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9화
삼백억
던전을 돌며 생긴 피로감을 맥주 한잔으로 달랜 시운은 부대낀 속을 해장하기 위해 국밥집에 도착했다.
“여기 국밥 나왔어요.”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국밥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김이 피어나는 국밥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새우젓을 넣고 다데기를 뿌려서 볶아주니 잔잔하게 기름기가 돌던 우윳빛 국물이 시뻘겋게 변했다.
거기다가 뜨끈한 공기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한 바가지를 그대로 국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한 번 퍼올리자 숟가락 위에 국물이 묻은 밥과 수육이 뒤섞여있다.
우적우적.
수육을 몇 번 씹자 쫄깃한 그 식감이 입 가득히 퍼지면서 야들한 살점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게다가 얼큰한 국물맛은 또 어떠한가.
살짝 취기가 오른 정신을 깨어주듯 속안을 뜨겁게 데워주는 이 느낌은 전신에 퍼진 알콜을 단 번에 해소해주는 듯 했다.
돼지냄새도 나지 않고, 칼칼한 국물맛에 식감있게 씹히는 고기까지. 이 집은 정말 국밥 맛집이다.
한마디로 일품이다.
“뭐라고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운아.”
유석은 조용히 김만 뿜어내는 국밥에만 시선을 두고 말했다.
“고맙긴, 뭘……. 여기 국밥 진짜 맛있네. 형도 얼른 먹어.”
시운이 말하자 유석도 국물에 밥을 만다.
“다데기 넣어야지. 국밥은 자고로 다데기를 넣어야 제맛인거야.”
시운은 유석의 국밥에 다데기를 적당히 맞춰 넣어주고 후추까지 넣어준다.
유석은 국밥 한 숟갈을 입에 넣고 우적거린다.
“좋은 시간 보냈어?”
시운의 물음에 유석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어둡고 표정없던 그의 모습에서 웃음기가 돌고 있다.
신기했다.
“열 두 시간이 어쩌면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은 시간 보냈다니 참 다행이네.”
능력의 한계는 열 두 시간이였다.
바람의 군왕에 포함된 소환 스킬로는 유석의 동생을 살릴 수 없었다. 시체가 부패된지 너무 오래였기 때문이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유석은 모든 걸 해소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긴. 형의 동생은 형이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길 바랄거야.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
국밥에 시선을 박은 채 말하는 시운이였다.
국밥을 끊임없이 흡입했다.
너무 맛있다.
“정말 고맙다…….”
유석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시운을 보는 유석의 눈은 고마움이 가득했다.
비록 동생을 부활시키지는 못했어도 그리운 동생과 시간을 함께 보내게 해주었다.
유석의 마음은 시운이 죽으라면 트럭에 뛰어드는 시늉이라도 할 듯한 기세다.
“나도 형을 도왔으니 형도 날 도와줘라. 앞으로도 형의 도움이 필요해.”
“물론이지.”
유석은 시운의 말에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야.”
“물론 그것도 잘 알고 있다, 시운아.”
세상을 위해서니까.
돈 벌어보자, 잘 살아보자, 그리고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던 천세정의 마음을 얻어보자고 결심하고 시작했던 3회차 인생의 목표는 바뀐 상태다.
세상을 지키자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것 말이다.
헌터일로 뒹군지 몇 년 안 됐지만, 돈을 써도, 써도 지갑의 살은 줄지 않을 정도로 살쪄있다.
돈이 생기다 보니 여유가 생기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국밥 마저 먹어. 국밥에는 역시 깍두기를 씹어줘야돼.”
시운이 말을 하며 깍두기를 씹었다. 그의 입에서 으드득! 씹히는 깍두기 소리가 생생히 들려온다.
그것을 보고 싱긋 웃은 유석도 깍두기를 입에 넣는다.
“근데…….”
시운이 깍두기를 씹으며 말을 흐렸다.
“그 사람 회귀자가 아니야.”
