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0화
Show time
대익이 동석에게로 시선을 힐끗 주었다.
“말씀하시죠.”
아무것도 모른다는 대익의 태연함에 동석은 헛웃음이 삼켜졌다.
“곽원.”
동석의 짧은 한마디에 대익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곽원이라는 친구를 당연히 기억하시겠죠?”
동석이 물었다.
과연 저 가식적인 표정이 얼마나 뒤틀리는지 보자. 라는 생각으로.
“알고야 있죠. 맹인으로서 워낙 신출귀몰했던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춘….”
“곽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게이트 근처 요원 하나가 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동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익이 너무도 뻔뻔하단 반응을 보였으니까.
동석은 이를 살짝 씹으며 눈에 힘을 주었다.
대익은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았다.
“물론 루머겠지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 치자면 그 자를 협회장님께서 데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허허.”
말꼬리를 그대로 자른 재익은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겨버렸다.
“이번 게이트에 감지 헌터를 제외하고 인력을 배치하라 지시한 분이 협회장님 아닙니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트에 제 3자가 진입했다는 보고는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러시단 말씀이죠.”
동석의 시야에 들어온 대익의 옆태가 유독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일단 여기서 추궁해봤자 소용도 없고 물증도 없다.
“저기 저 스크린 속에 나오는 저 아이나 좀 지켜보십시다.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 친구.”
대익이 스크린 속 한 인물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앳된 얼굴에 눈빛은 자신감이 가득한 헌터 이시운. 그는 아득한 미궁 속에서 홀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러시죠.”
다시 자리에 돌아간 동석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자로 감당이 될 것 같은가? 협회장 당신은 그저 약은 뱀에 불과할 뿐이야.’
아득하고 어지러운 미궁은 선발대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있다.
그렇게 삼십 분이 흘렀을까.
“열한 개의 성화의 색이 모두 초록색으로 변했어요.”
김한별이 벽에 걸린 성화를 보며 말했다.
미궁의 벽마다 걸려있던 성화는 몬스터의 습격이 나타날 때마다 색이 바뀌었고, 그 주위 몬스터를 모조리 처리하면 초록색으로 변했다.
“남은 성화는 단 하나. 저쪽입니다.”
시운이 말했다.
레크라스를 소환해 이미 이 미궁 전체의 약도를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그였기에 남은 성화의 위치조차 알 수 있었다.
“뭔가 음침한 기운이 느껴진다. 다들 긴장해.”
세준이 낮게 말했다. 그때 뒤를 따르던 박수혁이 괴성을 뱉기 시작했다.
“…뭐야?”
“수혁 씨?”
모두가 놀라 뒤로 물러났을 때 이미 수혁의 뒷모습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뒷태는 거친 짐승의 등근육으로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가 돌아봤다.
“안심하세요. 제 스킬입니다.”
그의 육성은 인간의 언어였지만 맹수의 목소리였다.
붉은 두 눈동자로 그르렁, 거리는 그의 외형은 호랑이로 변해있었다.
“아니, 저런 스킬이 있단 말이야?”
“…변신?”
그 와중에 세준만이 태연히 그를 주시했다.
“변화 스킬이다. 후각과 청각 그리고 몸의 힘을 일정 시간동안 극대화시켜주는 스킬이지. 이성을 잃어서 너희들을 물어뜯을 일은 없으니 안심하고.”
세준이 덧붙이자 팀원들은 놀란 얼굴을 누그러뜨리고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가시죠.”
수혁이 말했다. 반면 자신을 괴물보듯 보는 시선들이 어색한 그였다.
팀원들은 그의 육성은 괴성같아서 아직 적응이 되질 않았다.
한편 시운은 상념에 잠겼다.
-네 놈은 본체가 아니구나…. 본체를 찾고 오너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던전에서 그 설인이 했던 말이었다.
내가 본체가 아니라고? 그리고 희한한 점은 그 이후 드랍한 투구를 착용하고 전투를 할 때마다 몸의 전신 순환이 잘 되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천륜화의 동기화 진행까지 앞으로 80% 남았습니다.]
시운에게 들려온 음성이었다.
‘…이 투구의 비밀속성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저것의 동기화가 모두 완료된다면 어떤 능력이 생길까. 궁금해하던 찰나였다.
미궁의 끝이 보였고,
그 끝은 거대한 벽으로 막혀있었다. 그 벽 한 가운데에서 타들어가고 있는 성화의 불길이 푸른색으로 바뀌던 그 순간이었다.
그들 한 가운데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준비!”
세준이 외쳤다.
모두가 공격태세를 끝마쳤다.
그림자의 검은 부분이 걷어지고 드러난 외형은 하체는 여덞개의 다리가 있고 상의는 인간인 식충인간이었다.
그것의 이채는 싸늘하면서도 적의가 가득했다.
