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49화 (149/278)

제 149화

독보적인 F급 헌터

‘설마..?’

세준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레드 게이트에서 뿜어지던 마력이 멈췄기 때문.

그리고 잠시 후.

게이트의 색이 연해지더니 팔 하나가 뻗어나왔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시운이었다.

이윽고 다른 팀원 셋까지 뒤따라 게이트에서 걸어나오자 게이트의 문은 그대로 닫혔다.

“괜찮냐?”

반가운 눈을 하면서도 말투는 그것을 숨기려는 듯한 혜령의 물음에 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준은 이를 아득 씹었다.

저 게이트 속에는 그놈이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시운 저놈이 그놈을 헤치웠다고?

계획이 뒤틀려버리고 말았다.

세준은 잔뜩 찡그린 미간을 억지로 펴며 말했다.

“수고들 많았다.”

드드드드!

그때 모두의 시선이 정중앙의 게이트로 향했다.

푸른색 게이트에서 뿜어지던 냉기가 사라지고 진짜 게이트가 열리는 소리였다.

“…공대장님. 푸른색 게이트는 클리어 한 건가요?”

가혜가 물었다. 세준은 대답하지 않고 방금 던전을 클리어한 넷의 얼굴을 훑었다.

다들 잔뜩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특히 이시운은 얼굴에 생채기가 가득했다. 확실히 전투를 하며 고생 좀 한 듯 했다.

“너희들 스태미너를 회복할 시간은 주겠다. 그리고 바로 저 게이트로 모두 진입한다.”

세준이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킨 게이트는 어느새 사람크기만큼 열린 상태였다.

“불길해..”

“검은 마력이 느껴진달까.”

“저 곳에 그들이 있단 말인가.”

그 게이트를 본 헌터들은 적색, 푸른색 게이트보다 더욱 살기를 느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곳으로 들어간다면 살아서 걸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게이트는 진짜 악마가 벌린 아가리처럼 불길한 기운을 뿜어냈다.

“푸른색 게이트에는 들어가지도 않았군..”

시운이 세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따지려는 건가?”

“따지려는 건 아니고 우리가 목숨을 걸고 개고생을 할 동안에 여기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괘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번 팀 공대장이 당신으로 선발된 것이 참 운이 나쁘기도 하고..”

시운의 말에 세준은 눈을 치켜떴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남자답지 못하다고.. 당신.”

푸석푸석한 장발에 안대를 쓴 한 남성이 표정 없는 낯빛으로 걷고 있다.

어깨를 뒤흔들지 않아도 걷는 속도는 그가 입은 도복이 휘날릴 정도였다.

처벅-처벅-

그때 맞은편에서 화이트 게이트로 일원 박대정이 걸어오는 사내를 보더니 눈이 커졌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대정의 눈이 더욱 커졌다.

멀찍이서 걸어오던 남자가 어느새 자신의 옆을 지나쳐 갔기 때문이다.

그것도 안대를 뒤집어 써서 눈도 안 보이는 사람인데 말이다.

‘..경보? 엄청난 내공이다..아니! 저 사람은?’

“잠깐만요!”

대정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를 불렀다.

그러자 사내의 움직임이 멎었다.

대정은 그를 향해 다가갔다.

“…당신 혹시 곽……”

퍼억!

사내의 손날이 그대로 대정의 목에 꽂혔다. 대정은 신음성도 흘리지 못한 채 뇌가 꺼지듯 그 자리에 늘어졌다.

사내의 입술이 뭐라고 하듯 움직이자 그의 육신이 흐려졌다.

저곳인가? 곽회장이 말한 게이트..

전신을 투명화 시킨 채 걷던 사내가 멈췄다.

“…저 게이트 속에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어. 이곳과 저곳의 시간의 흐름은 다를지도 몰라.”

“근데 윤성혜 씨는 어디 간거죠?”

사내는 감각으로 그들의 숫자를 파악했다. 그런 그의 고개가 들렸다.

그의 고개가 향한 곳에는 게이트가 살벌한 기운을 분출하고 있었다.

터벅- 터벅-

“…방금 발자국 소리 들린 것 같은데?”

수철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분명 들었는데….”

“과장님. 피곤하신가 봅니다. 잠시 쉬십시오. 어차피 이곳에 아무도 올 사람도 없어서 저희 몇 명이 교대로 지키고 있으면 그만입니다.”

“음….”

수철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게이트 표면이 순간 미동을 쳤다.

그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 **

정중앙 게이트.

주위로 낡은 시멘트벽이 앞으로 쭉 펼쳐져 있다.

음침한 분위기가 가득 풍겨났다.

끝없이 펼쳐진 통로.

미궁이었다.

세준의 눈이 시운에게서 멈췄다.

‘투구가 바뀌었군.’

적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난 후 시운의 투구 외형이 변해있었다.

길게 솟은 뿔에 적색 외형의 투구.

기품이 흐르면서도 오래된 고대인들의 솜씨로 만들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 던전을 클리어하고 템을 하나 건진 모양이겠지.

저놈 때문에 계획이 뒤틀린 것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계획은 루트B로….

