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75화 (175/278)

제 175화

정연희와 함께

이렇게 들이닥쳐서 물어본다는 게 대체 뭔데?

한수는 불안한 눈으로 사내 하나를 바라봤다.

“그게 뭐냐면…….”

뜸을 들인 사내가 든 권총이 한수를 향해 올라갔다.

한수의 눈으로 총기의 구멍이 생생히 보였다.

“자, 잠깐만요. 분명 오해를 한 것 같다구요. 총 거두시고…… 저는 그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난 결단코 그 일과 관련이 없다고.

“너의 자살 동기는 무엇으로 해줄까? 네가 말하는 것으로 해줄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오, 오해시라고요!”

“오해?”

권총을 든 사내의 시선이 이불을 덮어쓴 수지에게로 옮겨갔다.

“네 자살의 원인은 내연녀를 오해하고 미치도록 싸우다가 홧김에 네 머리를 네가 쏘는 것. 그걸로 해줄게. 됐지?”

“자…”

타앙!

한수의 뒤통수에서 쏟아진 뇌수가 호텔 벽에 쏟아졌다.

뇌에서 쏟아진 핏물의 냄새는 진했다.

이불 속에서 수지는 비명을 지르며 떨었다.

사내는 총기에서 흘러나온 연기를 후후- 불었다.

“당신. 살고 싶으면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돼요.”

방금 사람을 쏴죽인 남자의 목소리는 참 태연했다. 수지는 이불을 덮은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 *

“좀 퍼진 모양인데?”

시가를 뻐끔뻐끔 태우며 말하는 대익에 비서실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퍼졌단 말씀이십니까.”

“내 소문 말이야.”

“아.”

그 소문을 비서실장은 알고 있다.

협회장이 물을 엄청나게 마시고 무리하게 시가를 태워도 기침 한 번 안 한다는 소문.

뭐,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긴 하지만 그 이야기가 퍼졌다는 것이 대익은 거슬린다는 눈치다.

“뭐, 굳이 신경쓰실 필요 있습니까?”

“신경 안 쓰려고 했지. 근데 그 사실을 고약한 아가리로 퍼뜨리고 다니는 놈이 있다면?”

“찾겠습니다.”

비서실장은 그의 뉘앙스를 알아차리고 바로 답했다.

그를 보필한 세월만 4년이라는 짬밥을 갖고 있다.

지지직-

대익은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비서실장을 보는 눈에 힘을 줬다.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

여간 신경이 쓰이니 반드시 색출해내라는 눈이다. 저 눈빛은 비서실장 유영수만큼은 아주 잘 알고 있다.

협회장에게서 저 눈빛이 나올 때마다 사람이 죽어나갔다.

비서실장의 이마에서 땀이 식어 흘러내렸다.

그때 비서실장이 벌떡 일어났다.

“여기들 계셨네요?”

들어와 말을 하는 사내는 존칭을 썼지만 그들을 편하게 대한다는 듯한 뉘앙스다.

김수혁이다.

협회장은 직책과 자존심 때문에 일어나 그를 반기진 않았다.

그가 초일류 대기업의 계승자라지만 스물아홉 살의 핏덩이다.

또한 협회장이란 직책으로 일어나 반기는 모습을 비서실장에게 절대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자네는 나가있어.”

대익의 지시에 비서실장은 둘에게 깍듯히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수혁은 협회장 맞은편의 소파에 앉더니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하나 핍시다.”

“네, 태우시죠. 마침 저도 한 대 태울 생각이였습니다.”

니미. 시가는 방금 태우고 껐다.

그러나 저 어린놈이 협회장실에서 혼자 담배만 태우게 두는 것은 체면이 안 선다. 차라리 맞담배라도 하는 시늉을 보이며 그 체면이라도 굳히는 편이 낫다.

“갑자기 어쩐 일이신지?”

“뭐, 어쩐 일은 아니고….”

수혁은 다리를 꼬며 편안한 자세로 담배를 피워댔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내 앞에서 건방지게!

대익은 티 안나게 아랫입술을 비집어 씹었다.

권력이란 힘줄을 지닌 협회장 대익이라도 수혁에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능가하는 것은 돈이다.

그는 스물아홉 살의 핏덩이지만 46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의 계승자였으니까.

“… 근데 그런 두꺼운 시가는 무슨 맛으로 펴요?”

수혁이 물어왔다.

아랫사람을 대하는 말투다.

대익 앞에서 그가 애정하는 시가에 대해 뭐라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대익은 자존심이 무척 강한 타입이다.

그런 그가 뒷목으로 오르는 열을 억누른다.

“묵직하게 넘어가는 맛으로 피죠.”

“묵직하게라?”

