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78화 (178/278)

제 178화

금발머리 헌터

강춘식과 내 시선은 조용히 맞물렸다.

“독자님. 세상에는 말이야. 알아선 안 되는 것이 있고, 굳이 모르는 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어.”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렇게 진지해?

그가 날 바라보는 눈빛은 항상 유쾌하던 것과는 달리 차분했다.

“그 둘 중에 하나란 말인가요?”

내 물음에 춘식은 스트레이트잔에 든 양주를 벌컥 마셨다.

“크으…. 술맛 좋구만.”

대답을 회피하는 건가?

아니다.

저 사람의 눈빛은 지금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아무리 봐도 신기한 사람인 건 확실하다.

“묻지 말까요?”

“대답해줄 수는 있어. 허나 알아버리면 흥미가 꺠져버리는 수가 있을걸?”

흥미?

나조차 모르는 무언가의 해답을 아는 느낌이다.

분명 주변인들의 기억은 소거 된다고 했다.

근데 강춘식의 뇌는 그 기억들을 잃어버리지 않은 듯 했다.

설마? 당신이 회귀자라도 된다는 건가?

아니다.

내 초전생의 꿈속에 등장했던 사람 중에 춘식과 닮은 사람은 없었다.

그럴 일 또한 없다.

세상에 회귀자가 이렇게 많을 리 없다.

뭐, 그 빨간머리가 실수한 것일 수도 있겠지.

“…….”

근데 춘식의 표정은 더는 그것을 묻지 말란 듯 했다.

왜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그토록 도움을 준 사람에게 실례를 범하고 싶진 않다.

난 조용히 화장실로 가서 유석에게 강춘식 작가를 촬영한(내가 찍은 것이 아니고 인터넷에 팬이 찍은 영상)을 유석에게 보냈다.

유석은 회귀자를 판별할 수 있으니까.

유석에게 답장은 없었다. 친동생과의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그때.

“주인놈아! 방금 그 놈팽이 말이다. 신기한 놈이다.”

“야, 야!”

소변을 보고 있는 뒤로 제멋대로 튀어나온 일미호를 보고 난 놀랐다.

혹여나 누가 이 놈을 봐버리면 큰일이 벌어진다.

“야, 누가 네 멋대로 튀어나오래? 빨리 안 들어가냐!”

난 화장실 문을 훑으며 속삭이 듯 하지만 강하게 말했다.

근데 뭐라고?

“뭐가 이상하단 말이야? 빨리 말하고 꺼져라.”

놈은 세면대 위로 튀어올라서 거울을 향해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있었다.

개자식이 지 얼굴 감상이라도 하는건가.

“그런 차크라는 처음 본다. 차크라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이다. 그런 인간은 또 처음 본다.”

일미호는 감지 능력이 월등한 놈이다. 그리고 이 놈이 헛소리를 하는 타입도 아니다.

일단 난 일미호를 소환해제 시켰다.

한끗 차이로 문이 열리고 남자 한명이 화장실에 들어왔다. 난 가슴을 쓸어내리며 화장실에서 나와서 의자에 착석했다.

춘식은 슬기와 옆의 바텐더와 이야기 중이였다.

“푸하하하!”

“아니, 미쳤어? 오빠?”

역시나.

그는 말재간 하나로 여자들을 다루고 있었다.

방금 일미호의 말을 토대로 본다면 귀신이라도 된단 소리?

개소리다.

춘식의 심장은 뛰고 있고.

세상에 귀신은 없다.

존재할 리는 없으니까.

다만..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설마 회귀자라면….

난 그 생각을 떨쳐냈다. 어차피 추후에 유석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면 그만이다.

다른 것을 물을 것이 있다.

“작가님.”

“ 네, 네. 네! 무엇이든 물어보시오! 우리 독자님.”

눈치는 참 기가 막히게 빠르다. 이럴 때 보면 참 귀신 같긴 하다.

물어보자.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뭔가 불안합니다. 분명 시작은 했는데 정말 내가 그녀와 사랑을 하고 있는건지 아닌지,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건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내 말에 슬기가 끼어들었다.

“아휴. 헌터님 또 연애 고민이에요? 그냥 우리끼리 술 먹으면서 재밌게 다른 대화 하면서 놀면 안 되나?”

“난 여기 그쪽하고 노닥거리려고 온 게 아니예요.”

난 더는 말에 끼어들지 말란 눈빛을 보내자 슬기와 바텐더는 시선을 돌려 헛기침을 하며 양주를 마셨다.

