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68화 (168/278)

제 168화

세상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 빌드업

시운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자신의 건물 앞에 노란색 람보르기니가 고급스런 외형을 뽐내며 주차되어 있다.

‘우리 건물에 저런 차가 있을 리가 없는데.’

시운이 사는 이 곳은 원룸촌이다. 이 근방에서 저런 차는 눈 씻고 찾기도 힘들다.

뭐 건물주라도 온 거겠지.

그렇게 1층 현관으로 들어서려는데.

썬팅 된 람보르기니의 차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운아!”

낯익은 목소리에 시운이 뒤를 돌아봤다.

“태훈이?”

차에서 내린 것은 친구인 김태훈이었다. 그가 시운을 향해 손으로 인사를 했다.

저게 누구 차인가 했더니 저 녀석 차였다니.

“여긴 어쩐 일이야?”

다가가서 물었다. 뜬금없는 만남에 반가움보다 신기함이 깃든 말투로.

“너한테 해줄 말이 있어서 왔어. 잠시 타라.”

시운은 태훈의 조수석으로 몸을 실었다. 차 문이 매끄럽게 아래로 닫히는 그 광경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꽂혀있다.

“여기 우리 집인 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시운의 물음에 태훈은 핸들을 잡은 채 전방만 바라봤다.

잠시 이어지는 침묵.

시운은 그 어색함을 깨기 위해 입을 뗐다.

“잘 지냈냐?”

태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계에서 조만간 누가 널 찾아갈거다.”

“누가 날 찾아와?”

갑작스럽게 그가 방문해서 이해할 수 없는 말까지 하니 이상하다.

“그는 널 죽이려고 할거야.”

“뭐?”

날 죽이려고 한다고? 누가?

그런 의구심이 깃든 눈으로 태훈을 바라보자 태훈의 눈동자가 착 가라앉았다.

“당분간 이계에 있지 말고 피해있어.”

“누가 날 해치려고 한단 거지? 그리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설령 이계에서 누가 그런다 하더라도 태훈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헌터도 아니고 이계라고는 가본 적도 없을 녀석인데.

“그는 그림자 측 사람이다. 더는 네 질문에 답해줄 수 없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다.”

김태훈의 말을 듣는 순간 시운의 낯빛은 놀람과 함께 반가움이 섞여 서려있었다.

-그림자 하나만 생포해와. 네가 얼마나 쓸모있는 물건인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곽대익이 오늘 했던 말이 시운의 뇌리로 스쳐갔다.

어떻게든 그의 입맛을 한 번은 맞춰줘야 한다. 근데 그림자를, 그것도 숨이 붙어있는 채로 잡아다 오라는 말은 암담하게 들렸다.

잡기는커녕 찾는 것조차 일이었다.

그런데 쥐새끼가 스스로 고양이에게 찾아와준다니.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거냐니깐?”

“말했잖아. 그건 알려줄 수가 없다고.”

시운은 더는 묻지 않았다. 태훈은 안 된다고 하면 정말 끝까지 안되는 놈이라 할 아집을 알고 있기에 더는 믈을 수가 없었다.

“너와 내가 이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친구로서가 아닐거다. 부디 만나지 않게 되길 바란다.”

태훈이 말했다. 그의 말이 스산하게 들려왔다.

그 말을 끝으로 태훈은 입을 더는 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가버렸다.

집안으로 들어온 시운은 자그마한 원룸을 반쯤 매꾸고 있는 매트릭스에 걸터앉았다.

‘인맥으로 알 수 있나?’

김태훈은 유명한 공인이다. 그리고 그는 인맥이 넓다.

그 인맥 속에 협회 측 인물이 있다고 치자.

그래도 의아하다. 협회 측에서는 적대 관계에 있는 그림자들의 행보를 알 수가 없다.

김태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없는 말을 할 녀석은 아니다.’

많은 부분에 의구심이 들지만 듣던 중 반가운 사실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그 녀석의 뒷말이 무엇보다 맘에 걸린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친구로서가 아닐 거라고?

일단.

지금은 생각은 젖혀두고 급히 움직여야 할 때다.

쥐새끼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그때 시운의 원룸 안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포탈이 생겨났다.

B급 게이트 던전.

마지막 보스를 기다리고 있는 정미진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헌터 둘 사이로 전방을 주시하며 보스를 기다리고 있는 이시운이라는 헌터가 눈에 들어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진짜.’

저 사람은 F급이다.

앞전에 보스 트윈아나콘다가 맥없이 고꾸라질 때는 단순한 우연이 일어난 줄 알았다.

그런데 헌터 커뮤니티에 요즘 이슈가 하나 떠올랐다.

F급 헌터가 B급 게이트들을 독점한다는 글이었다.

심지어 B급 게이트를 솔로잉해서 클리어 해버린단다.

그게 바로 저 이시운이라는 헌터란다.