유석은 시운이 말조차 꺼내지 않았지만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그와 함께한 세월만 이제 일년이 되어간다. 척하면 척이다.
“아니라고?”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어.”
별다른 점이 없었다라?
유석은 회귀자를 판별해낼 수 있다. 그런 그가 답했다.
역시.
강춘식.
그는 회귀자는 아니였구나.
아직 풀리지 않은 의아한 점이 몇 가지 있었지만 굳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그는 시운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일 뿐이다.
지금은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다.
그때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시운은 전화를 받았다.
“어, 세정아?”
-시운아. 나한테 사람을 보낸 이유가 뭐야?
세정이였다.
그녀의 성격답게 시간 끌지 않고 요점부터 나온다.
“걔가 앞으로 널 도울거야.”
-너한테 이런 도움 받는 게 미안해. 계약서라도 쓰자. 나도 받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됐다. 너랑 나 사이에 금전이 오고 가는 건 싫어.”
시운의 말에 수화기로 정적이 흘렀다.
시운이 보낸 거구의 인간.
그는 헤라클레스다.
협회장에게 부탁해서 위조 헌터면허증 두 개를 발급받았다.
‘그 중 하나는 사자머리 꺼고, 나머지 하나는 내 꺼.’
위조 헌터면허는 앞으로 분명히 필요한 것이였다.
-너한테 도움만 받으란 말이냐? 미안하게 어떻게 그래?
헤라클레스는 위조 면허로 인해 헌터로 생활하며 세정의 회사에게 자원들을 줄 것이다.
오직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는 마나석과 기타 물품들.
현 세상의 에너지 자원의 대체재로 마나석이 쓰여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력을 내뿜는 회귀한 물건이라던지, 전자 산업을 이끌 혁명적인 물품들까지 모두다 헌터 던전에서만 획득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뭐, 그래서 싫단 말이야?”
-너 내 말 알아 들었으면서 놀릴래?
세정이가 발끈한다.
거절은 못할 것이다.
이미 세정의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도움만 받고는 못 사는 성격이란 것도 잘 안다.
뭣보다 정연희와 살을 섞었다는 죄책감과 그녀를 돕고 싶다는 두 마음이 공존함에 그렇게 택한 일이다.
게다가 헤라클레스가 알아서 할 거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방해를 받지도 않는다.
다만 헤라클레스 그 녀석에게는 특별히 잘해줘야겠지.
“됐고. 고마우면 나중에 밥이나 사던가.”
-시운아….
“아휴 진짜. 보답 같은 거 필요 없다니까?”
-고마워.
그녀의 그 한마디에는 진심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1회차와 2회차 인생에서 그녀에게 도움이 된 적이 없었다.
항상 꼴지를 도맡던 시운을 위해 공부 잘하는 세정이가 일대일 과외도 해주고,
밥 사먹을 돈이 없다면 돈까지 붙여줬던 그녀다.
이번 생에서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더 할 말 없냐?”
-할 말? 무슨 말?
“고마우면 사랑한다고 해봐.”
-뭐, 뭐?
세정이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그 목소리가 참 귀여워서 웃음이 튀어나오려 했다.
“끊는다. 밥 잘 챙겨먹어. 연락하고.”
-나중에 저녁 먹자. 내가 살게, 시운아. 이건 거절하지마? 그럼 누나 진짜 화낸다?
그렇게 그녀와 전화를 끊었다.
“…여자친구도 있었어?”
유석이 국밥을 먹으며 물어온다. 그가 처음 먹어본다는 국밥이 맛있는지 국밥을 입에 우적거린 채로였다.
“여자친구? 뭐, 여자친구 있지.”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국밥을 다 비워갈 때 쯤.
“정한수…… 죽었대.”
유석의 말에 시운의 움직임이 멎었다.
정한수가 죽었다라.
예상했던 시나리오다.
윤동석 협회장이 손을 썻겠지.
