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52화 (152/278)

제 152화

결전 (2)

갑자기 등장한 남자에 모두의 눈이 커져있었다. 딱 봐도 적은 아닌 듯 했다.

‘맹인이 나말고 또 있었단 말이야?’

시운은 그를 올려다봤다.

안대를 가린 채 편안한 도복에 장검 하나를 든 장발의 남자.

그의 검끝이 단도를 향해 있었다.

“어이.”

그가 시운을 부르는 듯 했다.

“당신은 누굽니까?”

“난 이 세상에 없는 남자다.”

세상에서 없는 남자라고? 분명 귀신은 아닐 터다. 그렇다면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어찌 됐든 저 맹인은 강하다.

방금 단도의 일격을 장검으로 가볍게 쳐낸 것을 보고 직감할 수 있었다.

“잘 봐라. 이게 진짜 맹인의 싸움 방식이다.”

휙-

맹인이 장검의 끝을 바닥으로 내렸다. 그런 그의 안대가 펄럭였고 그 안대 사이로 푸른 이채가 튀어나왔다.

‘저, 저건..?’

시운의 눈이 커졌다.

맹인의 이마의 살점이 벌어지며 눈이 생긴 것이었다.

‘제 3의 눈인가? 그렇다면 맹인이 각성하면 저런 눈을 가지게 된다는 거야?’

타탁!

맹인이 장검을 쥐고 단도에게 질주했다.

차아앙!

장검과 단도가 부딪히는 금속음은 굉음과 가까웠다.

귀가 아릴 정도였다.

그 여파로 주변 사막의 모래알이 튀어 날아갔다.

차앙! 차아앙!

맹인은 전신을 회전하며 원심력을 실은 검격으로 계속해서 단도에게 맹렬의 공세를 가했다.

막아내기 바쁜 단도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대단하다..’

시운은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나와는 클라스가 다른 맹인이란 것을.

그때 단도의 단검이 맹인의 목젖을 향해 날아갔다.

맹인은 왼발을 뒤로 틀어 그 단검을 피해냈는데 갑자기 그 단검이 사라졌다.

곧바로 단도 또한 사라졌다.

‘뭐지? 사라졌어. 아니!’

클라스가 다른 전투를 보고 있는 시운의 눈이 더욱 뜨였다.

어느새 사라진 단도는 맹인의 뒤편에서 나타나 그의 등을 향해 단도를 뻗고 있었다.

차앙!

그러나 맹인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장검으로 그 단도를 튕겨냈다.

마치 전방, 후방을 모두 투시하는 듯 했다.

단도가 허리를 틀어 뒤돌려차기를 시도했다. 퍽! 팔을 교차하여 막은 맹인이 뒤로 밀려나자 단도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러자 맹인 주위로 단도와 똑같은 신형 두 개가 생성되어 그를 감쌌다.

“분신들인가.”

훑던 맹인의 육성은 차분했다.

분신들과 가세한 단도의 공격은 맹렬하고 끝이 없었다.

그러나 맹인은 틈을 주지 않고 장검을 통해 그 합들을 모조리 쳐냈다.

빈틈없는 싸움!

그때였다.

맹인의 뒤편에서 으르렁! 거리는 포효가 들려왔다.

은색빛에 뿔이 달린 붉은 눈의 여우였다.

‘내 여우보다 크고 눈빛도 달라…..’

시운의 일미호가 완전체가 되면 저런 모습일까?

그때, 맹인의 여우가 턱을 들어올렸다. 들어올린 턱 사이로 열기가뿜어졌다.

-캬아아!

여우가 턱을 내려 입을 벌리자 브레스 두 개가 쇄도해 분신 신형 두 명의 육신을 찢어놨다.

그리고 여우는 사라졌다.

굉음과 함께 모래바람이 사방에 번져불었다.

파악!

그때 맹인이 대각선으로 내리친 장검의 날이 땅에 멈추자 단도가 들고 있던 단검이 파편이 되어 부서졌다.

‘대단하다..’

시운의 눈으로 분명 보였다. 맹인의 이마에 떠있는 눈의 동공은 좌우로 연달아 흔들리고 있었다.

단도의 눈빛은 난감하단 듯 했다.

맹인은 마지막 일공을 가할 태세로 달려들었다. 그때 맹인이 손아귀를 펴 맹인에게 뻗자 맹인의 장검이 뽑혀나오더니 단도의 손에 안착했다.

“이런 것까지 사용할 줄이야.”

맹인은 자신의 빈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단도의 두 다리에 근육이 펌핑되며 땅을 박차고 맹인에게 쇄도해왔다.

“이봐요! 여기!!”

시운이 목젖을 짜내 외치며 맹인을 향해 있는 힘껏 아클레우스 소드를 던졌다.

차앙!

아클레우스 소드로 단도의 일격을 간신히 막아낸 맹인이 다시 공세를 이어갔다.

한편 유석은 그 광경을 영상을 통해 협회에 송출시키고 있었다.

