 힘만으로 뼈와 인대까지 다 분질러놓고서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젠 좀 무섭게까지 느껴진다, 저 남자가.

“……!”

순간 한별은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시운의 살기가 번득이는 눈과 마주쳤음에.

핏물과 살점이 묻은 검을 들며 시운이 그녀에게 터벅터벅 걸어오자 한별은 절로 뒤로 물러났다.

“이봐요.”

“…네, 네?”

“감당도 못할 몬스터 어그로는 왜 끌어가지고 사람 귀찮게 하는거지?”

“나, 나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까요….”

한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평소 지고는 못살며 기 안 죽고 상대가 누구던,

남에게 할 말 못할 말 쏟아 붙는 그녀였지만,

이상하게 지금만큼은 저 남자에게 작아지는 느낌이다.

“당신은 손 놓고 있어주는 게 내게 도움을 주는 건데.”

“앞으로 조심하면 되잖아요, 그럼!”

한별이 말끝에 힘을 실었다. 겁은 났지만 동급주제에 감히 내게 저런 악담을 쏟는 자식은 난생 처음이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소리를 질렀다.

“…탱커도 딜러도 아니면서 그저 몬스터만 보면 거리도 확보하지 않고 스킬부터 남발하는 당신의 그 꼬라지를 내가 한 번 더 보게 된다면 나도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알겠어요?”

“그럼 나보고 어쩌란 건데요? 우리 팀은 고작 넷이고, 몬스터는 쏟아지는데. 대단하신 그쪽이 뭐, 뾰족한 방법이라도 찾았나본데? 그 방법을 얘기라도 해봐요. 듣고 괜찮다 싶으면 당신 말대로 해줄 테니까.”

“닥치고 몬스터에게 손도 대지마요. 이제부터 몬스터는 모두 내가 잡을 겁니다.”

“하…. 뭐, 뭐요?”

한별의 얼굴이 그대로 구겨졌다. 뭐, 저딴 놈이 다 있지? 아니 좀 세면 다인가? 싸가지 없는 개자식이.

그러나 이런 속내를 입으로 뱉진 못하고 삼킬 뿐이었다.

시운의 눈앞으로 시퍼런 창날이 쇄도해온다. 콰악! 고개를 젖혀 창날을 피함과 동시에 몬스터의 창대를 왼손으로 낚아챈다.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놈이 힘주어 발악을 해도 창이 꼼짝도 않자 저렇게 말했다.

“놔 주면 그걸로 내 머리통을 다시 쑤시려 들텐데 너라면 놔 주겠냐?”

시운은 왼손에 온 힘을 쏟고 창대를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놈이 창을 잡은 상태로 공중에 떠오른다. 공중에 들린 채 당황한 눈초리로 놈이 시운을 내려다본다. 빠지직! 손에 힘을 더 실자 창대가 뿌러지며 놈이 떨어진다. 그대로 가볍게 검을 놈에게 들어 올려준다.

푸우욱!

“…크어어억!”

놈의 복부를 쑤신 검신 주위로 녀석의 허물거리는 내장과 피가 비집고 쏟아졌다.

쿵! 검을 거두니 놈이 알아서 떨어져 몸을 떨다가 축, 늘어졌다.

[‘이 근성에 반만 따라와’ 효과가 작용합니다.]

[처치한 몬스터에게서 두 배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곧바로 상태창을 띄웠다.

레벨: 145

근력 <277> 민첩 <164>

체력 <116> 지혜 73 지능 13

열정 8

살기 3

여유 스탯: 81

“…오. 여기서 레벨을 15나 올렸군.”

이 게이트에 진입 전 레벨은 130. 근데 지금은 무려 레벨이 145다. 짜릿한 폭업의 성과를 보고 있자니, 뿌듯해서 전신의 혈액순환이 팍! 도는 기분.

이곳은 이세계. 즉 다른 차원이라 몬스터가 주는 경험치도 색달랐다. 게다가 [이 근성에 반만 따라와] 라는 스킬 덕에 그 효율은 두 배.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티 시스템이 가동 중이지만, 시운이 지금껏 몬스터를 독점 사냥했기 때문에 그 경험치의 태반도 시운의 몫이었다.

‘근력에 43. 민첩에 26. 체력에 14.’

이렇게 분배했더니,

레벨: 145

근력 <320> 민첩 <190>

체력 <130> 지혜 73 지능 13

열정 8

살기 3

여유 스탯: 0

‘죽여주는 군. 일부러 스탯의 끝자리도 깔끔하게 0으로 딱 맞췄고.’

F급에게는 다소… 다소가 아니라 좀 상당히 다소하게 과한 사기 스탯이 눈에 들어왔다. 흡족함을 넘어 이제는 남들과 난 다르게 빠르게 성장한다는 사실이 피부까지 와 닿는다.

그때였다.

“이시운 앞을 봐!”

태식의 고함소리에 시운이 곧바로 자세를 고치고 앞을 주시했다. 쌍검을 든 ‘설의 검사’ 가 쇄도해왔다. 전혀 무섭지 않다. 손쉽게 죽이면 그만.

그 순간!

“꺄아악!”

“기습이야!”

“모두 뒤로 백업하게!”

돌진해오던 설의 검사가 위로 솟은 채였다.

‘저건 뭐야?’

시운의 눈이 커졌다.

빙판을 뚫고 솟은 뭔가가 설의 검사의 가슴팍을 뚫고 그대로 들어 올린 것이었다.

타닥!

곧바로 모두가 뒤로 물러났다.

‘…저게 설마 뿔이라고?’

높게 솟아오른 그것은 뿔이었다.

쿠우웅! 주위 빙판이 요동치고 굉음이 고막을 때린 그때.

거대한 검은 것이 순간 튀어나왔고 설의 검사 육신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콰드득! 뼈가 분질러지는 소리가 뒤이어진다.

‘뭔가가 저걸 삼켰어!’

대번 공격을 하려던 그때 출몰한 뿔 밑으로 건물 두 채만한 투명한 뭔가가 드러났다.

그것에 헌터 셋의 전신이 비춰지고 있었다. 순간 모두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태식의 떨리는 육성이 이어졌다.

“…저, 저건 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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