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4화
강남 나이트클럽 부킹 퀘스트 (1)
“…….”시운의 물음에 세정은 시선을 접시에 둔 스테이크로 내렸다.
이시운은 그녀의 바디시그널을 살펴보려다 말았다.
가슴이 뛰고 목에 침이 꿀꺽 넘어갈 정도로 긴장되는 순간이다.
이번 생에도 그녀를 갖지 못한다면 차라리 포기가 낫지 않을까….
“시운아….”
그때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의 백옥같은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런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음…. 있잖아...”
“난 널 좋아하고 있으니까 그냥 확실하게 말해줘. 그게 나에게 편해.”
시운이 단호히 말했다.
급하게 되묻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세정에게 질질 이끌려만 다녔던 과거와는 좀 다른 면을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시운아. 네가 싫진 않은데….”
싫진 않은데?
말끝이 이상하게 흐려진다.
시운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넌 너무 답답해.”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전생과 그 전생에서 겪었던 그 좆같은 뫼비우스의 띠가 이번 생에도 이어지는 건가.
“…답답하다고?”
시운의 물음에 세정은 눈을 한번 깜빡였다.
“그래서 연인 사이는 싫다는 거야? 우린 그냥 친구였다가 하룻밤에 눈이 맞아서 살을 섞은 그저 그런 정도의 사이인거냐고.”
시운의 톤이 올라갔다.
세정은 말을 더 하지 못하고 나이프를 테이블에 놓아두었다.
“좋은데 우린 성향이 안 맞아. 애정으로 커버가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 거야.”
“내가 답답해서 싫단 이야긴가.”
“싫다기 보다는…….”
“그만.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만 말해줘.”
시운은 애써 턱끝까지 차오르는 자괴감을 누르고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넌 너무 연애에 대해서 몰라.”
그녀의 말이 뒤이어졌다. 마치 확인사살이라도 하듯이.
시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안다. 삼생에 걸쳐서 제대로 된 연애라고는 한 번도 못해봤다.
그래서 여자를 모르고, 다루는 법도 모른다. 세정은 나 자체는 싫지 않은데 나의 그런 답답함이 싫다는 거다.
그때 춘식이 시운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독자님. 여자를 좀 만나고 다녀봐. 여자를 알아야 사랑하는 여자도 날 좋아하게 만들고 다루게 되는거야….
그런 거였나.
여기서 찌질하고 비굴하게 매달리고 싶지 않다.
‘널 놓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번 생은 네가 날 좋아하게 만들겠어. 더 이상의 그 병신 이시운은 없다.’
스물네 살.
아직 젊다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어린 나이다.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보고 여자에 대해 파악하고 능숙해졌을 때, 그리고 헌터에 대한 스펙을 더 쌓았을 때 세정과 다시 만나면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녁도 다 먹은 것 같고. 먼저 일어날게.”
“…어?”
먼저 일어난다는 시운의 말에 세정의 눈이 커졌다.
세정이 좀 놀란 눈치였다.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먼저 자리를 뜬 적이 없던 시운이었는데.
시운은 빌지를 가지고 레스토랑에서 계산을 하고는 세정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싸늘하게 그대로 나갔다.
세정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좇아 바라봤다.
익숙한 바(BAR) 앞.
시운은 오늘도 멘토(?)와 다름없는 그에게 어드바이스를 들으러 이곳에 왔다.
괜시리 기분이 착잡하고 짜증나는 와중에 바 앞에 누가 버려진 깡통이 보였다.
퍽!
“뭐야?”
그대로 깡통을 찼는데 깡통이 백오십 미터나 포물선을 그리고 쭉- 날아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뭐지? 내 오른 어깨도 아니고 그냥 발로 찬 것일 뿐인데.’
아무튼 상념을 떨치고 바 안으로 들어섰다.
.
.
.
“하이구. 독자님. 진짜 내가 이제 고구마를 먹다가 토할 지경이야.”
춘식이 시운의 말을 듣고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그의 언변이 이어졌다.
“고구마도 뭣같이 텁텁한 고구마가 있고 치즈크러스트 같은 피자에 들어간 토핑된 맛있는 고구마가 있는데 독자님은 전자야.”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습니다.”
시운이 양주를 한웅큼 들이켰다.
답답한 목구멍을 양주의 쓴맛이 촉촉이 채워주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러지 말고 젊을 때 이 여자, 저 여자 다 만나봐. 한 여자에 그렇게 매달릴 필요가 있어?”
“그건 그렇지만….”
“남자 나이 서른 하고 여자 나이 서른하고 사회적으로 보는 시선이 달라. 요즘 세상에 남자는 서른여섯 까지는 마음껏 연애할 수 있어. 독자님을 봐. 아직 핏덩이인 스물네 살이라고….”
춘식이 스트레이트 잔을 내밀며 건배를 청했다.
다시 건배를 하고 양주를 삼켰다.
