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2화
지옥의 신 하데스 (1)
“어떻게 눈치챈 거지?”
그때 영상 속 김유빈의 표정이 변했다.
그 순간.
“으허어어억!!!!!!!!”
옆에서 메두사의 비명이 쏟아졌다. 그녀의 몸끝부터 검은 핏줄이 머리까지 샘솟고 있었다.
“소환 해제.”
[소환수의 소환이 해제되었습니다.]
급하게 메두사의 소환을 해제하자 송출되던 영상이 그대로 꺼져버렸다.
“들켰다.”
들킨 것도 문제인데 김유빈이라는 놈 현계에서 기괴한 능력을 사용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때였다.
“피해라. 주인놈아. 네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제멋대로 소환된 일미호가 뒤에서 말해왔다. 일미호는 생물체의 공력을 느낄 수 있다.
상황이 빠르게 파악이 됐다.
‘맹인의 감각.’
[모든 감각에 집중됩니다.]
만물의 소리와 기척, 기운들이 섬세히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디? 확실하냐.
-주위 수상한 사람을 찾으래.
-일정 반경 안으로 주차된 차량도 모조리 수색해!
경호원들의 말소리였다. 뒤이어 그들의 뜀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날 찾고 있군.’
부르으응!
시운은 곧바로 액셀을 밟고 차를 몰아 그 자리를 피했다.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듯 했다. 그래도 얻은 건 있다.
일단 장유석은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 *
동석의 저택 안.
눈을 감고 있던 유빈이 눈을 떴다.
“나의 정체를 아는 자가 또 있군.”
그의 육성은.
주위 모든 이들의 표정이 떨릴 섬뜩했다.
유빈의 눈이 동석에게 향했다.
“저는 누구에게도 카인님의 존재를 발설한 적이 없습니다.”
그 시선에 동석은 손사레를 치듯 답했다.
다시 유빈은 질끈 눈을 감았다.
“너.”
그가 태훈을 가리켰다.
태훈은 꿈틀거리는 뱀을 들고 그 뱀을 요리조리 살폈다.
“제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송출을 너무 빠르게 끊었기 때문에 추적이 불과할 듯 합니다.”
꿈틀거리는 살모사를 김유빈이 번뜩 쳐다보자 살모사의 가죽이 벗겨지며 늘어진다.
“난 당분간 현계에 나타나지 않겠다.”
유빈은 그 말을 끝으로 태훈과 함께 자리를 피했다.
쿵쿵!
유석의 심장이 가파르게 뛰었다.
긴장한 내색이 숨으로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그것을 억지로 참으며 동석을 바라봤다.
윤동석은 담배를 입에 물며 무전으로 주위 몇 백미터 반경으로 수상한 자가 있으면 모조리 검문하라고 말하고 있다.
유석의 작은 숨이 흘러나왔다.
‘실패로 돌아간건가...’
* *
“다신 현계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했어.”
유석이 시운에게 말했다.
현계에 다신 나타나지 않겠다면 이계로 가겠다는 거군.
시운은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그의 태블릿으로 송출되었던 영상은 녹화 파일로 저장된 상태다.
그러나.
이 영상만으로 증거가 되지 못한다.
녹화된 영상에는 구체적인 범죄 정황을 유추할만한 대화내용은 없었으니까.
이 정도로는 권력자를 처단한 무기가 되지 못한다. 허나 알아낸 놀라운 사실은 있다.
이걸 곽대익에게 넘길 수는 없다.
내 힘이 대익에게 노출될 수도 있고 장유석 또한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방해요소들이 많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유석이 물었다.
“후-.”
시운은 숨을 뱉으며 포탈을 열었다.
유석은 열린 포탈을 바라봤다.
“...이건?”
“이계로 가야 돼. 어쩌면 둠스데이를 막지 못할 수도 있다. 대비해서 내가 빈틈없이 강해져야 해.”
정말 종말의 날이 올지도 모른단 직감이 들자 행동은 빨라졌다.
둘은 그대로 이계로 향하는 포탈로 몸을 실었다.
* *
지옥의 소리들이 울린다.
지옥의 소리? 죽은 망자들의 억울함을 담은 괴성들이 사방에서 비산하고 있다.
주위는 어둠 그 자체.
망자들의 핏물로 이루어진 강 하나가 옆에서 흐르고 있고.
