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76화 (176/278)

제 176화

정연희의 아찔한 유혹

활자들이 생겨나 책의 페이지 하나하나를 채워간다.

[이 숨겨놓은 문자를 읽었다면 당신은 우리들의 후손이겠지.]

첫 문단이다.

글을 숨겨놓은 것이었나?

그렇다면 그 이유는 이 내용들이 후대에 전해지기 위해서일 것이다.

속독으로 열 페이지를 순식간에 다 읽었다.

“말이 안 나와….”

충격적이라 독백이 튀어나왔다.

레이리크는 카인과 적이면서도 그의 비밀 몇 가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의 주술은 몇 백년이 지나 먼지더미가 된 시체도 살릴 정도라고 추정된다.

-레딘과의 마지막 혈전에서 그가 시전한 주술은 그 자리에서 죽은 레딘 외 여섯 명에게다.

-그 주술이 어떻게 발현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아는 뛰어난 주술사들에게 물어 들은 말로는 영생의 저주와 비슷할 것이란 것이였다.

영생의 저주?

잠깐만.

내 뇌리로 흩어졌던 퍼즐의 조각들이 떠올라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레딘 외 여섯 명? 그렇다면 일곱.

내 초전생의 꿈속에서 죽었던 그 사람들도 그 수와 같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생의 저주라?

만약 그렇다면…….

그 뜻을 알 것 같다.

내가 왜 그토록 회귀하며 되살아나는지.

그리고 날 포함한 회귀자들이 세상에 몇 명이 있는지.

나의 회귀의 이유가 카인.

그놈!

머릿속으로 소년 김유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핏기 어린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가 내놓던 눈빛과 표정은 소년의 것이 아니였지.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였다.

-그로 인해 연결된 두 가지의 세상. 다른 세상에서 이곳으로 온 자는 응축된 본연의 차크라를 모두 다룰 수 있는 듯 하다.

이 말은 알고 있다.

현계의 헌터들이 이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이것이니까.

-카인은 무한으로 사람을 부활시킬 수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랬다면 마지막에 그렇게 패하지 않았겠지.

그 카인이라는 주술사도 역시 신은 아닌갑다.

-그가 탐내하던 인물이 하나 있단 걸 알게 됐다. 그는 다른 세상의 추후 고려라는 나라에서 태어날 인간이다.

다른 세상이라면 현계. 그리고 고려라고?

내가 알고 있는 그 고려가 맞나.

-그는 예언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 고려란 작은 나라에서 전대무후한 유전자와 차크라를 지닌 인간이 태어난다고 했다.

-그는 그를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얼마가 걸리던 말이다.

“…뭐?”

고려시대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설마? 고려시대 때 살았던 장수를 말하는 건가.

이렇게 해석이 된다.

강하다면 분명 장수가 되어 무력을 펼쳤을 것이고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근데 왜 하필 고려지?

삼국지에 관우도 있고, 초한지에 등장하는 항우란 괴물도 있는데.

-검과 혼열일체 하여 인간을 초월하는 자.

그렇다면…….

두 인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들의 후대여. 이 문자를 읽는다면 알아라. 카인은 죽지 않고 살아있을 것이다.

그에게 유일한 허점은 ……

하. 뭐야?

다음장을 넘겨봐도 그 이후로 이어진 말이 없다.

절단신공도 아니고 씨발!

가장 중요한 사실이 없다.

내 이 눈으로 책 모든 곳을 오목조목 살펴봐도 없다.

마치 누군가가 내용을 없앤 것처럼.

[신안 발동 시간이 지났습니다.]

[신안이 해제됩니다.]

십 분간 발휘했던 신안이라는 능력은 눈의 기력을 많이 소모한다.

급 피곤해진 난 침대에 누웠다.

생각들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이 자서전으로 인해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다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알아내지 못했다.

“저 뒤의 내용은 내 눈으로도 읽을 수 없단건가?”

그렇다면…….

이 눈의 능력을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머지 문장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십 분이 흘렀다.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머리가 아프다.

이럴 때는 쉬어줘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나란 인간이 이번 3회차 인생에서 종말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말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이 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러다간 번아웃이 오고 만다.

쫓기듯한 강박!

계속해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들이 꼬리를 무는 이럴 땐 잠시 쉬어줘야 뇌 피로가 풀린다.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고 연희가 빼꼼히 날 바라본다.

“뭐해! 나 계속 심심하게 둘 거야?”