‘저 남자는 누구지? 이시운과 전투 방식이 비슷해.’

협회 임원회의실의 분위기는 경악에 가까웠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와 역전되는 듯한 공세에 모두가 안심을 하면서도 경악한단 눈이었다.

특히 갑자기 등장한 저 남자는….

“곽원 아닙니까?”

본부장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고 협회장에게 물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필 저곳에 그 신출귀몰한 귀재가 나타나다니.

협회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것 같네.” 라고 나직였다.

.

.

.

“그림자가 전의를 상실한 모양입니다!”

임원 하나가 외쳤다.

몇 분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자 그림자가 손을 털며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스크린이 줌업되고 블랙 헌터의 얼굴이 그대로 줌엄이 되었다.

“저 놈 얼굴 그대로 확보해서 신상을 알아봐.”

협회장이 비서에게 명령하자 비서는 곧바로 임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애써 차분한 얼굴을 유지하면서도 동석의 미간은 꿈틀거렸다.

‘곽 회장!’

티 안내게 어금니를 씹으며 동석은 대익을 노려봤다.

분명 이번에 저 그림자들이 모조리 헌터들을 죽였어야 했다.

그래야 여러 기업에서 스폰 자금을 올릴 명분도 생길 것이고 앞으로 다른 ‘그’들과의 거래도 수월해질 터였는데.

그때 강렬한 시선을 느꼈는지 대익이 동석을 향해 돌아봤다.

동석은 눈에 힘을 풀고 애써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대익은 그런 동석을 보며 여유로운 눈빛을 지어보였다.

‘부협회장 이번은 당신이 졌다.’

그때, 임원들의 환호성이 연달아 터져왔다.

남은 블랙헌터가 도주한 것이었다.

“사망자 수는 두 명. 나머지 전원 부상에 그쳤습니다.”

감사과 팀장이 스크린 앞 연단에서 브리핑을 하듯 외쳤다.

곧바로 대익이 외쳤다.

“즉시 구급대원들을 진입시킨다!”

“끄으으….”

시운은 지끈거리는 통증에 눈을 떴다. 천장이 보이는 곳으로 보아 병원인 듯 했다. 팔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다.

아무래도 살아남은 모양이다.

그의 시야로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서있었다.

“감사과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조사할 것이 있는데.”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반대편 남자가 메모장과 펜을 꺼냈다.

“블랙 헌터는 총 두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명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는데 그 자가 사살한 겁니까?”

‘그 자’ 라는 말이 누구임을 시운은 단번에 인지할 수 있었다.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죽였습니다.”

“뭐라고요?”

두 남자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남자 둘은 시운에게서 눈을 떼 서로를 쳐다봤다.

“…정말 당신이 그림자 하나를 처리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물었던 남성의 눈썹이 과장되게 치켜 올라갔다.

다른 남성이 넥타이를 고쳐매고 다시 물었다.

“영상 송출이 도중에 끊겼지만 다른 선발대원들에게 물으면 진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번 임무에 공적이 크다 해도 따로 인센티브는 주워지지 않습니다.”

“제가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두 남자는 시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눈은 한치의 거짓도 없다는 듯 그들의 시선을 피하질 않았다.

“다른 팀원들은 무사합니까?”

“사망자 둘을 제외하고는 타박상으로 모두 치료 중에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시운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삼켰다.

같이 동행했던 수혁과 가혜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을 나눴던 유석과 연희, 혜령이 무사하단 말에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몇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감사과 직원들은 질문 몇 차례를 던지고 병실을 나갔다.

병실을 나와 복도를 걷던 직원들은 벙찐 얼굴이었다.

“…방금 걔가 처리했다는 그놈 신분을 조회해본 결과 이정석이었어.”

“뭐? 이정석?”

그 이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정석.

그는 A랭크 헌터로 여러 기업이 탐내던 유망주였으니까.

“그렇다면 방금 그 F급짜리가 A랭크 이정석을 처리했다는 거잖아?”

“음…. 믿기지가 않아. 거기 선발됐었던 다른 애들에게 물어보면 진위를 알 수 있겠지.”

“사실이라면 이거 놀랄 노자 아니야?”

“외상이 심해서 기억을 왜곡해서 말한 것 일수도 있어. 일단 본부로 복귀하자.”

그들 앞에 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그들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협회본부 영상감독실.

안경을 쓴 직원이 예리한 눈으로 모니터에 실린 남자의 얼굴을 판독 중이다.

그녀의 시선이 옆 모니터로 돌아갔다.

옆 모니터에는 판독 중인 남자와 흡사한 수많은 남자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확인되었습니다.”

모니터의 화면이 한 남자의 얼굴에 멈춰 비춰졌다.

비춰진 얼굴 옆으로 신상정보가 담긴 글이 빼곡이 떠올랐다.

“이름은 나츠류. 국적은 일본인. 나이는 서른하나. A랭크에 길드는 무소속. 자취를 감춘 것은 1년 전으로 파악됩니다.”