그치만 이렇게 죽었다는 소식이 빨리도 들려오니까 세상 참 무섭단 생각이 든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같다.
그렇지만 정한수는 정말 쓰레기의 부류다.
게다가 시운의 뒤까지 밟으며 누군가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상태였다.
죽던 말던 그뿐이다.
“어떻게 죽었냐면……”
“자살이겠지. 뭐, 뻔하지.”
시운은 알고 있다는 듯 답했다.
뻔했다.
자살로 위장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협회가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다.
비리, 음모, 살인이 무성한 곳이 협회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곳은 알고 보면 무서운 집단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얼마예요?”
“16000원이요. 근데 총각 저 앞에 차.. 총각 차 맞아?”
아주머니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시운의 슈퍼카가 위용음 뽐내며 가게 앞에 서있다.
“네.”
“아이고…. 나이도 우리 아들보다 어려보이는데 성공 했나보네? 차 멋있다.”
“그냥 운 좋게 하는일이 잘 돼서요.”
“겸손하기까지 하네?”
이제 이런 말이 쑥스럽다.
예전 같았으면 없는 돈도 있는 척 하는 나였지만.
진짜 여유가 생기니 이런 마인드가 되었다.
가게 주위로 그 말을 들은 손님들의 시선이 시운과 그의 차로 번갈아 쏠린다.
‘와…. 이번에 나온 페라리네.’
‘저런 차 한 번 박으면 인생 나락이지.. 근데 뭐하는 사람일까? 사업하는 사람인가.’
‘얼굴도 잘생긴 놈이 차까지 좋은 거 모네. 썅... 부럽네.’
손님들의 부러움과 시기가 담긴 시선이 쏠리던 말던 시운은 신경스지 않고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내밀었다.
“내가 낼게.”
유석이 시운의 손을 치우고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밥이라도 내가 사고 싶어서 그래.”
유석이 그렇게 말했다.
저 형 표현은 잘 못 하지만 정도 많고 고마움도 잘 안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간다.
“뭐, 밥 산다니까 말리진 않을게. 잘 먹었어, 형.”
“이 정도가지고 뭘. 앞으로 보답할게 많아.”
유석과 시운은 가게에서 나와 차에 몸을 실었다.
“에휴. 형에게 보답을 바라고 동생을 만나게 해준 거 아니야.”
“그래서 더 고맙단 말 밖에 안 나온다.”
유석이 시운을 진하게 바라본다.
“아…. 좀 그런 눈으로 보지마.”
쑥쓰러웠다.
그 말에 유석이 고개를 돌린다.
“아니, 그렇다고 고개를 돌려버리네? 그럼 내가 미안해지잖아.”
“아, 그런가?”
그의 허당끼에 또 웃음이 튀어나왔다.
“아, 근데 김유빈 말이야. 그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유석의 말에 웃던 시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
풍운길드의 대표 이준호는 모니터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그의 시야로 멀티 모니터들 속 실시간 던전현황 상황과 클리어된 던전들의 이름, 진입한 헌터들의 이름들이 들어온다.
“절대 놓칠 수가 없어.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
“당연히 말도 안 되죠.”
준호의 말을 영업팁장 윤호가 받았다.
그는 이시운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F급 헌터가 A급 던전들을 십 분만에 클리어 하고 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SF라잖아요.”
옆 테이블에 걸터앉은 한나가 끼어들었다.
SF라는 별명.
이시운이란 헌터에게 붙은 별명이다.
“S급 같은 F급 헌터?”
준호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유치하긴 하지만 딱 맞는 별명이다.
이미 헌터 커뮤니티부터 여러 길드까지 그 소문은 파다하게 퍼진 상황이다.
여기저기 길드에서 이시운을 스카우트 하려고 혈안이 된 상태다.
“대표님. 저를 믿어주십쇼. 저 알죠?”
“…너? 모르는데?”
“아니, 왜 그러십니까.”
