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4화
최종병기 최종클래스로 (2)
시운의 망막으로 비춰진 것은 사람형태, 아니 사람이었다.
금발머리 그리고 은빛갑주를 입은 채 검을 들고 있는 그의 금안은 오로지 시운을 향해 있었다.
그때 차갑게 식은듯한 그의 얼굴이 으스러지더니 곧바로 땅을 박차고 시운에게 검을 휘날렸다.
파장!
검과 검이 부딪히는 금속음이 요란하게 일었다.
검을 막아낸 시운의 양팔이 춤추듯 떨렸다.
‘아까보다 훨씬 강하다.’
아까 석상의 상태와는 달랐다.
뒤이어 검이 날아왔다. 백스텝으로 뒤로 빠진 시운의 머리칼이 검에 의해 쓸려나가 허공에 나풀거린다.
‘게다가 빨라.’
시운의 눈으로도 좇기 힘들 정도였다.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엄청난 속도로 휘두르는 거인의 검은 쉬지 않고 날아왔다.
캉! 카앙! 캉!
강렬한 공세에 일단 공격을 받아내기에 바빴다. 마치 그 모습이 금사자 같았다.
카앙!
거인이 양손으로 내리친 검을 간신히 받아냈으나 손이 뭉개질 듯 아파왔다.
‘흑화광참.’
검 끝에서 발산된 검은 성화가 순식간에 금발의 거인을 덮었다. ‘이 정도로 끝났을 리 없다.’
시운의 눈으로 연기 속 형체가 보인다.
‘질주.’
뛰어나가 사합보로 허공을 몇 번 박차서 공격의 구도를 바꾸며 검을 내리 꽂았다.
카앙!
연기가 걷히자 불에 타들어가고 있는 거인은 그 검을 받아낸 그대로 서있었다.
‘이번 공격은 좋으셨습니다.’
검과 검을 맞댄 두 시선이 맹렬하게 부딪혀 스파크가 튀었다.
시운의 오른 다리가 그대로 거인의 왼 다리를 후려쳤다. 거인의 하체가 흔들리자 검에 힘을 더 집어넣었다. 검과 검의 선이 더욱 거인의 얼굴에 가까워졌다.
‘……?’
시운의 구겨진 표정이 잠시 펴졌다. 거인의 금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 것을 보고 말이다.
퍼억! 거인의 발길질에 가슴팍이 차인 시운이 뒤로 밀려났다.
속이 끓어오르는 듯한 격통과 함께 피거품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퉤! 피가래를 땅에 뱉은 시운은 검을 고쳐 잡았다.
거인은 여전히 눈물을 쏟으며 쇄도해왔다.
‘주군이시여! 이렇게 밖에 그대를 뵙지 못하는 저를 용소하소서.’
그의 사자군단의 단장이었던 자크. 한때 발카스의 금빛사자로 호를 떨쳤던 그의 억장은 무너질 듯 아파왔다.
‘소신 자크. 주군과 함께 최후를 맺지 못했었던 점 송구할 따름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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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공방은 그칠 줄 몰랐다.
금안의 거인은 지친 기색 없이 계속해서 검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검을 막아내고 막아낼 때마다 느껴졌다.
‘놈의 공격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파창!
검과 검이 맞물렸을 때 시운의 왼 팔꿈치가 거인의 턱을 후려쳤다. 거인의 얼굴이 옆으로 쏠리자 그대로 주먹을 한 대 꽂아 넣고 오른발로 거인의 뒤꿈치를 걸어 쓸었다.
부웅! 그 여파로 거인이 뒤로 넘어가자 시운이 검을 내리찍었다.
캉! 빈땅에 박힌 검. 거인은 번개같이 옆으로 굴러 피한 뒤 일어서서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그때 금안의 이채가 빛나며 그의 검이 형태가 변해갔다.
‘조심하소서. 이 검은 주군도 알다시피 악귀의 검 크로난도스입니다.’
거무스름한 형태에 검은 깃털이 수십개 박힌 더욱 두꺼워진 칼날.
