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59화 (159/278)

제 159화

길드가 내게 집착한다

나츠류는 처음 보는 태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마치 왜 묻냐는 듯이.

“어쩌다가 네 동료가 당한거지?”

유빈이 물었다.

나츠류는 입술을 비집어 씹으며 답했다.

“저, 그게 아마 방심을 한 모양입니다….”

“그놈은 어떤 놈인가.”

“헌터생활 커리어가 이제야 일년 되는 놈입니다.”

“허….”

유빈이 비릿하게 웃었다.

나츠류. 이놈의 동료라면 그래도 수준이 A랭크는 될 텐데 그런 놈이 멍청하게 그런 조무래기에게 당하다니.

유빈이 웃자 나츠류는 티 안나게 이빨을 꽉 깨물었다.

“멍청한 놈. 네 동료라는 놈이 그런 조무래기한테 당한 꼴을 보니 살았어도 이미 다른 놈에게 죽었을 거다.”

“…….”

태훈은 그런 나츠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시운이가 저 자의 동료를 죽였다고?’

시운이는 사람을 죽일 녀석이 아니다. 블랙헌터와 헌터는 상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였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했다.

일단 태훈은 나츠류의 얼굴을 외워놨다.

‘네가 내 친구를 손대게 놔두진 않겠다.’

한편 유빈은 나츠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인이 개를 쓰다듬듯이.

수치스러움을 참고 나츠류는 더욱 고개를 숙였다.

“버러지 같은 놈. 네 뜻대로 해라.”

유빈의 말을 듣는 순간 나츠류의 안광이 번뜩였다.

방금 미월 마을의 던전에서 나온 박한나는 풍운 길드 사무실로 향했다.

마침 영업팀장 주윤호를 보자 한나가 그에게 빠르게 걸어갔다.

“뭐야? 왜 이렇게 급해?”

“팀장님, 팀장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

.

.

“뭐?”

주윤호는 한나가 쏟아붓는 이야기를 모조리 듣고 턱을 긁적였다.

“그게 말이 돼? F급 헌터가 C급 게이트의 보스를 딱밤으로 처리했다고? 너 술먹었냐.”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다.

A급 헌터도 솔플로 C급 게이트의 보스를 처리하는데만 최소 5분은 걸린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가 분명하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라. 요즘 너 남친이랑 헤어졌다고….”

남친 이야기에 한나가 발끈하며 말꼬리를 잘랐다.

“하아, 나 말고도 진철이하고 형우도 봤다고요….”

한나는 답답하단 듯이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떨 때보다 진지했다.

윤호는 한나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얘가 이런 걸로 장난칠 애는 아닌데….’

윤호의 머리가 돌아갔다.

‘딱 두 분류가 있지.’

첫 번째 분류. 승급 심사를 받지 않고 저급 랭크에 머무르며 자신을 노출시키기 꺼려하면서도 게이트란 게이트는 온갖 씹어먹는 희한한 인간들.

두 번째 분류.

일찍이 각성을 해서 타 랭크와는 차원이 다른 자들.

물론 저 두 분류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생소한 경우다.

“주 팀장님!”

마침 진철이 투구를 벗고 땀을 닦으며 들어섰다.

“그게 오늘 C급 게이트에서….”

“다 들었다. 근데 그거 진짜냐?”

한나가 거들었다.

“거봐요! 진철이도 들었다잖아요!”

윤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 풍운 길드는 확실한 상위 길드에 들어서려면 인재가 필요해.’

풍운 길드는 어디에 명함을 내밀어도 손이 부끄럽지 않은 길드였다.

그러나 상위급 길드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흠….”

그때 한나가 윤호의 심산을 알아차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시운이래요. 이름이.”

“그 친구를 마지막에 어디서 봤지?”

“미월 마을이요. 거기서 한참 영웅 대접을 받고 있던데요?”

윤호의 눈빛이 진중해졌다.

‘어쩌면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

시운은 미월 마을에 있는 것이 썩 나쁘지 않았다.

2층짜리 집도 있고 주민들이 너무나 잘해준다.

다만 부담스러운 것은.

“저녁은 드셨어요? 헌터님?”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지나가는 주민마다 감사의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다.

‘근데…….’

어디선가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

마치 염탐을 당하는 기분이랄까.

시운은 예리한 눈으로 그 시선의 시발점을 찾았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였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시운에게로 걸어왔다.

“이시운 씨?”

“누구십니까.”