수혁은 담배를 비벼 끄고서 고요하게 대익을 바라봤다.

“회귀자라는 존재를 알죠?”

회귀자? 그 말이 갑자기 니 놈 입에서 왜 나오냐.

알고는 있다.

협회측에서 쓰던 회귀자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눈에 나는 짓을 하는 바람에 죽여버렸지만.

저 애송이가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저 놈이 어떤 놈인지 잘 아니까.

“참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존재 아닙니까.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 그것도 한참 젊어진 나이로.”

대익은 말없이 수혁을 바라봤다.

“요점이 뭐냐는 눈빛이네요? 빨리 요점을 말하라는 듯한?”

“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회귀자들은 몇 안 돼요. 아주 극소수의 존재들이지요.”

회귀자들?

한명이 아니란 것도 알아?

대익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진 못했다.

수혁은 캐묻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근데 그 회귀자들은 회귀를 하고 나면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

대익의 목소리 낮아졌다.

“뭘 말하려는 건 아니고. 들어봐요.”

대익은 경리를 불렀다.

경리는 노크를 하고는 친절하지만 아주 깍듯하게 수혁의 앞에 커피를 놓았다.

“특별한 힘을 얻으면 뭐 좋을 수는 있겠지. 근데…….”

수혁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회귀를 열 번이나 한다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강제로 과거로 매번 돌아간다면? 협회장님은 어떤 기분일 것 같아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라고 질러대고 싶지만 대익은 대충 고민하는 척 하고 말한다.

“지겨울 것 같습니다만?”

“하아.”

수혁이 세상 다 살았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우울증에 걸려요. 회귀 우울증.”

대익은 티 안나게 수혁을 노려보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회귀라는 것 자체도 사실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그 존재를 이미 확인한 후.

열 번이나 회귀를 한다라?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다.

저 새낀 공상을 좋아하는 타입이었나.

“…우울증은 우울증인데 세상의 이치와 지식들을 모두 알게 되고 돈이란 것은 쥘 수 밖에 없게 되지요.”

마치 자기 이야기인 것 마냥 말한다.

대익은 팔에 찬 시계를 힐끔거리며 은근스레 바쁘단 눈치를 준다.

그러건 말건 수혁은 태연하게 대익을 바라본다.

저 새끼.

내가 눈치 준다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쳐다보는군!

이것은 수모다.

“근데….”

수혁이 말을 멈추고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그 회귀자가 삶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만약 다른 회귀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거라면? 죽여야겠지요?”

“…….”

대낮부터 술이라도 걸친건가?

대익은 수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근데 자신이 아는 김수혁은 헛소리를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수혁은 일어나 정장 단추를 고쳐맸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대익은 문앞에서 멈춘 김수혁의 뒷통수를 노려봤다.

“뭐, 박태석은 알고 있고….”

뭐? 박태석을 알고 있다라?

“알고 있으시단 말씀이? 혹시?”

“회귀자라는 걸 알고 있다고요.”

뭐? 박태석이 회귀자라고?

대익은 멍한 눈으로 수혁의 뒷통수를 바라봤다.

“확실한 겁니까.”

“내가 없는 말 하겠습니까?”

수혁은 문을 열더니 대익을 향해 돌아봤다.

“그리고 이시운이라는 꼬맹이 대충 쓰다 버려요. 커버쳐줄 생각은 말고.”

순간 수혁의 눈빛에서 광기가 맴돌았다.

* **

정연희는 머리를 뒤로 쓸어내렸다.

잡히는 손길로 긴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항상 단발이던 머리를 좀 길러봤다.

여느 때보다 화장도 신경써서 하고 평소 안 입던 원피스도 입었다.

그녀의 고개가 들렸다.

여긴가?

그녀의 시야로 강남의 고가 아파트의 형태가 들어왔다.

대한민국 1퍼센트 상류층들이 산다는 이 곳.

그 사실을 답게 아파트의 자태는 고급스러웠고 주변 시설은 호화롭고 깔끔했다.

연희는 D급 헌터가 되었고, 일반 직장인보다 높은 연봉을 벌지만 또 한 번 작아짐을 느꼈다.

이시운.

내가 걸을 때 녀석은 뛰고.

내가 뛸 때 녀석은 날아.

저 고가 아파트에 이시운이 살고 있다.

연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기죽지 말자! 정연희. 넌 누구한테도 안 꿀릴 정도로 예쁘잖아?

혼자 되뇌였다.

순간 연애 고단수 언니에게 들은 피드백이 뇌리에 떠올랐다.

-연희야……. 남자라는 동물은 아무리 잘 났어도 다 똑같아. 성욕에 하나같이 충실하단 말이야.

그 말의 뜻을 알고 있다.