그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뚝.
시운의 광대 부분에 뜯겨진 살점에서 피가 땅에 뚝뚝 흘렀다.
[상대의 마검에 의해 흡혈이 지속됩니다.]
[출혈 상태가 되었습니다.]
피를 손으로 스윽 닦아낸 시운의 입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 검 피를 빨아들이는 검이구나?”
금안의 눈꺼풀이 잠시 감겼다 뜨였다.
‘점점 주군의 피를 앗아갈 겁니다. 소신은 제 맘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부디 이 검격을 막아내시길.’
그때였다.
거인의 몸이 순간 경직된 채 멈추었다.
“흡혈귀의 역린.”
[상대의 전신에 흐르는 피를 석화시킵니다.]
거인은 움직이려고 근육을 실룩였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듯 벌벌 떨었다.
“마지막이다.”
시운의 외침과 함께 시운의 칼날이 그대로 번쩍였다.
서늘하게 살점이 썰리는 소리와 함께 거인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툭! 거인의 머리가 떨어지자 땅으로 선혈이 번져간다.
눈물을 쏟던 거인의 눈빛이 점점 꺼져갔다.
‘…잘 하셨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시운은 가만히 그 주검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먹먹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
시운은 알 수 없는 마음에 수급의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거인의 차갑게 식었던 얼굴이 환해지면서 동시에 알람음이 들려왔다.
[첫 번째 관문 무력의 시험을 통과 하였습니다.]
[다음 관문으로 이동합니다.]
“내 초전생과 관련된 사람 같구나. 난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승에서 편히 눈을 감길.”
.
.
.
“크하아아아아압!!!”
하늘을 찌르는 듯한 시운의 고성과 함께 그의 오른 주먹이 괴수의 가슴팍을 때렸다.
퍼억!
괴수는 피를 주룩 뿜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지막 한 놈까지 마무리.’
선혈의 냄새가 진동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시운이 맨몸으로 때려눕힌 몇 천 마리의 인간형 괴수의 사체가 대지를 덮고 있다.
[두 번째 관문 생존의 시험을 통과 하였습니다.]
[체력과 스태미너 마력이 모두 회복됩니다.]
[마지막 관문 성장의 시험의 장소로 이동합니다.]
귓가에 은은히 들리는 육성과 동시에 냉기가 코를 찔러왔다.
‘여긴..?’
시운의 눈으로 펼쳐진 드넓은 빙판. 한기가 온몸을 얼어붙게 할 정도였다.
턱턱.
후방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본체는 들고 오질 않았구나.”
낯익은 육성을 뱉으며 걸어오는 놈은 하얀 털을 뒤집어 쓴 설인이었다. 얼마 전 레드 게이트에서 조우했던 그놈이었다.
‘마지막 관문이 이놈이라니.’
그때는 시운의 공격이 일체 먹히질 않았었다.
“본체를 기대했는데.”
아쉽다는 듯 설인의 말끝이 죽어갔다.
“본체가 대체 무슨 말이냐?”
“네 놈의 본체. 그 본체에게 내가 빚을 졌거든.”
설인은 그때를 회상했다.
수만 병력을 지휘하며 그놈에게 전력으로 질주했을 때 놈의 검신이 눈앞을 스쳐갔고. 그 이후로 인간이 아닌 이런 괴뮬의 육체가 되어있었다.
‘네놈의 그 고약한 술법덕분에 난 평생 다른 차원에서 이런 몰골로 살고 있다.’
저 놈이 본 형태를 갖추고 다시 나타나길 바라며 놓아주었건만.
“이제 본체든 아니던 상관없다. 네 육신을 찢어서 빚을 갚아주마.”
설인이 두 팔을 벌렸다.
순간 설인의 시야로 시운이 걷어찬 빙판 조각이 가까워졌다. 곧바로 주먹으로 으깼을 때 시야로 시운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하체가 끓어오르는 느낌에 밑을 보니 시운이 검이 허벅다리를 벤 이후였다.
시운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콰앙!