대뜸 이름을 부르자 시운은 경계를 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거지?

“잠시 이야기 좀 하실 수 있을까요?”

“내가 왜 그래야 됩니까.”

수상한 차림에 일면식도 없는 자와 대화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 남자가 품안에서 종이를 꺼내들었다.

명함이었다.

-풍운 길드 영업팀장 주윤호.

‘풍운 길드..?’

한국 3대 길드 안에 들어서진 못하지만 그래도 중급 길드 중에서는 명성을 떨치는 길드란 것은 알고 있다.

시운이 빠르게 그의 옷을 훑었다.

‘무기가 없다.’

무기도 없고 명함도 받았으니 따로 위험한 일은 없을 듯 하다.

“일단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일단 조용한 곳으로 이야기 좀 하죠.”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을 보던 윤호가 시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B급 게이트 공략허가권을 하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시죠?”

B급 게이트 공략허가권은 시가로 따지면 무려 3억이다.

게다가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각종 보물, 마정석, 괴수의 사체, 특수한 광석 등등으로 최대 수익 6억까지도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시운의 눈이 커졌다.

‘느닷없이 나한테 나타나서.. 대체 왜?’

시운의 의중을 알아차렸는지 윤호가 인자한 어투로 말했다.

“아까 이 마을의 던전을 함께 했던 친구가 우리 길드원입니다.”

윤호는 뒤이어 설명을 끝마치고는,

“당신의 자격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왜죠?”

“저희 길드로 데려가고 싶으니까요.”

길드라.

시운은 여흥이 없었다.

길드에 영입되면 브로커들을 통해 게이트를 발견할 수도 있고, 공략허가권을 많이 입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 계속 강해진다면 길드원들과 수입을 나누지 않고 혼자서 그 수익을 독식할 수 있는 것이다.

“길드 권유를 거절한다면요?”

“그때는 어쩔 수 없는 거지요. 그래도 공략허가권은 위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운의 눈썹이 찡그러졌다.

‘뭐지..?’

윤호는 중상급 길드의 출중한 영업팀장이다.

사람의 심리를 잘 다룰 줄 알고 호기심을 줘서 결국 영입한 길드원만 무수할 정도다.

‘여기서 여지를 남겨줘야지..’

윤호는 생각하고 눈을 빛냈다.

“B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와요. 제 안목에 든다면 아주 좋은 계약조건을 제시할 겁니다.”

“계약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윤호가 넉살스럽게 웃었다.

“그건 지금 말해주면 재미없죠.”

시운은 그의 눈을 바라봤다.

‘바디시그널이 관심법은 아니지만 표정은 거짓을 나타내고 있진 않다.’

그런데.

B급 게이트를 솔로잉 한다라.

‘난 지금 충분히 강해졌지만.. 가능할까?’

한편 윤호는 고민에 빠져있는 시운을 여유롭게 바라봤다.

‘보통 B급 헌터 길드가 B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는데는 최소 두 시간. 얼마만에 클리어 하는지 지켜보겠어.’

한편 시운은 속으로 미소를 그렸다.

‘난 지금 충분히 강해졌다. 그리고…’

공략허가권을 받아 그곳에서 이것저것 수입원을 챙기고 나중에 길드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다.

주윤호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운이 당차게 말하자 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월 마을에서 거리가 좀 떨어진 이클린트 사막 한복판까지 윤호와 시운은 마차를 타고 왔다.

마부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한다.

“돈은 꼭 섭섭지 않게 챙겨주셔야 합니다.”

사막까지 마차를 몰고 왔는 데다가 여기서 기다린 후 다시 미월 마을로 픽업하란 소릴 들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마부는 그들에게 간곡히 말했다.

“아저씨도 참…. 알았다니까.”

“근데 저건..?”

마부가 손을 가리켰다.

가리킨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긴 곳에는 커다란 게이트가 육중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시운 씨.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운은 윤호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윤호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서 셀쭉거렸다.

‘과연 시체가 돼서 나올지 클리어 하고 나올지 기대되는군.’

‘뭐, 뭐야..?’

윤호의 두 눈이 흔들렸다.

게이트가 뒤틀리며 닫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시운이 헬쑥해진 얼굴로 걸어나왔다.

‘이, 이십 분?’

윤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다시 게이트를 올려다봤다.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온 거 맞아요? 그냥 나온 거 아니고?”

“저길 보시죠.”

이시운이 게이트를 가리켰다.