여직원의 말에 감사과 팀장 민철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본놈이였군….”

민철은 그가 왜 그림자가 됐는지 알법도 했다.

현재 모든 세계에 이계로 통하는 게이트는 총 세 군데가 열려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

그러나 헌터로서의 국력이자 최대 강대국은 한국이었다.

헌터 시스템이 게임 시스템과 흡사해서인지 몰라도 한국인은 단연 다른 외국인들보다 헌터 자질이 뛰어났다.

그래서 일본이나 미국의 헌터들은 한국 헌터들에게 밀려 차별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고, 랭크가 높아도 외국 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한국인이었다.

“안타까운데? 고작 서른하나 밖에 안된 창창한 나이에 저 길에 들어섰다는게.”

민철의 말에 여직원도 공감한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일단 협회장님께 보고 올려.”

강남의 고급 가라오케 안.

윤동석은 테이블에 놓인 양주가 담긴 스트레이트 잔을 깊숙이 털어놓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똑똑-

“들어오시오.”

노크소리에 그가 왔음을 직감한 동석은 애써 찡그린 얼굴을 펴고 자세를 정돈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자는 웨이터복 차림에 실실 웃는 청년이었다.

“아이고…. 대단하신 분이 먼길에서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이거라도 준비했습니다.”

웨이터는 담배 몇갑과 숙취해소제 등을 공손하게 테이블에 내려놨다.

동석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웨이터는 나가지 않고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뭔가를 바라는 듯한 표정이다.

“팁 달라고?”

“사장님 눈치가 빠르십니다. 주시면 넙쭉 받겠습니다.”

“씨발, 참.”

동석은 품에서 지갑을 꺼내 돈 한 뭉탱이를 그대로 웨이터 얼굴에 던졌다.

“어이쿠.”

웨이터는 기분이 나쁠만도 했지만 바닥에 흩뿌려진 지폐의 수가 군침이 돌만도 했기에 웃음을 잃지 않고 하나하나 지폐를 주웠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검은 모자를 쓴 남성이 들어왔다.

“이제 오셨는가.”

웨이터와 검은 모자의 눈이 마주쳤다.

“허억!”

검은 모자의 눈에서 뿜어지는 극한의 살기에 웨이터는 부랴부랴 돈을 집어들고 폴더 인사를 했다.

“꺼져라. 누구도 여기 들여보내지 마라. 그럼 죽는다.”

“예, 예.”

검은 모자의 말에 웨이터는 곧바로 룸밖으로 나갔다.

“앉으시게.”

검은 모자는 까닥 인사를 하고 맞은 편에 앉았다.

“…실패한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남자가 동석을 똑바로 쳐다보고 묻자 동석은 한숨을 푹 쉬었다.

“협회장이 훼방을 놓은 것 같네.”

“훼방이라.”

검은모자는 스트레이트 잔을 옮겨와 자작을 하고 한 웅큼 목에 털어넣었다.

동석이 계속 머뭇거렸다.

그것을 본 검은 모자가 말했다.

“할 말이 있으시면 하시죠.”

“자네들이 협회장을 죽여주면 안 되겠는가? 그럼 참 내가 속 편할텐데….”

“안 됩니다. 우리 조직은 아직 힘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이계로 넘어오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이라는 말에 동석은 절로 몸에 긴장이 들어갔다.

웬만해선 떨지 않는 담을 가진 동석조차 숨을 콱 막히게 하는 그 존재.

검은 모자는 동석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분이 곧 이계로 넘어오실 겁니다.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알고 있네..”

“부협회장님은 저희와 같은 배를 타셨습니다. 혹시 배를 갈아타실 생각은 하신다면….”

“아, 알고 있네.”

동석의 이마에서 땀이 주르르- 흘렀다. 그의 머릿속에 그녀가 떠올랐다.

윤성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였다.

이계의 베리안트 시티 병원 안.

환자복을 입은 채 시운은 그때를 되뇌였다.

‘그 사람도 맹인이라…. 대단했어.’

느닷없이 등장해 자신을 구원해준 그 사람은 맹인이었다.

깔끔하고 심플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

게다가 정말 눈을 잃은 맹인인데도 육안이 달린 사람보다 더욱 반응속도도 빠르고 정확했었다.

그때 그의 이마에 트인 커다란 눈이 생각났다.

‘…그 눈은 나도 각성하면 생기는 걸까?’

그 눈은 마치 360도 전체를 볼 수 있는 듯 했다.

상념에 잠겨있던 그때였다.

[천륜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귓가로 들려오는 또렷한 알람음.

‘..뭐?’

천륜의 동기화가 완료되었다는 소리에 인벤토리를 열어 천륜의 투구를 확인했다.

그런데….

“뭐, 뭐라고?”

천륜의 동기화의 특성이 나열된 것을 본 시운은 기겁을 뜨악했다.

천륜을 거스르던 누군가의 비밀스런 힘.

다른 두 차원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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