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63화 (163/278)

제 163화

최종병기 최종클래스로 (1)

“이름 참 존나 신박하네...”

이왕이면 수컷 몬스터 속성으로 쥐어주지.

몬스터 중에는 암컷, 수컷으로 구별된 개체들이 존재하지만 수컷이 더 많고 수컷과 암컷이 구분이 안 되는 존재가 많다.

[이터널 라이프 기여도가 10 증가했습니다.]

[이터널 라이프 총 기여도를 달성하기까지 70이 남았습니다.]

‘저 기여도를 계속 들려주는 것을 보면 모두 달성하면 뭔가 있다. 그게 뭘까?’

시운은 그렇게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갔다.

그날 꿈속에서는 빨간 머리가 등장했다. 그는 살수들을 모조리 제압한 뒤 연회장에서 놀란 눈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던 프레아란 여성을 지그시 바라본다.

“…….”

신분의 차이로 좋아해도 좋다고 할 수 없는 그는 답답함을 속으로 억누르는 듯 했다.

잘생긴 용모와 뛰어난 검술로 사뭇 여성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그지만, 그는 천민 출신의 검잡이였고 그가 좋아하는 여성은 귀족이었다.

[칭호 ‘암컷의 지배자’를 장착합니다.]

[암컷의 몬스터를 대상으로 공격력이 35% 상승합니다.]

“괜찮겠어?”

유석이 물었다. 이곳은 C급 던전도 아니고 무려 B급 던전이다.

이시운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지만 평소 공략하고 다니던 던전보다 위험한 곳이다.

“형은 가만히 있어. 구경만 해.”

시운이 그대로 뛰쳐나갔다. 전방을 주시하고 달리는 시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위험할텐데.’

당장이라도 도우려고 유석도 자세를 취한다. 전방에서 사람만한 암사마귀들이 발톱을 내세우며 달려온다.

“…!”

순간 유석의 눈이 번쩍 커졌다.

시운의 단 일격에 암사마귀의 목이 떨어진 것이었다. B급 던전의 몬스터가!

이어서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까지…….

“하….”

유석은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애초에 F급이 B급 던전을 돈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근데 그 던전의 괴수를 일격에 제압하고 있다.

푸욱!

암사마귀의 미간에 칼을 우겨넣었다.

-크루아악!

암사마귀의 눈이 벌렁벌렁 거렸다. 그대로 우겨넣은 칼을 옆으로 돌려 베어내니 놈의 눈 하나가 떨어져 데구르르- 굴렀다.

-암사마귀를 처치하였습니다.

-암사마귀를 처치하였습니다.

-암사마귀를 처치하였습니다.

암사마귀들은 신음 한 번 못 지르고 일제히 죽어나갔다.

‘모든 능력의 35% 증가가 되니 마치 날아다니는 기분이다.’

그런 시운을 보던 유석의 눈썹이 휙 솟았다.

‘며칠 전과는 움직임이 다르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었다. 시운의 몸놀림은 며칠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신속했다.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가 있지? 성장속도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건가.’

유석은 시운이 암사마귀 떼들의 사지를 모조리 찢어발기는 광경을 보며 입을 벌렸다.

“휴- 됐다. 형. 남은 건 이제 딱 하나. 보스방이네? 들어가자.”

“어, 어 그래.”

시운의 날이 선 검신이 여왕사마귀의 날개를 향했다.

찌익! 날개가 잘린 여왕사마귀는 괴로움에 아가리를 벌리며 포효한다. 시운이 그대로 턱을 조준해 검신을 올려벤다. 여왕사마귀의 목젖과 턱이 갈라져 피분수가 철철 터져나와 시운의 얼굴에 쏟아진다.

‘뇌절 찌르기’

시운의 검이 미친 속도로 여왕사마귀의 배를 연속으로 찌른다

푹푹푹푹푹푹푹푹!

보스의 초록색 복부에 구멍이 커지며 내장이 피에 섞여 땅에 떨어진다.

-케에에에!

여왕사마귀가 울부짖으며 살려달란 듯이 남은 발톱 하나를 땅에 마구 찍는다.

샤악!