수혁이 뒷발을 짚고 도약하여 미궁의 옆벽을 타고 신속하게 접근했다. 그 후 육중한 짐승의 앞발로 식충인간을 내리치려는 그 순간.
주변 미궁의 풍경이 일그러지면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
.
.
“이, 이게 뭐야?”
혜령이 놀란 육성으로 말했다. 그녀의 눈앞으로 거대한 고대 풍경의 성이 솟아 있었고, 수만 명의 병사가 방패를 내민 채 떼를 지어 있었다.
그 병사들 뒤로 식충인간이 홀연히 서있었다.
“저것들이 다 졸개라고?”
힘빠지는 투로 가혜가 말했다. 지금은 기력을 아껴야 할 때인데 저 수만 병사를 어떻게 뚫을 것인지 힘부터 빠질 수 밖에였다.
“저 벌레같은 놈. 환술을 사용하는가 보군.”
세준이 앞을 둘러보며 말하자 수혁이 그에게 다가왔다.
“광역 스킬을 통해 단숨에 뚫어버리죠. 결국 저 인간벌레만 처단하면 끝일 것 같은데.”
“그래야지.”
세준은 대답하며 한편으로 걱정이 됐다.
‘마력을 최대한 아껴야 할텐데….’
그때였다.
-우오오오오오!!
수만 병사들의 고함이 대지를 뒤덮었다. 마치 천둥이 연달아 내리치는 듯한 굉음은 고막이 나갈 정도였다.
쿵! 쿠우웅! 쿵!
그들이 방패 옆에 든 창을 세우고 일제히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대지에 지진이 난 듯 헌터들의 몸이 뒤틀릴 정도였다.
“정연희. 김한별. 광역스킬을 시전한다.”
그들이 입술을 움직이자 붉은 화염이 진군해오는 병사들에게 쏟아졌다. 동시에 먹구름 낀 하늘에서 얼음 구체가 쏟아졌고, 그 사이로 라이트닝 구체가 쇄도해갔다.
타아앙!
“뭐, 뭐야?”
“베리어?”
매지션 셋의 공격은 수만 병사들을 둘러싼 베리어 쉴드에 의해 모조리 튕겨나가버렸다.
“젠장!”
세준이 이를 아득 씹으며 다시 입술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발 앞 치에서 뼈가 솟아나왔다.
세준 앞으로 소환된 스켈레톤 이십 마리는 검과 방패를 든 채 이어질 주인의 명을 기다리는 듯 했다.
“가서 부딪히고 와봐라.”
떨그럭- 떨그럭-
스켈레톤들이 마주해오는 병사들에게 달려갔다.
3분 후.
병사들의 창해 뼈가 난자된 스켈레톤들의 눈빛은 꺼져버렸다.
“병사 한 놈당 전력은 높지 않다. 방금 체크해봤거든. 그러나 우리는 기력을 아껴야 한다. 저 뒤에 있는 식충이를 없애야 하는데…. 광역스킬은 아마 통하지 않는 것 같고.”
그때 시운이 검을 앞으로 들고 말했다.
“제가 최전방으로 나서죠. 위험해 보이면 지원들 부탁합니다.”
“또 함부로 나대려 하지마라.”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믿어보시죠.”
곧바로 시운이 번개같이 그들에게 튀어나갔다.
머리칼을 휘날리며 뻗어가는 시운의 뒷모습을 보는 헌터들의 눈이 커졌다.
‘…저 많은 놈들을 혼자 상대하려고?’
‘저 싸가지 자식은 대체 죽음이 무섭지도 않은건가….’
‘이시운. 널 위험에 빠지게 놔두질 않을거야.’
그때였다.
쿠웅-!
묵직한 굉음소리. 헌터들의 눈이 더욱 커졌다.
시운의 주먹이 병사 하나의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러자 방패가 일그러지며 넘어지는 병사와 함께 그 뒤로 딱 붙어 달려오던 병사들이 모조리 넘어졌고, 병사들의 좌우 행렬이 흔들렸다.
-크악!
-저, 정렬을 다듬어!
넘어진 병사들이 당황해하고 있을 때 시운의 검이 쏟아졌다.
십초가 흘렀을까.
시운의 검신에 육편이 된 병사만 몇십 가량이었다.
“가만 지켜만 볼 수는 없네!”
태식이 말하며 의지를 다듬고 단검을 쥔 채 달려나갔다.
혜령 또한 접힌 활을 풀어 화살을 끼워넣었다.
“힐러. 넌 후방에서 지원만 해. 괜히 죽지 말고.”
세준이 말하자 가혜는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별은 속으로 헛웃음이 났다.
이시운. 저 놈은 아무리 봐도 우리 레벨이 아니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혹시 랭크를 낮춰 속이고 이번 임무에 참가한 것은 아닐까.
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다.
이미 생존 서바이벌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그쪽도 믿기지 않죠?”
