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6화
또 다른 회귀자에게 사기 치기 (1)
유석의 눈동자가 떨렸다.
시운은 그런 유석을 보고 그 능력이 뭔지 말해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야.”
순간 시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가졌다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협회측에서는 그림자들이 습격해온 날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림자들의 출현 시기를 그 능력을 통해 알아낸 것 일테다.
시운의 시선이 유석이 든 서류로 떨어졌다.
C급 헌터 김한수.
‘C급이라고?’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랭크는 고작 C급이다. 또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으로 복권이나 주식을 사면 편하게 배를 긁으며 살 수 있는데 뭐하러 헌터가 된 것일까.
여러모로 앞뒤가 안 맞다.
‘근데 이 녀석 어디서 본 얼굴인데.’
낯이 익다.
어쨌든 회귀자를 찾아냈으니 다음 행동을 옮길 차례다.
협회 헌터관리과 사무실 안.
안경을 매만지며 폰을 귀에 대고 있는 성혜의 낯빛에는 난감함이 서려있다.
-주임님. 한 번만 더 부탁드릴게요. 이 부탁만 들어주시면 더는 곤란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알겠어요. 알아보고 전화줄게요.”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내린 성혜는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렸다.
모니터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헌터들이 공략허가권을 예약한 던전의 목록이 떠올랐다.
이시운. 그가 또 한 번 부탁을 해왔다.
김한수라는 헌터가 던전을 예약한 날짜와 시간을 알려달란 것이었다.
“여깄다.”
그가 예약한 날짜가 떠올랐다.
그 날짜는 내일이었고 시간은 오후 8시 30분. 던전은 B급 던전이다.
헌터는 공략허가권을 매수하고 던전의 종류와 시간을 예약한다.
그럼 시간대에 발생한 게이트의 장소는 협회측이 제공하는 것이었다.
‘근데 이건 알아서 뭐하려는 거지?’
이유를 물었으나 시운은 아직 말해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부탁한다는 말만 해왔다.
헌터관리과 주임이 헌터에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한수 씨가 한적한 시간대를 선택해 예약을 잡아놨네요. 예약날짜는 내일이고 오후 8시 30분이에요. 던전랭크는 B랭크구요.”
-주임님. 그 던전 진입할 인원이 가득 차있나요?
시운의 물음에 성혜가 모니터를 훑었다.
“마침 한 자리가 딱 비어있네요.”
-주임님. 그 남은 한 자리 제가 예약할게요.
“뭐라구요? 미쳤어요? 여긴 B랭크 던전이라구요.”
성혜가 따지듯 소리쳤다. 그 소리에 사무실 직원들의 시선이 쏠린다. 성혜는 시선을 의식하고 목소리를 낮춘다.
“마력 수치가 B급으로 측정된 던전이고 던전진입 허가권의 액수가 6억이 걸려있다구요.”
성혜가 만류했다.
시운은 허가권을 따낼 금액도 없을뿐더러 F급 헌터다.
이곳에 가면 그는 분명 죽을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해당 구좌 좀 알려주세요.
“지금 농담하는 거죠?”
-빨리요. 자리가 차면 안 됩니다.
“걱정돼서 그래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육성에 자신감이 가득한 시운의 말에 성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해당 구좌를 알려주었다.
어차피 이시운의 수중에는 6억이라는 거금도 없을 것일뿐더러 B급 던전에 진입하는 것은 자살행위니까.
뭐, 본인이 진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고랭크 헌터의 부탁을 받았으리라.
그런 거겠지.
-감사합니다!
시운의 말을 듣고 수화기를 내린 성혜는 모니터에 시선을 박았다.
그런데 그때.
[해당 구좌로 입금이 완료되었습니다.]
“뭐?”
모니터에 정확히 떠오른 메시지에 성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설마 6억이 입금됐단 말이야? 성급한 손길로 그 출처를 확인해보았다.
키보드를 두드려 입금자명을 확인했다.