이번에도 예약한 게이트에 마침 저 헌터가 참석한 것이다.

그렇게 파티를 맺고 이곳 던전을 클리어 하는 중이다.

그때였다.

사방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면서 전방에 있는 성문이 먼지를 휘날리며 열린다.

열린 성문으로 검은 두 개의 흉광이 드러난다.

“데스나이트왕이에요!”

미진이 외쳤다. 그러자 헌터 둘의 낯빛에 긴장이 서린다.

참여한 헌터 둘은 B급 헌터. 저 데스나이트왕이라는 보스를 공략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보다 강하고, 데스나이트왕을 상대해본 적이 있는 A급 헌터 미진의 지시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미진 씨. 저놈의 전투 방식은 뭐에요?”

헌터 하나가 떨며 물었다.

“데스나이트왕은 B급 보스 중에서도 유독 강해요. 특히 저 녀석이 쥐고 있는 검 보이죠?”

미진의 말에 헌터 둘의 시선이 데스나이트왕이 들고 있는 검에 향했다.

검은 강기를 뿜어내고 있는 곡선 형태의 검이었다.

미진이 말을 이었다.

“저 검은 마혈도라는 검이에요. 명계에서 데스나이트왕이 백만의 마수를 베고 그 피로 만든 검으로 닿는 생물의 피를 빨아들이는 검입니다. 절대 저 검에 피격당하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미진 씨 저놈이 일어났는데요?”

헌터의 말과 동시에 성문 너머로 거대한 의자에 앉은 채 헌터들을 바라보던 데스나이트왕이 몸을 일으켰다.

[…인간들이군.]

치치칭-

마혈도를 손에 쥔 채 일어난 데스나이트왕의 눈에서 살기가 포효하듯 맴돌았다.

그 기운에 헌터 둘이 그대로 얼어버렸다.

미진의 시선이 시운에게로 움직였다.

‘전혀 긴장한 기색이 아니야.’

그 소문이 사실일까.

미진은 데스나이트왕을 공략하는 것보다 저 이시운이라는 헌터의 움직임에 더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하찮은 인간들이 나의 군림을 방해하려 든다면 이 마검으로 처단하는 수 밖에…!]

처컹!

데스나이트왕이 입은 마갑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안에 맺힌 흉광을 번뜩이며 데스나이트왕이 망토를 휘날리며 걸어왔다.

그 모습이 마치 저승사자가 목숨을 거두러 오는 듯 함에 헌터 둘은 사색이 된 채 미진만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이시운이 성큼성큼 데스나이트왕에게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저기요! 같이 움직여야죠!”

“왜 저래요? 저 사람?”

헌터 둘이 소리쳤을 때는 이미 시운의 뒷모습을 멀어져 있었다.

“미진 씨? 저 사람 저렇게 죽을텐데 어떡해요?”

“냅둬요.”

“…네?”

“일단 둬봐요. 죽지 않을 거에요.”

“저 사람 F급이잖아요?”

미진은 더 대꾸하지 않고 이시운을 바라봤다.

헌터 둘은 미진의 눈치를 보며 생각했다.

‘F급 헌터를 저렇게 죽게 두자고? A급 헌터들은 다 이렇게 냉혈한가.’

‘…돕고 싶어도 김미진의 지시가 떨어지기 전에 움직이면 우리가 개죽음 당할테니 일단 가만히 있자.’

치치치칙-

왕이든 마혈도가 시운을 보자 먹이를 발견했다는 것 마냥 괴기스런 소리를 내뿜었다.

왕은 자신보다 한참은 작은 이시운을 가소롭다는 듯 내려다봤다.

[이런 나를 보고도 겁이 없다는 얼굴이구나.]

“시끄럽고 빨리 베어봐. 그 검맛 좀 보자.”

[…뭐라?]

“빨리 베어보라고. 네가 들고 있는 그 무식한 검이 피를 빨아들인다며?”

이시운이 데스나이트왕을 도발하는 저 장면에 헌터 둘이 뜨악했다.

“미진 씨 어떡해요? 저 사람 미쳤나봐요.”

“말리기엔 늦었어요.”

헌터 둘은 앞으로 다가올 시운의 죽음을 이미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한편 미진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도발을 한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 순간 미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데스나이트왕의 마혈도가 허공을 찢으며 움직였기 떄문이다.

‘일부러 검에 맞은거야.’

미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편 이시운은 떨어뜨렸던 고개를 들어올려 데스나이트왕을 그대로 바라봤다.

“고작 이 정도냐.”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분명 내 마혈도가 네 놈의 몸에 닿았을텐데!]

데스나이트왕은 멀쩡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이시운을 보며 놀라워했다. 더 놀라운 것은 웃고 있다. 고작 인간 따위가 명계의 군왕이라 불리는 자신을 보고 말이다!

