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화
독점, 독식하겠습니다!
건물 두 채만한 초록 눈이 미동 없이 헌터들을 바라보고 있다. 순간 모두가 그 압박에 몸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겁 지려 먹고 있을 시간에 선공을 쳐야 한다.’
시운이 칼을 겨누었다. 그때 거대한 눈이 파르르, 움직였다.
‘흑화광참!’
시운이 현재 펼칠 수 있는 최대 대미지 스킬이자 광역스킬! 검신에 성화가 타올랐을 그때였다.
파아아악!
그 찰나 허공에 튀어 오른 핏물이 보였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뿜어 나온 섬광에 시야가 아득해졌다. 검신에서 타오른 검은 불길이 주위로 퍼졌다.
파파파파파!
흑화광참으로 인해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주위를 그대로 가려버렸다.
그 암흑 속에서 빛난 것은 시운의 눈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내 눈에는 보인다.’
“콜록!”
“눈이 안 보여!”
“일단 우린 뒤로 빠져야겠어요.”
좌측, 우측에서 동료들이 두 팔로 눈을 가리며 안절부절했다. 확실히 경험 없는 F랭크들이라 능동적이지 못한 모습뿐이었다.
콰콰콰콰!
빙판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운은 그대로 앞으로 발돋움을 하며 쇄도하여 검을 땅에 그대로 내리쳤다.
콰직!
아클레우스 소드의 반절이 빙판 깊숙이 박혔다.
순간 시운은 이상함에 눈이 커졌다.
‘……?’
칼날을 통해 전해져 와야 할 그 감각이 없다.
분명 이곳에 놈의 육체 일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콰드드득!
그때 전방 멀리서 빙판이 쩌걱 거리며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시운의 눈이 그곳으로 향했다. 빌딩만한 뿔이 빙판을 가르며 전방 저 멀리로 움직여 멀어지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이 바다에 지느러미만 보이는 상어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뭐지?’
저 거대한 마물이 우리와 멀어지고 있다.
‘웨폰 체인지!’
[무기를 전환하는 속도가 증가합니다.]
곧바로 활로 무기를 교체한 뒤.
탕! 탕! 타앙!
시운은 멀어져가는 마수의 뿔을 활로 겨누고 활시위를 연속으로 당기자 화살 네 발이 튀어나가 마수의 뿔을 요격한다.
‘!’
허공을 찢고 날아간 화살들은 뿔에 그대로 적중했으나 화살촉이 뿔에 박히지도 못한 채 튕겨져 나갔다.
‘내 공격이 먹히지가 않다니.’
“방금 그것은 어디로 갔나?”
태식이 한발 늦게도 시운에게 물었다.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 근데 자네 팔이!”
태식의 말에 시운은 자신의 양팔을 들여다보았다. 피범벅이 된 팔에서는 혈내가 진동을 했다.
‘…방금 허공에 요동쳤던 피가 내 피라고?’
순식간이었다. 두 팔이 이렇게 찢어질 정도였는데 고통조차 느낄 새가 없었는데. 그렇다면 그 마수는 그만큼 강한 놈이었단 건가? 그렇다면 왜 우릴 죽이지도 않고 꽁무늬를 내뺀 거지?
“괜찮으세요?”
가혜가 커진 눈으로 시운의 팔을 바라보며 물었다. 시운이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자 “아! 죄송해요.” 라고 말하며 시운에게 힐을 시전한다.
이제는 눈짓만 줘도 알아서 힐을 해준다.
[출혈 상태에 빠졌습니다.]
[체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합니다.]
‘맹인불괴.’
맹인불괴를 시전하자 시운의 팔에 흑색 빛이 감돌아 퍼진다.
[상태이상이 해제되었습니다.]
그때 한별은 그런 시운의 모습을 곁눈질했다.
‘바로 출혈이 멎었어.’
보통 F랭크 딜러계열 클래스는 저런 스킬을 소지하지 못한 것이 일반적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 자식은 우리 레벨이 아니야.’
그녀는 시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일단 좀 더 지켜보자고 생각했다.
그때 태식이 아직 활활, 타오르는 주변을 보며 말했다.
“방금 그 거대한 놈이 보스가 아닐까?”
그 말에 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은 제각기 클리어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중 가장 통상적인 던전 클리어 방식은 던전의 보스를 처리하는 것이다. 만약 방금 그 놈이 이 던전의 보스라면?
‘쉽지 않겠군.’
시운의 속내였다. 자신의 근력 스탯은 무려 320이다. 그런 스탯의 몇 배로 대미지를 뿜는 흑화광참이 그 마수에게 통하질 않았었다.
시운의 눈이 동료 셋에게 향했다.
‘이 전력으로는 무리야.’
