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71화 (171/278)

제 171화

천세정 그리고 저택 침투

“뭐?”

시운의 말에 순간 세정의 입에서 반문이 튀어나왔다.

몇 초간 침묵한 둘의 시선만 조용히 맞물렸다.

아니. 이게 아닌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은 시운이가 아니야.

“…그런 의미가 아니고 제안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오해하진 말아줄래?”

“아니. 오해한 건 너 같은데? 난 그냥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시운이 세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따라 시운이가 낯설다. 아니……. 오늘따라가 아니라 그때부터였다.

식사를 하다 자기 말을 하고 그대로 나가버렸을 그쯤부터?

세정의 검지손가락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당황할 때마다 나오는 그녀의 특유 버릇이다.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일은 일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 회사와의 계약에 관심 없어.”

시운은 못이라도 박듯 뜻을 말했다. 그의 말에 세정은 머리가 아팠다. 사실 시운에게 이런 계약을 권하는 것도 편치 않다.

너무 가까운 사이였던 시운과 일적으로 엮인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니까.

순간 천상진의 육성이 다시 들려오는 듯 했다.

세정은 생각을 떨쳐내듯 머리를 흔들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존중해. 기분 나쁘게 듣진 말아줬으면 해.”

“기분 안 나빠.”

“음….”

시운을 보던 세정의 두 눈동자가 떨렸다. 힘이 실린 단호박같은 그의 태도가 참 낯설다.

그때였다.

“저기요?”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세정이 돌아봤다.

30대 초반쯤 되는 남자가 멀뚱히 서서 세정을 바라보고 있다.

“…왜 그러시죠?”

“앞에 계신 분이 남자친구세요?”

“…네?”

세정은 당황함에 시운을 바라봤다. 시운의 미간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아닌데요? 왜요?”

“아, 남자친구신지 물어본 이유가 제가 웬만하면 이런 데서 번호 안 따는데 너무 예쁘셔서…….”

“아, 괜찮아요. 가세요.”

세정의 거절에도 남자는 해맑게 웃었다.

“아…. 진짜 제가 아무한테나 이러는 사람은 아닌데... 진짜 제 이상형이라서요. 번호만 알려주시면 그냥 갈게요.”

“괜찮다니까요? 가시라고요.”

세정에겐 늘상있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서 차갑게 거절했다.

“번호 주시면 갈게요.”

자꾸 치근덕거리는 남자를 말없이 보던 시운의 손가락이 튕기듯 움직였다.

그때였다.

“어머! 괘, 괜찮으세요?”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고 뒤편에서 커피가 날아와 남자의 얼굴에 쏟아졌다. 그것을 본 커피 주인이 어쩔 줄 몰라하며 묻고 있었다.

“아…. 씨발.”

커피로 범벅이 된 30대 남자의 얼굴은 흑인처럼 까맸다. 그가 욕지기를 하며 손으로 얼굴을 벅벅 닦고 있었다. 그의 정수리 바로 위에 올려진 얼음을 시운은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당신 미쳤어?”

“죄, 죄송해요. 갑자기 커피가 날아가는 바람에…….”

사과하는 여성도 당황이 역력한 듯 했다. 카페 문은 닫혀 있었고 바람이 불어올 구멍은 어디도 없다. 근데 난데없이 바람이 불어왔고 플라스틱 뚜껑이 열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옆에 있던 남자의 얼굴에 쏟아졌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하, 씨발. 커피를 던진 것도 아니고 뭐 이딴 경우가 다 있어?”

남자는 씩씩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여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지? 어디서 갑자기 바람이 분거야?’

그녀는 얼빠진 표정으로 잠시 서 있다가 가버린다.

시운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윈드니스로 이 정도 컨트롤까지 가능해졌군.’

귀찮게 찝적거리는 남자를 능력 한 번으로 보내버렸다. 물론 반대편 쪽 커피가 뜨거운 아메리카노였다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가 화상을 입었을 테니까.

뭐, 아무튼.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긴 하네.”

시운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세정은 낯선 시운을 멍하니 바라봤다.