일단은 공대장 행세부터.

“이제부터 다들 긴장해요. 우리가 할 일을 다시 머릿속으로 새기고… 박수혁 씨.”

세준의 말에 박수혁이 공중을 응시했다. 곧 홀로그램이 그의 앞에 띄워졌다.

“…협회에 실시간으로 송출시킬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송출 시작하겠습니다.”

수혁이 말했다.

“이제부터 언행 조심해야 하는 거 알죠? 우릴 지켜보는 눈이 많을 겁니다.”

지금부터 이들의 행태는 협회측에 고스란히 송출된다.

이들의 임무는 그림자들의 소탕이 아니라 그들의 생김새, 목소리, 움직임등의 정보를 영상으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협회측에서는 이 영상을 토대로 분석에 들어갈 것이고 베일에 가려진 그림자들의 전력을 분석할 것이었다.

그때였다.

시운이 세준에게 다가갔다.

“공대장님.”

“…왜요?”

시운은 갑자기 존댓말을 쓰는 세준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라이브로 송출 중이니 갑자기 가식을 떠는 약은 놈….

“공대장님이 적색 게이트에 저와 헌터 셋만 강제로 진입시키고 본인은 편하게 던전 입구에서 쉬신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요?”

세준은 벌레를 씹은 표정을 애써 가렸다.

큼! 헛기침을 한 세준이 머리를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선 긴장해야 해요. 쓸데없는 다른 소리는 하지 맙시다.”

“다른 소리가 아니라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 집고 넘어가려는 겁니다.”

“이시운 씨?”

“이시운의 말이 틀린 거 없잖아요? 공대장님께서는 전력을 낭비한다는 말같지도 않은 핑계로 본인만 안전하게 던전에 진입조차 안하고 편하게 쉬고 계셨잖아요?”

그때 혜령이 거들었다.

“…….”

가늘게 뜬 세준의 눈이 수혁에게로 향했다. 저놈은 기회주의자인 성향이라 여기서 내 편을 들어 한마디 해주겠지.

“…준비는 끝났으니 이만 움직이시죠, 공대장님.”

돌아오는 수혁의 말에 세준은 이를 꽉 씹었다.

저런 약아빠진 새끼.

지금 이 상황은 협회측에 고스란히 송출되고 있다. 추후에 감사과에 불려가서 심문을 당할 수도 있고 앞으로의 헌터 생활에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일단은 지금은 숙으려야 한다.

“…미안합니다. 그것은 제 계산의 착오였어요. 인정합니다.”

“하. 아까와는 참 태도 다르시네.”

혜령은 코웃음을 쳤고 시운은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시운은 울그락불그락한 세준의 얼굴을 똑바로 봐주며 인벤토리를 띄웠다.

[천륜의 투구][울트라] <투구>

자신을 부정하고 천륜을 거스르려 했던 누군가가 쓰던 투구.

방어력: 280

내구도: 190/190

민첩+30

근력+15

체력+25

추가 특성

<천륜의 동기화>

설명: ??????

적색 게이트에서 던전을 클리어 했다는 알림이 뜨고 획득한 투구다.

‘상태창.’

레벨:152

근력 <356>+15 민첩 <220>+30

체력 <155>+25 지혜 73 지능 13

열정 8

살기 3

여유 스탯: 0

오른쪽에 플러스 표시된 부분은 전에 장착한 투구보다 스탯이 증가한 수치다.

무엇보다 울트라급이라 방어력도 뛰어나며 유용한 스탯들을 크게 증가시켜주는지라 아주 물건이었다.

그런데.

투구의 추가 특성에 붙은 <천륜의 동기화> 라는 특성의 설명이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다.

무슨 특성의 스킬일까?

그렇게 미궁 속을 걸었다.

상념에 잠긴 채 걷던 시운이 빠르게 연희의 옆구리를 낚아챘다.

“뭐야?”

“앞을 조심해.”

시운이 연희의 발 앞을 가리켰다. 팍! 연희가 밟으려던 그 발판 부분을 시운이 발로 툭, 쳐보니 그대로 발판이 떨어져 깊숙한 지하까지 추락하다가 지상에 닿아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연희는 시운의 팔을 뿌리쳤다.

“내가 알아서 해.”

연희는 숨을 내쉬며 그대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나한테 화난 거라도 있나.

“…몬스터들은 안 보이는군. 근데 저 성화는 뭐지?”

태식이 손으로 가리킨 벽에는 빨간 성화가 걸린 채 타올랐다.

모두의 시선이 성화로 향하자 성화의 불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그때였다.

“꺄아악!”

공중으로 피가 솟구쳤다. 임가혜가 어깨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뭐야?”

“괜찮아요?”

“조심해요!”

곧바로 유석과 시운이 가혜를 감싸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데..”

유석이 의아해했다.

“…이시운 씨. 미리 말해두는데 함부로 광역스킬 남발하지 마요.”

그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여기는 미궁이고 지형도 좁다. 하물며 방금 장애물도 발견한 지라 광역 스킬을 사용했다가 지형이 붕괴된다면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맹인의 감각.’