“나 좀 쉬고 싶은데.”

“맥주 한잔 할래?”

맥주?

술은 몸에 좋진 않지만 뇌를 잠시 식히기엔 참 좋은 식품이긴 한데.

그런데 정연희. 쟤 오늘따라 좀 달라보인다.

항상 단발이던 머리가 허리까지 오고.

저 몸에 딱 달라 붙는 검은 원피스는…….

이렇게 보니 정연희도 예쁘긴 예쁘다.

천세정이 탑급 배우 느낌이라면 연희는 상큼한 아이돌 느낌이랄까.

뭐, 맥주나 한잔 때려야겠다.

생각이 너무 많다.

머리를 식히고 싶다.

그뿐이다.

“그래 맥주 한잔 하자.”

“오케이, 좋고!”

나가서 먹을까 라고 물으려는 순간 연희는 현관까지 걸어간 상태였다.

“맥주 사올게! 소주도 사올까? 소맥 콜?”

귀엽게 웃는 연희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쯤은 괜찮겠지.

그녀가 나간 사이 폰을 훑었다.

세정이는 역시 바쁜지 연락이 없다.

대기업의 임원이니까 그렇겠지.

잠시 후.

아니, 30분 좀 넘게 흘렀나?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연희가 봉지 두 개를 들고 왔다.

“뭘 이렇게나 사왔어?”

나의 물음에 그녀는 방긋 웃으며 봉지 하나를 내밀며 흔든다.

“이건 곱창! 안주는 빠질 수 없지!”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는 느낌이다.

다른 봉지에는 소주와 맥주가 가득했다.

얘 이거 정말 다 먹을 생각인가?

.

.

.

“쭉쭉쭉쭉쭉! 술이 들어간다 쭉쭉!”

연희가 노래를 부른다.

나는 소맥이 든 글라스를 끝까지 털어넣었다.

“캬.”

소주의 시큼함과 맥주의 탄산이 뒤섞여 목을 적신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술이냐.

“내가 제조한 소맥 어때?”

연희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었다.

“오? 괜찮은데?”

“이래뵈도 내가 내 친구들 사이에서 소맥 말기 담당이야!”

연희는 곱창을 집어 나에게 내밀었다.

“아, 괜찮아. 내가 먹을게.”

“아이씨이이…. 내 손 민망하게 만들래?”

연희가 투정을 부린다. 난 입을 벌려 곱창을 받아먹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진짜 오질나게 팅겨요!”

“팅긴다니?”

“너, 너, 너… 너 새끼 말이에요.”

너 새끼?

얘 주사 부리는 건가?

“진짜 너처럼 강력한 철벽을 치는 남자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 정말.”

“너 좀 취한 것 같은데? 그만 마셔라.”

“됐거든요! 안 취했거든요?”

그녀의 혀가 살짝 꼬부라졌다.

취한 사람이 자기 취했다고 말하는 사람 태어나서 한 번도 못 봤다.

근데.

보려고 본 건 아닌데 연희의 몸매가 들어온다.

착 감긴 원피스로 보이는 골반도 잘록한데 크고 가슴도 크다.

매일 로브나 박시한 후드티 같은 것을 입은 것만 봐서 몰랐나?

우린 술과 곱창을 먹으며 소소한 얘기를 좀 나눴다.

헌터 생활만 하다보니 사람을 만나도 그와 관련된 사람만 만나고, 헌터 이야기만 하다가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니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하. 갑자기 덥네? 술이 이제 좀 오르나.”

그때 연희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더니 왼쪽 원피스 끈을 슬쩍 내렸다.

순간 드러나는 하얀 가슴은 젖꼭지만 아슬히 가릴 정도로 훤히 보였다.

“야, 야! 나 남자다. 끈 내리지마.”

“더워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너 안 잡아먹을 거니까 걱정마라, 이 새꺄!”

정연희가 취기가 오른 모습은 첨 본다.

새끼라는 말을 자주 쓰네.

난 에어컨 리모컨을 찾아 틀어주었다.

“에어컨은 왜 틀어!”

“덥다며?”

“에이씨. 그게 아니고, 인마! 취기에 덥다고.”

정연희는 내게서 리모컨을 낚아채 에어컨을 끄고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살짝 풀린 그녀의 동공.

그리고 흐트러진 표정.

취하긴 했나 보다.

난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말했다.

“너 취한 것 같은데 택시 불러줄게.”