시운은 놈을 외팔로 만들어 버리고서도 남은 왼팔까지 절단해 낸다.

-여왕사마귀를 처치하였습니다.

“후.”

시운은 핏물이 흥건한 얼굴을 닦아 내리며 작은 숨을 뱉었다.

[이 근성의 반만 따라와 효과가 적용되었습니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룬석을 획득하였습니다.

-룬석을 획득하였습니다.

‘역시….’

시운은 알고 있었다. 박태석 공략 영상에서 여왕사마귀가 아주 쓸만한 룬석을 준다고 했었다.

‘그게 아마 그 룬석이였지?’

인벤토리를 열었다.

[여왕사마귀의 톱날][룬석]

벌레 몬스터를 대상으로 공격력 30%를 증가시킨다.

[벌레의 연주][룬석]

전방 500미터 안의 모든 벌레들을 모조리 불러들인다.

곧바로 룬석 두 개를 으깼다.

[패시브 스킬 여왕사마귀의 톱날을 획득하였습니다.]

[액티브 스킬 벌레의 연주를 획득하였습니다.]

‘벌레 몬스터를 대상으로 공격력을 30% 증가시켜준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시운은 적어도 이 던전에서는 무적이란 뜻이다. 칭호의 효과까지 더하면 총 공격력이 65% 증가한 셈.

“넌 봐도 봐도 정말 모르겠다.”

유석은 이제 이시운의 차원이 다른 강함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B급 던전의 보스를 때려잡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초였다. 유석은 순식간의 그 순간들이 아직도 뇌리에 그려지는 듯 했다.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

“재밌는 거라니?”

“내 뒤로 물러나 있어봐.”

시운의 말에 유석이 고개를 갸웃한다.

‘벌레의 연주’

[스킬 벌레의 연주 효과로 사정거리 안 모든 벌레들을 불러들입니다.]

잠시 후.

-퀘에에!

-콰아아!

-카아아아!

보스방의 문이 굉음과 함께 부서지고 암사마귀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득달같이 날아든다.

그 숫자만 무려 약 백마리.

“위험해!”

백 마리는 그래도 위험하다!

그러나 유석의 고함은 시운에게 닿지 않았다. 이미 시운의 검신에서 뿜어 나온 검은 성화는 사마귀떼들의 육신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연기가 걷히고 나니 백 마리의 벌레 사체들이 즐비해 보스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냄새가 매우 역할 정도였다.

그 순간 시운은 웃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놀다 가도 경험치를 엄청 뽑아먹을 수 있겠는데?”

“그, 그래….”

유석은 이제 그런 그가 익숙할 뿐이다.

“이상해.”

한나가 진철과 형우를 보며 말했다. 던전에 진입했는데 암사마귀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기에.

“뭔가 이상한 탄내가 나지 않아?”

“멀리서 나는 것 같은데.”

박한나는 짜증난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중급 정도 길드가 대규모로 사냥 중인가 보네….”

“잠깐만. 이걸 봐.”

평소 헌터 커뮤니티 눈팅을 자주 하던 형우가 홀로그램을 띄워 그들에게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여주었다.

-지금 숲속의 여왕 던전 가지 마세요. 냄새 장난 아닙니다.

RE: 왜요?

RE: 저 지금 파티플레이 하러 가려던 참인데..

RE: 뭔 일임?

L(작성자): 보스방에 사마귀들 떼로 죽어있어요. 한사람이 솔플로 다 태워죽이고 있어요 ㅡㅡ

RE: 엥? 암사마귀는 수컷 없이 번식하는 벌레라 금방금방 리젠 될텐데?

RE: 이 글 어그로 아님?

L(작성자): 솔플하는 사람이 벌레를 보스방에 다 끌어 모아서 다 죽이고 있다니깐요.

RE: 헐... A급 헌터임?

RE: 암사마귀 공격력 알고 그런 말 하는 거임? 뭐 박태석이 사냥 중이라면 모를까.. 아니 SS급 헌터가 거길 왜 가겠어?

“뭐? 한명이 솔플을 하고 있다고?”

한나의 눈이 커졌다.

그때였다. 전방에서 암사마귀들이 땅에서 솟구쳐 나왔다.