반대편 게이트에 진입한 팀원들의 힘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블랙헌터는 이 던전에서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시운은 그렇게 확신했다. 회귀하기 전 F랭크 전원 사망사건에 대한 기사를 보고 그 사건에 전말을 알아보았었으니까. 그놈들은 나중에 대비할 문제 거리다.
미지게이트 앞.
협회 측에서 파견된 삽 십 명의 눈이 모두 미지게이트로 향해 있었다.
“벌써 다섯 시간이나 지났군.”
수철이 시간을 체크하며 말했다. 그는 헌터들이 살아서 돌아올 거라는 기대는 없다만 중한 임무에 파견된 헌터들의 진입시간 체크와 게이트 실시간 점검을 위해서 대기하란 지시가 있었기에 일단 대기 중인 상태다.
“근데 이곳에 경호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이유가 뭐에요?”
김대리가 과장에게 물었다. 궁금할만 했다. 이곳은 어쨌든 미지 게이트 안으로 진입하는 입구다.
블랙헌터들 또한 저 게이트에서 나타날 예정이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놈들도 이곳 게이트를 통해 저곳으로 들어가지 않겠는가? 근데 현재 이곳은 경호인원은커녕 감시과 직원들과 협회측 인원 몇 그리고 약해보이는 화이트 게이트 요원 몇 뿐이었다.
“그림자들은 이곳을 통해 진입하지 않을 거라는군.”
“…예?”
수철의 말에 김대리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는 눈으로.
“협회장님께서 그럴 거라고 확신을 하셨어. 그래서 이곳에 경호 전력을 배치하지 않은 거야. 나도 그 확신에 의문은 드는데…”
“그림자들은 다른 아공간 게이트로 진입할 예정이라죠.”
윤성혜가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맞아요. 당신도 상부에서 들었나 보군요?”
“변수의 상황을 고려해서 경호 인력을 배치하자고 상부에 말씀을 드렸는데…”
“퇴짜?”
“네….”
말끝이 흐려지는 성혜의 마음을 수철도 공감했다.
‘내 생각이 그 생각이야. 근데 그 깐깐한 협회장님이 그런 변수의 상황도 고려하지 않고 그림자들의 동태를 어찌 확신한 걸까.’
그때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저 게이트에 올해 유망주가 세 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제 2관리과장 이동환이었다. 그도 듣기로 들었다. 이번 임무에 협회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인물이 셋 정도 있다고.
“세 명이요?”
수철이 되물었다. 본인이 알기로는 두 명이라고 들었다. 장세준과 이시운. 근데 한 명이 더 있었나. 고작 F에게 협회가 주시하고 있다면 확실히 난놈들이란 이야긴데.
동환이 수철의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다.
“이시운, 장세준. 그리고 또 그 한 명 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박수혁이란 자입니다.”
듣고 있던 한석이 답하자 동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이름이었어. 그 친구가 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던데….”
“아주 독특한 케이스죠.”
한석이 눈을 빛내며 답했다. 그런 한석을 보던 윤성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수혁?’
그녀가 지켜본 수혁은 그저 평범한 딜러형 헌터다. 그가 뛰어난 자질이 있단 소리는 담당인 자신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녀의 눈이 한석에게로 움직였다.
‘이한석. 나도 모르는 사실을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적색 게이트 안.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상태다. 거기에 한기까지 더해져 헌터들의 입에선 입김만 후후- 뿜어졌다.
피워진 모닥불 앞에서 헌터들은 인벤토리에서 챙겨온 식량을 입에 털어놓고 있다.
“통조림을 챙겨오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구만.”
태식이 말했다. 인벤토리에는 냉장, 냉동 기능이 없다. 게다가 시스템 속 인벤토리라 웬만한 음식은 금방 상해버리고 물과 통조림이 그나마 오랜 기한을 유지한다.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요?”
가혜가 도톰한 입술을 움직여 시운에게 물었다. 이미 그녀는 다른 팀원들의 생각에는 관심이 없었다.
“보스를 찾아야겠죠. 단 그 전에….”
시운은 말을 잠시 멈추다가 말을 이었다. 레크라스를 통해 이 일대 관찰을 마친 상태다.
“이 일대에는 거대한 산이 하나 존재합니다. 그 산 속에는 동굴이 몇 개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요. 다른 곳은 일반적인 빙판 형태에요. 근데 희한한 건…”
잠시 말을 멈췄다. 레크라스를 통해 공명된 영상에는 산과 빙판, 수풀 곳곳에 인간몬스터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그것도 아주 잔혹하게 훼손된 시체들 말이다. 그 인간몬스터들은 이곳에서 상대했던 몬스터라 특성을 알고 있다. 변장, 은신과 생존 능력에 아주 적합한 타입들이었다. 근데 그들이 뭐에 의해 시체들이 되어있었을까?
혹시 그 존재가 아까 그 괴수?