한별은 옆을 돌아봤다. 연희가 저 멀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저 자식 대체 뭐에요? 다이아 수저에요?”
한별이 물었다. 다이아 수저라면 불법 루트로 동시작한 헌터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연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랑 달라요. 그냥 타고난 거에요, 시운이는.”
“저게 템빨도 없이 그냥 타고난 거라고요? 그게 말이 돼요?”
“일단 우리도 움직이죠. 팀원들에게 짐이 될 수는 없잖아요.”
말하는 연희의 표정은 어두웠다.
시운은 거친 숨이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아무래도 이놈들 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
베고, 찌르고 죽여도 남은 병사의 수는 아직 일만명은 족히 되는 듯 했다.
쏴아아-!
그때 창이 날아들었다.
곧바로 숙여서 구르며 병사의 다리를 베고 복부에 칼끝을 쑤셔넣었다.
-크헉….
시운은 화룡의 도약을 사용해 반대편으로 착지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스태미너는 점점 소모되고 있고, 광역스킬은 먹히질 않는다.
고개를 돌려 식충인간을 바라봤다.
저놈만 죽이면 되는데….
불가능해 보였다.
저놈도 머저리는 아닌지 자신 주위에 절반가량의 병사를 촘촘히 에워쌓은 채였다.
‘그렇다면….’
시운의 머릿속으로 단 한가지의 방법이 스쳐 지나갔다.
아껴뒀던 그 특성스킬을 사용할 수 밖에.
쉬이익-!
피냄새가 이곳저곳에서 진동을 하는 틈에 여러 개의 창이 날아왔다.
검신으로 모조리 쳐내고 야수 베기를 시전했다.
병사들의 가슴살과 목, 어깨가 찢겨져 떨어져나갔다.
그 틈으로 시운의 눈 앞에 홀로그램창이 떠올랐다.
[자생도 야수족의 리더 ‘크리스’]
조건: 특수 던전을 제외하고 언제 어디서든 크리스와 야수족을 호출할 수 있다.
그들은 호출을 받으면 특정 스크롤을 소모하여 포탈을 통해 해당 위치로 집합한다.
소모 시간: 5분.
제한 횟수: (1/1)
‘…이 카드는 좀 아껴두려 했었는데.’
“오!”
“…늑대들?”
임원 회의실에서 놀라움이 담긴 탄성이 터져나왔다.
방금 전까지의 분위기는 저 하급 헌터들이 저기서 죽을 거라고 확신하던 찰나였다.
영상 속 스크린에서는 철옹성 같은 병사들 앞으로 갑자기 나타난 늑대들이 송출되고 있었다.
‘뭐지? 저것도 협회장 짓인가.’
동석이 대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바뀌었다.
아무리 협회장이라 하더라도, 던전 안에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앉아서 무슨 수작을 버릴 수는 없다.
놀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저 늑대들은 어디서 나타난 거지? 헌터들에게 저런 스킬도 있었나.”
대익이 옆에 있던 부장에게 물었다.
“그런 스킬은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스크린을 보던 대익의 눈이 빛났다.
이중 보형하던 늑대들이 네 발을 사용해 빠르게 병사들을 향하여 덮쳤고 창과 발톱이 난무하며 주위는 피바다가 되어갔다.
‘설마..?’
대익의 눈이 이시운에게로 향했다. 시운은 다른 늑대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늑대 하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아니네, 자네의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었네. 이번 기회에 은혜를 갚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네.”
대익의 눈빛은 어느새 흥미로움이 베이기 시작했다.
‘이시운.. 저 F급짜리가 저 까탈스럽다고 알려진 늑대들을 통솔하고 있단 말이지.’
물건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처럼 물건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임원들은 피가 난무하는 영상을 마치 전쟁 영화를 감상하듯 눈을 두고 있었다.
한편 동석 뒤편에 앉은 여성은 유독 불안한 손길로 안경을 매만지고 있었다.
윤성혜였다.
‘제발..제발!’
저곳에서 나와서 자신 앞에 나타나서 활기차게 웃는 이시운을 보고 싶은 맘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저들 모두가 살아나와야한다는 바람이였다.
이번 선발대 팀원을 구성한 것은 그녀였기에.
-조무사님. 포기하지 말고 절 믿어보세요.
아직도 던전탐사때 그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런 그의 육성을 다시 들을 수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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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장님! 저걸 보십시오.”
김부장이 스크린을 보며 소리쳤다. 남아있던 병사들이 무장한 철갑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병사들 마저 연기처럼 사라지는 광경을 보고서 말이다.
“어떻게 된거지? 갑자기?”
“저들을 조종하는 자의 마력이라도 다한 걸까요?”
모두가 놀라있었다.
단 한사람만 빼고.
그 사람은 동석이었다.
‘이제 쇼타임이군. 어서 모습을 드러내들 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