그러나 빙판만 으스러 깨지며 주위에 균열이 일어났다.
슈욱!
좌측에서 검신이 쇄도했다. 피하려 했으나 눈보다 빠른 검신은 설인의 코를 베었다.
‘이 놈…. 그때보다 빨라졌다.’
피가 흐르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린 설인은 빙판에 떨어진 잘린 코를 보며 느꼈다.
콰아악!
시운이 공중에서 회전해 내리친 검날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이 놈 민첩해진 것뿐만이 아니다. 힘도 더 강해졌다.’
검을 틀어막은 설인의 팔이 후들거렸다.
“그때와는 달라 자식아.”
레벨업과 퀘스트를 통해 얻은 올스탯 업 보상으로 인해 그때와는 전력이 달랐다.
퍼억! 허공에서 날린 시운의 무릎이 설인의 이마에 명중했다.
비틀거리는 시야 속으로 시운의 얼굴이 비춰졌다.
“크억!”
뱃속을 마구 찌르는 통증에 설인이 단말마를 뱉어냈다.
시운의 검이 미친 듯이 설인의 배를 찔러내고 있다.
‘뇌절 찌르기다.’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퍼억! 그리고 날아온 세 개의 검격을 얻어맞은 설인이 비틀거린다. 그 동시에 날린 설인의 손바닥을 후려 맞은 시운이 몇 미터 날아간다.
중심을 잡고 착지한 시운은 자신의 얼얼한 뺨을 쓰다듬었다.
다시 공격을 가하려던 그때.
“네 놈 얼마 전보다 확연히 강해졌구나. 그렇다면 내 전력으로 상대해 주는 수밖에.”
순간!
설인의 털이 솟아오르더니 근육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육신은 점점 커져만 갔다.
“저건 그때 그 괴물.”
시운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빌딩만한 뿔 달린 고래가 시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악! 시운이 곧바로 도약해 뒤로 빠지자 시운이 있던 빙판이 완전히 박살나며 괴수가 그 빙판 속으로 들어갔다.
‘어마어마하게 크군.’
시운은 전방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그 뒤로 하얀 빙판이 모조리 박살나면서 괴수가 거리를 좁혀 왔다.
‘흑화광참.’
빙판을 녹이는 불길이 터져 올랐다.
‘사합보.’
허공을 차며 공중으로 뛰어올라 놈의 거대한 등덜미에 안착했다.
쏴아아아아-!
놈이 무서운 속도로 심해를 향해 잠수했다.
순간 시운의 시야로 빙판 속 심해의 아득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놈의 지느러미를 꽉 잡은 채 오른손으로 칼을 들어 놈의 등껍질을 쑤셨다.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그것이 문제였다.
물속이라 검을 다루는 힘도 약해져서 놈의 등에 생채기를 입히기 힘들 정도였다.
“우우웁…”
시운의 입에서 기포가 떠올랐다.
놈은 끝없이 심해 속으로 하강했다. 해발이 깊숙한 심해의 아득한 광경에 겁이 질려왔다.
‘안 돼.’
곧바로 시운은 화룡의 도약을 사용해 위로 승강했다.
그런데 하강하던 괴수가 곧바로 방향을 틀어 꼬리로 시운의 등줄기를 후려쳤다.
퍼억! 등골이 휘어지는 격통에 시운은 심해 속에서 허우적댔다.
카아아아-!
놈이 벌린 아가리 속으로 심해의 물과 함께 시운의 몸까지 빨려 들어간다.
“커흐억!”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간 시야로 잡힌 것은 위산이 흐르는 놈의 뱃속이었다.
전방에서 위산이 철철 솟구쳐 오고 있다. 저 위산에 몸이 닿는다면 그대로 몸은 녹아버리고 말 터.
푸슉!
놈의 살에 아클레우스 소드를 쑤셔박았다.
어찌나 질긴지 검신 반틈만 들어갈 뿐이었다.
그대로 찢으려 애를 써도 피부가 워낙 질겨 찢기지가 않았다.
