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48화 (148/278)

제 148화

미래를 보는 설인

“도, 독점이라고?”

“자네 설마 저것들을 혼자 상대하겠다는 건…”

‘질주.’

[이동속도가 상승합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동료들의 육성은 점점 희미해졌다.

시운은 야밤에 몇십 개의 안광이 번쩍이는 곳으로 뛰고 있었다.

‘서른세 마리.’

그의 눈으로 보였다.

어둑한 저 산 내리막길 아래로 쏟아져 나오는 설인들의 둔탁한 뜀박질이.

동료 셋은 미친 속도로 뛰어가는 시운의 뒷모습에 눈을 둔채였다.

“…무모한 건지 욕심에 미친 건지 모르겠네.”

한별이 말하고서 머리를 굴렸다.

저 싸가지가 죽는다면 우리 또한 전멸하고 만다. 꽃다운 나이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피부에 와닿았다.

두 다리가 떨려왔다.

“별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임가혜가 한별의 말을 받았다.

“그래도 저 자식 행태가 싸가지가 없잖아? 왜 당신은 제멋대로 리더행세를 하는 저 자식을 감싸고 도는건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쪽도 잘 알잖아요? 짐만 될 뿐이라는 거….”

가혜의 말에 한별이 인상을 찡그렸다.

‘몸조차 못 가누는 늙은이 하나에 꽉 막힌 기집 하나. 답이 없네.’

한별은 주위를 살피며 생각하다 눈이 번쩍 커졌다.

“아! 다른 팀원들!”

그녀의 혼잣말에 태식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반응이 마딱찮아 한별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다른 팀원들의 지원은 기대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요?”

“오래 살다보면 사람과 대화를 오래 나눠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내공이 쌓이는 법이지.”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어디 아파요?”

“우린 저 친구를 믿을 수 밖에 없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태식의 시선이 저 먼곳의 시운에게 옮겨갔다.

그는 알고 있었다.

던전을 진입할 때 장세준이 보인 태도는 감정이 섞인 것임을.

.

.

.

.

-이차원의 설인을 처치하였습니다.

[이 근성에 반만 따라와 효과가 적용됩니다.]

[처치한 몬스터에게서 두 배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파티를 해제하여 모든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쿵!

고꾸라진 설인의 등은 불에 타들어가고 있다.

흑화광참의 성화에 타들어가는 설인들은 지속적인 화염대미지를 입고 있다.

-쿠오오오!

-콰아아!

불결에 가죽이 녹아내리는 게 여간 고통스러운지 불에 타면서도 필사적으로 시운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설인의 곰같은 주먹이 날아왔다. 곧바로 허리를 틀어 흘려내고 검을 앞으로 쑤셨다.

푸슉!

칼날을 뽑아내자 설인은 뱃가죽으로 내장을 흘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에 정신이 없으면서도 시운은 허리, 머리, 다리 전신을 사용해 피하고, 흘려내며 반격을 했다.

‘놈들은 빠르지만 움직임이 보여…!’

전투 짬밥을 먹은 탓일까.

눈의 감각이 진화한 느낌이었다.

파지직!

그어내고 거둔 검신에 설인의 살점이 붙어나오자 설인이 괴성을 내지르며 두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요란하게 쳐댄다.

-이차원의 설인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오오오오…!

빠악! 귀청이 찢길 듯 소리를 내며 휘두른 설인의 손바닥에 얼굴을 맞자 철퇴가 머리통에 쏟아진 격통이 일었다.

순간 머리가 뒤로 쏠려 비틀거리는 시운에게 빈틈이 보이자 설인 하나가 시운을 덮쳤다.

“크흑…!”

등살에 냉기가 느껴졌다. 빙판에 눕혀진 채 자신에게 올라타서 송곳니를 들이미는 설인의 얼굴은 호러영화속 괴물 같았다.

‘화룡의 도약.’

순간적으로 튀어오른 시운과 함께 튕겨져나간 설인이 빙판에 데구르르 굴렀다가도 다시 자세를 고쳐잡는다.

‘남은 놈들은 이십 마리.’

공중으로 도약한 채 놈들의 수를 훑었다. 근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까부터 모든 설인들의 낯빛은 광분함이 서려있는데 유독 한 놈만 표정이 없었다.

‘…저 놈은 뭐지?’

빙판 아래로 착치하며 그놈을 보았다. 놈은 가만히 시운을 바라볼 뿐이었다.

바로 그 시각.

한국헌터협회 본부 부협회장실.

“알겠네. 내가 시킨대로만 하게.”

수화기를 내린 동석의 눈이 열린 문으로 향했다.