“이미 못 데려왔잖아?”
준호가 윤호에게 꼽을 주듯 말했다. 영업팀장 윤호는 사람을 잘 구슬리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그런 그는 물론이고, 대표인 본인이 직접 나서서 제의를 했지만, 쪽만 팔고 온 것이 엊그제 같다.
근데 이번만큼은 다르다.
“그래서 예산 다 끌어 모았잖아요?”
한나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풍운 길드는 현재 예산을 무리하게 끌어모아서 큰 돈을 만든 상태다.
진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만든 거금.
준호가 테이블을 쾅! 치면서 윤호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번에는 반드시 데려와야 된다. 자네를 믿어. 이번에도 못 데리고 오면 영업팀의 귀재란 타이틀도 떼고 우리 길드에서 그냥 나가라.”
“저만 믿으십쇼.”
윤호의 눈이 빛났다.
* *
“…… …… ……… 그래서 말이죠! 이시운 씨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길드에 오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윤호는 말을 마치고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 온갖 칭찬들을 뱉고, 또 뱉으며 명분있는 말까지 다 뱉었다.
물론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여태껏 영업팀에서 굴러먹은 말발과 경험등을 모두 쏟아 능글맞게도 말이다.
그 말들을 가만히 다 들은 시운은 아메리카노를 한 입 들이켰다.
윤호는 가방에서 고급스레 포장된 상자 하나를 꺼내 시운에게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
“별 거 아닙니다. 그냥 1억 정도 하는 시계입니다.”
별거 아닌게 아니다.
1억이나 하는 시계다.
뇌물로 바칠 생각이다.
지금 이렇듯 중상급 규모의 길드에서 영업팀장이 F급 헌터에게 이렇게 한다는 것은 사실 소설같은 일이다.
그러나 소설 같건 말건 그딴 건 이제 중요치 않다.
길드의 도약을 위해선 반드시 이시운이란 보석이 필요했다.
“…….”
시운은 별 흥미가 없다는 듯 상자를 바라봤다.
‘1억짜리 시계에도 별 놀랍지 않단 눈이네? 하지만 아직이다.’
윤호는 프로답게 당황하지 않고 넥타이를 고쳐매고 헛기침을 하며 목을 다듬었다.
그리고 시운을 똑바로 쳐다봤다.
확실한 결단을 내리고 타인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선 힘있는 눈빛과 언변이 중요하다! 그게 지금 이 순간이다!
이제 이시운에게 놀라운 제안을 할 것이다.
그거면 당연히 넘어오겠지.
넘어올 수 밖에 없는 게임이다.
윤호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저희 길드에 백억을 요구하셨죠?”
“그랬었죠.”
“드리겠습니다.”
“백억을요?”
시운의 물음에 윤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억을 주고 헌터 하나를 데려온다라? 그것도 F급을?
이건 소설 속에서도 개연성 없는 일이다.
반드시 데려간다.
이 금액을 부르기 위해 길드의 예산을 모조리 끌어모았다.
말을 마친 윤호는 시운을 바라봤다.
이제 넌 오케이란 대답만 하면 돼. 표정은 무표정이지만 속으로 많이 놀랬지? 진짜 내가 백억을 부를 줄은 몰랐지?
윤호는 가만히 시운을 바라봤다.
“정말 백억을 계약금으로 준단 말씀입니까?”
“전 거짓말 안합니다. 쪼매난 길드도 아니고, 제가 이름있는 길드의 팀장인데요. 거짓말 하겠습니까?”
“백억이라.”
“승낙만 해주시면 바로 계약 진행하겠습니다. 이미 바로 입금도 가능한 상태고요.”
이제 오케이만 해라.
그러던 그때였다.
“백억을 부른 건 그때 일이고요. 지금은 지금입니다. 좀 더 단가를 좀 높여 주셔야겠습니다. 그러므로삼백억만 준비하시죠. 그게 아니라면 계약할 마음 없습니다.”