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5화
바람의 군왕
허공 위로 은은하게 떠있는 천사의 눈빛이 묘했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보는군요….’
그녀의 눈빛에 슬픔이 서렸다.
그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그 그림들이 머리로 스쳐간다.
“질문의 대답 여하에 따라 힘이 다르게 결정된다고요?”
“그렇습니다.”
시운은 묻고서 잠시를 고민했다.
‘그렇다면 신중하게 답을 내려야 한다.’
그런 시운의 시선이 천사와 맞물렸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시운을 그대로 바라보며 상냥하게 웃고 있다.
“준비가 되셨나요?”
“…힌트 같은 것은 없어요? 이를테면 더 강해지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뭐 그런거요.”
“네….”
“아, 예.”
시운은 멋쩍어했다. 천사의 얼굴이 굉장히 상냥해 보여서 혹시나 해서 물은건데 그녀는 칼 같다.
반면 천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지금이나 그때나 가끔 나오는 그 엉뚱함 그 모습조차 똑같으시네요.’
그때 천사를 향하는 시운의 눈빛이 진해졌다.
천사는 그 눈빛을 보고 다문 입을 뗐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냄새는 어떤 것입니까?”
천사의 질문과 함께 시운의 눈 앞으로 네 개의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나뭇잎이 떠다니는 강]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장마가 그친 후의 광망]
[연못 위의 돌담길]
질문의 대답들이 추상적인 느낌이다. 뭘 선택해야 할까? 신중하게 해야 한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선택하지 못한 시운은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선택하면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내 성향대로 대답을 한다면 나의 성향에 가장 맞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차선책이리라.
그리고 곧 결단을 내렸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선택하셨습니다. 맞습니까?”
“네.”
대답을 듣자 천사의 손아귀에서 푸른 구체가 떠올랐다.
[당신의 속성이 결정되었습니다.]
[당신의 속성은 바람입니다.]
‘바람? 대답에 따라 정말 결정되는군.’
일단 바람의 속성을 얻었다. 이 속성이 좋은지 아닌지는 지금 알 수 없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당신은 군주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상적인 힘]
[명철한 두뇌]
[군대를 지휘하는 통솔력]
[가득한 야망]
‘군주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힘이 강하면 맹장. 두뇌가 명석하면 책사. 야망이 가득하면 폭군으로 변한다. 군주는 무엇보다 사람을 통솔하는 지휘력이 있어야지.’
방금 첫 번째 질문을 토대로 이상적인 힘을 선택한다면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시운은 자신의 이상이 그려진 선택지로 하고 싶었다.
‘군대를 지휘하는 통솔력입니다.’
“군대를 지휘하는 통솔력을 선택하셨습니다. 번복할 의사는 없으시죠?”
“네.”
대답을 들은 천사의 이채가 빛을 뿜었다.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힘이 깃듭니다.]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힘이 깃든다고?’
상념에 잠긴 시운의 머리를 깨게 한 것은 다음 질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특출난 능력]
[애절한 마음]
[집요한 집착]
[끝없는 구애]
“하.”
이 대답은 시운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나 빼놓고는 나머지는 모조리 해본 시운이기에 고민할 것도 없었다. 거기다가 ‘특출난 능력’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면 정말 그럴듯한 능력을 줄 것도 같았기에.
“특출난 능력.”
“특출난 능력을 선택하셨습니다. 맞습니까?”
시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알람음이 귓가에 꽂혀왔다.
[남들과 다른 능력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이 라이벌과 전투를 가정할 시 어느 신체를 가장 발달시키고 싶습니까?”
[상대를 꿰뚫어 보는 눈]
[상대보다 빠른 하체]
[상대보다 강력한 어깨]
[상대보다 탄탄한 가슴]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무조건 이긴다.’
고민은 쉽게 끝났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눈.”
“좋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질문이었습니다. 정말 그것으로 결정하시겠습니까?”
“네.”
순간 천사의 두 손아귀가 펴지며 감은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감긴 눈이 뜨였다. 눈에서 쏟아지는 환한 빛에 시운은 눈을 감았다.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혼자보다 강한 다수를 거느리게 됩니다.]
[당신은 남다른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당신은 바람을 다루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꿰뚫는 눈을 개안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제 3의 눈이 개안됩니다.]
[당신이 선택한 답변을 토대로 결론이 추출됩니다.]
[그 결론이 곧 직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답이 내려집니다.]
[당신은 바람을 다룰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 바람의 힘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군대를 거느릴 수 있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신의 눈이 개안됩니다.]
[당신은 바람의 군왕입니다.]
‘…바람의 군왕?’
순간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와 시운을 휘감았다.
바람은 더욱 휘몰아쳤지만 전신에서 몰아치는 그 기분이 묘하게 쾌락적이었다.