쟤들은 내가 산 양주를 먹고 있고, 그들에게 합당한 인센티브는 들어갈 것이다.

굳이 내가 화류계 애들을 더 챙겨줄 이유는 없다.

“독자님. 원래 사랑은 확신할 수 없는거야. 그리고…….”

춘식의 깊은 조언이 이어졌다.

매일 내가 질문하는 건 맞는데.

이 아저씨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마치 자신이 연애를 하듯 내게 조언해준다.

나중에 한가해지면 이 작가 소설을 모조리 사서 소장 해줘야겠다.

**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에 잠시 편의점에 들려서 담배를 사고 나오는 길이다.

그런데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던 고등학생 쯤 돼보이는 양아치들이 시운과 눈이 마주쳤다.

‘뭐, 뭐 저렇게 눈빛이 무섭냐, 씨발.’

‘뭐야? 저 아저씨.. 개무섭다.’

‘쳐맞을 것 같다.. 사려야겠다.’

그들은 알아서 담배를 끄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가버렸다.

음?

시운은 그냥 쳐다만 봤는데도 양아치들이 저렇게 꼬랑지를 내린다.

아무래도 내 살기 스탯의 작용으로 인해서겠지.

‘근데 내겐 왜 이런 능력이 생긴걸까?’

현계에서도 헌터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갑자기 말이다. 왜일까?

분명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시운은 이계로 진입하여 A급 게이트 던전들을 차례대로 예약했다.

그것도 각각 시간 간격을 10분씩 두고 말이다.

던전 하나를 클리어 하고 또 진입하고, 클리어 하고를 반복했다. 십분마다 말이다.

A급 던전은 B급 헌터로 치면 최소 열 명은 투입시켜서, 클리어하는 소요시간만 최소 반나절이 걸린다.

그런데 시운에겐 이런 던전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였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임팩트 알람음이 귓가로 쏟아진다.

쉼없이 성장해야 했다.

그날을 위해서.

* *

피범벅이 된 시체들이 늘어져 쌓여있다. 그 시체들 사이에서 손이 뻗어져 나왔고 무언가가 시체들을 비집고 기어나왔다.

“괴기인간이에요!”

헌터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괴기인간. C급 던전의 보스.

인간형태를 하고 있지만, 신체능력은 아귀힘으로 탱크도 부술만큼 강력한 존재였다.

그녀의 외침에 C급 헌터 다섯은 긴장하며 뒤로 물러섰다.

단 한 남자만 빼고 말이다.

그 헌터는 금발머리에 근육질의 유민수라는 헌터였다.

“조심해요!”

차캉!

괴기인간은 헌터가 든 단검을 쳐내고 그의 목을 움켜쥐고 든 상태였다. 민첩함 또한 외계인 같았다.

들린 헌터는 켁켁 거리며 동료 헌터들을 살려달란 눈으로 바라봤다.

“우, 움직임이 너무 빨라!”

“빨리 도와줘야 해요!”

다섯명이 괴기인간을 향해 공격했다.

퍼어억!

괴기인간이 들고 있던 헌터를 던지자 마주오던 헌터와 던진 헌터가 뒤엉켜 쓰러졌다.

그리고 괴기인간은 헌터들의 공격을 두 주먹으로 모두 받아냈다.

“통하질 않아….”

근거리, 원거리 공격도 먹히지 않고,

속도 또한 눈으로 쫓을 수가 없다.

‘근데 뭐하는 거야! 저 근돼 새끼는..’

임지윤이 유민수를 노려봤다.

다 덤벼도 힘들 상황인데 저 C급 헌터 유민수라는 놈은 도와주지도 않고 서서 멀뚱히 관전하고 있었으니까.

“저기요! 지금 뭐하는 거예요? 다 같이 죽고 싶어요?”

지윤이 민수에게 소리쳤다.

순간.

괴기인간이 소리가 질러진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금발머리에 덩치가 큰 남자에게로.

곧바로 괴기인간이 그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헌터들의 눈이 민수에게로 향했다.

저 멍청한 헬창 자식은 곧 몸이 터져 죽겠지.

한편 유민수는 코앞으로 다가온 괴기인간을 보면서도 고민했다.

-야! 눈에 띄는 행동 하지 말고 너의 힘을 과시하지마. 힘을 숨기고 대충 합세하고 던전을 클리어해.

그의 말이 떠올랐다.

“이거 고민인데?”

유민수가 중얼거렸다.

그때 괴기인간의 손이 날아들었다.

그 순간!