“근데 있잖아요.”
한별이 양 볼을 부풀리며 음식을 씹다 시운에게 말했다.
“그쪽은 레벨이 몇이에요?”
김한별이 물었다. 궁금할 만도 했다. 지금은 파티 시스템 상태라 팀원들의 레벨을 시스템창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시운의 레벨은 시스템창에 표기되지 않은 상태다.
“당신이 궁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이봐요! 내가 이걸 왜 묻는지 몰라서 그래요?”
그녀가 씩씩거린 것은 파티 시스템창에 시운의 레벨만 표기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헌터가 본인 레벨을 투명화 했단 것이다.
“당신이 그걸 안다고 이 상황에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는데요?”
“하! 나 그쪽이랑 같은 팀원이라고요.”
“팀원은 맞죠. 팀에 짐만 되는 팀원.”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김한별이 쌍심지를 켜고 벌떡 일어났다. 시운은 앉은 채 그녀를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속물같은 년. 팀플은 생각도 안하고 마정석이나 챙기려는 네 의도를 모를 줄 알아?’
시운의 속내였다. 매지션인 한별이 스킬로 몬스터 어그로나 끌어놓고, 다른 팀원이 몬스터를 잡아놓으면 막타나 집어넣었던 행태를 보면 의도는 뻔했다. 저런 인간은 몇 생에 걸쳐 너무 많이 봐왔다.
그때 한별이 눈을 이글거렸다.
“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아까부터 공대장이라도 된 것처럼 행세를 하던데 말이야. 내가 여기서 나가게 되면 감사과에 당신 지금 이 짓거리 다 까발려 줄 수도 있어.”
“그건 여기서 나가게 될 때의 이야기고.”
“…뭐, 이 자식아?”
“아, 한 가지 설명하지 않은 게 있는데 이곳에는 설인들도 있거든?”
“그, 그래서?”
‘설인’ 이라는 말에 한별이 순간 움찔했다. 그녀의 뇌리에 포악한 설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인의 악력은 웬만한 헌터의 몸통을 한 번에 찢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알고 있다. 게다가 설산에서의 설인의 움직임은 귀신같아서 매지션에게는 최악의 상성이기에 딜러나 탱커가 없다면? 결과는 뻔하다.
‘우리 팀에 딜러가 너 뿐이냐?’
한별의 고개가 태식에게 돌아갔다.
나이가 오십인 태식은 이 추위에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들단 듯 동공이 반쯤 풀린 채였다.
‘하….’
“이제 상황 파악이 돼?”
시운의 물음에 말없이 노려보기만 하던 한별의 어깨를 임가혜가 톡톡, 두드렸다.
“저기 죄송한데, 왜 자꾸 팀에 분란을 일으키려고 해요?”
“뭐, 뭐요?”
한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이제는 터질 듯 했다. 가혜는 그녀를 한심하단 듯 바라봤다.
“팀에 공대장이 부재일 시 팀원 중 가장 우수한 전력의 헌터 위주로 움직여야 하는 건 상식인 거 알고는 있죠?”
“넌 주제넘게 끼어들지 마.”
“그럼 한별 씨도 팀 에이스에게 주제넘게 행동하지 말던가요.”
“야, 너 말 다 했어?”
“반말은 하지 마시고요.”
임가혜는 싸한 미소를 지으며 한별을 똑바로 쳐다봐주었다.
‘저 남자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가혜는 이런 일념으로 한별을 쏘아봤다. 두 여성의 맞닿은 시선은 스파크가 튈 정도였다.
그때 안색이 변한 시운이 벌떡 일어나 김한별을 쳐다보자 한별의 두 눈이 작게 흔들렸다.
“뭐, 뭐? 일어나면 어쩔건데? 때리기라도 하려고?”
“내 감각 스킬로 곧 들이닥칠 일을 말해줄 건데…”
시운이 어두운 저 산맥 끝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끊었다. 한별에게 다음 할 말을 가려서 하란 뜻이었다.
‘설마? 저 산맥에서 설인이?’
한별이 눈이 산맥에 닿은 채 떨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머리는 회전했고 상황파악이 됐다.
“하, 내가 경솔했어요. 제가 춥고 몸도 지쳐서 예민했나 봐요.”
“앞으로 내 귀에 당신의 입에서 좋지 않은 언행이 나온다면…”
“아,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턱을 씹어 움찔거리는 건 덤이고.
시운은 뭐, 마지못해 져준다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봐주고서.
“약 삼십 마리 정도네요.”
“네?”
“사, 삼십 마리요?”
“…정말인가?”
모두가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시운은 그들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봐주면서 말했다.
“지금 모두 저와 파티를 해제하세요. 이제부터 몬스터는 저 혼자 독점합니다. 그로 인해 획득한 마정석과 경험치도 제가 독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