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0화
천세정
블랙헌터.
일명 그림자인 나츠류를 잡아다 곽대익에게 넘겼다.
“잡아왔으니 쥐어짜내야겠군. 오징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오는 법이지.”
대익은 흡족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나츠류는 기억을 읽어내고 추적해내는 그녀가 속해있는 고문전담반에 넘겨졌다.
그리고 고문을 당하면서 토해낼 것을 토해내겠지.
토사구팽을 당하기 전 사냥개가 주인에게 믿음을 준 뒤에 주인을 물어뜯어 죽인다.
그게 나의 목표다. 근데 지금은 사냥개가 아닌 투견장에 올려도 될 개인가? 라는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
확실한 사냥개가 되기 위해선 신뢰를 더 얻어야 했고,
쉼없이 움직였다.
부협회장 윤동석과 관계된 자들의 뒤를 밟아 그들의 동선을 기록했다.
사실 시운의 몸으로 그들을 미행하는 것은 리스크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소환이였다.
“헤라클레스. 아주 잘했다.”
시운의 말에 헤라클레스가 눈을 깜빡였다.
소환한 헤라클레스의 외형은 현대인처럼 깔끔했다.
“내가 널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쏟았는지 알지?”
“…예.”
“좀 덜 딱딱하게.”
“…어,어.”
“반말을 하라고 한게 아니잖아.”
“…그런가?”
녀석의 말에 시운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 녀석은 말없이 미행과 동선을 밟는 임무만 시켜야겠다.’
소환수 헤라클레스는 말재간이 없다. 힘은 세지만 빡대가리란 소리다.
그럴 일은 없지만 혹여나 경찰이 불시에 검문을 한다던지, 누군가가 수상하게 볼 때를 대비하여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긴 했지만 녀석은 너무 단순하다.
그래도 시운이 직접 뒤를 밟는 것보단 나았다.
시운에게는 은신이라는 스킬이 있다.
하지만 그 은신이라는 스킬은 제한이 있으며 혹여나 은신이 해제되는 그 순간에 목격자나 블랙박스나 시시티비에 그 모습이 찍히기라도 한다면 리스크는 너무나도 컸다.
그 옆으로 모자를 깊게 눌러쓴 메두사가 다리를 꼰 채 시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인간아. 난 피맛을 보는걸 좋아해서 네가 시키는 것에 따르는 것일 뿐이야.”
메두사가 말했다. 그 말에 의미는 전투 외에 다른 걸 시키지 말란 거였다.
그녀의 머리는 후드모자로 완전히 가려져있다.
혹시나 저 뱀으로 된 머리카락이 노출되면 골치아파지니깐.
소환수마다 성격과 성향이 이렇 듯 달랐다.
메두사는 혀를 낼름거리며 헤라클레스의 몸뚱이를 위 아래로 훑는다.
“야, 야. 헤라클레스는 적이 아니라고.”
“누가 뭐라 하디?”
“휴….”
메두사는 뱀을 조종하는 능력자다.
이 녀석은 두 가지 용도로 사용 중이다.
통신기기를 비롯한 주변 전자기기를 순간적으로 무마시키는 역할로 사용 중이다.
이를테면 핸드폰이라던가 시시티비, 블랙박스, gps 추적장치 등을 무마시키는 용도로.
모든 곳의 시시티비를 망가뜨릴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의심을 사게 되기 때문에 우연을 가장한다는 느낌이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작은 뱀에 녹음기 또는 추적장치, 카메라를 먹이고 녹음, 촬영을 시키는 용도.
그런 면에서 메두사는 아주 쓸만은 했다.
싸가지가 없어서 문제지. 뭐, 이건 통솔력 좀 더 올려주면 해결될 문제 아닐까?
그리고 옆에 살기를 쏟아내는 데스나이트가 시운을 빤히 바라본다.
“야, 야. 무서우니까 그렇게 좀 쳐다보지 말라고.”
시운의 짜증에도 데스나이트는 다른 곳을 보지 않고 오로지 시운만을 바라본다.