게이트는 공간의 뒤틀림에 점점 닫혀져 가고 있었고 곧 사라졌다.

‘이, 이럴 수가..’

윤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B급 게이트를 B급 길드원 넷이서 레이드로 공략한다고 해도 최소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소요된다.

근데 F급 헌터가 단 이십 분만에 게이트를 닫고 나오다니.

한편 시운은 마차에 몸을 실었다.

‘챙길 건 다 챙겼다.’

인벤토리에 보스가 입고 있던 고급 사제옷과 마정석, 광물, 희귀석들까지.

‘빙결 속성의 던전이라 다행이였다.’

불 속성의 무기를 가진 시운에게는 참 다행인 것이었다.

마차를 타고 가는동안 윤호는 벙찐 듯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윤호가 말문을 열었다.

이시운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다 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생존 서바이벌에서 1등을 했었던 그 신예였다.

“저기.”

윤호가 고개를 돌려 시운을 바라봤을 때 시운은 눈을 감고 곤히 잠든 상태다.

‘이 친구는 대박이다..반드시 영입하고야 만다.’

윤호는 일부러 시운에게 미월 마을의 집까지 그를 마차를 통해 데려다줬다. 그리고 마부에게 골드를 지급했다.

이런 모습을 시운에게 보이는 것이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을 윤호는 잘 알고 있었다.

‘반드시!’

윤호는 성미가 급했지만 일단 참았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시죠.”

급한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애매모호하게 말한 윤호였다.

그렇다면 상대도 호기심을 갖는다.

일종의 심리 기술이었다.

“뭐,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쇼.”

시운은 꽤나 지친 기색으로 집에 들어왔다.

아공간 포케터를 통해 이계에서 수집한 물건을 현계로 옮길 수 있다.

납품을 할 수도 있고 경매를 통해 되팔수도 있으며, 대기업에 필요한 물건까지 비싸게 팔 수 있다.

시운은 인벤토리를 훑어보며 오늘… 아니, 여지껏 던전에서 빽빽이 모아놓은 모든 수집품들을 눈으로 훑었다.

‘이걸 돈으로 대충 환산하자면..’

7억은 될 것이다.

‘이 돈이라면 어머니 아버지 아파트 한 채 사드릴 수 있고.. 누나가 자기 할 일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해져야 겠다는 일념이 들었다.

‘어떻게 시작해서 성공하고 있는 내 세 번째 인생인데 세상이 파멸하게 놔둘 수는 없다.’

시운은 다시금 목표를 되잡았다.

“길드장님!”

윤호가 헉헉 거리며 뛰어와 길드장 이준호를 불렀다.

아까 박한나가 윤호를 불렀던 모습과 참 오버랩되는 광경이었다.

“왜 그렇게 헥헥 대?”

“이번에 보석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던전에서?”

준호는 시큰둥하단 반응으로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주윤호는 오늘 있었던 일을 급하게 쏘아붙이듯 모두 이야기했다.

“뭐, 뭐라고?”

준호의 눈이 번뜩 뜨였다.

안 그래도 영입할 길드원은 없는 판국에 상위 길드로 판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득한 상태였는데.

“F급 맞아?”

“예, 그렇다니깐요.”

윤호가 자신의 허벅지를 탁! 치면서 확신했다.

위이잉-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마저 걸리적 거렸는지 준호가 에어컨을 급하게 껐다.

“이름이 이시운이라고?”

“네, 생존 서바이벌에서 우승했었던 친구요.”

믿기지가 않았다.

헌터생활을 한지 일년도 채 되지 않은 F급 헌터가 B급 게이트를 이십 분만에 클리어 했다니.

이건 초대박 인재였다!

이런 인재가 우리 길드에 들어만 온다면 풍운 길드의 주가는 상승할 것이고 수익도 대폭 늘어나 길드의 규모를 키우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일단 여지를 좀 줬죠. 다음에 이야기 하기로 하자고. 괜히 제가 급하게 굴면 없어보이잖아요.”

“음….”

주호는 흡족해했다. 윤호의 영업실력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왜, 그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도 밀당이란 게 있잖아요. 그런 거하고 비슷한 거죠.”

“반드시…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

이주호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뜨였다.

“근데 길드장님. 계약 조건은 얼마를 내거실 겁니까?”

윤호는 뜸을 들이며 생각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계약금 최소 15억. 최대 19억까지. 게다가 할당량 인센티브까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