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60화 (160/278)

제 160화

백억

시운은 유석과 함께 C급 던전을 있는 그대로 쓸고 다녔다.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고 휘저었다.

하루 빨리 강해지기 위해서였다.

무서운 속도로 던전을 공략하는 시운을 보며 유석은 충분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진짜 강하다.. 아니 무서울 정도로 집착적이야.’

유석은 좀처럼 전투에 가담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쏴아아-!

시운은 물속성 계열의 공룡형 몬스터에게 과룡에게 돌진했다.

과룡이 시운을 향해 독이 섞인 물침을 내뱉는다. 곧바로 뛰어오른 시운은 그대로 과룡의 어깨를 밟고 넘어갔다.

-콰루욱!

‘..대체 어느새에?’

시운은 검도 들지 않고 분명 달려간 것을 보았다. 근데 과룡의 뒷목에는 정확히 화살이 꽂혀 흔들리고 있었다.

‘...화살을 손으로 꺼내어 움직이며 뒷목에 쑤셔넣었다고?’

과룡이 시운을 향해 뒤를 돌아봤다.

푸욱!

시운의 ‘뇌격의 단도’가 그대로 과룡의 등껍질에 쑤셔졌다.

번개속성이 결합된 단도가 과룡의 등껍질에 박히니 과룡이 온 몸을 잘게 떨었다.

피시식!

그대로 지느러미를 모조리 단도로 베어냈다.

그런 시운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 놈들은 물속성이라 내 불속성 아클레우스 소드가 잘 먹히지 않기에 단도를 준비해놨지.’

그런 셈이었다.

지느러미를 모조리 걷어내자 놈들의 특유의 탄탄한 등껍질과는 달리 살구빛 속살이 드러났다.

푸욱!

단도로 그대로 찔러넣은 뒤에 손목을 그대로 돌렸다.

-콰우우우루룩!

과룡의 머리가 흔들리며 절규했다. 아까보다 톤이 더욱 높은 처절한 비명소리였다.

과룡이 다시 한번 뱉은 물침은 던전의 빈땅에 뱉어졌고 머리를 들어보니 시운이 어느새 자신의 눈높이를 맞출 정도로 뛰어오른 상태였다.

푸슈욱! 푸욱! 푹!

목에 한 번. 두 번. 세 번. 단도로 빠르게 찔러넣고 야수베기까지 시전하자 과룡의 흰자위가 드러나며 그대로 넘어갔다.

쿠웅!

“휴...”

그때 시운의 귓가로 알람음이 들려왔다.

[스킬 ‘야수베기’ 가 ‘뇌절 찌르기’ 로 상향되었습니다.]

‘스킬이 상향되었다고?’

이런 경우는 시운에게는 처음이었다. 간혹 있다고 들었다. 그 스킬을 특수한 조건에서 사용하거나 그 스킬의 감각을 그대로 컨트롤 하면 상향된다고 익전에 들었는데.

그때였다.

과룡 두 마리가 네 다리를 움직여 꼬리를 흔들며 빠르게 시운에게 쇄도해왔다.

시운의 눈이 빛났다.

‘한 번 시험해볼까?’

그대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슈욱! 허리까지 좌우로 움직이며 물침을 피해내고 과룡 한 마리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뇌절 찌르기’

시운이 들고 있던 단도가 과룡의 복부에 그대로 연속으로 쑤셔박혔다. 한합. 두합.… 열합까지.

게다가 스킬의 영향으로 흘러나온 십만 볼트급 전력이 과룡의 육신을 그대로 뒤덮었다.

-콰….

과룡 한 마리가 신음성 조차 흘리지 못하고 몸이 그을린 숯불구이가 된 채 늘어져있다.

‘아주 흡족해.’

스킬이 썩 맘에 들었다.

[아시룡의 활을 장착하였습니다.]

활시위를 연달아 당겼다.

-과룡을 처치하였습니다.

남은 한 마리까지 깔끔하게 헤치운 시운은 손을 탁탁 털었다.

“음….”

앞을 보니 더는 길이 없다. 주변의 벽은 수풀과 해산물이 붙어있고, 수포가 허공으로 날아다닌다.

과룡이 더는 보이질 않는 듯 하다.

“오늘도 던전 하나 제대로 쓸었네요. 이만 갈까요?”

유석은 그런 시운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얼마나 강한거냐...당신은.’

이런 상황이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유석이었다.

* * *

시운은 유석이 여관에서 머무는 것이 썩 맘에 걸렸다.

“그러지 말고 우리집에서 당분간 좀 자요, 형.”

시운이 처음으로 형이라 말하며 살갑게 말하자 유석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아. 그럴까?”

“어? 방금 그럴까 라고 했어요?”

“아, 네. 미안합니다.”

“아니 미안할 게 아니고 계속 그렇게 말 놔요.”