“나왔다! 가자.”

한나의 말과 동시에 암사마귀들이 갑자기 고개를 꺾어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게시판 글 보면 솔플하는 헌터가 벌레들 다 모아들이고 있다잖아. 저거 봐. 진짜네….”

형우의 말에 한나가 그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걸 믿냐? 암사마귀들 내구력은 약해도 공격력은 상급 몬스터인데 그런 몬스터 떼들을 상대로 솔플을 한다고? 거기다가 보스방에는 여왕도 있는데?”

그 말을 들은 형우가 이제야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여왕암사마귀 공격력은 벙커도 부술 정도니까….”

일단 그들은 던전 깊숙한 곳까지 계속해서 걸었다.

“뭐야? 한 마리도 없잖아.”

“쿨럭! 쿨럭!”

“으…. 냄새 뭐야?”

그들은 어느새 보스방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썩은 음식물 냄새와 퀘퀘한 연기에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진철이 풍속성 마법으로 연기를 걷어내자 시야가 잡히기 시작했다.

“보스방으로 빨리 가보……뭐, 뭐야?”

한나가 뛰다가 그대로 멈췄다.

뒤에 서있던 진철과 형우는 멈춘 그녀의 뒷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잠시 후 셋은 뜨악한 얼굴로 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은 암사마귀의 시체 떼가 성처럼 보스방 우뚝하게 쌓여있었다.

“뭐, 뭐야?”

“커뮤니티 글이 실화였다니….”

그들이 좀 더 걸었을 때 한 남자가 암사마귀 두 마리를 그대로 베어낸다. 암사마귀들의 날개가 찢겨지며 땅에 떨어지고는 미동이 없다.

‘저, 저 사람은 설마?’

한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며칠 전 보스 붉은 구미호를 딱밤으로 때려죽인 바로 그 녀석이었다.

“하….”

한나와 일행들은 코를 막고 죽은 주위 사체를 둘러본다.

입 밖으로 말이 안 나온다.

“저기요.”

한나가 부르자 그가 시선을 준다.

“…저번에 봤었던 그 분이네? 반가운데 여기 사냥하러 왔다면 그냥 가시는 게 좋을 듯 한데….”

그가 태연하게 말해왔다.

형우와 진철은 넋 나간 얼굴로 그를 바라봤고 한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 그쪽 진짜 F급은 맞는 거에요? 다 걸고?”

“걸긴 뭘 다 걸어요? 난 그런 말 싫어합니다. 믿기 싫으면 믿지 않아도 돼요.”

“그럼 F급인데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가 있는거죠? 대답 좀 해봐요.”

한나는 궁금함을 따지듯이 물었다. 각성 헌터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세상은 그쪽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거든요.”

“……….”

한나의 시야로 머리에 불이 붙은 암사마귀가 죽은 채 뇌수를 흘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뭐?”

수화기를 귀에 댄 준호의 눈썹은 한껏 치켜올라갔다.

-그러니까 협회에 있는 제 지인을 통해 정보를 열람하니까 락이 걸려있다니까요.

“그게 말이 돼?”

준호가 쏘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헌터의 열람이 가능했었는데 갑자기 락이 걸려있다니.

-저도 모르겠어요.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열람하라고 부탁했는데 락이 걸려있어서 열람을 못한다네요.

“그럼 이시운이가 그 열람 기능에 락을 건 거란 말이야?”

준호는 물으면서도 이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헌터에게 그런 권한 따윈 없다.

-아무튼 제 지인이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고 그래요.

“일단 끊어봐.”

준호가 전화를 끊고 길드 건물 밖으로 나갔다.

마침 윤호가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있다.

“정 팀장! 그 친구 말이야. 정보 열람이 안 돼서 상세한 정보를 못 캐내겠다는데?”

“예? 락이 걸려있다고요?”

정윤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했다. 협회 고위 임원이나 기밀 활동을 하는 기밀정보과 직원이 아니면 열람에 락을 거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바였다.

“그러니까 자네가 그 친구의 상세정보를 캐내라고 해서 내가 대리에게 시켰단 말이야. 근데 그 친구 신상정보 열람이 락에 막혀서 열지를 못했다네.”