그녀는 항상 남자들에게 대시만 받고 살아왔다. 예쁘니까.

남자에게 목을 맨 적이 없다. 아니, 이제 처음이겠네.

몇 번이라도 찍어서 널 꼬시고 말겠어.

그녀는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아파트 안으로 향했다.

.

.

.

“야, 야. 고맙다.”

시운은 연희가 건넨 책을 받으며 흡족해했다.

“고맙긴…….”

“이 책이 얼마나 귀한 책인지 아는데 고맙단 말은 해야지, 당연히.”

시운은 손에 들린 ‘레이리크의 자서전’에 시선을 박았다.

레이리크.

발카스 대륙출신의 기사단장이다.

그가 쓴 이 자서전은 세상에 단 백 권 밖에 없는 책이였다.

이계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정연희는 그 책을 어떻게 구했는지 소장하고 있었다.

“요즘 헌터일은 어때?”

연희는 알고 있으면서도 물었다.

이시운이 누구보다 잘 나가고 있단 걸 안다.

그래도 뭔가 고충이 있다면 들어주고 싶다.

“뭐, 그럭저럭. 너 밥 안 먹었지? 내가 요리해줄게.”

요리를 해준다고?

“너 요리도 할 줄 알아?”

“이 귀한 걸 줬는데 밥이라도 대접해야지.”

시운은 그대로 거실로 향했다.

그가 냉장고에서 꺼내든 닭을 손질한다.

연희는 집 내부를 요리조리 살폈다.

30억이나 하는 아파트답게 방도 많고 척 봐도 고급스러운 대리석이 바닥에 착 깔려있다. 게다가 베란다로 보이는 뷰는 참으로 눈부셨다.

나도 열심히 성장한다면 이런 집에 살 수 있겠지?

얼마나 지났을까.

시운이 식탁에 반찬들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닭볶음탕을 내려놨다.

“오? 좀 맛있어 보이네?”

연희가 말했다.

보통 우리 나이대 남자들은 닭볶음탕 같은 음식은 할 줄 모르는데.

“맛있게 먹어.”

“잘 먹을게.”

닭볶음탕의 국물맛을 본 연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와, 칼칼하고 맛있는데?”

“그렇다면 다행이네.”

연희는 시운을 바라봤다.

시운은 레이리크의 자서전. 그 책의 종잇장을 미친 듯이 넘기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밥 먹으면서 나한테 집중도 해주지 않는 게 살짝 서운하다.

“다 읽었다. 340페이지.”

“…벌써?”

시운이 속독의 천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3분? 아니…. 2분도 안 됐어.

근데 340가량의 페이지를 이 짧은 시간만 다 읽어내는 걸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근데 다음 장이 왜 백지일까?”

시운의 의아해한다.

연희도 저 책을 읽어서 알고 있다.

총 350가량의 페이지가 있지만 340가량의 페이지만 글자로 쓰여져 있고 나머지 열 페이지는 온통 백지다.

“레이리크가 쓰다가 말았나 보지.”

그 책에서 그만 집중을 끊으란 말투로 연희가 셀쭉거렸다.

연희는 슬쩍 손거울을 열어 자신의 옷차림을 점검했다.

오늘.. 브라하고 팬티색도 맞춰왔는데.

그녀는 귀여운 얼굴에 반전적으로 큰 가슴을 갖고 있다.

은근스레 가슴골이 보이도록 허리를 숙여본다.

오늘 혹시나 일어날 일에 속옷도 예쁜 것으로 입고 왔다.

이시운.

너라면 손길을 허락해 줄 수 있는데…….

* *

방으로 들어온 시운은 레이리크의 자서전을 다시 펼쳤다.

나머지 열장.

나머지 열 페이지.

공백으로 채워져 있다.

뭐든 이유는 있는 법.

이 책에는 기사단장 레이크가 세상을 멸하려던 카인과 맞서 싸운 일화부터 그 카인이란 자를 다룬 내용이 실려있다.

근데 이상한 포인트에서 책이 끊겼다.

“시운아! 뭐해?”

거실에서 연희가 물어왔다.

“잠깐만! 좀만 이따 나갈게.”

“빨리 나와. 놀러온 손님을 이렇게 심심하게 둘 거야?”

“미안. 5분만!”

시운은 대충 대답하고 공백의 페이지에 시선을 박았다.

‘..해보는 거다.’

시운은 곧바로 신안의 시동어를 속으로 되뇌였다.

[신안을 발동합니다.]

[신의 눈을 잠시 개안합니다.]

‘..!’

그러던 그때였다.

공백이였던 페이지에 검은 활자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건...’

신의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숨겨 적어놓은 흑마법사 카인의 비밀에 대한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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