[입금자명: 이시운]
그리고.
[마력 측정수치 B로 측정된 912번째 던전의 인원이 추가되었습니다.]
성헤는 떨리는 눈으로 그 인원의 명단을 살펴보았다.
[김한수]
[정미진]
[양동수]
[이시운]
“말도 안 돼.”
윤성혜는 홀로 중얼거렸다. 시운이 해당 구좌를 알려달라고 했을 때 설마 이시운 본인이 진입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다른 헌터의 부탁을 받고 나에게 물어본 것이리라 생각했다.
또한 윤성혜는 시운의 신상정보를 애초에 파악한 상태였다. 그의 집안은 금수저는커녕 서울 월세에 네 가족이 모여 사는 빈곤한 집안이었다. 그에게 6억이 나올 구멍은 없다. 분명 없었다.
그런데 스물네 살 F급헌터 이시운이 곧바로 6억을 입금했다는 사실과 그가 직접 그 던전에 진입한다는 사실은 실로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헌터대출이라도 한 건가? 아니, 그렇다 해도 이건 자살행위라고.’
헌터대출.
헌터가 몇 등급이던 나라에서 최대 4억까지 무이자로 최대 1회 대출을 해주는 제도다.
윤성혜의 미간이 좁아졌다.
뭐, 어떻게 돈을 마렸했든간에, 그가 동급 헌터들보다 특출나다고 해도 이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애초에 공략 허가판정이 떨어진 던전에 입금까지 완료된 이 상황에서 던전 진입을 불허시키는 권한은 그녀에게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거냐고.’
그를 만류하려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그러나 신호음만 길게 들려올 뿐 그의 육성은 들려오질 않았다.
눈꼬리가 찢어지고 차가운 인상의 여성이 방금 도착한 세 명의 헌터에게 시선을 하나하나 주며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A급 헌터 정미진이었다.
그녀는 뒤이어 설명을 덧붙였다.
“…보스 몬스터의 사체에서 나온 아티팩트나 코어, 희귀품은 말한대로 정량대로 정확히 나눠서 회수하는 거에요.”
그녀의 말에 삼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의 마딱찮은 시선이 한 헌터에게 멈췄다.
“그리고 저기요.”
그를 불렀다.
그는 듣고 있으니 더 이야기 하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F급이 무슨 생각으로 이 게이트에 들어가겠단 건지는 모르겠는데요.”
“죽을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죽는다고 해도 그건 제 사정이고.”
그는 그녀가 뒤이어 할 말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답했다.
“휴. 잘 아네요. 운명을 달리하고 싶지 않으면 설치지 않고 뒤로 빠져있던지 본인이 알아서 해요.”
그러자 그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죽고 싶어 미친놈들이 많나보네.’
그녀는 그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F급 헌터가 B급 게이트 던전의 허가권을 구매한 뒤 던전에 진입하려고 저렇게 서있다.
게다가 저 헌터의 표정은 일말의 두려움도 없다는 표정이다.
뭐, B급 던전이야 나와 저 양동수라는 A급 헌터 둘이서도 클리어할 수 있으니 문제는 없다.
다만 저 미친놈은 저곳에 들어가면 죽고 말겠지.
그러던말던 알바는 아니다. 공략허가권을 구입하고 참가한 헌터에게 꺼지라고 할 권리는 미진에게 없다. 돈을 내고 지가 죽으러 가겠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게다가 미진은 헌터의 죽음들을 번번히 봐왔다.
이젠 뭐 아무렇지도 않다.
남의 일에는 굳이 신경쓰는 타입도 아니다. 저 미친놈에게서 관심을 껐다.
그때 동수란 헌터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쪽이 어떻게 되던 나도 상관도, 관심도 없는데 방해만 안 되게 해줘요.”
“알아서 합니다.”
“뭐, 알아서 한다니 다행이고.”
동수는 그의 대답을 듣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삼켰다.