“이해가 안 가는데요?”

윤호가 담배를 튕기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이해가 안 돼. 뭐지?”

“에이, 그거 정보열람한 사람이 실수한 것 아니에요?”

“세 차례나 해봤데.”

“흠….”

윤호는 턱을 긁었다.

‘헌터도 락에 걸리는 이유가 있긴 하지.’

그는 이미 협회에 많은 인맥을 두고 있어서 웬만한 정보는 알고 있다. 헌터가 락에 걸리는 특이한 사유가 있긴 있다.

기밀과 관련된 헌터라던지, 죽어서 유족들의 부탁으로 협회 측에서 허가를 내고 락을 걸어둔다.

‘잠깐..협회의 기밀과 관련된 헌터란 말이야?’

윤호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그의 심상찮은 표정을 눈치 챈 준호가 물었다.

“왜? 짐작 가는 게 있어?”

“어쩌면 협회 기밀과 관련된 헌터일 수도 있습니다.”

“뭐? 협회 기밀이라니?”

그때 마침 박한나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팀장님! 길마님!”

“왜, 왜? 우리 중요한 대화 중이니까 빠져.”

“아니, 방금 그 이시운이라는 사람 보고 왔는데요.”

한나의 말에 두 남자의 눈이 커졌다.

한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놨다.

윤호가 박한나에게 물었다.

“네 눈으로 봤단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길드장님. 잠시만요.”

윤호가 준호를 데리고 사무실에 왔다.

“F급이 강할 리가 없고 아무래도 이거 신분을 세탁한 헌터 같습니다.”

“자네 생각도 그렇지?”

준호도 그의 생각과 같았다. 신분을 세탁한 헌터.

국가 기밀 급 정보를 알고 있거나 자의로 헌터시스템을 파괴하고 그림자 쪽에 연루된 자들이 신분세탁을 하곤 한다.

“그럼 어쩌나 이거? 근데 그 친구가 그림자와 연루된 자일 리가 없잖아?”

“그렇죠.”

그림자와 연루가 된 헌터라면 애초에 사람들 눈에 띄게 나다니질 않는다.

“어쩌면 협회 간부와 연관된 헌터일지도 모릅니다.”

교차로를 지나던 벤츠가 부드럽게 승차한다.

“다 왔습니다.”

시운을 픽업하던 기사가 점잖게 말했다.

시운은 창가로 비치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뚫을 듯이 솟아있는 200층의 건물.

무려 63빌딩의 3배를 넘는 어마한 높이.

헌터협회의 심장부라고 불리는 본부 사옥이다.

‘기사까지 픽업해줄 정도면 분명 그것이겠지.’

아마 오늘 협회장과 독대를 나눌 것이다.

“안 내리십니까?”

기사가 룸미러로 시운에게 말하자 시운은 상념을 흘려내고 밖으로 내렸다.

빠르게 걸어가자 사옥의 정문이 망막으로 비춰진다.

문을 통해 들어가자 보안요원이 그를 확인하고는 한명이 뛰어온다.

“협회장님의 호출로 오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시운은 보안요원의 안내를 받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여타 평범한 엘리베이터보다 빠르게 해당 층수를 향해 승강했다.

협회장실의 직통으로 향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시운은 의아해서 보안요원에게 물었다.

“200층은 왜 버튼에서 빠져있죠?”

순간 보안요원의 무감각하던 눈이 싸하게 변했다.

마치 그것은 묻지 말라는 듯한 눈과 같았다.

‘뭔가 있는 층이로군.’

띵!

“내리시면 됩니다.”

절제된 말투로 말하는 보안요원의 육성을 듣고 내리자 매끄럽게 펼쳐진 복도가 시야로 들어왔다.

‘굉장히 넓군.’

순간 복도에 배치된 경호원들의 예리한 시선이 시운에게 집중됐다.

그들은 회장의 지시를 받았을 터인지라 시운을 제지하지 않고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묵묵히 선다.

쭉 뻗은 복도는 상당히 길었다.

“이시운 씨. 안내해드릴게요.”

다가온 여비서의 안내를 따라 협회장실로 향했다.