시운은 속으로 킥킥 거리며 웃었다. 용모는 매우 남자답지만 쑥맥인 유석이 뭔가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아니요…아, 아니. 그건 불편해서.”

“불편할 게 뭐가 있어요? 근데 나도 말 놔도 되나요? 우리 함께 이계에서 구른게 며칠인데.”

시운이 말했다. 사실 유석만 말을 놓고 자신은 놓기에는 억울한 상황이다. 실제로 시운은 유석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유석 또한 시운이 회귀자인 것을 알고 있어서일까 여태까지 시운에게 존대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돼.”

“말투 진짜 딱딱하네. 진짜 혜령이 누나가 말했던 것처럼 군인 같아, 형.”

“하하.”

유석이 웃었다. 입꼬리가 별로 올라가지 않아 치아조차 보이지 않는 소박한 웃음이었지만 그것을 본 시운은 참 신기했다.

“어? 웃을 줄도 아셔?”

“나도 사람인데.”

“짐 챙겨서 오늘 우리집에서 머물러.”

“…정말 그래도 돼? 아, 실례가 안 된다면 그렇게 할게. 고마워. 근데 내일부터 그렇게 하도록 할게. 달방으로 쓰던 여관에서 옮기고 챙겨야 할 짐이 많아서.”

“편한대로 해.”

시운은 그렇게 유석과 미월 마을을 걷다가 서로 헤어졌다.

고개를 들었다.

미월 마을이라는 명칭답게 밤하늘에 뜬 달이 유독 예쁘게 보이는 곳이 이곳이었다.

게다가 주위에 먹을거리도 많고 사람들 인심도 좋았다.

살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근데 아까부터 기척이 느껴진다.’

시운은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한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안광을 빛냈다.

‘……!’

남자는 시운의 눈빛에서 나오는 무언에 의해 순간 움찔했다.

‘눈에서 살기가 느껴지네..’

남자가 눈을 껌뻑이는 것을 본 시운은 증가한 살기 스탯이 이런 영향도 주는구라 라고 생각하며 눈을 차분히 떴다. 그리를 유지하고 입술을 뗐다.

“누굽니까?”

“아…. 처음 뵙네요. 괜시리 미행한 느낌이라 실례가 아니었는지 모릅니다만.”

“미행을 왜 합니까? 혹시…….”

시운이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온화하게 생긴 얼굴과 차분한 말투에서는 악의가 느껴지질 않았다.

시운을 굳이 찾을 사람은 지금은 없다. 그렇다면.

‘풍운 길드쪽 사람이겠군.’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경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 풍운길드의 길드장 이준호라고 합니다.”

역시나였다.

그가 다가오며 명함을 내밀었다.

‘길드장?’

근데 의아했다.

보통 정말 희귀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길드장이 길드원 영입에 가담하지 않는다. 또한 계약을 하겠다고 찾아오지도 않는다. 하급 길드나 길원 인원수에 목마른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일종의 길드마스터 자존심과 관계된 뭐,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일단 명함을 건네는 받았다.

-풍운 길드장 이준호.

풍운의 길드마크가 새겨진 명함을 받아든 시운이 그의 손에 눈을 뒀다.

얼음이 둥둥 뜬 커피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이계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파는 곳도 없고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역시 중상급 길드장답게 이런 것도 손에 들고 있구나.

‘근데 길드장께서 대뜸 찾아와서 나에게 이런 걸 준다고?’

시운은 그의 손이 민망하게 커피를 건네받지 않았다.

그러자 준호가 민망해하며 말했다.

“…아 부담주려고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시원한 커피 한잔 하시라고요.”

“뭐,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시운은 커피를 건네받았다.

수르륵-

시원하고 깔끔하게 느껴지는 아메리카노가 입안에 들어가자 오늘 던전에서 굴렀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다. 대체 얼마만에 먹어보는 아메리카노인가.

“얼마 전에 저희 영업팀장과 대면하셨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찾아오신 겁니까?”

시운이 묻자 준호는 속으로 좀 놀라워 했다.

‘F급이 길드장에게 일대일로 떨지도 않고 주눅도 들지 않는군.’

그런 점이 오히려 더 맘에 들었다. 당차다고 해야할까?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됩니다.”

시운은 잠시 생각했다.

‘공략허가권을 받고 꿀도 빨았겠다. 대충 얘기 들어주다가 거절하면 그만이다.’

시운은 흔쾌히 수락하고 그와 함께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

.

.

“생존 서바이벌 우승 출신에 헌터자격시험 만점. 커리어가 일년도 되지 않으셨지만 진짜 엘리트시네요.”

준호가 칭찬을 하자 시운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칭찬을 해주니 뭐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렇다고 헤벌레 하는 표정을 내비추진 않았다.

“혹시 레벨이 어떻게 되십니까?”