하늘은 보이지 않으며 딱딱한 바닥은 그저 칠흑같았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소름이 돋고 뇌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곳은 한맺힌 망자들이 가득하다는 명계.
그곳을 감히 시운과 유석이 걷고 있다.
“시운아. 나도 따라는 왔지만 이곳에는 그 신이 있는 곳이야.”
“형은 닥치고 나만 따라와. 형이 만나고 싶은 그 녀석을 내가 만나게 해줄 테니까.”
시운은 유석의 걱정을 깨주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해왔다.
유석은 아무래도 걱정이다.
일개 사람이 신을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이시운이라면? 내가 봐왔던 저 녀석이라면 정말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망자들의 괴성이 들끓는 이곳의 공기는 숨이 막혀 토사물이 역류할 정도로 오싹했다.
그때였다.
-인간인가?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그 썩은 몸뚱이를 들고 왔는가.
-영혼을 들고 왔다니 가소로운 미친놈이구나.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검은 옷을 입은 망자들이 말해왔다.
그들의 수만 대략 몇 백은 될 터.
유석은 착용한 건틀렛을 꾹 쥐며 태세를 갖췄다.
“수가 너무 많아. 조심해야 된다.”
유석의 걱정에 시운은 아클레우스 소드를 뽑아들며 그 대답을 대신했다.
슈우웅-
쇄도한 시운의 검신에 망자 하나의 머리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곧바로 회전한 시운의 검날에 튀어나간 망자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다.
‘눈으로 좇기도 힘들다..’
유석이 생각했다. 이시운의 저 스피드는 이제는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때였다.슈우우우웅!
강한 바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바람? 이곳은 저승이라 바람따윈 없을텐데.’
바람은 더욱 거세게 몰아쳐 살결로 느껴질 정도였다.
수백의 망자들이 우악한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든다.
그 순간.
불어오던 바람이 폭발하듯 튀어오는 망자들을 향해 쇄도하였고.
그 바람은 순식간에 망자들을 모조리 분쇄했다.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이 망자의 육신들이 토막나 사방에 비산했다.
유석의 눈이 커졌다.
“저 망자들이 모조리 죽었어... 이시운. 방금 그 바람 네가 사용한 건가?”
“내가 아니면 누구겠어? 아직 끝나지 않았어.”
바람? 대체 언제 저런 능력까지 다룰 줄 알게 된 거지?
그러던 유석의 눈앞으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망자들의 옷이 서서히 솟아 새로운 형태로 일어선 것이다.
“망자들이 재생됐어! 다가가지마!”
“아니. 재생이 아니야.”
“아니라고?”
시운의 말에 의문을 품을 그쯤이었다.
망자들은 마치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두 팔을 내리고 시운에게 다가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새로운 왕을 받듭니다!
수백의 망자들이 외쳤다.
그 광경이 믿기지가 않았다.
유석의 눈이 시운을 향했다.
그는 태연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인간의 수준이 아니야..’
이젠 이해할 수가 없다. 저 회귀자의 강함은 내 뇌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새로운 군주에게 인사를 올린 망자들은 할 일을 끝냈다는 듯 모두 사라졌다.
망자들이 사라지니 쭉 펼쳐진 전방으로 편히 걷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옆에선 비릿한 내를 풍기는 강이 조용히 흐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철컹! 철컹!
쇳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진짜 지옥으로 향하는 문을 지키는 괴견 케르베로스야.”
유석이 말했다.
케르베로스는 거대한 문 앞에서 긴 목줄에 묶인 채 둘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다.
“저 괴견은 인간의 힘을 초월했다고 알려져 있어. 방심하면 안 돼.”
“형.”
“…?”
“형도 은근 잔소리가 심하네?”
신과 비견된 힘을 가진 괴견을 눈앞에 두고 이 녀석이 태연하게 말해온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
카아아앙!
괴견은 적색 안광을 번뜩이며 으르렁 대기 시작했다.
그때.
유석의 뒤로 자신보다 머리 세 개는 큰 남자가 다가왔다.
곧바로 뒤로 돌아 그 거인을 향해 뻗으려전 유석의 손을 시운이 낚아챘다.
“아군이야.”
“…설마 이것도 네가 소환한 거냐?”
거검을 든 거인이 유석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 거인의 얼굴을 본 유석은 순간 둔기로 머리를 때려맞은 기분이 들었다.
데스나이트왕. 데스나이트왕이다.