협회장실의 문에는 도어락까지 걸려있다.

‘삼엄한 보안 수준이군.’

문이 열리자 독한 시가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국헌터협회장 곽대익

고급스럽게 값진 명패부터 눈에 띈다.

“어서 오게. 앉아.”

시운은 긴장이 서린 눈으로 그에게 목례를 하고 그의 앞에 앉았다.

협회장실에서 그와의 독대란 헌터에게는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같았다.

벌컥- 벌컥-

목에 액체가 성급히 흘러가는 소리가 귓가로 울렸다.

‘정말 물을 많이 먹긴 먹는가 보군.’

유석에게 들었다. 그러나 뭐 대수롭지는 않다.

2.5L 의 생수를 단번에 마셔버린 대익은 편안한 표정으로 시운을 바라봤다.

“갑자기 호출해서 당황스러웠지?”

“무슨 일로 부르셨을까 궁금하긴 했습니다.”

시운은 속과는 다른 말을 뱉었다.

이미 알고 있다. 전생과 그 전생에서 헌터에 관심이 많았던 시운은 그의 행보와 사람을 다루는 방식을 대강 알고 있다.

나에게 제안을 하려고 불렀겠지. 속으로 생각을 삼키며 시운은 대익의 다음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일상적인 대화를 조금 나누면서 시운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대익의 셔츠 오른쪽으로 심방세동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전에는 저렇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심장이 뛰는 것이 왜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지?’

그의 눈이라면 그것 또한 볼 수 있다.

희한하단 생각을 하고 있을 그때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말씀하십시오.”

곽대익의 성미는 급한 편이다. 그 또한 알고 있다. 시운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내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는가?”

예상했던 말이 흘러나온다.

여기서 당장 그러겠다고 말할 심산은 없다.

그에게 의외의 모습 하나는 보여줘야 한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요원으로 일하란 말이 아니야. 그저 내가 지시를 내렸을 때 그에 따라 움직여주면 되는거야.”

“그래서 제가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순간 대익이 예상 밖의 대답이란 듯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이유부터 물어야 정상인데 그러지 않았다.

대익이 항상 흥미를 느끼는 것은 ‘의외’ 라는 점이다.

그것을 알고 있다.

“헌터로서 벌 수 있는 돈 그 이상을 갖게 해주지.”

곽대익이 거침없이 말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시운의 뇌는 빠르게 굴러갔다.

‘사냥개가 되라는 말이겠지. 그러다 쓸모가 없어지면 폐기처분 되는 것이고.’

시운은 속을 숨기고 태연하게 답했다.

“그러겠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라….”

대익은 질문이 빠져버리고 다소 빠른 대답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시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별로 놀랍지 않다는 표정이군. 게다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에 의문도 갖지 않고. 대답이 너무 빠른데?”

“협회장님 밑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 그 자체입니다.”

예상했던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간다.

전생에 기사로 밝혀진 곽대익의 비리에 대한 기사가 생각났다. 그렇다면 대익의 다음 행동은 그것으로 이어지겠지.

“내가 자네에게 뭘 시킬지 궁금하지도 않나?”

“뭐든 시키면 따르겠습니다.”

“오호….”

대익은 답변이 썩 맘에 든다는 눈치다.

캐묻지 않고 그저 따른다. 인간이 아닌 개처럼 다루기에 아주 바람직한 성향이란 것을 일부러 내비춰줬다.

“맘에 드는데? 다만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네.”

“협회장님께서 시키실 일들은 무덤까지 저 혼자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뭐라?”

대익이 흠칫 놀랐단 반응을 보였다.

그의 입술이 떨어지기까지 시운은 입을 떼지 않았다.

“마치 내가 할 말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군.”

그는 뒤이어 말했다.

“난 계약서 따위 작성하라는 말은 하지 않아. 어차피 구두계약도 계약이니까. 다만 자네의 의사를 확실히 굳힌 것으로 보이니 조금 더 말해주지.”

“듣고 있습니다.”

“내게 불복종 할 시에는 헌터자격정지로 끝나지 않아. 그것만 알아두게.”

“알겠습니다.”