“어, 우리 딸?”

윤성혜는 인사도 없이 동석의 테이블까지 걸어와서 그를 내려다봤다.

“아빠 나 사랑하죠?”

“당연하지. 근데 아빠가 지금 좀 많이 바쁜데….”

딸에게 죽고 못사는 동석이 오늘만은 귀찮단 얼굴이다.

“레드게이트에 인력을 지원해주세요.”

“…지원?”

동석은 고개를 저었다.

“더 높은 랭크의 헌터를 그곳에 진입시키면 그들에게 감지되고 말아.”

“감지고 뭐고 블랙헌터라는 놈들보다 사람이 중요한 거잖아요! 애초에 이 임무는 말조차 안됐어요. F급 헌터들에게 레드게이트에 진입시켜서 블랙헌터들의 정보를 수집해 오라니. 그 사람들 다 죽으란 말이잖아요!”

“선발인원을 발탁한 것은 너 아니였니.”

“그, 그건.”

쓰게 웃는 동석의 시선을 그녀는 잠시 회피했다.

사실 그랬다.

자기와 생사를 오고간 그 몇 명의 헌터들에게 몇 억이란 수익을 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계약금이란 명목으로.

특히나 그녀는 이시운의 자질을 믿었다. 그라면 그 어떤 일도 해쳐낼 것이라고.

근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 레드게이트의 마력수치는 측정불가를 넘어서 살떨리는 기운을 내뿜고 있고.

상황은 생각대로 돼가고 있지 않고 있다. 이내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직감한 것이다.

“이미 임무에 투입시켰으니 되돌릴 수가 없다.”

“제발요! 아빠의 권력이라면 이사장이든 누구든 회유할 수 있잖아요? 사람 목숨이 중요하지. 그깟 적들…”

“모두 죽을거야.”

“…아빠!!”

성혜의 뺨으로 눈물이 타고 흘러내렸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이시운이 웃고 있던 그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어쩌면 다시는 그 웃는 모습을 보지 못할수도 있는 걸까? 정말?

그때 동석이 가늘게 눈을 뜨고 말했다.

“성혜야. 하나만 이야기해줄게. 그들은 애초에 죽으려고 임무에 발탁된 거다.”

바로 그 시각.

레드 게이트 앞.

다섯의 헌터는 두 분류로 거리를 두고 나눠떨어져 있었다.

혜령과 유석 둘과

나머지 셋.

그때 혜령의 시야로 정연희가 들어왔다.

장세준의 곁에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얌전한 고양이가 뒤에서 온갖 짓거리는 다 한다더니….’

자신과 동고동락하며 살갑게 굴 때의 그 모습은 다 가식이었단 것에 환멸감이 들 정도였다.

“…나쁜 사람은 아닌 거 알잖습니까.”

유석이 말했다. 혜령의 쏘아보는 눈이 연희를 향하고 있음을 보고.

“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니고 가식적인 년인거지. 장세준이 공대장 자리를 딱 차지하고 있으니까 딱 저렇게 들러붙은 거 보면 모르겠어? 뒤에서 저놈이랑 밤에 굴러먹은 건가보네.”

“…….”

유석의 시선이 연희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차가운 낯빛으로 자신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장세준과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닌데.’

유석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정연희가 협력퀘스트를 클리어하고 굳은 얼굴로 갑작스런 작별을 했었던 일이 떠올랐다.

‘뭔가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

유석은 사람 보는 눈이 있는 편이기에 그렇게 확신했다.

바로 그 건너편에서는 박수혁이 던전 입구 방향을 보며 경비를 서고 있었다.

혹여나 몬스터가 나타날 것에 대비해서 말이다.

“…너는 이시운 편 아니었나?”

세준이 연희에게 물었다.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편을 들어준 연희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 혼자 벌어먹고 사는 헌터들끼리 이 편, 저 편이 어딨어요?”

“기회주의자인가?”

연희는 세준의 시선을 피하고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타입은 아닌데 분명…. 아무튼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세준은 그렇게 생각하고 레드게이트를 바라봤다.

레드게이트의 문은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세준은 알 수 있었다.

저 게이트는 닫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저곳에는 엄청난 존재가 나타날 거라는 것을 이미 들은 바다.

모든 계획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던전브레이크. 그때부터 시작이다.’

설인의 흉곽이 올라갔다.

그리고 어깨의 흔들림을 보고 날아드는 주먹을 예측하고 왼손으로 맊아냈다.

팍!

-쿠오?

설인이 놀라 눈이 커졌다.

인간 따위가 자신의 주먹을 무기도 아닌 손으로 받아내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서일테다.