[청각과 후각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시운은 곧바로 속으로 외쳤다. 청력에 오감이 쏠렸다.

느껴진다. 아주 작은 움직임의 소리가! 저쪽이다.

곧바로 시운이 그쪽으로 튀어나가 검을 내뻗었다.

-콰루룩!

괴상한 신음성과 함께,

벽 뒤로 초록색 피가 쏟아졌다.

“몬스터..?”

“이제야 모습이 보여!”

시운의 검신은 인간괴수종의 늑골을 관통한 상태였다.

파악!

시운은 검신을 거두고 오른발을 들어 그대로 내리찍자 인간괴수종의 얼굴뼈가 박살나며 늘어졌다.

“이놈들은 은신계열의 몬스터입니다. 옵니다! 전방에 약 이십 마리!”

시운이 외치자 모두가 전방을 향해 스킬을 난사했다.

“괜찮아요?”

그 틈에 혜령이 홀로 주저앉아 있던 가혜에게 물었다.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벌어진 어깨 살점을 지혈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겁에 질린 눈이었다.

“겁먹지 마요, 안 죽어요. 힐을 할 동안 내가 지켜줄 테니까.”

“가, 감사합니다….”

가혜는 무릎을 숙이며 자기 얼굴에 눈높이를 맞춰가며 말해주는 혜령이 고마웠다.

한별은 뒷걸음질을 치며 상황을 훑었다. 그러던 그녀의 시선이 시운을 향해 옮겨갔다.

‘대체..뭐야?’

그녀의 망막에 비친 시운은 쉬질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허공에 손을 내뻗자 몬스터의 형태가 드러났고 그 몬스터의 목을 조른 채 땅으로 내리꽂으니 몬스터의 뼈가 박살이 난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시운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움직인다.

푸슉! 그의 검이 쇄도하자 벽쪽에 달라붙어 은신했던 몬스터가 혀를 길게 내밀며 땅에 몸을 처박는다.

‘저 싸가지 자식 정체가 대체 뭐야..?’

아직도 납득이 안 간다. 저 자식이 우리와 같은 F급이라니….

대체 근력 스탯은 몇인거야? 아니….

쿠쿠쿠쿠궁-!

그때 미궁 전체가 굉음을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협회 본부 임원회의실.

200인치의 스크린이 회의실 한 가운데에서 빛을 뿜어내며 영상을 비추고 있다.

수십 개의 눈이 그 영상에 그대로 박힌 채로.

‘…저 아이인가?’

‘이름이 이시운 이랬지?’

‘아무리 봐도 최소 B랭크 급은 되는데?’

임직원들의 눈은 하나같이 커져있었다.

스크린 속에는 이시운의 활약상이 그대로 송출되고 있었다.

시운은 앞이 까마득한 던전에 은신계열의 몬스터를 찾아내 곧바로 뛰어서 무릎으로 몬스터의 턱을 박살냈다.

뻐억! 턱이 들려 공중으로 하얀 이를 쏟아내는 몬스터의 목덜미에 정확하게 칼날을 꽂아 넣었다. 칼날은 목 뒷멀미까지 그대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검신을 뽑은 채 후방으로 수평을 그어 검신을 그리자 후방의 몬스터의 허벅다리의 살점이 찢어졌다. 시운은 회전력을 실어 팔꿈치로 몬스터의 턱을 강타시킨다. 콰직! 그대로 시운은 몬스터의 발잔등을 발로 밟아 몬스터를 고정시키고 검신을 휘젓는다. 몬스터는 그대로 육편이 되어버린다.

‘타고난 건가?’

‘검뿐만 아니라 신체 모든 부위를 사용하고 있어..’

‘진짜 물건이구나, 쟤는….’

모든 임직원들이 시운의 현란한 움직임에 놀라있었다.

F랭크가 보여줄 수 있는 몸놀림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협회 임직원 모두의 눈썹이 치켜떠있을 그 즘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협회장님 오셨습니까?”

모두가 스크린에서 눈을 뗀 채 일동기립하여 인사를 건넸다. 오직

단 한 사람 윤동석만 자리에 앉은 채 협회장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대익이 앉으라 손짓하자 모두가 자리에 다시 앉았다. 대익은 비서의 안내를 받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흠….”

대익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옮겨갔다. 예상대로 이시운은 선전하고 있었다. 시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뻐금거리며 허리를 뒤로 젖혀 편하게 스크린을 감상한다.

그때.

한 남성이 동석에게로 급히 뛰어가 귓속말을 건넸다.

“…뭐?”

남성의 말을 전해들은 동석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입술을 한 번 비집어 뜯은 그는 반대편의 대익을 바라봤다.

‘곽회장….’

대익은 시가를 하나 문 채 여유롭게 스크린에 눈을 두고 있었다.

그의 손 틈새로 굵은 연기가 천장에 흩뿌려졌다.

동석이 일어나서 곽대익에게 다가갔다.

대익은 다가온 동석을 올려다봤다.

뻔뻔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그때 동석의 입술이 열렸다.

“협회장님. 저랑 얘기 좀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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