[고약한 것! 그대로 죽여주마.]

데스나이트왕의 마혈도가 더욱 강기를 발산하며 다시 한 번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떨어지던 마혈도가 시운의 목덜미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

[인간 놈이 감히! 내게 무슨 짓을 한게냐!]

데스나이트왕은 거동을 멈춘 채 몸을 떨 뿐이었다.

미진의 입이 스르르 벌어졌다.

‘움직임이 멎었어..’

의아스러운 광경에 헌터 둘이 미진의 눈치를 살폈다.

‘저건?’

그때 미진의 눈이 다시금 뜨였다.

시운의 좌우로 또다른 신형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짐승의 갈퀴로 보이는 것을 쓴 남자와 긴 초록 머리의 여성이었다.

“!”

“미진 씨. 데스나이트왕은 소환하는 능력도 있어요?”

“없어요….”

“네? 그럼 저건 뭐에요?”

“데스나이트왕이 소환한 게 아니에요.”

미진의 육성은 떨려왔고 헌터 둘은 그게 무슨소리냐는 눈이었다.

그때였다.

“메두사. 헤라클레스. 요리해.”

시운의 말에 두 남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박차오른 사자갈퀴의 창이 데스나이트의 미간을 꿰뚫었다.

마치 그 모습이 사자가 괴수를 물어뜯는 것 같았다.

머리가 뒤로 젖혀진 데스나이트왕 주위로 생겨난 수많은 살모사들이 데스나이트왕의 목덜미까지 기어올라 미친 듯이 살을 물어뜯었다.

[크아아아악…!]

처절한 고성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눈, 귀, 입, 코 등등 모든 구멍으로 피를 쏟는 데스나이트왕이 짖는 고함에는 괴로움이 그대로 깃들어있었다.

“……미진 씨?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죠?”

“몰라요.”

“저거 설마 …아니죠?”

“그 설마가 맞는 것 같은데요.”

미진은 설마 뒤 이어질 말을 듣지도 않고 답했다.

쿠우웅!

거한이 넘어가는 소리가 묵직하게 터졌다. 명계의 군왕이라 불리던 데스나이트왕의 끝은 허무했다.

곧이어 남녀 둘의 신형은 사라졌고 시운은 뒤를 돌아다봤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끝났네요. 마무리 합시다!”

마무리란 사체에게서 회수하는 작업을 뜻한다. 미진과 헌터 둘은

시운에게 걸어갔다.

헌터 둘은 빤히 시운을 쳐다봤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시운의 짜증에 헌터 둘의 눈이 토끼눈이 되었다.

“나 덕분에 골치 아픈 놈 힘 안들이고 빨리 처리했는데 고맙다는 말부터 안합니까.”

시운의 말에 헌터 둘이 얼음이 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네.”

“더, 덕분에 안 다치고 끝났네요. 그런데…”

헌터 둘은 뒤이어 말을 잇지 못했다. 시운에게서 발산되는 이상한 살기에 도무지 더 말을 붙일 용기가 나질 않았기에.

헌터 둘은 시운과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자기 몫의 사체회수 작업을 끝내고 시운의 눈치를 살살 보더니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입을 다물고 있던 김미진의 입이 움직였다.

“당신 F급 아니죠? 그럴 수가 없어, 절대.”

소문은 사실이었다.

F급일 리가 없다.

하물며 방금 보았던 그 소환 스킬은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은 김미진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신분세탁을 한 헌터일 것이다.

“믿지 못해서 묻는 거라면 더 안 물어도 돼요. F급 맞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강할 수 있는 이유.. 설명할 수 있나요?”

미진은 이제 쏘아붙듯이 물었다.

미진이 알고 있는 F급의 전력을 한참 뛰어넘고도 자신보다 강한 F급이 존재하리라고는 믿고 싶지도 믿기지도 않았다.

“믿기지가 않나요?”

“당신이라면 믿겠어요?”

“당신이 무시했던 F급 헌터가 알고 보니 당신보다 강하니까 믿고 싶지 않은 건 아니고?”

“…뭐요?”

미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편으로는 그 속내가 들킨 것 같음에 화가 났다.

‘신분세탁을 한 헌터가 분명해. 협회측에서 고용한 병기겠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협회측에서 고용된 헌터 중에는 신분을 세탁한 헌터들이 많다.

신상의 노출을 금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잔업을 마무리 한 미진에게 찝찝함이란 가시지가 않았다.

‘더 물어봤자 아무것도 답해주지 않겠지.’

드드드드!

공간이 점점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진은 시운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출구 게이트로 향했다.

한편 시운은 그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데스나이트왕의 사체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또 하나의 탄생이 시작되는 순간이군.’

시운은 엉망으로 죽어있는 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흡수. 일어나라…!”

그 순간 데스나이트왕의 감겨있던 눈꺼풀이 번쩍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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