퍼어억! 파공성이 일며, 민수가 든 창대가 괴기인간의 등을 두드렸다. 괴기인간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몸체가 완전히 꺽였다.

그리고.

푸우욱!

“허, 허억…….”

“뭐, 뭐야?”

헌터들의 놀란 눈은 모두 괴기인간을 향해 있었다.

민수의 창은 괴기인간의 머리통을 꿰뚫고 뒷통수까지 삐져나온 상태였다.

파악!

창을 뽑아내고 창대로 괴기인간의 목덜미를 후리자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괴기인간이 날아가 땅바닥에 늘어진다.

“죽은거야?”

다가가 괴기인간의 상태를 살피던 임지윤은 헌터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죽었단 소리다.

그때였다.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들려오는 소리에 눈이 커진 헌터들은 민수를 넋놓고 바라봤다.

“유, 유민수씨 수고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그냥 헬창에 시대가 지난 무기인 창을 쓰는 유민수를 무시하던 그들은 그의 포스에 기가 눌린 듯 했다.

“…던전은 이렇게 끝판왕을 잡으면 끝나는 거군요?”

민수가 태연하게도 물어왔다.

“그, 그렇죠.”

“강하시네요... 민수씨.”

대답한 헌터들은 마치 초보처럼 구는 민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지윤은 민수를 쳐다봤다.

‘뭐야? 저 근돼 C급 헌터인데?’

던전에 진입하기 전 유민수의 랭크는 분명 C급임을 확인했다.

A급 헌터는 돼야 괴기인간과 일대일로 맞섬이 가능한데.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윤이 다가갔다.

“민수 씨 클래스가 뭐에요?”

“클래스?”

민수는 무슨 말이냐는 눈치다.

“헌터의 직종이 뭐냐고요? 마법사면 마법사. 뭐, 딜러면 딜러.”

“난 신인데.”

“장난치지 말구요!”

“장난? 그게 뭐지?”

지윤은 헛웃음이 나왔다.

분명 우리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강해. 근데 정신상태가 좀 이상해. 방금 그건 운? 아니.. 운일 리가 없는데.

“마무리 하죠!”

헌터 하나가 지윤을 향해 말했다.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민수를 몇 초간 쳐다보더니 괴기인간의 시체를 향해 다가간다.

유민수는 헌터들과 함께 던전에서 획득한 물품을 챙기고 던전을 빠져나왔다.

-유민수.

헌터면허증에는 그런 이름으로 쓰여있었다.

시운이 준 면허증이였다.

앞으로 이 신분으로 살아가란 지시를 받은 후였다.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 있다.

민수는 현계로 이동했다.

그리고 처음 타보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얼마 후.

지하철에서 내려, 강남의 거대한 빌딩이 보이자 걸음을 멈췄다.

“여긴가?”

고개를 올려다 본 그의 시야로 건물 맨 위에 붙은 KS그룹 글자가 보였다. 건물은 하늘을 뚫을 듯 높게 솟아있었고, 창문만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는 몇 초간 신기한 건축물 보듯 보더니, 건물 안 로비로 향했다.

“저.. 어떻게 오셨습니까?”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에게 묻는다. 그는 민수의 괴물같은 덩치에 좀 긴장한 듯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만나러 왔는데요?”

“…예?”

* *

“본부장님. 손님 한 분 찾아오셨습니다.”

경리가 세정에게 말했다.

손님?

지금은 찾아올 손님이 없는데.

“…헌터라고 하시는데요?”

경리가 세정의 궁금함을 대답으로 해소해주었다.

“헌터라고요?”

“네, 네.”

“들어오라 하세요.”

“알겠습니다.”

세정은 흔쾌히 들어오라고 말했다. 헌터라면 이시운일 것이다.

바빠서 연락도 잘 못했는데 여기까지 찾아오게 만든 것이 좀 미안한데?

세정은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바빠서 피곤한 기색은 역력하지만 화장도 잘 먹었고 그저 예뻤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

“어, 왔어……… 에?”

말하며 고개를 든 세정의 입이 순간 멈췄다.

누구지?

그녀의 앞으로 이시운이 아닌 키 190정도 되는 근육질 거구의 금발머리 남자가 서 있다.

“누구시죠?”

“어? 예쁘다.”

거구가 하는 말이 이상했다. 말투도 어눌하고.

뭐야! 바빠 죽겠는데.

내쫓으려고 인터폰을 하려던 순간.

“시운이 형님의 지시를 받고 찾아왔습니다.”

“네? 시운이 형님?시운이요?”

그 말에 인터폰 호출 버튼으로 향하던 세정의 손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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