준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영업팀장 윤호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정말 궁금했던 것이었다. 본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잠을 못 자는 그였기에 실례되는 질문인 줄 알면서도 물은 것이었다.

“그것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시운이 딱 잘라 말하자 준호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실례했네요.”

헌터가 굳이 레벨을 대답할 의무는 없는 것임을 알고 현재 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기 때문에 준호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길드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으신 적은 없으신지..?”

준호가 시운을 떠봤다.

대충 그가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계약금을 낮춰 부를 수도 있고 제의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준호는 이런 부분에서 수완이 좋은 편이었다.

“있긴 했는데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아..왜죠?”

역시 예상은 했다. 이런 인재에게 어느 길드든 눈독을 한 번쯤은 들였을만도 하다. 허나 좀 의아한 부분도 있다. 길드가 F급 헌터에게 스카웃을 제의한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고 F급 헌터에게선 완전 땡큐인 일이다. 그런데…….

“그냥 아직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서….”

시운의 말에 준호의 얼굴에 힘이 빠졌다.

‘그 길드에서 조건을 엉망으로 불렀겠지. 원래 돈이라면 다 되는 법. 과연 내가 계약금 액수를 말하고도 내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준호는 애써 합리화하며 테이블 위에 올려진 국수를 입안으로 삼켰다.

서로 대화의 한 템포를 쉬어갈 겸 배도 축일 겸 말이다.

“제 이야기는 떠벌리지 않고 다니셨으면 합니다.”

시운이 준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 그런거라면 염려 마시죠. 약속 드리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준호는 시운의 기백이 참 놀라웠다.

F급 헌터가 딱 부러지게 중상급 길드 마스터에게 할 말을 하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그가 진지하게 말을 할 때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확실히 다른 애송이들하고는 달라.’

슬슬 계약 이야기를 꺼낼 시간이다.

“저.. 시운 씨 제가 왜 시운 씨를 찾아왔는지는 대충 짐작하시겠죠?”

“영입 문제로 오셨겠지요.”

“알고 계시네요. 시운 씨. 저희 길드는 40년간 꾸준히 성장해온 길드이며 단 한 번도 하류 길드로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매 달마다 꾸준히 높은 공략허가권을 따내고 있고……”

준호가 일단 어필을 시작했다.

시운도 그의 말을 대충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준호의 눈에 순간 빛이 났다.

‘이제 못을 박을 차례다.’

준호의 입이 열렸다.

“단 한 번도 저희 길드에 F급 헌터를 들일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길드마스터인 제가 직접 영입을 위해 찾아간 적도 없었고요.”

“…그래서 고마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친구 좀 센데..’

준호는 기침으로 목을 다듬으며 말을 잇는다.

“그만큼 시운 씨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 그리고 타급 헌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재질을 보고 저희가 심사를 하고 이렇게 계약을 권유드리는 것입니다.”

준호는 말을 끝맺혔다. 사실 심사고 뭐고 한 적도 없었다. 윤호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장에 영입하겠다는 맘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심사란 것을 덧붙인 이유는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밀당의 개념도 있었다.

영업 수완이 절정을 찍은 윤호가 알려준 팁이었다.

“말씀들은 감사합니다만….”

“다만이요?”

준호는 시운의 끝말에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설마 거절을 하려고?’

시운이 말을 덧붙였다.

“저는 당분간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시군요.”

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계약서류였다.

‘여기에 적힌 금액을 보고도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보자.’

시운은 예리한 눈 덕분에 그 서류를 보자마자.

“계약금이 15억이요?”

“…네. 저희가 과감히 시운 씨에게 투자하는 겁니다.”

준호는 한편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F급 헌터가 계약금 15억을 준다고 하는데 저렇게나 태연하게 반응을 한다는게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때 시운이 말했다.

“액수가 적네요.”

“……예?”

준호는 하마터면 헛웃음이 나올 뻔 했다.

‘아니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F급 헌터가 계약만 하면 15억을 가져가는 거고 서류조항에 인센티브까지 제시되어 있는데 액수가 적다고?’

준호가 허허 너털웃음을 날렸다.

그래도 놓칠 수는 없다.

이 앞에 있는 시운은 아무도 발굴해내지 못한 에메랄드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헌터다.

오랜 길마의 경력을 통한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어차피..계약금을 조금 더 올려줄 생각도 있었다.’

준호는 눈을 질끈 감더니 못이기는 척 입술을 뗐다.

“하……. 그러시다면 저희가 시운 씨의 역량을 믿고 계약금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계약금 18억. 어떻습니까?”

준호는 당당히 말했다. 무려 몇 마디 오고가는 그 한 번에 3억이란 액수를 올려주었다. 사실 최대로 생각한 액수는 19억이다. 그 액수는 혹시나 최후의 보류 액수로 부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계약금을 백억까지 올려주시는 게 아니라면 계약은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