그 무표정한 얼굴의 싸함은 직접 봐야 안다.
데스나이트는 아직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는 미지수다.
정말 긴급한 상황에 누군가를 죽이는 역할 말고는 쓰기에는 매우 다혈질적인 놈이다.
시운은 상념을 떨치고 생각했다.
윤동석과의 연줄을 모조리 미행하고 파헤쳤다.
동석의 부적절한 로비 행각은 녹음파일과 영상으로 증거를 확보한 상태다.
그러나.
이걸로는 아직 동석을 보내기엔 부족하다.
헌터가 너무나 중요한 세상인 지금 이 세상에서
놈의 파워는 일국의 국무총리급 이상이다.
자잘한 로비 증거 몇개로는 놈을 단번에 보낼 수는 없다.
이 세상은 그렇게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법이니까.
위이잉-
시운은 컴퓨터 본체에 연결되 USB를 뽑았다.
일단 갈 곳이 있었다.
곧장 그는 집에서 좀 떨어진 카페로 향했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키고 자리에 착석했다.
“이게 뭐냐? 산삼으로 달인 물처럼 쓰고 맛대가리가 없다.”
메두사가 얼굴을 찡그렸다.
“대충 먹는 시늉이라도 해. 토달지 말고 내가 시킨 거 알지? 지금이야.”
“주는 건 없으면서 정말 많이 시키는 구나.”
검은 후드자켓을 쓴 메두사. 그녀의 소매로 지렁이만한 뱀들이 뻗어나왔다.
뱀들은 순식간에 이동한다.
타닥!
작은 파열음이 들렸지만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시시티비 속 전선을 끊은 것이다.
“…이제 됐냐?”
그녀의 물음에 시운은 잘했단 듯 입꼬리를 올렸다.
시운의 눈이 카페 밖으로 향했다.
이 카페 앞으로 주차한 차들은 딱 한대.
저 차의 블랙박스로 방향으로는 지금 내가 카페에 있는 모습을 담을 수 없다.
주위의 길거리 시시티비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사각지대를 완성한 상태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상태고 커피도 현금으로 결제한 상태다.
‘그럼 이제 해볼까.’
곧바로 노트북을 열고 USB를 꼽는다.
타타타다닥!
키보드를 빠르게 움직인 손이 곧 멈췄다.
‘끝났다.’
윤동석을 따르는 세력들의 로비가 담긴 파일들을 모조리 기자들에게 제보했다.
그리고 발신한 일회용 메일은 폐기했다.
게다가 이 노트북의 랜선은 카페의 와이파이를 통해 연결한 상태.
“메두사. 이 노트북 바로 폐기해.”
이 노트북은 이런 일회용 용도로 산 것이었다.
당연히 이 노트북으로 그 어떤 웹사이트에도 로그인 하지 않았고, 한 번도 쓰지 않은 상태다. 혹여나 신상이 노출될 모든 리스크를 배제하기 위해서.
.
.
.
-한국헌터협회 주요 인사들 성접대 관련 영상 확보?!
-누군가에 의해 보내진 증거들! 그 실체는?!
-단독! 정계와 로비한 협회 임원들 포함 직원들의 수만 대략 200명?! 또한 마약을 하는 모습까지 담겨있다?
-이 증거들은 확보한 자는 대체 누구일까?
기사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이걸로 동석의 목을 칠 수는 없겠지만, 그를 바쳐주는 세력을 묶어둘 수는 있을 것이다.
시운은 연신 떠오르는 기사들을 핸드폰으로 확인한 후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협회장 곽대익에게는 이 사실들을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시킨 미행과 동선파악에 대한 것들만 보고할 뿐이다.
그에게 이 사실들을 보고하면 신뢰를 살 수는 있겠지만, 능력에 의심을 받을 것이고 위험에 빠질 리스크가 컸으니까.
“메두사. 헤라클레스. 당분간 너희들은 소환하지 않겠다.”
“…뭐냐? 시킬 건 시켰으니까 이제 필요없다는 뜻이냐?”