‘내 근력 스탯은 320이라고.’

그대로 반대쪽 손을 움직였다.

검신이 설인의 목을 꿰뚫었다.

-설인을 처치하였습니다.

시운은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숨이 가빠왔다.

남은 설인은 단 세 마리.

아무리 고레벨의 시운이라지만 이차원의 설인 다수를 손쉽게 상대하기란 벅찼다.

그때였다.

설인 하나가 빙판더미를 시운에게 던졌다.

콰지직! 왼주먹으로 날아오는 빙판더미를 깨자 그 틈으로 설인 둘은 어느새 양 방향에서 거리를 좁히고 돌진해오는 상태였다.

‘흑화광참.’

[마력이 부족합니다.]

쳇. 마력이 부족하단다.

포션을 복용할 수도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스킬 없이 싸우는 수밖에.

그의 검신이 빙판길 위에서 번쩍였다.

.

.

.

.

“하아….”

턱끝까지 숨이 차올랐다.

주위는 설인들의 시체가 낭자했다.

그 시체들에서 역겨운 내장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남은 놈은 단 한 마리.

남은 설인 하나는 감정 없이 시운을 바라보고 있다.

아까부터 이상하다고 느낀 놈이다. 광폭한 다른 놈들과 달리 표정도 없고 움직임도 없이 지켜만 보던 놈.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자세를 잡았다.

“……….”

근데 하얀 가죽을 뒤덮어 쓴 놈은 미동도 없이 바라만 볼 뿐.

바로 달려들 생각이 없나보다.

‘상태창.’

레벨:152

근력 <320> 민첩 <190>

체력 <130> 지혜 73 지능 13

열정 8

살기 3

여유 스탯: 21

방금 설인들을 독점해서 올린 레벨만 부려 6이나 되었다.

[마나포션을 복용할 수 없습니다.]

‘…젠장.’

이 던전에서는 포션을 복용할 수가 없다는 알림창이 울려왔다.

근력에 여유 스탯을 모조리 올인했다.

마력 스탯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최대치 마력만 상승할 뿐.

0인 마력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체력 또한 마찬가지.

설인의 푸른 두 눈은 여전히 시운을 응시할 뿐이었다. 뭔가 저놈에게 쎄한 느낌이 나서 스탯을 분비하여 힘을 보탠 뒤 전투에 임하려고 상태창을 띄운 것이었다.

‘단숨에 힘으로 찍어 누른다.'

시운의 두 다리가 움직였다.

"정말이군.“

놈이 처음으로 말했다.

설인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흘러나오다니.

순간 놀라 멈칫했지만 놈과 대화를 섞을 이유는 없었다. 놈이 고맙게도 빈틈을 만들어준 셈이다. 팍! 빙판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리고 중력의 힘과 온 힘을 실어 놈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파악!

“……?”

검이 손에서 떨어져 튕겨져나갔다.

놈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시운을 그대로 바라볼 뿐이었다.

생채기 하나 입지 않았다.

‘뭐야.. 이 새끼..’

놀란 시운은 곧바로 좌측을 바라봤다. 아클레우스 소드의 검신 반절이 빙판 아래로 꽂혀있다.

[아시룡의 활을 장착합니다.]

즉시 활을 겨누었다.

그리고 활시위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이었다.

“너는 본체가 아니구나.”

“…뭐?”

놈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흘러나왔다.

“무슨 뜻이냐?”

시운이 물었다. 물으면서도 화살을 날릴 준비를 마친 상태로.

“본체가 아닌 것에는 아무 흥미가 없다.”

그때였다.

놈의 하얀 살덩어리에 핏줄이 펌핑되더니 피부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인의 육신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빠르게 화살을 날렸다.

“…!”

화살은 튕겨나가 빙판길에 부러진 채 처박혔고.

수십 미터 위에서 시운을 내려다 볼 정도로 놈은 거대해진 상태였다.

놈은 몸집만 아니라 외형까지 모조리 바뀐 상태였다.

‘이 놈...아까 그 놈이잖아?’

외형을 바꾼 놈은 방금 전 출몰했었다가 사라진 괴수였다.

‘나로서는 불가능이다.’

본능적으로 저 놈을 상대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곧바로 방향을 틀어 냅다 뛰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내 마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어야 해!’

살기 위해서 거친 호흡을 뿜으며 빙판길을 내달리던 시운의 등 뒤로 굵고 낮은 괴성이 들려왔다.

“…본체를 갖추고 오너라. 인간이여. 곧 보게 될 것이다.”

그 육성에 뒤이어.

넓은 일대 모든 빙판이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뒤이어진 음성은 너무 낯선 말이었다.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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