그가 쓰던 사냥개들의 최후는 아마 그럴 것이다.

곽회장이란 말조차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아예 죽여 버리겠다는 것. 그것이겠지.

‘지금 다른 방법은 없다.’

윤동석을 막아야 한다. 현계가 파괴될 미래를 바꾸기 위해선 막대한 힘이 필요하다. 그 동아줄은 곽대익 뿐이다.

그때 대익이 서랍에서 종이에 펜을 꺼내어 시운에게 내밀었다.

“백지수표라고 들어봤겠지?”

시운의 시선이 그 종이로 떨어졌다.

금액이 적혀있지 않은 수표. 금액을 적는 것은 받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황금보다 값진 수표. 흔히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접했던 그런 수표를 직접 받아보니 어안이 벙벙하다.

그러나 알고 있다.

저 수표는 독이 든 열매란 것을.

“거기에 자네 마음대로 적게.”

서걱-서걱-

시운은 곧바로 펜을 들어 종이에 금액을 표기하고서 대익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본 대익의 눈썹이 한껏 올라갔다.

“예상보다 높게 적었는데?”

“협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헌터로서는 벌 수 없는 돈을 벌게 해주신다고 말입니다.”

“긴장도 하지 않고 고민도 별로 하지 않고 바로 건네다니.”

대익은 그 당찬 기백이 썩 맘에 든다는 듯 했다.

“좋아. 자네가 적은 금액은 내 지시를 성공적으로 해낼 때마다 이 금액의 분할로 나눠주지. 자네는 이 금액을 손아귀에 다 쥐게 될거야.”

“앞으로 개처럼 충성하겠습니다.”

“하하. 개처럼 충성하겠다라.”

대익이 유쾌하게 웃었다. 이 답변 또한 싫지 않다는 반응이다.

“의사는 확실히 정한 것이 맞겠지?”

“물론입니다.”

“도중에 내 머리가 아플 일도 없겠고?”

머리가 아플 일이라 하면 배신이나 곽회장의 정보를 세상에 노출 시키는 일이란 것을 알고 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대익은 흡족하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운은 입을 다문 채 그의 다음 말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앞으로 그의 앞에서 말수도 줄여야 할 것이다.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있는 건 ‘알겠습니다’ 뿐일 것이고.

그때 대익의 태연한 눈빛에 광기가 스며들었다.

“내 사람이 되었으니 경악할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말씀하십시오.”

시운은 경청하겠다는 듯 답했지만 그의 뇌는 여전히 굴러가고 있었다. 경악할 이야기를 해준다고?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말인데.

“난 인간이 아닐세.”

순간 시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뒷목부터 허리의 털까지 모두 서는 느낌에 대익을 멍하니 바라봤다.

“자네가 이 사실을 알게 됐으니 절대 발을 빼지 못해.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네와 자네 가족 모두 세상에 없어질걸세.”

원룸으로 돌아왔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전생과 그 전생에서도 알 수 없었던 사실이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이다.

시운은 헌터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누군가의 의심 또는 폭로, 사건으로 담아진 기사. 헌터 커뮤니티에 떠올랐다가 사라진 정보들.

그게 다였다.

‘어쩌면 족쇄에 발목이 제대로 걸려버린 것 같군.’

인간이 아니라는 그의 말은 거짓이나 유머 따위가 아닐 것이다. 이미 그의 신체에서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가 물을 마실 때 잠시였지만 동공의 색이 바뀐 것과 뛰어야 할 심장이 뛰지 않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땀샘이 보이질 않았다. 그때 유석에게 들었던 물을 백 리터를 먹는다는 말이 지금에서야 떠올라 이해가 간다.

인간이 아니라면 대체 뭘까? 이계 쪽 사람인가?

그것도 어쩌면 아닐 것이다.

이계인들도 현계인과 신체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세상이 멸하는 것을 두고 볼 바에는 이 길이 낫다. 그리고 곽회장 당신을 위협할 무기는 갖고 있다.’

앞으로 곽회장의 호출이나 연락이 많아질 것이다.

일단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선 강해져야 하는 것은 필수.

쉬고 있을 시간은 없다.