위산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반대편에서 쏟아진 거대한 물줄기가 시운을 뒤덮었다.
[웨폰 체인지를 발동합니다.]
[뇌격의 단도를 장착합니다.]
‘물속이라면 이거지.’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물속에서 시운은 뇌격의 단도를 녀석의 피부에 처박았다.
순간! 발생한 전압이 물에 의해 몇십 배로 증폭되면서 놈의 내장을 전력이 휘감는다.
‘뇌절찌르기’
푹푹푹푹푹푹푹!
뇌격의 단도로 미친 듯이 놈의 피부를 찌르고 또 찔렀다.
그와 함께 뇌격의 단도 효과로 발생한 전력이 물과 만나 스파크를 튀겼다.
-크어어어어!
놈이 괴로운지 괴성을 질러댄다. 위산이 코앞까지 흘러왔다. 주위가 마구 뒤틀렸다.
다시 한 번 뇌격의 단도로 하얀 놈의 피부를 찔렀다.
파지지직!
스파크가 터지며 놈의 피부 살점이 벌어져 타올랐다.
조금씩 놈의 살점이 벌어졌다. 뇌격의 단도로 그 살점을 더욱 찢어 나갈 공간을 만들었다.
스파크는 여전히 물을 만나 증폭되자 주변이 마구 뒤틀렸다. 놈이 격통을 느꼈는지 몸을 마구 흔드는 것 같다.
찌이익!
단도의 칼날로 놈의 피부를 회뜨듯이 더 뜨고 너덜거리는 살점을 벗겨냈다. 그러자 벗겨진 공간 사이로 심해 속 물고기 한 마리가 보인다. 곧바로 심해 밖으로 헤엄쳐서 나갔다.
놈의 큰 눈이 반쯤 감겨있고 찢겨진 살점에서 피가 연기처럼 주르르 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쿠와아아아!
다시 한 번 놈이 시운을 삼키려고 아가리를 있는 힘껏 벌렸다.
‘마지막이다. 더는 내가 숨을 참지 못한다.’
속이 답답해왔다.
시운은 흡입 되듯이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 놈의 이빨을 오른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 뇌격의 단도를 놈의 코에 쑤셔박았다.
콰지지직!
스파크가 불꽃처럼 튀었다.
콰지지직!
또 한 번 쑤셔 넣자 놈의 피부가 새까맣게 변한다. 놈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대로 등반하듯이 놈의 얼굴 위로 올라가 손을 짚으며 머리부분까지 도달했다.
‘마지막이다…….’
역수로 쥔 뇌격의 단도가 놈의 머리에 쏟아졌다.
그 순간!
놈의 머리에 퍼진 전력이 꼬리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쿠웨웨에에에엑!
괴수가 토악질을 하듯 모든 걸 쏟아냈다.
‘수, 숨이……!’
괴수는 죽은 물고기처럼 배가 위로 뜬 채 움직임을 멈췄다.
시운은 더 이상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화룡의 도약도 쿨타임 덕에 쓸 수가 없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 간다.
들어올리 고개로 광망이 쏟아지는 심해 위 지상 물결이 보인다.
‘일미호……부탁한다.’
“콰륵! 콰르르륵!”
소환된 일미호는 즉시 상황을 판단하고서는 코로 기포를 내뿜으며 심해에 둥둥 뜬 채 미동이 없는 시운을 바라봤다.
‘이 놈을 죽게 할 수는 없지. 내게 마정석을 갖다 바치는 씹호구인데.’
꼬리를 뻗어 시운의 허리를 감싸고 일미호는 심해 위를 향해 네 발을 휘저었다.
“푸흡!”
목에서 넘어오는 물을 뱉으며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천장에 샹들리에가 시야로 들어왔다.
‘여긴?’
축 젖은 상체를 일으키자 옆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관문을 통과하셨군요. 역시 당신답습니다. 이제 그것을 치룰 시간입니다.”
맑고 가는 육성. 그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날개를 펼친 채 둥둥 떠있는 천사가 시운을 나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 질문의 대답에 따라 당신의 힘이 결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