둘의 대화를 엿듣던 바텐더가 시운을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아저씨 말이 맞아요. 그쪽은 얼굴도 반반하고 직업도 짱짱한데 한 여자에 그리 목을 매달 필요가 뭐 있어요? 저도 이해가 안가요.”
바텐더는 은근스레 잔을 내밀며 시운에게 한잔 따라달란 제스처를 취했다.
시운은 양주를 기울이며 그녀의 잔을 채워줬다.
‘연애 경험을 쌓는다라….’
춘식의 어드바이스를 듣고 아까 세정의 말까지 들으니 마음이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량처럼 연애를 하고 다니기에는 지금 해야할 것이 많다.
곽대익의 밑으로 들어가야 하고 윤동석의 음모를 파헤쳐서 이계의 파멸을 막아야 한다.
‘물론 그 윤동석이 제대로 움직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지만.’
“독자님 잘 들어.”
춘식은 뒤이어 클럽부터 나이트클럽 그리고 헌팅술집에 이르기까지 여자를 꼬시는 방법을 알려줬다. 시운은 듣는 척 마는 척 했지만 그의 내공이 담긴 단단한 목소리는 귓가에 계속 꽂히고 있었다.
“일단 다른 여자를 만나봐. 진짜 그게 독자님에게는 답이야. 여자는 여자로 잊는 거지만 진짜 그 여자를 갖고 싶고 그 여자가 답답하다고 까지 했다면 진짜 독자님은 문제가 있는 거란 말이야.”
“흐음.”
“독자님 내가 독자님에게 반말 한 번 해도 될까?”
묻는 춘식의 얼굴은 화사했지만 그의 미간은 좁혀져 찡그러져 있었다.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럼 한마디만 할게 기분 나쁘게 듣지 마.”
“네.”
“너는 진짜 얼굴값 못하는 개찌질이 병신이야.”
“…예?”
순간 당황스러워서 춘식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후- 이제야 속이 시원하네. 자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어. 진짜 없는 말이 아니야.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었을까?’ 라고 생각 좀 해봐.”
춘식은 시운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시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난 바뀐다.’
시운은 그대로 병원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며칠 뒤 감사과 직원 몇 명이 다시 찾아와서 이것저것 심문과 같은 질문을 던졌고 그에 답했다.
F급 헌터 둘의 사망이란 비보는 세상에 기사로 퍼졌다.
시운은 도리라 생각하고 던전에서 목숨을 잃은 동료 가혜와 수혁의 장례식에 조문을 갔다 왔다.
이번 선발팀장 윤성혜는 시운을 찾아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일주일이 더 흘렀다.
미월 마을의 집 침대에 누운 시운은 덩그러니 천장만 바라봤다.
‘…의욕을 잃은 기분이다.’
지나간 일주일을 헛되게 보냈다. 시운의 루틴이라면 그 일주일간 던전이든 협력퀘스트든 파헤쳐서 레벨업을 했어야 했다.
졸음이 와서 눈꺼풀이 닫히려던 그때였다.
[퀘스트 이터널 라이프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 퀘스트?”
느닷없이 귓가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이 뜨였다.
퀘스트라고? 난 퀘스트를 의뢰받은 적이 없는데….
잠깐만.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라고? 혹시 그 초전생 꿈에서 받았던?
곧바로 시운의 눈앞으로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이터널 라이프-1][퀘스트]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누군가가 당신이 대신 그 청춘을 즐겨주길 바라는 염원이 담긴 퀘스트다.
완료 조건: 현계로 향하라.
*단 이 퀘스트를 완료할 때까지 다른 퀘스트를 수행할 수 없다.
*당신이 자의적으로 허락한 퀘스트이기 때문에 퀘스트를 취소할 수도 없다.
그때 꿈속에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난 청춘부터 죽는 이 순간까지 단 한 순간도 검을 놓지 않고 그렇게 살았다. 그런 내가 내게 시련을 주겠다. 그 시련은 널 즐겁게 할 수도 있고 그게 시련일 수도 있다. 다만 보상은 충분히 따를 것이다. 해보겠느냐. 선택은 네 자유다. 널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가 시련이란 명목의 퀘스트를 내려준다는 것인가?
이미 그 시련을 허락하겠다고 뱉어버렸다. 이것을 수행하지 않고 다른 퀘스트 또한 수행할 수 없다.
게다가 보상은 따른다고 하니.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곧바로 시운은 포탈을 소환했다.
집에 도착하자 집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시운의 눈에 들어온 벽시계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단 현계로 오긴 왔는데….’
여기서 뭘 어쩌란 말이지? 단순히 현계로 왔다고 퀘스트가 완료됐고 보상을 바란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다. 그건 안다.
그때였다.
[이터널 라이프-1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다음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이터널 라이프-2][퀘스트]
사람들이 많은 도시의 메카로 향하라. 단 깔끔하게 입고 향하라.
완료 조건: 도착.
패널티: 12시간 이내 도착하지 않을 시 연계 퀘스트 영구 폐지.