시간은 내 뜻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그리고 퀘스트창이 눈 앞으로 떠올랐다.

[이터널 라이프][각성 퀘스트]

당신의 자격을 시험한다.

이 자격의 시험에서 통과하게 되면 당신은 새로운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성공 조건: 세 개의 관문을 통과

실패 조건: 죽음

‘뭐, 뭐? 새로운 힘이라고?’

충격이 가시지 않을 지금 또 다른 충격이 시운의 몸을 차갑게 뒤덮었다.

각성.

헌터를 더욱 강하게 해주는 현상으로서 각성이 된 헌터는 타 헌터와는 다르고 특별한 힘을 사용할 수 있다.

헌터에게는 축복과 같은 일.

‘지금 나는 강하지만 더 강해져야 한다. 좋아.’

[잠시 후 첫 번째 관문 무력의 자격을 시험할 장소로 이동합니다.]

파앗!

순간 쏟아지는 빛줄기에 눈을 감았다.

‘저것은..?’

시운의 눈이 커졌다.

앞에 서 있던 것은 헌터탐사시험 때 봤던 그 고대 거인이었다.

거인은 눈을 감은 채 거대한 검을 들고 문 앞을 지키고 있다.

시운은 그때를 떠올렸다.

헌터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던 저 거인의 움직임을….

그런데 그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거인의 발밑으로 마법진이 있었고 그 마법진을 통해 거인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마법진이 없다.

‘그 말은 무력으로 제압하란 뜻이겠지. 무력의 관문이란 소리니까.’

지금은 그때보다 강하다. 어쩌면 무력만으로 저 거인과 겨룰 수 있을지도.

그때 거인의 감았던 눈꺼풀이 뜨였다.

쿵!

쿵!

거인이 시운을 향해 걸어왔다.

저것이 발을 딛을 때마다 대지가 음푹 패일 정도였다.

이시운은 오른손에 들려있는 아클레우스 소드를 바라봤다.

‘좋아. 간다.’

거인이 시운을 향해 다가와 곧바로 검을 내리쳤다.

투쾅-!

시운이 검을 들어 그 일격을 받아냈다.

거인의 팔이 부르르 떨렸다.

거인은 느꼈다.

‘역시 강해지셨군요.’

투쾅! 투쾅!

거인의 검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것을 검으로 막아낸다. 팔이 저릴 정도다.

시운은 거인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차앙!

검이 석상같은 다리에 꽂혔으나 완전히 절단해내지는 못했다. 그 여파로 거인이 살짝 비틀거린다.

화룡의 도약을 통해 뛰어오른 시운은 거인의 머리를 향해 뇌절찌르기를 사용했다.

캉캉캉캉캉!

거인의 육체는 너무 단단해서 찔러도 튕겨져 나왔다. 곧바로 거인의 어깨를 밟고 뒤로 넘어가 공중회전하여 땅에 착지했다.

‘대미지는 전해졌다.’

순간 시운의 눈에는 보였다. 검신에 의해 거인의 얼굴에 파여진 자국이 남은 것을.

거인이 돌아보려 할 때 시운은 쇄도하여 거인의 왼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금속음이 맞닿는 소리가 들려왔다. 석상의 육신은 살이 아닌 돌이었다.

그때 거인의 주먹이 시운을 향해 날아왔다.

콰앙!

거대한 주먹은 빈 땅을 그대로 박살내버렸다.

힘에서 밀리지 않고.

스피드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석상의 다리를 차고 올라간 시운의 검날이 거인에게 그대로 박혔다.

순간 목덜미를 찍힌 거인이 뒤로 한발자국 튕겨져 나갔다.

거인에게 표정따위란 없었지만 분명 육체에는 균열이 일고 있었다.

순간 시운의 눈이 빛났다.

“그때는 네 녀석에게 죽을 뻔 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런데 그때.

석상의 돌로 이루어진 거인의 눈에서 빛이 일기 시작했다.

거인의 발끝부터 색이 살색으로 변하고 뒤이어 거인의 무릎 그리고 머리까지 인간의 살이 되었고 석상의 검은 실재하는 검이 되었다.

‘주군께서 이 관문을 꼭 통과하시길 바랍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