“안 취했다니까! 육 곱하기 삼은 십팔. 십팔! 너, 너, 너. 날 그렇게 집에 보내고 싶어?”

“풉.”

“왜 웃냐.”

“생각보다 주사가 좀 웃겨서 웃었다.”

연희가 다시 한 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뻘줌하다.

오늘따라 쟤는 왜 이렇게 야하게 입었는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

“진짜 봐도 봐도 잘생겼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막상 이런 대놓고 하는 칭찬은 뻘줌하다.

난 그녀의 눈을 피했다.

술 한잔을 더 들이키려는 그때.

연희가 소파에 앉더니 치마를 위로 슬쩍 들어올렸다.

백옥같은 그녀의 허벅지살이 본능적으로 들어왔다. 정연희가 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진짜 술 많이 꼴았나.

근데 나도 남자라 그런지 눈이 본능적으로 가는 것 같다.

아니. 이러면 안 되지.

나한테는 그녀가 있는데.

“택시 부른다?”

나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구겨진다.

“내 몸매 생각보다 괜찮지?”

뭐?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헌터일을 하다 보니까 원래 날씬했던 몸매가 균형있게 볼륨감이 잡히고 그러더라?”

연희는 슬쩍 스커트를 더 들어올린다.

그러더니 내려간 원피스의 두 끈은 팔뚝에 멈췄다.

날 유혹하는 건가?

“여자가 남자 집에서 술을 먹으러 오는 건 뭘 뜻하는 거라고 생각해?”

술 먹으니 대담하네.

“나 좋아하는 사람 있다.”

이상한 분위기를 끊으려고 내가 한 말에 연희는 멈칫했으나 오히려 더 도발적으로 끈을 내렸다.

원피스가 흘러내려가자 그녀의 분홍 브라자가 드러났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사귀고 있는 건 아니잖아?”

마치 그렇게 바란다는 듯 물어온다.

“그만해. 너 많이 취했다.”

“그만 안 한다면?”

갑자기 혼란스럽다.

그때 나의 사부! 강춘식 작가님의 육성이 뇌리에 피어올랐다.

-독자님아! 여자를 많이 만나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야. 독자님 그, 그. 그! 섹스 스킬이 부족하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속궁합은 독자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해. 근데 자네의 그 스킬은 보나마나 고자일게 뻔해. 그 스킬을 늘리려면 여자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좀 자고 다녀.

젊을 때 그러는 거지! 안 그래? 섹스도 사랑의 일부야. 섹스도 잘해야 독자님이 좋아하는 여자를 더 충족시켜줄 거 아니야?

끄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취기에 어지러진 시야를 바로 잡으려 미간을 문질렀다.

그때!

연희의 얼굴이 바로 앞에서 보였다.

“나처럼 예쁜 애가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정말 그럴거야? 너 고자야?”

그녀는 어느새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타서 날 내려다보고 있다.

그 내려다보는 눈빛이 매혹적이다.

순간 내 하체의 물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

연희는 내 물건과 자기 엉덩이가 닿아있는 그 지점으로 시선을 내렸다.

“고자는 아니였네?”

“…내가 말했지? 나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내일 술 깨고 후회할 짓 하지 말고 이만 가라. 없던 일로 할 테니까.”

“없던 일이 아니라 있던 일로 해줘.”

“뭐?”

그때 촉촉한 감촉이 내 입으로 느껴졌다.

내 입술에 부드럽게 뭔가 닿는 달싹한 느낌에 단전에서 신음이 뱉어질 뻔 했다.

“…!”

헉!

눈을 감고 내게 키스를 하고 있는 연희의 손이 내 물건을 움켜쥔다.

내 입으로 혀를 넣으며 동시에 내 물건을 만지작거리더니 내 바지 속으로 손을 넣으려고 한다. 난 그 손을 낚아챘다.

“그, 그만.”

연희는 감은 눈을 살며시 떴다.

하아.

다리에 힘이 풀린 기분이다.

그때.

그녀가 등뒤로 손을 움직여 자신의 브라 후크를 풀었다.

그러자 적나라한 정연희의 출렁이는 젖가슴이 강렬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이시운. 널 바라보기만 하는 거 이제 지쳐. 오늘 내 몸을 너한테 허락하고 싶어. 더는 날 울리지 마. 날…… 내 몸을 다뤄줘.”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뒷목을 껴안았다.

정신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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