‘사람들이 많은 도시의 메카?’
한곳이 떠올랐다.
대체 퀘스트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것은 도착해 보면 아는 일.
근데 퀘스트 내용에 깔끔하게 입고 향하란다.
근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여긴 이계가 아니라 현계다. 그런데 이런 퀘스트창을 어떻게 볼 수가 있는거지?
‘특수한 퀘스트라 그런가.’
시운은 곧바로 포마드 머리를 손질하고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강남으로 향했다.
.
.
.
금요일 밤 10시.
강남에는 사람이 붐볐다.
커플들부터 술을 먹으러 가는 사람들, 등등….
강남에 도착한 시운은 어서 다음 퀘스트가 떠오르길 기다리며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어?”
그때 시운의 시야로 건물들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건물들의 색이 빨간색으로 보였다.
‘뭐지?’
[이터널 라이프-2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다음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이터널 라이프-3]
근처에 목표 건물을 찾아 진입하라.
완료 조건: 진입 성공.
패널티: 한 시간 이내 진입을 못할 시 연계 퀘스트 영구 폐지.
시운은 퀘스트창을 보고 주위 건물을 모조리 살피며 걸었다.
온 건물이 모조리 적색으로 보인다.
적색이라 하면 목표의 건물이 아니란 뜻으로 해석된다.
가로수길을 지나 골목으로도 가보고 좌회전을 해서 다른 골목을 가보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부터 모조리 샅샅히 뒤졌다.
‘건물들이 죄다 빨간색이잖아?’
제한 시간은 한 시간이다.
분명 이런 퀘스트는 보상도 독특할 것이다. 시운은 힘을 내서 좀 더 걸었다.
그러던 와중에 시끄럽게 사운드를 뿜어내는 건물 하나가 보였다.
[그랑프리 나이트클럽]
나이트 클럽 입구에서는 경호원이 줄을 뒤이어 들어가는 손님들을 받고 있었다.
시운은 나이트클럽에서 시선을 거두려던 그때.
[목표 건물을 수색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안으로 진입하십시오.]
“뭐, 뭐라고?”
시운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 건물들을 모조리 살폈다.
건물들 외관이 모두 적색이었다.
‘설마..’
뒤를 돌아보았다.
[그랑프리 나이트클럽]
둠 형식으로 된 저 나이트클럽만 적색으로 보이질 않았다.
‘하..이게 무슨..’
헛웃음이 입밖으로 뱉어졌다. 아니 무슨 퀘스트가 나이트클럽으로 진입하란거야?
일단 저 건물이 확실하긴 한 것 같으니 들어가봐야겠다.
시운은 걸어가서 대기줄을 놓고 기다렸다.
이윽고 입구에 도달하자.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경호원이 시운에게 말했다.
시운은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내밀었다.
“찾으시는 웨이터 있습니까?”
“아, 웨이터요? 없는데요.”
“테이블에서 드실 거에요? 룸안에서 드실 거에요?”
경호원이 물었다. 룸에서 먹는 것은 돈지랄이다. 아무리 지금 계좌가 탄탄하다 해도 그러고 싶진 않았다.
“테이블요.”
“안으로 들어가세요.”
시운은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점점 소리는 크게 들려왔고 디제이가 시끄럽게 소리를 내지르며 분위기를띄우는 육성이 들려왔다.
“반갑습니다! 저는 웨이터 이쁜이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웨이터명이 이쁜이란다. 근데 웨이츄리스 치고 이름답게 얼굴도 이뻤다.
여성 웨이츄리스가 시운을 보며 입구 안으로 안내했다.
그녀를 따라서 테이블쪽으로 걸어갔다. 주위를 살펴보니 스테이지에는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춤을 추고 있었고 색색이 바뀌는 조명 아래에서 테이블에 맥주나 양주를 기울이는 남녀들이 가득했다.
이질감이 들었다.
테이블에 앉자 이쁜이가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오빠. 오늘 물 좋은 애들 꽉 있어요. 양주로 해드리면 제가 부킹 제대로 넣어드릴게요.”
“잠시만요. 메뉴판 좀 보고….”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고 정신이 없었다. 시운은 나이트클럽을 평소에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들뜨는 느낌이다. 뭘까?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한창 이계에서 레벨업을 하고 있어야 할 판국에 현계 나이트클럽에서 여자와 부킹이나 하게 생겼으니.
그 어떤 영화나 소설 속에서도 이런 개연성은 개나 줘버린 상황은 없는데.
그때였다.
[이터널 라이프-3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다음 메인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메인 퀘스트가 발동된다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뒤이어 뜬 퀘스트창은 시운의 얼굴을 완전히 굳게 만들었다.
[이터널 라이프][메인 퀘스트]
그 건물에서 여자를 유혹하여 데리고 밖으로 나와라.
성공 조건: 동행으로 밖에 같이 나올 것.
실패 조건: 혼자 나오는 것.
제한 시간: 세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