메두사가 틱틱거린다.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충분히 설명했다.
최대한 리스크를 배제하며 움직였지만 메두사와 헤라클레스의 얼굴은 어느 시시티비든, 누군가의 기억 속에든 자리한 상태일 것이다.
부협회장 세력들을 제보한 익명자가 누군가냐는 것에 세상의 이목이 다한 시점.
당분간 현계든 이계든 소환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곳에는 맛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꼭 불러줘야해. 사자가 있는 동물원도 가보고 싶군요.”
헤라클레스가 아쉽다는 듯 말하며 사라졌다.
“살이 야들야들하고 멧돼지처럼 풍부한 덩치를 가진 놈을 발견하면 반드시 그때 날 불러다오…. 피맛이 보고 싶단 말이다.”
메두사는 그 말을 하고 사라진다.
그녀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김유한....”
시운이 혼자 중얼거렸다.
경호원을을 대동하고 다니는 윤동석과 몇 차례 만남을 가진 녀석인데 이상하게도 녀석은 평범한 가정의 한 소년이었다.
윤동석의 사촌 뭐 그런 거? 당연히 아니였다.
더 놀라운 것은 메두의 뱀을 통해 확보한 장면에서 윤동석은 그 소년의 한마디 한마디에 머리를 조아렸다. 심지어 그 소년이 따라주는 술을 무릎을 꿇고 받는 그 모습은 신하가 왕에게 보이는 그런 태도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근데 그 소년의 얼굴을 봤을 때 어디서 본 낯익은 얼굴이었다.
미스테리한 일이다.
-그 존재는 손아귀에 윤동석이 있다. 그는 곧 재림할 것이다.
꿈속의 전쟁에서 김호용이 했던 말이다.
순간!
시운의 뒷목에 있던 털이 모두 솟는 듯 했다.
그 존재가 설마 그 소년이라면?
그게 말이 되나?
일개 평범한 흙수저 집안의 아들이?
좀 더 알아봐야겠다.
일단 당분간은 근신해야 한다.
한 달 반이 지났다.
앞으로 둠스데이까지는 약 5개월도 안 남은 셈이다.
나츠류는 연이은 고문과 각성한 그녀의 투시 능력을 몸으로 받아내다가 결국 죽었다.
그에게서 알아낸 사실은 딱 한가지라 들었다.
그게 뭔지는 모른다.
일단 근 한 달 반은 조용히 지내야 했다.
제보한 익명자가 시운이라는 사실에 말이다.
부협회장의 끄나풀들은 현재 세상의 수면 위로 떠올라 수사를 받고 있다.
곧 모조리 검찰에 송치될 것이다.
‘김유한.’
그놈이 내일 윤동석과 만날 것이다.
녀석이 있는 곳으로 내일 갈 생각이다.
상념을 떨친 시운의 눈에 한 카페가 들어왔다.
오늘 천세정을 만나기로 한 날이다.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시야로 길을 지나가는 여성들의 시선이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와…. 페라리다.’
‘저거 몇 억 하지 않나?’
‘저런 차에 운전하는 사람도 존잘이야...’
몇 달 전에 계약하여 출고된 페라리를 모는 중이다.
저런 시선들은 아직 적응이 되질 않는다.
차를 세우고 문을 열었다.
화려하게 올라가는 오픈카의 차문을 통해 내린 시운을 누군가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천세정이었다.
“날 부른 이유가 뭐야?”
내려서 걸어와 인사도 없이 묻는 시운을 세정은 어색하게 바라봤다.
“저 차는 처음 보는 차인데.. 언제 산 거야?”
세정이 물었다. 그녀의 눈이 페라리를 향해 가있었다.
정차한 페라리는 슈퍼카답게 화려한 자태를 뿜어낸다.
그녀의 그 시선은 호감보다는 단순히 신기하다는 듯한 눈길이었다.
그녀는 김치같은 여자가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시운이다.