요즘 세상이 흉흉해졌나? 이런 방식으로 자살하겠다는 헌터도 있는 듯 한가보다.
한편 그 틈에서 그를 지켜보던 김한수의 눈빛은 진지했다.
‘저 사람을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협회측과 끈이 있는 한수는 이미 그를 알고 있었다. 협회장이 눈독을 들일 정도로 강한 헌터라는 것과 그가 그림자 전력을 분석하는 임무에 큰 공을 세운 헌터라는 것 또한.
얼마나 강한지는 모른다.
‘다만 나처럼 일부러 랭크를 승격하지 않는 것이겠지.’
한수의 뇌리로 먼 미래가 이미가 희미하게 그려졌다. 무너져가는 현대의 도시 틈에서 인간이 아닌 형태를 한 군단을 이끌며 괴수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는 이미지가.
‘…선명히 떠오르진 않지만 크게 될 재목이다.’
그때 미진의 힘실린 육성이 귓가로 들려왔다.
“이제 들어가죠.”
그녀가 허공에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게이트를 보며 말했다.
그녀가 들어가자 잇따라 동수도 게이트에 몸을 실었고 김한수도 상념을 떨치고 게이트로 진입했다.
혼자 남은 그의 뒤로 창이 솟아오르고 사자갈퀴를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있던 그의 입술이 열렸다.
“헤라클레스. 네가 연기 좀 해줘야겠다. 지금부터 내 이야기 잘 들어라.”
-카아아악!
머리가 두 개 달린 트윈 아나콘다가 아가리를 벌리며 독침을 뿜어낸다. 미진과 동수가 좌우로 갈라지며 독침을 흘려내고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두 머리 달린 아나콘다의 머리 하나는 이미 잘려나간 상태였다. 그 남은 머리 하나가 그들에게로 쏟아졌다.
“동수 씨!”
미진이 외치자 동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건틀렛을 괴수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그때.
쏴아아-!
어디선가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 여파로 비틀거리다 중심을 겨우 잡은 미진은 떨군 고개를 들어올렸다.
‘뭐지? 폭풍?’
미진의 시야로 트윈 아나콘다가 머리의 방향을 틀어 한곳을 주시하고 있다. 주시한 곳에는 이시운이 서있었다.
괴수의 안광이 번뜩였다.
“미친. 위험하니까 빠지라고요!”
미진이 소리쳤을 때는 이미 트윈 아나콘다의 머리가 미사일처럼 시운에게 쇄도하는 중이었다.
파파파파파!
순간 요동치는 바람과 함께 트윈 아나콘다의 비늘이 찢겨지는 소리가 빗발쳤다.
-쿠에에!
순간 트윈 아나콘다의 머리가 수박 쪼개듯이 몇십 등분으로 쪼개져 그 파편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렸다.
쿠웅!
거대한 굉음의 소리는 머리를 잃고 몸통만 남은 괴수의 몸이 대지에 처박히는 소리였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죽었다고?”
미진이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야로 비늘이 갈기갈기 찢긴 채 늘어져있는 괴수의 몸통이 비춰졌다.
분명 트윈 아나콘다는 머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지만 아직 죽을 단계는 아니었다. 트윈 아나콘다를 많이 사냥해봐서 아는 그녀였다.
“설마?”
그녀의 눈이 향한 곳은 이시운이었다. 그는 바람을 휘감고 있는 검신을 슬며시 거뒀다.
“이봐요. 방금 그 공격 설마 당신이 한 건 아니죠?”
미진이 물었다. 물어놓고도 바보같은 질문이었음을 깨달은 그녀였다. 체력이 반 이상은 남은 B급 보스를 육편으로 만들어버린 방금 그 일격은 저 헌터가 아닐 것이다.
“뭐,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요.”
“…?”
미진이 동석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을 읽었는지 동수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그녀가 한수를 바라봤다. 한수는 괴수의 진액이 묻은 얼굴을 닦고 있다.
“한수 씨 막타 좋았어요. 생각보다 강하네요?”