“난 바빠서 이제 그만 가야겠어. 오랜만에 얼굴 봐서 좋았다.”

“…바빠?”

그가 바쁘단다.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 전화만 하면 바로 튀어나오고, 할 일도 없이 같이 있어주던 그 녀석의 모습이 없다.

시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세정은 그를 따라나섰다.

“시운아. 이제 내가 불편한 거야? 이야기를 해줘.”

“…불편?”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불편한 게 아니고 선을 긋는 거다.”

“선을 긋다니? 나한테 선을 그을 필요까지…….”

세정의 말끝이 흐려졌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갔다. 친구 사이였다가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썸을 타다가 답답하단 이유로 그를 거절했던 건 세정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편하게 굴면 오히려 이상한 거니까.

“넌 내가 남자로는 보이냐.”

“그건…….”

시운의 말에 세정은 얼버무렸다.

순간 시운의 얼굴이 가까워졌고 그의 입술이 닿는 감촉이 들었다.

“…!”

놀라 눈이 커진 세정의 주위로 사람들이 힐끗거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세정이 고개를 빼려하자 시운의 손이 세정의 뒷목을 휘감았다.

“음…!”

그의 혀가 내 입으로 들어와 내 안을 휘젓는다. 뭔가 모르게 입을 뗄 수가 없다. 순간 야릇한 기분에 몸에 힘이 빠지는 듯 했다.

뭐지? 이 녀석의 스킨십을 거절할 수가 없어……. 원래 알던 시운이와 달라.

* *

시운은 조수석에 세정을 태우고 말없이 차를 몰았다.

이미 희정에게는 이별을 고한 상태다.

‘난 이제 세정에게 목을 맬 이유는 없다.’

돈은 가질만큼 가졌고, 또 들어올 예정이다. 얼굴도 직업도 딴 놈에게 꿀릴 것이 없고 예전의 그 고구마 한 바가지 쑤셔넣은 나란 없다.

시운은 세정을 바라봤다.

그녀는 조수석에서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이다.

‘그 빨간머리 자식이 널 좋아해서 후생의 나에게 그 감정이 전해지고 있는 것도 있겠지. 근데 난 그 빨간머리가 아니야. 내가 좋아하고 싶으면 좋아하고 아니면 아닌 거다. 그 자식의 감정 때문에 네가 좋은 게 아니다. 그 자식이 아니었더라도 난 널 좋아했을 거야. 근데 이젠 더이상은 네게 휘둘리진 않는다.’

예전과 난 다르다.

그뿐이다.

“니가 내 스킨십을 받은 것은 날 남자라고 생각했으니 받았다고 생각할게. 그게 아니라면 넌 날 가지고 논거야.”

“…그런 거 아니야.”

“만약 그런 거라면 지금 당장 말하고 여기서 내려.”

시운의 말에 세정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노래를 틀고 드라이브를 하며 소소하게 대화를 나눴다.

분위기의 주도권은 뭔가 시운에게 있는 듯 했다.

* *

구우우웅-!

검은 바이크가 빠르게 길을 누비고 있다. 유석이었다.

그는 바이크를 몰며 생각했다.

‘종우를 다시 만날수도 있다고?’

이시운.

그가 내게 말했다.

그토록 살리고 싶은 내 동생 종우를 만나게 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대신 명계의 ‘그곳’에 가야한단다. 그 ‘신’이 있다고 알려진 그곳에 말이다.

가능한 이야길까?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라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30분동안 몰던 바이크를 세우고 옆을 바라봤다.

으리으리한 단독주택의 광경이 그의 망막에 비췄다. 여긴 윤동석의 저택이다.

우선 해야할 중요한 일이 있다.

저택을 에워싼 경호원들은 유석을 보고 무전을 때린다.

잠시 후.

그들이 비켜준 틈으로 유석이 걸어가 집안으로 향했다.

“왔는가?”

동석이 유석을 반겼다.

그 주위로 세 명의 남자가 서서 유석을 바라보고 있다.

“반갑습니다, 부협회장님.”