“그냥 뽑은지 얼마 안 됐어.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뷰가 굉장히 좋은 3층 카페로 들어간 둘은 커피 하나를 두고 자리에 앉은 채였다.
세정의 볼이 뾰로퉁하게 불어올랐다.
시운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너 나한테 하기 힘든 부탁할 거 있지?”
“…뭐?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널 한 두 번 보냐.”
시운의 말에 세정은 말을 잠시 잇지 않았다.
그녀의 에르메스 가방 위에 얹여진 그녀의 손가락이 까딱거린다.
말을 꺼내기 힘들어 불안하단 몸짓이다.
“뭔데? 얘기해봐.”
시운의 말과 동시에 세정의 뇌리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세정아! 그 녀석이 니 친구라며? 반드시 따와야 한다. 아빠가 부탁 좀 하자.
“끄음….”
남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성미가 아닌 세정은 커피 속 빨대만 휘휘- 저어 입으로 빨기만 할 뿐이었다.
세정은 머리를 위로 쓸어올렸다.
하. 친구라면 친구이자 소중한 사람인 시운이에게 이런 부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좀 그래.
Ks기업의 본부장인 그녀는 현재 자신의 회사에 대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고랭크 헌터들은 죄다 초일류 대기업이 독점한 상태다.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계의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공장 하나의 전력을 내는 유니크의 뿔이라던가. 시스템 과부하를 단숨에 막아주는 베가아크릴이란 희귀 물질. 마정석 등등 말이다.
Ks기업에서 전속으로 독점한 헌터들은 높아야 B랭크였다.
그래서 A급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것들은 구할 수가 없는 실정이였고.
타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기업은 점차 일류 선상에서 뒤처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요즘 시운의 존재는 헌터들 사이로 입소문이 퍼진 상태다.
그들 사이로 그가 불려지는 별명은 Sf였다. ‘S급 같은 F급 헌터’.
우리에겐 시운이가 필요해.
그녀가 입술을 앙, 깨물었다.
세정은 어렵게 입을 뗐다.
“시운아. 나 정말 부탁이란 건 정말 안하는 타입인 거 알지?”
“말해봐.”
“그냥 본론부터 말할게. 우리 회사랑 계약하지 않을래? 조건은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가 맞춰줄 수 있어.”
“얼마든지 맞춰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
대답한 세정의 두 눈이 떨렸다.
그녀의 눈이 시운의 팔로 향했다. 그의 팔에는 고가의 시계가 휘감겨있다.
‘헌터가 된 이후로 확실히 여유가 생겼구나, 너...’
천원짜리 삼각김밥을 먹을 돈이 없어서 천원만. 하고 칭얼거리는 그 시운이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녀석의 눈빛은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게다가 말하는 말투와 육성까지 뭔가 달랐다.
내가 알고 있던 시운이와는 먼 느낌이야. 달라.
그러던 그때였다.
“얼마를 주던 너희 회사와 계약할 생각이 없다.”
그의 말에 세정의 눈이 커졌다.
부탁을 자주 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세정이부탁만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겠다고 말하던 시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으니까.
“…조건은 최대한 맞춰줄게. 편하게 얘기해봐.”
“아니. 세정아 난 돈에는 관심이 없다.”
돈에 관심이 없다고?
그때.
콰드득. 시운의 손에 커피를 담았던 플라스틱컵이 구겨졌다.
그는 구긴 플라스틱컵을 그대로 던져 반대편 먼 분리수거함의 작은 구멍에 그대로 골인시켰다.
일반인이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세정은 머리를 흔들고 시운을 바라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운의 두 눈빛은 본래의 시운의 눈과는 달랐다. 자신을 흔들림 없이 바라보는 시운의 눈을 마주하기가 뭔가 힘든 느낌에 시선을 떨군다.
‘사실 나도 이런 상황이 좋지만은 않아. 너와 이런 이야기들을 해야하는 이 상황이..’
그런데 그때였다.
“넌 내가 널 좋아하니까 너의 부탁이면 뭐든 다 들어줄 줄 알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