이곳을 다스리는 군주로 알려진 데스나이트왕이 분명하다.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럼 이해 안 해도 돼. 잘 지켜봐. 어떻게 저 문을 내가 뚫는지.”
앞발을 땅으로 긁던 케르베로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데스나이트?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것이냐!
괴견이 거인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러자 거인이 거검을 뽑아들며 다가갔다.
“야이 무능한 개새끼야. 모가지를 썰어버리기 전에 얼른 문 열어.”
거인의 투박한 말에 케르베로스는 깨갱한 눈으로 물러나며 길을 터주었다.
그러자 고대 문양으로 새겨진 큰 문이 자세히 보였다.
“야. 데스나이트. 너 방금 좀 박력있었다? 여기선 확실히 네가 방구 좀 끼나보다?”
“크흠!”
시운의 말에 거인은 헛기침으로 답한다.
저 지옥 군주를 이시운이 다스리고 있다.
그리고 아까 그 망자들과 바람…….
어쩌면 정말 저 녀석이 종우를 보게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말 갈건가?”
“정말 가지. 그럼 안 가? 여기까지 왔는데?”
유석의 물음에 시운은 답하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데스나이트!”
시운의 부름에 거인이 거검을 문을 향해 내뻗었다.
거검의 날에서 괴기한 소리가 뿜어졌다. 문은 그 소리를 인식이라도 하듯 문을 열어준다.
“형. 쫄리는 건 알겠는데 날 믿어. 신이고 뭐고 다 쓸어버리면 그만이니까.”
● * *
문을 통해 진입한 그곳에.
지금까지 보던 그 어떤 존재보다 섬뜩한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그의 두 안광은 푸른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등으로 뿜어진 날개에는 위용을 넘어 섬뜩함이 흘러나왔다.
[……….]
그것은 시운과 유석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하데스다.”
유석의 육성이 떨려왔다.
그랬다.
그들을 조용히 훑는 저것은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도 알려져 있는 죽은자들의 신이자 저승을 지배하는 하데스였다.
터벅- 터벅-
“함부로 다가가지 마!”
유석이 고함쳤으나 시운은 하데스를 향해 걸어가더니 멈췄다.
이시운과 하데스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 둘의 맞물린 시선은 소리없이 내공 싸움을 하는 듯 했다.
쿠웅!
그때.
데스나이트가 육중한 무릎을 한쪽에 꿇었다.
“소신. 데스나이트. 신을 받듭니다.”
[……군주. 이 인간들은 뭐냐?]
시운과 유석을 차갑게 훑는 하데스를 향해 인사를 마친 데스나이트가 일어서더니 마혈도를 하데스에게 뻗었다.
“제가 새롭게 받들게 된 신입니다.”
그 순간!
파파파파팟!
인간만한 방패 다섯 개가 튀어나와 하데스 주위를 감싸 돌기 시작했다.
[네 까짓 것이 모시는 신이란 저 인간놈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네 눈앞에서 보여주고 네 놈의 목도 썰겠노라.]
신이 분노하고 있었다.
신을 처음으로 마주한 유석은 그 기운에 얼어붙을 듯 했다.
그때였다.
시운 뒤로 두 형체가 솟아나왔다.
그 두 형체에 하데스가 멈칫했다.
[뱀년과 헤라클레스?]
하데스는 그 둘을 알고 있는 듯 했다.
헤라클레스는 하데스를 보더니 입술을 비집어 씹었다.
“네놈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넌 뒤졌다.”
헤라클레스가 창을 뽑아들었다.
시운은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항상 해맑고 말 없던 헤라클레스가 저런 말을 하다니. 관계가 안 좋은 모양이다.
그 순간!
주위로 큰 굉음이 터져나왔다.
하데스를 감싸던 방패든은 더욱 빠르게 회전했고 하데스는 주먹을 쥐며 다가왔다.
지켜보던 시운의 입술이 열렸다.
“너만 힘재주를 부릴 줄 아냐?”
그 말과 함께 시운의 뒤편으로 수많은 형체들이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
명계를 지키는 망자들이였다.
[……하인놈들.]
하데스는 망자들을 그렇게 불렀다.
망자들은 하데스를 향해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망자들이 말했다.
“더 이상 당신은 저희들의 신이 아닙니다.”
수백의 망자들이 목소리가 기계처럼 하나가 되어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