[바람의 군왕이 된 당신에게 그에 마땅한 힘이 선사됩니다.]
[스킬 윈드니스를 습득하였습니다.]
[윈드니스][액티브]
바람을 소환하여 다룰 수 있다.
*윈드니스의 수치가 높을수록 풍량이 강해진다.
*통솔력이 증가할수록 컨트롤 능력이 상승한다.
[바람의 군왕에 군림한 그대에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특출난 힘이 선사됩니다.]
[스킬 군왕의 방패를 습득하였습니다.]
[군왕의 방패][액티브]
바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방패를 소환한다.
지속 시간: 5초
재사용 시간: 한 시간
*통솔력이 증가할수록 내구력이 강해진다.
[바람의 군왕에 오른 자 그에 걸맞은 군력을 갖게 됩니다.]
[스킬 영혼의 재림을 습득하였습니다.]
[영혼의 재림][액티브]
죽은 시체의 영혼을 흡수하여 재소환한다.
*흡수: 영혼을 흡수한다.
*재림: 흡수한 영혼의 뼈대를 생성한다.
*해제: 영혼들을 쉬게 한다.
*소환: 흡수한 영혼들을 소환한다.
*삭제: 영혼을 삭제시킨다.
*통솔력이 증가할수록 영혼을 흡수할 확률이 상승한다.
*통솔력이 증가할수록 영혼을 완전체하게 만든다.
*통솔력이 증가할수록 많은 군대를 거느릴 수 있습니다.
[신안][액티브]
두 개의 시신경을 하나로 연결하여 신의 눈과 흡사한 눈을 개안한다.
지속 시간: 5분.
재사용 시간: 5시간.
[히든 스탯 통솔력 스탯을 획득하였습니다.]
‘엄청난 스킬들이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스킬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영혼의 재림이란 스킬은 마치 네크로맨서처럼 소환한 군대를 이끌 수도 있는 스킬같다.
등덜미에 식은땀이 뱀줄기처럼 흘러내린다.
그때 빛을 뿜어내던 천사의 형태가 점점 흐려진다.
“…당신은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그대의 길이 빛나길 바랍니……다.”
그녀의 말끝이 마치 울먹이듯이 흐려졌다.
저 천사도 내 초전생과 관련된 자일까?
전방에서 발산된 빛이 사방을 뒤덮으며 온 몸이 요동쳤다.
그것에 몸을 맡겼다.
-크르르르….
시운은 사자왕의 목을 베었다.
육신과 분리된 사자왕의 머리가 피범벅이 된 채 땅에 떨어졌다.
이곳은 사자왕의 던전.
한 가지 꼭 시험해볼 것이 있다.
“시작해볼까.”
시운의 시선이 눈이 까뒤집힌 사자왕의 머리로 향했다.
“흡수.”
손아귀에서 뿜어진 바람이 사자왕의 머리와 육신을 휘감다가 멎어버린다.
[흡수에 실패하였습니다.]
‘실패라고?’
시운은 통솔력이 증가할수록 흡수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 설명을 되뇌이며 상태창을 떠올렸다.
레벨:160
근력 <379> 민첩 <226>
체력 <175> 지혜 <93> 지능 <33>
열정 28
살기 23
통솔력 0
여유 스탯: 12
‘일단은 졸개들로 시험해봐야겠군.’
시운의 눈이 사방에 난도질된 채 죽어있는 새끼사자들에게 향했다.
‘흡수.’
바람이 흘러나와 새끼사자 한 마리의 털을 에워쌓는다.
-캬오오!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괴로운지 새끼사자의 괴성이 들려왔다.
휘감던 바람이 새끼사자의 영혼을 끌어내어 손아귀로 흡수되었다.
[흡수에 성공하였습니다.]
‘재림.’
[흡수한 영혼의 형태를 생성합니다.]
손아귀에 흡수되었던 영혼이 흘러나와 형태를 만들어간다.
하체부터 머리까지 만들어진 형태는 살이 없는 그저 뼈만 존재하는 새끼사자의 뼈대였다.
소환된 새끼사자는 시운의 앞으로 걸어와 앉았다.
마치 주인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듯이.
‘뼈밖에 없잖아?’
아마 통솔력의 수치가 높아질수록 완전체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놈도 통솔력이 높을수록 완전체에 가까워질 것.
‘흡수.’
나머지 세 마리의 새끼사자의 영혼도 흡수한 뒤 재림시켰다.
소환된 새끼사자 세 마리가 걸어와 시운 앞에 다소곳이 앉아 그를 바라본다.
‘그렇다면….’
통솔력 스탯에 1을 분배했다.
“…….”
새끼사자들의 형태에 변함이 없다.
1을 더 분배한다.
그래도 변함이 없다.
‘뭐야?’
1을 더 분배해보았다.