미진의 칭찬에 한수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시운 씨의 막타였습니다.”
“네?”
미진의 당황한 눈이 시운에게로 움직였다.
그는 태연하게 사체의 괴수를 훑고 있다.
그에게 다가갔다.
“…정말 방금 그 공격 당신이에요?”
“여기서 운명을 달리할 놈 치고 꽤나 좋은 막타였죠?”
그가 싱긋 웃었다.
미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안 되지.’
F급 헌터가 기력이 반절이나 남은 트윈 아나콘다를 일격에 쓰러트렸단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아마 이번 트윈 아나콘다는 계산된 것보다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있었을 것이고 운 좋게 저 F급 헌터의 막타가 먹힌 것이겠지.
그렇게 합리화하자 말이 됐다. 가끔은 보스몹들이 생각보다 쉽게 끝날 때가 종종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굳히니 뭐 상황은 말이 됐다.
“뭐, 끝났으니까 잔업만 마무리 하고 돌아가죠.”
미진이 그들에게 말하며 사체에게 다가갔다.
.
.
.
“모두 고생했어요. 이제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어요. 모두 밖으로 나가죠.”
훼손된 사체에서 챙길 것을 챙긴 미진이 말하며 출구로 걸어갔다. 동수도 그녀를 뒤따르다 뒤돌아 이시운을 바라봤다.
‘운이 좋은 거였겠지.’
동수도 의문을 그렇게 합리화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둘은 사라졌고 김한수는 시운에게 눈길을 줬다.
‘역시.. 나처럼 이유가 있어 힘을 숨긴 자였군.’
한수는 괴수의 마지막 그 장면을 생생히 보았다. A급 헌터 둘보다 강한 공격이었다.
예상대로였다.
‘얼마나 강한걸까? S급?’
전력이 어느정도인지는 가늠이 가질 않는다. 최소 날고 기는 A급 헌터 이상일 것으로 추측된다.
“저도 이만.”
손을 툭툭 털고 한수는 시운에게 인사를 남겼다. 어쨌든 할 일은 다 끝난 셈이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조심해요!”
등 뒤로 들려오는 시운의 외침에 돌아보자 사자갈퀴를 쓴 근육질 남자의 창이 날아오고 있었다.
‘뭐야?’
한수가 본능적으로 날아오는 창을 향해 장검을 뻗었다.
퍼억!
사자갈퀴의 창이 더 빨랐다. 창대가 그의 오른손을 두드리자 한수는 장검을 손에서 놓쳤다.
턱!
사자갈퀴가 땅에 떨어진 한수의 검을 회수하고 눈을 번쩍인다.
“이런!”
당황해 뒤로 빠진 한수에게 검 하나가 날아왔다.
“이거 받아요!”
시운이 던진 검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자 한수는 잽싸게 검을 캐치했다.
던전이 클리어 된 상황에서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나다니? 뭐, 이런 이상화 현상이 가끔 있긴 하다.
한수는 시운이 준 검 끝을 사자갈퀴에게 겨눴다. 그런데 사자갈퀴는 창날만 내민 채 공격해 오질 않는다.
그때 시운이 김한수 그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 일부러 찔려주는 거다.’
시운이 일부러 한수가 든 칼날에 손을 뻗었다.
[상대가 흡혈을 하는 중입니다.]
[출혈 상태가 되었습니다.]
“왜 그래요? 괜찮아요?”
한수가 팔을 부여잡은 시운을 보고 물었다.
순간.
“…컥.”
한수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뱉어졌다. 갑자기 전신이 굳어서 움직여지질 않았다.
[스킬의 효과로 당신의 전신에 흐르는 피가 석화됩니다.]
‘…스킬의 효과라니?’
한수는 석상처럼 몸이 굳은 채 눈만 깜빡였다.
순간 시운의 싸늘한 눈빛이 자신의 몸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김한수 씨. 이제부터 나랑 대화 좀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