인사를 하고 동석에게 자료를 넘겼다.

“그래. 이 놈이란 말이지?”

부협회장은 서류에 눈을 둔다.

서류 속 사진을 보던 동석의 눈에 살기가 돈다.

“이한석 주무관?”

“확실합니다.”

“이 토막내 씹어 죽일 놈이 그것들을 다 제보했다는 말이지?”

“네.”

유석의 말을 동석은 신뢰하는 듯 했다. 그럴만도 한게 근 몇 개월동안 유석은 윤동석의 개 노릇을 하며 시키는 일을 하며 눈에 든 상태다.

장유석. 그가 부협회장의 이런 일들을 할 기회가 생겼던 이유는 이시운과 동석의 딸 성혜의 연줄 덕분이었다.

‘내가 스파이 노릇을 할 줄이야….’

이시운이 시킨 것이 아니다. 시운을 돕기 위해, 그리고 그 날을 막기 위해 자처한 거다.

그렇게 생각할 쯤.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윤동석과 남자 셋이 곧바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오, 오셨습니까?”

부협회장이 떨고 있다. 대한민국의 거대 권력줄인 그를 이렇게 떨게 할 사람이 정말?

유석이 뒤를 돌아봤다.

그의 눈에 앳된 소년의 얼굴이 들어왔다.

“앉아라.”

“네, 네. 카인님!”

“…여기서는 그 이름을 부르지 말라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동석이 식은땀을 뺀다.

시운의 말대로 김유빈이었다. 근데 그 옆에는 그도 있다. 이시운의 친구…!

“…넌 뭐냐?”

유석에게 묻는 유빈의 물음에 동석이 대신 대답했다.

“제 직원입니다.”

“…직원?”

직원이 무슨 뜻인 줄은 유빈도 알고 있다는 듯 했다. 유석은 유빈의 눈에서 나오는 살기에 시선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범상치가 않은 자라는 건 직감으로 알겠다.

‘움직인다. 이제 시작이야.’

이시운이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 유석은 볼일을 본다 말한 뒤 화장실로 가서 화장실의 창문을 열었다.

‘이곳으로 들어오겠지.’

이 창문 틈새로 소형캠을 입에 문 뱀 한 마리가 들어올 예정이다.

경호원들에 의해 전자기기 소지 유무 검사를 받은 터라, 유석이 그 일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 *

시운은 차 안에서 노트북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그 노트북에는 지렁이만한 살모사를 통해 영상이 송출되고 있었다.

“태훈아. 니가 대체 왜 거기에 있는거냐?”

목표대상인 김유빈 옆을 김태훈이 지키고 있다.

둘 사이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정한수란 놈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놈은 알아서 없애라. 그리고 ……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 날은 둠스데이를 말하는 거겠지.

부협회장과 유빈의 대화를 듣고 있다. 동시에 녹화도 하고 있는 상태다.

정한수. 부협회장의 동앗줄을 잡은 놈이자, 이시운의 첫 교관. 뱀같은 인성을 지닌 놈이다.

정한수. 그 놈이 내 뒤를 밟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가신 그놈에게 그 비리를 제보한 놈이란 누명을 뒤집어 씌울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말해라. 그럴수록 확실한 증거가 되니까.’

계속해서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을 지켜봤다.

“…언제 되는 것이냐!”

조수석에 앉은 메두사가 닦달한다.

“기다려.”

“칫.”

그날을 막기 위해 저 김유빈이라는 녀석을 힘으로 죽이는 일은 리스크가 크다.

함부로 사람을 죽였다가는 정말 인생이 꼬여버린다. 게다가 저 김유빈이라는 놈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측정도 불가능한 상태다.

꿀걱-.

마른 침을 삼키던 시운의 눈이 순간 커졌다.

영상 속 김유빈과 눈을 마주친 것이였다.

이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뭐, 뭐야?”

뭔가… 날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다. 설마?

그때였다.

-감히 날 엿보고 있는 기분이 어떠냐.

영상 속 김유빈이 섬뜩하게 말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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