그러자 새끼사자의 뼈대가 움직이며 살이 돋아났다. 놈들의 눈빛이 살아났다.
그러나 새끼사자의 완전체라 불리기엔 털갈귀도 없고 꼬리도 없었다.
‘3의 배수마다 형태가 변하는가 보군.’
나머지 여유 스탯을 모조리 통솔력에 때려박았다.
<통솔력: 12>
새끼사자들의 코와 이빨이 솟아났으며 사자를 상징하는 털갈귀도 솟아나왔다.
-크르릉….
-크릉!
이젠 놈들이 육성으로 소리도 낸다.
‘이런 방식이군.’
그렇다면 새끼사자들 말고 보스를 소환한다면 어떨까?
시운은 손아귀를 사자왕의 머리를 향해 뻗었다.
‘흡수.’
영혼이 흡수된다.
사자왕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흡수에 성공하였습니다.]
‘재림.’
과연 보스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어?”
사자왕의 영혼으로 재림한 형태는 사자왕이 아니었다.
사자왕의 털갈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창을 든 인간이었다.
“마치 헤라클레스 같군.”
시운이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자 녀석이 뚜벅뚜벅 걸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네 이름은 헤라클레스다.”
그러자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이름을 지어줘야 앞으로 통솔할 때 편할 것이다.
‘흡수.’
[흡수에 실패하였습니다.]
다른 새끼사자들의 영혼을 흡수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통솔력의 수치가 최대 소환한 인원수에 영향을 미치는 건가?’
그때였다.
뒤에서 여러 안광이 붉히며 리젠된 새끼사자들이 시운을 향해 다가왔다.
“사용해볼까?”
시운은 소환한 새끼사자들에게 손짓으로 공격하라 수신호를 보냈다.
소환된 새끼사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적 사자들에게 달려들어 엉켜 붙는다.
“좋아.”
시운의 새끼사자들은 적 사자들에게서 뜯어낸 머리통을 하나씩 물고와 시운 앞에 내려놨다.
“이거 대박인데?”
통솔력을 높이자 동족인 새끼사자도 물어뜯어버릴 정도로 소환된 새끼사자들이 강력해졌다.
“그렇다면 이 놈은 얼마나 강할까?”
시운은 늠름하게 무릎을 꿇은 헤라클레스를 흡족하게 바라봤다.
.
.
.
-쿠오오오!
리젠된 사자왕의 미간을 창으로 뚫어버린 헤라클레스는 창날로 확인사살 하듯 사자왕의 복부를 찌른 뒤 사자왕의 머리통을 악력으로 찢은 뒤 시운 앞에 내밀었다.
“너 굉장히 쓸모있는 놈이군.”
시운의 말에 헤라클레스는 눈빛을 빛냈다.
“형 잠깐 이리와봐.”
시운이 거실에 있는 유석을 불렀다. 유석이 오자 그에게 뭉텅하게 쌓인 서류들을 툭 내밀었다.
“이것들은 뭐야?”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던 유석의 눈이 커졌다.
“F급부터 A급까지 협회에 등록된 모든 헌터들의 신상정보야.”
“이걸 어떻게 구한거야?”
“나름 좀 고생했지.”
시운은 윤성혜 곤란해하는 표정을 떠올렸다.
-갑자기 헌터들 신상정보는 왜 출력해 달라는 거에요? 그 정보들을 함부로 제공해서는 안 돼요.
그렇게 말하던 그녀였지만 시운이 어떻게든 설득시키자 마지못해 알겠다며 그녀에게 제공받은 것이 이 신상정보 파일.
그녀는 시운에게 약했다.
“형이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시운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설마 이 서류들을 다 보고 회귀자를 찾으란 소리야?”
“고생 좀 해줘. 근데 사진만 보고 회귀자를 판단할 수 있나?”
펄럭!
유석은 사진이 첨부된 종이를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만으로 회귀자를 판별할 수 있어. 근데…… 이거 좀 많은데?”
“……고생 좀 해줘.”
시운이 멋쩍게 웃었다. F급부터 A급까지 협회에 등록된 헌터들만 몇 만명이다.
“근데 형.”
“응?”
“이거 말고 서류들이 한 바가지로 더 있어. 내 방에.”
“…….”
유석이 힘 빠지는 내색을 비추자 시운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미안한데 부탁 좀 할게.”
.
.
.
유석은 눈을 비비며 서류들을 하나씩 훑어갔다.
그의 옆에 널부러진 종이들만 수두룩했다.
잠도 자지 않은 채 서류를 넘기고 또 넘겼다.
‘……두통 올 것 같네.’
그런 유석의 졸린 눈이 번쩍 뜨였다.
“찾았다.”
그 소리를 들은건지 시운이 2층에서 내려왔다.
“찾았다고?”
“……근데 이 회귀자 능력이…….”
유석의 말끝이 심하게 떨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